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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방금 전
희곡은 문학 가운데, 화술 Speech의 예술이다.
희곡은 행동문학이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하는 공연문학이다.
희곡은 직접적인 공연의 인생고백문학이다.
“내일....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오! 삶은 불확실한 바다위의 항해.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 일인가? 좋거나 나쁜 건 없는데,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인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셰익스피어 희곡 명대사들)
55년 연극 인생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맥베드’, ‘햄릿’을 연기한 필자에게도 희곡은 작가의 주제의도를 치밀하게 배역으로서 대신 표현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어려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희곡은 단순한 스토리텔링에서부터 배역 그리고 다른 배역들과 주고받는 대사와 대사, 액션과 리액션의 극렬한 앙상블을 추구하는 공연을 전제로 하는 문학이기에 그러하다.....!
인류가 文字로 된 文學이란 예술을 창조하여, 위대한 문명의 한 축을 이어왔다. 다른 문학 장르인 시, 소설, 수필, 평론과 다르게 특히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직접 찾아온 관객과 함께 다매체의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과 참여로 소통을 이룰 수 있어, 타 문학보다는 덜 고독한 예술이겠다.
희곡 작품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말의 힘을 절절히 느끼는 문학의 본질 앞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희곡은 곧 좋은 공연의 첫 번째 시추(試錐)다. 단 좋은 희곡을 배우, 연출 등 다른 협업 예술가들이 확실한 작품 분석에 의해, 절묘한 창조 작업으로 충분히 도와주어야만 우리 뇌와 가슴에 절절하게 남는 여운과 감동을 주는 명품명작(名品名作)이 되는 것이다.
희곡문학의 역사는 오랜 자취를 더듬어 가게 한다. 그리스 희곡은 기원전 5세기, 6세기경으로 올라간다. 아이스큘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지금도 그들의 작품은 끊임없이 세계 곳곳에서 성황리에 공연 되고 있다. 16세기 이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괴테, 입센, 안톤 체홉, 브레히트, 버나드 쇼오, 오스카 와일드, 유진 오닐, 아서 밀러, 피터 쉐퍼 등의 작품은 지금도 핫한 명작명품공연으로 쉼 없이 공연되고 있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욕망이란 이름의 전차_ 포스타
현대인의 삶을 집요하게 조명한 현대연극(現代演劇) 가운데, 필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유리 동물원’, ‘여름과 연기’,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카미노 리얼’, ‘이구아나의 밤’, ‘지난여름 갑자기’ 등 현대인의 영혼과 정신적, 내면적 문제를 세상에 내놓은 미국 최고 반열의 희곡작가 테네시 윌리엄즈(Tennessee Williams/1911-1983)의 명품희곡에 따른 명품연극을 거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욕망이라는 전차 중에서
사진: 욕망이라는 전차 중에서 말론 브란도와 비비안리
“누구나 태어나서 문제와 고민을 안고 싸우다 죽어가는 거지. 세상 어떤 사람도 로오라 당신만큼 좋은 사람은 없어. 문젠 어떤 점이 뛰어나는지 당신 스스로 발견하는 일이지....(유리 동물원 중에서)”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유리동물원_ 전단
“난 언제나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같아. 그래서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높은 지붕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고 뛰어내릴 수 있잖아?(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중에서)”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유리동물원_ 포스타
“당신이 내 마음에 상처를 줬을 때, 난 거의 죽을 뻔 했어요. 하지만 영혼이 있잖아요. 보이진 않지만...... 전 그걸 안고 당신을 지금껏 사랑했어요. 당신이 내 육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이상으로 난 당신 영혼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예요.(여름과 연기 중에서)”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_ 엘리자베드 테일러와 폴 뉴먼
“낯선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 텅 빈 내 맘을 채워주는 거예요. 이 남자 저 남자.... 보호받길 원했던 거죠. 다른 데 갈 곳이 없었어요. 청춘은 물안개처럼 갑자기 사라지거든요.(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중에서)”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욕망이란 이름의 전차_ 장면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오르페우스 디센딩_에서 말론브랜도
특히 여성의 심리를 극명하게 묘파(描破)하는 작가 테네시 윌리엄즈. 뉴욕에서 필자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무대 공연과 동명(同名)의 영화를 감동 깊게 봤다. 그리고 운 좋게도 'CBCB 극장에서 ‘카미노 리얼(Camino Real)’이란 작품에 출연과 안무를 했고, 귀국 후엔 그의 자전적인 작품 ‘유리 동물원’에서 그의 젊은 시절의 분신, TOM 역할을 공연하며 그의 진지하고 서글픈 작품 세계와 조우(遭遇)하며 교류(交流)했다. 테네시 윌리엄즈야 말로 현대연극의 비극 작가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유리 동물원_에서 Tom역할의 필자
미국 연극을 세계 연극의 최첨단 교두보(橋頭堡)에 올려놓은 유진 오닐, 아서 밀러와 함께, 미국 3대 극작가로 테네시 윌리엄즈(본명:Thomas Lanier Williams 3세/1911.3.26.~1983.2.25)는 演劇史에서 늘 거론된다. 신발 판매원 아버지와 목사 딸이자 음악 선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시시피주 콜럼부스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테네시 윌리엄즈는 어렸을 때, 디프테리아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한다. 그로 인해 몸이 몹시 쇠약해져 1년간 집에서 누워 지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여자보다 약하다고 취급했고, 불행한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반면, 테네시 윌리엄즈를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대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런 감수성 짙은 유년기 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피할 수 없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여덟 살 되던 해, 가족은 아버지 승진을 계기로,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과음과 술에 취해 난폭한 행동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전전해야만 했다. 글에 대한 재능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 16세 때에 ‘Smart Set'에 게재한 글이 인정받아 3등 수상을 하였고, 이듬해 17세 때 첫 단편소설 ’니토크리스의 복수(The Vengeance of Nitocris)가 지역 유명 잡지 ‘Weird Tales’에 실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그러나 그 이후, 작가로서의 유명세는 오랜동안 고군분투로 일관되었다.)
미주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으나, 그의 회고대로 지루한 수업에서 탈피하려고 애써, 본격적으로 시, 소설, 수필, 희곡을 집필, 생계를 위해 출품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1930년에 발표한 첫 번째 희곡, ‘Beauty is the Word'는 가작으로 당선이 되기도 했다. 학교 적응이 어려운 걸 안 아버지는 테네시 윌리엄즈를 신발공장에서 일하게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단조로운 공장 일에 혐오감을 느껴 일주일에 한 편 정도의 글을 쓰겠다는 목표로 더없이 글쓰기에 전념한다. 그의 어머니가 한 말, “블랙커피와 담배를 들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딸각거리는 타자기 소리가 밤늦게까지 들려왔었어요.”
과로와 쇠약함에 빠진 24세의 테네시 윌리엄즈는 마침내 신경쇠약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다. 얼마 후, 그의 부모는 이혼이 아닌 별거 상태가 됐고, 희곡문학에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뉴욕 'The New School, Dramatic Workshop'에서 본격적인 수학(受學)을 시작한다. ‘연극은 내 목숨을 구해준 유일한 것’이라 말할 정도로 극작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그는 마침내 1939년 作家名을 ‘테네시 윌리엄즈’로 바꾸어 본격적인 희곡작가의 길을 걷는다.
셰익스피어와 체홉, 랭보, D.H 로렌스, 스트린드베르히, 에밀리 디킨즈, 윌리엄 인지, 제임스 조이스를 특별히 흠모했던 테네시 윌리엄즈는 1930년대에서 40년대 양계장 관리인 등 여러가지 극작과 전혀 관계없는 일로 삶을 힘들게 이어갔고, 그러다가 1943년 자전적인 단편소설 ‘유리 속 소녀의 초상(Portrait of a Girl in Glass)’ 배경으로 쓴 희곡, ‘The Glass Menagerie(유리 동물원)’가 시카고에서 첫 공연을 가져 호평을 받고, 마침내 뉴욕공연에서 연극부문 권위의 큰 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협회상’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둬, 일약 극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_ 중에서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오르페우스 디센딩_ 공연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_유리동물원_ 공연2
이어 1947년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여름과 연기(Summer and Smoke/1948)’, ‘장미 문신(The Rose Tattoo/1951)’, ‘카미노 리얼(Camino Real/1953)’,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1955)’, ‘오르페우스 디센딩(Orpheus Descending/1957)’, ‘지난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1958)’, ‘청춘의 달콤한 새(Sweet Bird of Youth/1959)’, ‘이구아나의 밤(The Night of the Iguana/1961)’ 등 왕성한 작품 발표로, 권위의 퓰리쳐상 2회,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상 3회, 도널드상 3회, 토니상 1회를 수상하는 기염(氣焰)을 토해낸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 어린시절(5세) 모습
테네시 윌리엄즈의 작품을 무대와 영화 속에 성공을 거두게 만든, 당대 최고의 무대 연출가이며, 영화감독인 엘리아 카잔은 말했다. “희곡 속에 그의 모든 인생이 녹아있고, 인생의 모든 것이 그의 희곡 안에 내재돼 있는 놀라운 작가다!” 그야말로 명품 희곡에 투철한 명품인생이 묘사된 것..... 사실 미국 극작가 가운데 테네시 윌리엄즈처럼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작가는 많지 않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장미 문신’, ‘오르페우스 디센딩’, ‘이구아나의 밤’, ‘청춘의 달콤한 새’, ‘여름과 연기’, ‘지난여름 갑자기’ 등......!
이러한 성공을 배경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즈는 불행하게도 1960년대 이후, 개인적 삶의 혼란 속에 방황이 시작된다. 1950년대 그의 파트너라고 알려진, Frank Merlo(1922-1963)와 “오직 급진적인 변화만이 내 글쓰기의 영혼을 부추길 수 있고, 내 삶의 내리막 길 하향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고정적인 거처가 없이 뉴욕을 위시해 뉴올리언즈, 키웨스트, 로마, 바르셀로나, 런던 등지를 옮겨 다니며 극작에 전념하지만, 상실에 대한 우울증과 약물복용, 알코홀 중독 등은 그의 후기 작품들 ‘킹덤 오브 어스(1967)’, ‘도쿄 호텔 바에서(1969)’, ‘스몰 크래프트 위닝(1973)’, ‘두 캐릭터 플레이(1973)’, ‘붉은악마 배터리 사인(1976)’, ‘비유 카레(1978)’, ‘여름호텔 옷(1980)’ 등..... 모두 흥행에 실패를 거듭한다. 더욱이 그의 파트너 프랭크 메를로의 죽음은 그를 우울증에 따른 존재상실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의 마지막 시카고에서 공연된 작품 ‘서 있지 않은 집(1982)’은 안타깝게도 40회 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테네시 윌리엄즈 그가 특히 여성 배역에 대한 매우 정교한 탁월한 심리묘사는 어린 시절 그의 여동생 ‘로즈’와 평생을 함께 가깝게 지내며 받은 특별한 연민의 정과 감수성이다. 동생 로즈는 어렸을 때 이상한 불안증세에 시달려 뇌엽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고 평생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테네시 윌리엄즈가 극작가로서 성공한 후, 동생을 뉴욕 인근으로 옮기게 했으며, 그의 작품 판권 지분을 또한 동생에게 주어 병원비용으로 대신하게 했다.
이러한 그의 가족과 가정에서 받은 생활고에서 이어진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우울증은 결국 그를 동성애자로 만들어, 뉴욕에서 배우 Frank Merlo와 소위 파트너란 관계로 14년 동안 오랜 친분을 유지하게 만든다. 동생 로즈처럼 정신이상에 빠질 까 두려워했던 테네시 윌리엄즈에게 파트너 ‘프랭크 메를로’는 비서 겸, 친구 겸, 동성애 파트너로서 그의 회고대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동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프랭크의 죽음 이후, 테네시 윌리엄즈는 긴장증세, 우울증, 상습적 약물복용 등으로 여러 번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던 1983년 2월 25일. 테네시 윌리엄즈는 뉴욕 ‘엘리제 호텔’ 스위트룸에서 향년 71세의 나이로 숨진 채 발견된다. 당시 뉴욕 시 검시관 ‘Elliot Gross'에 의해 입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이 발견되었고, 독성 수준의 세코날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다.
1972년에 쓴 그의 유언장에 이런 글이 있다.
“난 건전한 정신으로 친구들에게 거듭 선언하며 밝혔다. 내가 죽으면 바다에 묻히게 해 달라고..... 시인 Hart Crane이 바다를 선택해 죽은 것처럼! 캔버스로 된 자루에 내 시체를 넣고 바다에 던져, 하트 크래인처럼 바다라는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에게 안기고 싶은 것이다. 가능하면 칼리브해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사진: 테네시 윌리엄즈가 묻혀있는 세인트루이스 갈보리 묘지
하지만 시체를 인계 받은 형 ‘데이킨 윌리엄즈’는 그를 세인트루이스 어머니가 묻힌 묘지에 안장했다. ‘뉴욕 타임즈’에 의해 밝혀졌지만, 그의 판권 등 대부분은 테네시 주 스와니에 있는 ‘사우스 대학교’에 남겨졌으며, 여동생 로즈가 살아있는 동안 신탁되었었다고 전해진다.(여동생 로즈는 1996년에 뉴욕 병원에서 영면했다.) 700만 달러가 남겨져, 미 전역에 ‘글쓰기 프로그램(Creative Writing Program)’으로 매년 지원되고 있으며, 그의 탄생 100주년 되는 2011년엔 텍사스대학 ‘Harry Ransom Center’에선 테네시 윌리엄즈가 남긴 희곡 원고, 서신, 사진, 예술 작품 콜렉션 등 250점을 전시했다. 또한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플로리다 키웨스트엔 그의 이름을 헌정한 극장 'Tennessee Williams Theater'가 설립되었다.
사망 당시 그가 집필 중이었던 생애 마지막 미완성 희곡, ‘In Mask Outrageous and Austere'는 뉴욕 시 지원으로 2012년 세계 초연을 준비, Gore Vidal이 완성하고 David Schweizer가 연출, 'Shirley Knight'가 주연으로 출연해 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리고 매년 뉴올리언즈에선 1986년부터 ’테네시 윌리엄즈 뉴올리언즈 문학축제‘를 그의 생일이 있는 3월말에 열고 있고, 2015년에는 그를 기리는 'Tennessee Williams Theater Company'가 설립되어 그의 작품만 공연하는 특별한 극단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대문호(大文豪)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즈는 현대 희곡작가로서 지금도 우리 곁에 영면의 숨을 쉬고 있다.
연극이 화려한 꽃을 피우려면 탁월한 희곡작가의 탄생은 기본이다. 국내에 1,000여개의 연극단이 존재하지만, 활동하는 극작가는 20명도 안 된다. 생활을 위해 그나마 재능 있는 작가는 영화나 TV드라마 작가로 변신을 노리고 있다. 1908년 한국 신극(新劇)이 신소설 작가 이인직에 의해 “은세계”란 작품이 ‘원각사’란 이름의 극장에서 공연되어 100년이 넘었다. 그 세월 속에 우리도 지금 공연되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이영녀(김우진)’,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마의태자(유치진)’, ‘황진희(구상)’, ‘나비야 저 청산에(이하륜)’ 같은 좋은 극작품들이 있으나,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 한국을 대표하는 희곡작가가 없다는 것은 그 연유를 짚어보고 고심해 봐야 할 일들이다.
테네시 윌리엄즈처럼 우리 어머니, 누나, 여동생을 그리는 멋진 명작희곡에서 한국 특유의 명품연극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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