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경영]
ㅡ kjm _ 2023.8.19
prologue : 사람이 모이는 것 / 생각이 모아지는 것
2022.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막는 데 집중되었다. 그래서 명단 공개를 막으려 했고 유족들 갈라치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제 12월 10일 ‘유가족 협의회 창립 선언식’을 보면서, 윤의 기획은 대실패했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막으려다가 '생각이 모아지는 것'을 더 크게 키웠다.
사람이 모이는 것보다 생각이 모아지는 것이 훨씬 더 무섭다. 윤석열 정부는 그걸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생각이 모아지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촛불을 든 사람들 모습이 보이면 다시 또 사람들이 모이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연속된 실패와 참사와 뒤따른 망언들이 사람들의 생각이 모아지게 만들었다. 쪽팔린다는 생각을 함께 공유하면서.
무속 신앙에는 생각을 모으게 하는 힘이 없다. 반면에 종교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러나 "종교가 무속에 봉사한다."는 숱한 의심을 낳으면서 종교는 자신의 힘을 잃었다.
교회나 사찰이 자산 증식에 열을 올렸어도 “신앙이 자본에 종사한다”는 비판에 그쳤고, 목사가 성범죄를 저질러도 개인 일탈로 비난하는 데 그쳤다면, 종교가 무속정권에 봉사하게 된 마당에는 종교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들어가 버렸다는 증거가 아닌가.
극우 태극기 부대는 자발적으로 생각이 모아진 집단이 아니다. 자발적 작용이 아니라, 작용에 대한 반작용의 수동적 결과일 뿐이기에 별 가치도 힘도 없는 집단으로 보인다. 촛불집회가 열릴 때만 모이는 이유다.
천공이나 신천지가 얼마나 지속적일 지는 세상이 ‘안정되느냐, 불안정하냐’에 달렸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이 안정을 찾게 되면 마치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사라질 사람들로 보인다.
경직된 이데올로기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생각이 모아지는 것은 다양성이 있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힘 있게 살아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1. 생각 경영 (thinking management)
여러분들 중엔 검사나 판사나 의사보다 재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들 '기업 경영'을 꿈꾸겠다. 그런데 기업을 크게 성공시킨 재벌 총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경영'이라고 거의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 여러분이 재벌이 되거나 더 나아가 재벌을 뛰어넘는 초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생각을 경영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재벌가 막내아들' 7화까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참! 혹시나 해서 사족 하나를 달면, ‘남의 생각을 조종하려는 것’은 최하의 책략일 뿐이고, ‘자기 생각을 경영하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남에게 자기 생각을 조종당하지 말라는 것!
2. 생각이 밖으로 흐르게
생각은 흐르게 해야 해. 흐르지 않고 고여있으면 우물안 개구리의 생각이 되고 마는 거지.
경제도 마찬가지야. 낙수효과만 바라보려는 건 천수답 경제가 되고 마는 거지.
인디언 기우제식 검찰수사도 경제인들의 생각을 멈춰 세워 결과적으로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셈이지. 가령, 성남FC에 광고를 냈던 두산의 경우처럼.
채권시장의 돈맥경화와 신용위기도 역시 생각의 흐름을 꼼짝달싹 못하게 막는 셈인 거지. 결국 PF 대출로 건설 사업을 앞으로는 못하게 된단 얘기가 되겠군.
국민 전체 자산의 70%가 부동산이야. 즉, 전체 부채의 70%가 부동산 부채란 거지.
거래절벽으로 부동산이 꽁꽁 얼어붙었으니, 2천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금융위기의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윤석열 정부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니, 공무원들이 생각을 멈추고 복지부동의 자세로 변했어. 결국 행정 마비를 가져오는 셈이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앞장서 검찰을 마약수사몰이를 하더니, 서울시 지자체 직원들과 경찰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멈추게 해서, 결국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이유 없는 159명의 죽음과 3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지.
계획도 없이 졸속으로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하면서, 국방부와 외교부를 멈춰 세웠어. 사람들 생각의 흐름이 끊긴 거지. 결국 외교참사가 일어났고 미사일이 뒤로 날아가는 일도 벌어졌지.
KTX와 SRT의 분리와 민영화 문제로 열차 사고가 급증하고, 한전의 민영화 문제로 채권시장을 얼어붙게 하고, TBS와 MBC의 언론탄압과 YTN의 민영화 문제로 방송사고가 계속되지.
3. 생각을 자유롭게
생각 경영에 있어서, 생각은 늘 자유로워야 해.
자유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다는 뜻이지.
공무원들을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만들고,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함부로 자유를 말하지 마시라!
주식과 관련해서 보자면, 셀트리온 주가는, 2년 전(2021.1) 37만 원에서 17만 원으로 주저앉았어. 절반 이상 하락한 거지.
1천만 원 투자했으면, 채 500만 원도 안 남은 것. 계속 갖고 있으면, 마이너스 500만 원의 심리상태가 계속되면서, 생각이 다른 선택지도 없이 계속 질질 끌려 다니게 돼. 마치 목에 개목줄이 채워지는 것처럼.
반면에, 즉시 매도해서 500만 원이라도 회수한다면,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고, 주체적 판단을 회복할 수 있지. 그리고 새 판단과 새 결정에 성공한다면 1년 후엔 셀트리온에 1천만 원 원점으로 컴백해 투자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지. 셀트리온 투자에 투자액의 절반을 날린 친척 동생에겐 금이나 은 투자를 권해보긴 했지.
경쟁에서, 일시적 판단의 실수나 실패가 있었더라도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각 경영에서도 역시 주체적 판단과 자유로운 선택이 중요해. 무언가에 종속되거나 집착해서 질질 끌려다니면 답이 없지.
조선해양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을 힘으로 누르려고만 하더니, 노조를 악마화하고, 결국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기업이 마음껏 해고할 자유)가 아니라 경직화(노동계 투쟁)를 초래하고 있어.
3% 부자감세를 무리하게 추진하더니, 감세 혜택을 받게 되는 SK 최 회장이 “무차별적 감세는 옳지 않다”고 지적까지 했을까. 오죽했으면.
권력을 이용해 여론조사 기관들을 좌지우지 하니, 여론조사의 신뢰성은 점점 떨어지고, 국민들의 생각을 멈춰 세우려고 하는 중이지.
관료들을 전부 줄세우기 해서, 생각을 한쪽 방향으로만 몰고 가려는 시도는, 1970년대와 80년대에나 있던 일로, 시대역행을 하려는 셈이지. 다른 나라들은 바쁜 걸음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후진기어를 넣고 있는 셈이야.
윤석열 대통령은 리더십이 없거나 뒤떨어진 '후진충'(bugs back)이라는 것.
생각이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자기집 땅 밑으로 스며들게 해서 서서히 사라지게 만드는 격이야.
4. 생각의 공유
흔히 사람들은, 돈을 보태려 하고, 거기에 다시 힘(권력)을 보태려 하고, 나아가 쪽수(사람)를 보태려고 하는데, 딱 거기까지야. 그래서 ‘생각들을 보태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해.
돈을 공유하고, 권력을 셰어하고, 조직을 키우면서, 그들만의 리그라지만, 그리고 때론 술자리에서 감정까지도 공유한다는데, 왜 생각을 공유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걸까?
옳은 생각을 공유 못 하고, 삐뚤어진 생각만 공유하는 까닭은, 결국 서로 같이 나눠먹을 게 있기 때문이겠지. 독과점적으로 챙겨먹을 그런 것들을.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경영'을 줄곧 외쳐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식은 생각이 아니라 충성인 경우가 많지. 오너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아부성 합리화의 지식이지.
그러니 혁신은 없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자들의 끼리끼리 결속만 있게 돼. 비판을 허용하지 않아. 비판 자체를 적으로 보지. 독단 독선 아집이 그 집단의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봐.
돈을 가져다주는 사람,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사람,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할 뿐, 생각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존재가 될 뿐이야. 오직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고, 아예 생각도 말라는 식의 눈치를 아랫사람들에게 엿먹이듯 하지.
임원들 중에 누군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를 다른 임원들에게 사냥감 먹이로 던져. 우선은 칭찬하지만, 피 튀기는 경쟁심을 유발시키면서, 아이디어는 빼먹고, 피의 사냥을 즐기는 것이지.
바이러스가 번져가듯,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집단적 분위기가 조직 전체로 번져가고 암세포가 자라듯 모두가 서서히 죽어가.
기계가 되어 닳아진 인간, 신의 노예가 되어 버려지는 인간, 상사의 노리개가 되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인간, 생각 자체가 점차 사라졌으니, 주체적(주어적) 판단도 자유도 자발적으로 반납하고 마치 종처럼 살아가. 그리고는 습성이나 근성(노예근성)으로 자리잡지. 천형을 받았다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5. 생각의 껍질 깨기
생각의 껍질을 깨야 한다. 그래야 ‘앞선 지식’을 얻고 또한 더 큰 이익도 얻는다. 그 방법은, 줄탁동시(啐啄同時)다. 즉, 안에서도 깨고 동시에 밖에서도 깨고, 동시 타이밍을 가져야 한다.
면벽을 통한 명상이나 기도만으로는 생각의 껍질을 깰 수 없다. 외부의 충격(자극)이 있어야 하고, 안에서도 생각의 증폭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서 한 껍질 한 껍질 벗는 것이다.
생각의 껍질이 가장 두꺼운 사람들이 검사란다. 열 명 중 여덟은 정치적 성향이 있으면서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 거의 바뀌지 않는 사람들로, 정치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노영희 변호사)
대학 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평생 동안 열 번도 더 봤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노교수님을 기억한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분이시다. 내적 생각 증폭기는 우수해도 외부 변화로부터는 충격을 훨씬 덜 받았기에 줄탁동시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걸로 추측한다.
생각의 껍질을 깬다는 것은, 보는 관점이 새롭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궁여지책'이란 말도 있고,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는데, 환경 자극에 ‘최적화’된 반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을 찾는다는 뜻이다.
미국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양적완화(QE)로 전 세계의 부채총량이 통제 불능일 만큼 늘어났고, 이로 인해 산업 부실화와 혁신의 부재, 인플레이션, 부동산 폭등 등으로 많은 문제들이 쌓여왔다.
문제의 심각성과 더불어 강한 통제 압력을 받게 되어, 갑자기 금리인상과 양적긴축(QT)으로 전환하면서, 전 세계는 경제적 사회적 다운그레이드 현상을 겪게 되고, 이에 대한 순발력 있는 반응과 적응과 적절한 대책을 갖추지 못해 허둥지둥 우왕좌왕하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껍질을 깨는 일이다. 우물 안에 갇혀서 안심해 하던 생각으로는 변화의 흐름을 잡지 못하고 세계와 사회와 역사로부터 도태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도태 과정의 순간에서 흔히 보여지는 모습이, 멘붕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원칙을 무너뜨리고 깨뜨리는 막장의 모습들이다.
생각의 껍질을 깨라고 했더니, 상식을 뒤집고 원칙을 무너뜨리며 변칙과 반칙들만 찾는다. 결코 지속적일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란 말은, 원칙을 깨는 일이 아니라, 생각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일이다. '블루오션'도 레드오션 속에서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는 일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 경영'을 말할 수 있다.
6. 판단과 선택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일, 갈등하고 고민하는 일, 판단하고 추론하는 일 등을 뜻한다.
즉,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 복잡하게 엉킨 걸 단순하게 풀어내야 하는 상황, 문제 해결을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다.
선택은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수동적으로 고르는 것이라면, 판단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옳은 선택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ㅡ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두고 ‘선택’이라 말하지 판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ㅡ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두고 ‘갈등’이라 하지 판단이라 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를 듣고 나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유명한 대사 하나가 드라마에 종종 등장한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을래?"(재벌집 막내아들)라는 대사다. 이 대사의 원조는 시드니 셸던의 소설 '내일이 오면'(if tomorrow comes)에서 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시험문제 정답처럼 쉽고 간단하게 고르고 선택할 상황들이 현실 안에서는 거의 없다.
가령, "팔을 부러뜨려 밥숟갈을 못 들게 해줄까, 다리를 부러뜨려 기어가게 해줄까?"와 같은 좀 극단적 예이긴 하지만, 이도저도 선택하기 곤란한 혹은 선택이 불가능한 강압적 상황들이 실제에선 대부분이다.
또한, 미지의 양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까를 고민하면서 생각하는 건 살아가면서 숱하게 거치는 상황들이다. “문과를 갈래, 이과를 갈래?”의 물음처럼.
그래서 인생은 늘 후회를 남기는가 보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결국 다른 것들을 포기한다는 뜻도 되는 거니까.
우리들 누구나 고민 없이 쉽고 간단하게 판단하고 싶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만, 실수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져야 할 후과를 걱정하기 때문에 생각한다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면서 무수한 판단과 선택의 순간들에서 고민이 많았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에포케’(epoche 판단중지)라는 말도 생겨난 것 아닐까?
생각하기 싫은데,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무수히 많이 겪는다. 그러다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아서 생각이 뚝 끊기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는 우울이나 자기도 모를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지혜롭거나 착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슬기롭게 문제 상황들을 풀어갈 수 있다고 본다.
어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니, 여주인공 탕웨이가 공자의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자한 사람"이라는 이야기 대목이 나오는데, 생각은 지혜로워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최소한 착한 생각이라도 가져야 하지 싶다.
덧붙여서, ‘무능하면서 독한 사람’은 생각 경영에 있어서 최악 중에도 최악이 아닐까?
7. 생각의 지향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부딪히고 말다툼하는 경우들이 흔하다. 그리곤 "너 시비거냐?"란 말이 등장한다.
'시비', 즉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이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즉 “긴 걸 기다, 아닌 걸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말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즉 “양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팔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팩트를 근거로 가져오고, 논리를 동원하고, 황희 같은 정승의 권위를 빌려온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주먹질로 비화하기도 한다.
제3자가 옆에서 보다가, "네가 옳다고 치자. 그러면 그게 너에게 어떤 이익이 있느냐?"라고 묻는다고 가정한다면, '참과 거짓‘의 문제가 갑자기 '이익과 손해’의 문제로 점프한다.
즉, 논리와 인식의 문제가 실용의 문제로 비약한다. 다시 말해, 이익과 유용성 때문에 '자기 논리'를 접는 경우가 생긴다. 프래그머티즘 절학이 지향하는 바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을 더 얻기 위해 평소에 주장하던 정치적 소신을 일시적으로 굽히는 경우다.
‘진실을 얻기보다 이익을 얻는 게 더 낫다’고 한다면, 경제학과 경제이론이 들어설 여지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낙수효과 이론’을 종종 말하는데, 목표했던 결과를 보여준 적이 거의 없으니, 이것은 이론(건물)이라기보다는 가설(가건물, 이미 폐기됐어야 할)이라고 봐야 한다.
한편, 경제이론들이 등장하던 초기에 등장한 벤덤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실현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명제였다는 사실이다. 그저 이상적(理想的) 관념이었을 뿐이다.
'최대의 다수에게', 그리고 '최대의 행복'을 동시에 얻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아마 하느님이 오셔도 그렇게는 못 하실 것이다.
다만 이 말이 뜻하는 바는, ‘합목적‘을 지향하라는 의미다. '간주관의 통일'을 이루게 노력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즉,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되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서 고려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은, '진리탐구'에서 '이익추구'로, 그리고 다시 '공공선의 추구'로 발전해왔다고 보여진다.
이를 거슬러 역행해서, 거짓말이 무차별적으로 횡행하고, 오로지 사적인 이익만을 절대선으로 간주해서는, 모두에게 ‘각자도생’을 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론은 커녕 가설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무능력과 무책임의 극치인 것이다.
안전한 건물을 지어주기는 커녕, 임시 가건물조차 세워주지도 않고, 겨울 한파에 차디찬 거리로 국민들을 내모는 셈이다.
민주주의는 가설이 아니라 이론이다. 민주주의 안에는 개인의 자유만 있는 게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행복의 보장이 합목적적으로 더 크게 자리한다고 봐야 한다.
8. 생각의 그물
우리 각자는 '생각의 그물'을 갖고 있다. 그물 안으로 들어와 잡힌 물고기는 이해를 해도, 그물 밖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이해의 그물'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 자기 생각의 그물을 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기 스스로 그물을 짜지 못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남이 짜주는 그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원 과외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각종 정치 프레임에 휩쓸리는 것처럼.
경찰이나 검사들이 짜는 그물은, 범인을 잡으려는 수사와 기소의 '기술적 포획의 그물'이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세상을 읽고 쓰는 그물'이 아니다. 그래서 검찰총장이 검찰을 이용해 정권은 잡았으되, 국가운영을 뭐 같이 하는 거다.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박사학위를 따와 국내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어떤 노교수가 몇십년 전에 쓴 노트 하나로 업그레이드 한 번 없이 몇 십 년을 우려먹는 건,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낡고 어색한 생각의 그물'을 가지고 21세기에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결코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생각의 그물을 촘촘히 짜건 엉성하게 짜건 자기가 스스로 짜야 한다. 남이 짜주는 그물은 고착화된 노예적 생각만을 낳는다. 학위의 노예, 회사 승진의 노예로서.
자기가 짜지 않는 생각의 그물은, 성장도 발전의 일으킴도 없다. 돈이나 지위처럼 세습되어지지도 않는다. 생각의 변이와 증폭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책임은 없다. 그러나 억울하게 프레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의 그물을 짜지 않으면, 시지프스 신화에 갇혀서 천형으로 받는 고통(無意味와의 싸움)의 벌을 평생 짊어지게 된다.
9. 역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10번 잘못했다고 매번 매를 때리면 그 자식은 싸이코패스 성향을 보일 수 있다. 억지로라도 하나만이라도 찾아서 칭찬을 해줘야 크게 삐뚤어지지 않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10가지 중 10가지 모두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억지로라도 한 가지는 칭찬해주려 한다.
역설 네 가지를 짚어보자.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 칼을 품고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 그 칼을 MBC가 윤을 향해 품고 있을까 조선일보가 품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MBC가 아니라 오히려 조선일보가 품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에게 입안의 혀처럼 알랑대던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앞장서서 쳤듯이. (역설 1)
윤이 검찰공화국을 꾀한다면, 오히려 검찰 전체를 죽이는 일이다. 요직에 앉힌 검사들도 뒷날 집중 표적이 되어 역으로 사냥을 당할 것이다. 또한 뒷날 윤 역시 검찰에 의해 역으로 당할 것이다. (역설 2)
윤 대통령과 여당이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 탓을 해대는데, 문재인 정부는 '국가의 품격'과 '정치의 품격'을 높여 놓았다. 그랬으면 윤과 국힘은 '보수의 품격'을 높여 세워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박근혜가 보수 품격을 떨어뜨려 탄핵당한 일이 바로 엊그제다. (역설 3)
현재까지의 경제상황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ㆍ코로나 팬데믹
ㆍ초 양적완화, 글로벌 인플레이션
ㆍ네 번의 금리인상 자이언트스텝, 킹달러 현상
ㆍ10개월 연속 무역수지 마이너스
ㆍ1%대 성장률, 경기침체
ㆍ부동산 경착륙, 돈맥경화, 기업도산
ㆍ신용위기, 부채위기, 금융위기
미국 IRA(인플레 감축법안)으로 현대차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인차와 리스차는 보조금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 현대차의 노력이 물론 있었겠지만, 윤의 노력도 칭찬해주고 싶다. 위기를 더 큰 기회로 만든 전화위복의 성과가 될 터이다. (역설 4)
10. 메모리
언젠가 사상과 철학을 비교한 적이 있다. 사상은 '생각되어진 것'(묶음형)이고, 철학은 '생각하는 것'(진행형)이라고.
메모리도 마찬가지다. memories 와 memorizing 을 구분해서 볼 수 있다는 것.
생각이, ‘생각된 것’ ‘생각하는 것’ ‘생각할 것’ 등으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많이 저장하면 낸드플래시 메모리이고, 생각을 빨리 하면 디램 메모리다. 많이 저장하거나 혹은 빨리 계산하거나.
건축에 비유해 보자.
건물을 짓는데 벽돌과 시멘트가 필요하다.
"우리집에 벽돌과 시멘트가 엄청 많이 쌓여 있어. 가져오기만 하면 어떤 건물이던 지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집에서 가져오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벽돌과 시멘트를 만들면서 지을 수 있다면 집에 있는 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
데이터에 비유한다면, 빅데이터가 있어도 그걸 끌어다 쓰는 것보다, 데이터를 순식간에 만들어 동시에 사용한다면, 오히려 더 편리성과 효용성을 얻는다는 것.
금융데이터 등은 빅데이터가 안전하고 유리하지만, 전기차의 자율주행 등은 후자쪽(인공지능)을 선호할 지도.
따라서 데이터 산업도 차후로 양분화 될 가능성이 높다.
알파고 제로가 40일 동안 수천만 번의 바둑 대국을 혼자서 생각하며 두었다는 사실과, 2017년 후로 기하급수적으로 개발 발전해왔다는 사실이 자연 증명해 준다라는 것.
건축 비유의 얘기를 더 하자면,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 TSMC는, 결국 조립식 건설의 건축 회사라는 것이고, 삼성반도체는 반도체 메모리 산업의 양 갈래화 과정(메모리 집적화와 인공지능화 메모리)에서 앞설 수 있다는 예상이다. 물론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11. 생각완화/생각긴축
방금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을 보면서 느낀 점은, 두 부동산 전문가 패널을 초빙해 의견을 들어보는 설 특집이었건만.
한 패널이 "상황을 잘 살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대목에서 기가 참.
시청자들은 전문가에게 "상황 파악을 해달라"는 기대를 갖는데, 하나마나한(원론적, 교과서적, 기계적)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2023년 지금 상황에서, ‘집을 사느냐 마느냐’, ‘산다면 언제 사느냐’를 궁금해 해서 상황을 분석해 달라는데, “상황을 잘 살피시라”고 말한다면 거긴 왜 나와 있나? 전문가는 왜 필요하나?
우리가 전문가에게 요구하는 건, 지식과 판단이다. 즉, 복잡한 상황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종합해주는 지식과, 합리적인 전문가적 판단이다.
지식 자랑하듯 지식들만 잔뜩 늘어놓고 판단을 시청자에게 던져준다? 결국 자기 의견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겠단 거다.
지식이 없어 판단을 못하기도 하지만, 지식이 있어도 판단에 자신이 없을 때도 많으니까. 부동산 매매는 서민들에겐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
판단의 경우, '심리적 기대'와 '합리적 결정' 둘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30평 아파트를 사면 장차 2억을 벌 수 있다는 심리적 기대와, 이자 내기가 버거워서 25평 아파트 사서 장차 1억만 벌더라도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합리적 판단(결정) 둘로.
경제 심리적 기대는 ‘생각 완화’로, 경제 합리적 결정은 ‘생각 긴축’으로도 볼 수 있겠다.
가령, 길을 걷는데 눈앞에 5만원 지폐와 만원 지폐가 동시에 떨어져 있다고 하자. 여러분은 어떤 걸 주으려 하겠나?
'다다익선'이라고 해서 다 줏을 수도 있지만, 뒤에서 "빨리 빨리!"를 소리치면 하나만 주을 수밖에 없고, 거의 대개는 5만원권 지폐를 줍겠지. 심리적이고 또한 합리적 생각.
가령, 아버지가 재산을 상속한다시며 큰아들에게, "자유를 가질래, 재산을 가질래?"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재산을 가지는 대신에 매년 제삿상 차려야 하는 장자로서의 의무가 생기니까.
사족으로, 10원짜리 동전은 주으면 주을 수록 손해라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쉽고 프리한 기대(생각완화)를 일정 부분 누르면서, 합리적 판단과 결정(생각긴축)을 하려는 게, 우리들 생각의 목적이자 목표라고 본다. 그리고 '생각의 생활화'이기도.
중요한 점은, '긴축을 위한 긴축'이 아니라, '완화의 긴축'이라는 것.
12. 생각의 이해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령,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 경우 막막하기가 그지없다. 생각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이럴 땐 하나의 방편이 있다. 가령, "시간은 순서이고, 공간은 질서이다."라고 하나의 가설을 잠정적으로 세우고 그로부터 점차로 접근해 가는 방식이다. 생각의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즉,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 일상어를 사용해서 다가간다. 즉, 막연한 생각을 문제해결에 필요한 직접적 판단으로 접근시킨다.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을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생각을 설명할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이해를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설명해주는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식당의 밥이 싸고 맛있어서가 아니다.
이해를 돕는 것은 설명만 있는 건 아니다. 설명을 동반한 합리적(이성적) 이해 외에도, 심리적(감성적) 이해도 있다. 일상에선 오히려 심리적 이해가 빠르고 효율적일 때가 많다.
가령, 仁義禮智를 보자. 인(측은지심, 동정심), 의(수오지심, 수치심), 예(사양지심, 겸양심), 지(시비지심, 합리성)의 넷 중 앞의 셋은 심리적 이해인 것이고, 뒤의 시비지심 하나만 합리적 이해일 뿐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합리적 이해를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합리적 설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생각만 한다고 해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서 고도의 판단을 요구하는 설명이 필요하다.
가령, 망치는 아무나 휘두를 수 있지만, 바늘귀에 실을 꿰는 작업은 세심한 집중과 여러 번의 연습이 필요하고, 나아가 나노기술을 익히고 사용하기 위해선 설명 메뉴얼에 따르는 고급의 숙련이 필요하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함부로 남의 생각을 재단하기에 앞서 내 생각부터 남이 이해할 수 있게 미리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
내 생각이 단지 "무조건 너 싫어!"와 같은 심리적 호불호에만 그치지 않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부터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서로 간에 공통의 이해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13. 파월의 생각
앞에서 '생각의 이해'에 대해 말하면서, 합리적 이해는 설명이 요구되는 이해라고 했다.
이 장에서는, 현재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미 연준 의장 파월의 생각을 이해해보려 한다.
시장은 늘 이익에 충동적이다. 그러나 파월마저 충동적이라면 ‘회색 코뿔소’가 서서히 달려오든 ‘블랙 스완’이 돌연히 나타나든 모두에게 불행이다. 따라서 파월은 시장의 이익과 균형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 판단자’라고 전제해야 한다.
파월이 갑자기 왜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란 용어를 선택해서 내놨을까? 이 용어는 널리 회자되던 용어는 아니었는데..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어느 부족마을에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빈 콜라병을 주워든 '부시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달러 유동성이 폭증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봉쇄될 즈음,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부각된 게 작년 초다.
이후 파월은 빅스텝(2회)과 자이언트스텝(4회 연속)으로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물가는 9%대였고, 도달해야 할 목표는 2%대다.
킹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전세계 환율이 요동쳤다. 그리고 모두 경기침체를 점쳤다. 신흥국 40개국이 디폴트에 빠질 거라고도 점쳤다.
소비 심리를 줄여야 인플레를 끌어내리는데, 실제 신규 고용이 18만 명인지는 모르지만 발표로는 51만 명의 미국 신규 고용이 늘었다. 곧 이어서 소비 기대심리도 다시 반짝 상승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기침체도 용인할 수 없고. 주식시장의 과열을 방관할 수 없고.
여기서 파월이 내놓은 ‘디스인플레이션’이란 새로운 용어 등장은, 마치, 깨뜨려서 세우는 콜럼부스의 달걀 같은 ‘창조적 파괴’(슘페터)가 아니라, 세워서 굴러가는 동전이 좌로도 우로도 쓰러지지 않고, 위태위태하게라도 계속 굴러가게 하려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생전에 보지 못하던 낯선 콜라병을 앞에 두고, "이 뭣고!" 하는 동안 시간벌기를 하고서, 다시 콜라병의 주인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노정한 것은 아닌 지.
따라서 파월의 ‘디스인플레이션’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와 같다는 생각이다.
14. 생각의 전제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거라면 그 원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청구조 개선 우선과, 프랜차이즈사업주와 점주들 간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는 것이 전제됐어야 했다.
중국의 '소비주도성장'과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은 서로 맞물린 상태에서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는 전제에서 두 나라 모두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15. 생각이 길을 잃다
그러다 길을 잃다
그러다 달을 잊다
생각이 길을 잃다
길 없는 길을 가더라도
기승전결을 생각에 담으면
걷지 못할 길은 없다.
타인을 깎아내리려 하고, 힘으로서 누르려 하고, 말로서만 이기려 드니, 기승전 욕심으로 화해서, 욕심으로서 자기의 옳음을 채우려 한다.
끝을 모르는 욕심은 무한궤도에 빠지고, 자기 생각의 한 평 감옥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다.
생각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가리키는 상식의 길도 외면하고, 옳은 생각과 바른 생각들을 마다하며,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른 채, 어긋난 생각의 늪에 빠져 파탄의 길로 들어선다.
생각에 기승전결이 무너진 결과이다.
아이를 정성스레 돌보는 까닭은
공동체의 지속을 원하기 때문이요,
약자와 아픈 이를 배려하는 까닭은
연대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이유다.
홀로 걷는 길은 무섭고 외롭다.
함께 걸으면 두렵지 않고 즐겁다.
생각을 비밀로 묻으면 의심만 키운다.
늘어난 의심은 자신의 생각을 꼭꼭 가둔다.
닫혀진 생각으로 문을 두드리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드나드는 門인 거니까.
열려 있는 사람에게
생각의 문이 열리고
생각의 길이 보인다
생각이 길을 잃으면
세상과 멀어져간다
인생도 피폐해진다
16. 바이든의 생각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너희는 농업국가로 남으라고 했지만, 미국의 위대한 설계자 해밀턴은 1947년 산업국가로의 도약 계획을 담은 '해밀턴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30년 후 완벽히 실행된다.
링컨의 보호주의 정책은,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로 환생함으로써 세계화의 종말을 선언.
이 둘을 합친 바이든의 정책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과 반도체 법안(CHIPS act)을 통해서 4차 산업혁명시대 산업국가로의 재도약을 시도하는 것으로, ‘제2의 해밀턴 프로그램’이라고 보여진다. 장차 ‘바이든 프로그램’이라고 훗날 불려질 지도.
바이든 미국의 금융정책과 산업정책은 이제 완전히 방향을 바꿨다고 보는 게 옳은 거겠지.
17. 윤석열의 생각
생각은 하는 건가?
자기 생각은 있는 걸까?
천공이나 극우들 생각을 가져다 쓰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을까.
18. 무덕이 생각 (드라마 ‘환혼’)
1) 김종배의 생각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 판결문에, ‘김건희’ 37번 등장, “계좌 4개 중 3개 동원”
ㅡ> “특검의 필요성을 넘어서, 이젠 특검의 당위성이 되어버렸다.”
2) 낙수(무덕이)의 생각
“아무것도 안 할거면 죽어버려라.”
19. 이정미의 생각 (정의당 대표)
“특검에 앞서서, 이젠 검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ㅡ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는 2020년 4월부터였다.
ㅡ 3년 동안 수사했고, 김건희에 대한 소환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
ㅡ> 이정미의 횡설수설
20. 용혜인의 생각 (기본소득당 대표)
“모든 일에는 시의성이 있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는 정의당의 주장은 무의미한 주장이다.”
21. 생각 엿보기
경제 지식이 없어도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 경제학 박사들이 연일 토해내는 앞으로의 전망 해석과 분석과 설명과 예측들이 갑자기 시들해지고 뜸해지면서 숨어버렸다면 그동안의 위기진단과 위험시그널이 현실로 닥쳤다는 뜻이다.
가령, 가계부든 기업회계든 잘 나갈 때는 열심히 장부를 적으면서 미래의 희망에 뿌듯한 심정일 테고, 위기가 찾아올 것 같으면 땀을 뻘뻘 흘리며 장부기록을 더 빠듯하고 정교하게 작성하지만, "끝났다!"는 체념의 순간이 오면 손을 놓아버린다. 장부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더 이상의 기록 작성도 없다.
요즘 보니 그런 현상을 느낀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시장분석을 열심히 해주던 애널리스트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이 절반쯤 사라진 것 같다. 열성도 절반쯤 줄어든 것도 같다. 뭔가 실제로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안 좋아졌다는 신호 아닐까?
팩트 체크나 분석가들의 생각 읽기에 앞서, 그들의 생각 엿보기를 해봤다.
22. 인공지능 chat GPT
현실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서, 미래에의 낙관과 비관을 전망해 볼 때, 다음의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 모두 자문해 보시기를.
1. 챗GPT는, 신대륙의 발견에 버금하는가?
2. 챗GPT는, 증기기관 발명에 버금하는가?
3. 챗GPT는, 징기스칸 영웅 탄생에 맞먹나?
신대륙의 발견에 비유하면, 삶의 생태계가 바뀌는 것이 될 테고,
증기기관의 발명에 비유하면, 인공지능 기계의 대량화를 예견할 수 있고,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생산하는, 인공지능의 자기복제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정복자가 될 거라는 거.
지금은 스마트폰 속에, PC 속에 갇혀 있지만, 인공지능이 로봇이나 드론 등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까 비관할까?
23. 연상 작용
1) 성남시 배임
선거 때의 공약은 '정치적 공약'이지 '법률적 공약'은 아니다. 공약을 안 지켰다고 해서 법률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정치적 이득을 얻었다"거나 ‘정치공동체’라는 법률적 혐의를 씌우려는 것을 보면서,
또, 성남 시장으로서 민관 합작사업인 대장동 사업을 함으로써, 성남시와 성남 시민에게 손실을 끼쳤다는 억지 배임 주장을 보면서,
개발사업자들로부터 전무후무한 환수금액 5,503억을 환수해, 성남시와 성남시민을 위해 사용해서 '정치적 인기'를 얻고, 공약 실천율 95%로 전국 탑이 된 것이, 성남시와 성남 시민들께 ‘법률적 배임‘이 된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인가 방구인가?
2) 연상 1
10등 성적표를 가져온 아들이 엄마한테 "나 다음 시험에서는 1등할께"라고 약속하고, 엄마는 아들이 기특해서 제일 약한 과목인 수학 과외를 40만원씩 들여 시켜주었는데, 다음 시험 성적이 5등이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기뻤고 칭찬까지 해줬는데, 옆에서 제3자인 검찰이 끼어들어서, 약속을 어겨 가정에 경제적 손실을 끼쳤다고, 아들을 배임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게 말이 되나?
3) 연상 2
사업하는 딸이 사업이 어려워 아버지께 10억을 빌리면서 나중에 원금에 더해 이자를 20%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10년 후 딸이 빌린 돈 10억과 이자 1억을 합해 11억을 드렸고 아버지도 이해했는데, 가족 상관관계에 문외한인 제3자 검찰이, 가족들과 무관한 신원미상인의 고발이란 빌미로, 법적 잣대를 들이밀어 딸을 배임죄로 기소한다는 게 말이 되나?
4) 연상이란?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계속해서 무는 걸 연상이라고 하는데, 어느 선에서 그치지 않으면 미친놈이 되고 만다.
지금의 특수부 정치검찰이 그렇다. 선을 계속해서 넘으면서, 무한궤도를 탄 듯 한계를 모르고 미친놈처럼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연상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경선자금, 뇌물, 배임, 선거법 위반, 대장동, 성남FC, 쌍방울 대북송금 등으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미친놈처럼 날뛰는 거다. 단 한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만 400회 가까이에 이른다. 주변을 탈탈 털기까지 포함해서.
미친놈이 아니면 뭐라 불러줄까? 뒈질 놈?
24. 제2의 외환위기
한달전쯤인가, 안유화 교수가 한국경제를 전망하면서, 한국은 앞으로 홍콩과 같은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하길래, 속으로 "뭔 개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나 친척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10만원만 보내려 해도 감시가 심해서 편지 속에 숨겨서 보냈다. 일본 금융당국이 몰랐을까? 알고도 큰 영향이 없는 액수니 묵인했겠지. 우편국에서 편지도 기계로 탐지할 수 있는데?
친척이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2만불(2천만 원)을 보내주더라도 한 번에 못 보내고 두세 번에 나눠서 보냈다. 금융감독기구에서 조사가 나올 수 있다나?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열 배나 되는 중국은 미국의 집요한 요구에도 왜 금융시장을 개방하지 않을까?
우리보다 2.5배 규모의 일본 경제는 왜 '금융허브'가 될 생각을 안 하나? 좋은 건 줄 몰라서?
추경호 부총리가 금융개방을 한다며, 앞으로는 1억원씩 제약 없이 마음대로 외국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단다. 이놈도 미친놈이다. 제2의 강경식(IMF외환위기 직전의 부총리)이 될 듯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일본 노무라증권을 매각하려 했고, 우리나라에선 한참 논쟁이 있었다. 우리가 노무라증권을 사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을. 한쪽에선 위험하다는 반대 주장을,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선 선진금융 지식을 얻을 절호의 기회라고 찬성 주장을. 결과는 흐지부지 끝났지만,
만일 샀다면 어땠을까? 말만 선진금융지식이지,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인 거 아닐까? 돈에 환장한 놈들이 기술적 금융파생상품을 범람시켰을 거라는 추측.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외환위기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건 상식이다. 최배근 교수에 의하면,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달러는 썰물처럼 빛의 속도로 빠져나가는 돈(금융)의 속성이 있어서 대단히 위험하고,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문재인 정부 때 우리나라를 '백신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무역허브'는 "충분히 ~일 것이다"라는 가능성만으로도 시스템 설계를 할 수 있다. 마치 현재 챗GPT와 반도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주가가 뛰듯이.
그러나, '금융허브'는 가능성만으로 계획 설계할 수 없다. "반드시 ~이다"와 같은 필연성을 원칙으로 해야 안전하다. "마땅히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이 무수히 쌓여 있어야 한다.
그만큼 금융시스템의 손질 변화는 보수적 판단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추경호 부총리는 '금융개방'이라는 무리한 계획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진짜로 외환위기가 또 다시 닥쳐서 국가부도 사태가 오고, 경제주권을 상실해서 국가의 미래를 수렁으로 빠뜨릴려고?
강경식과 추경호의 논리가 비슷하다. 강경식은 ‘우리 경제의 펀더맨탈이 튼튼해서 외환위기 같은 건 없다’고 했는데 ‘국가부도의 날’을 불러왔다.
추경호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져서 글로벌 시장이 되기 위해선 금융개방이 필요하다고 한다. 곧바로 글로벌 호구가 되어 제2의 국가부도를 맞을 거라는 생각. 기시감이 든다.
참고로, 추경호 부총리는 퇴임하면 김앤장 로펌으로 가나? 국가부도 사태가 오면 가장 신나는 곳은 김앤장 로펌이라는 것. 외국 투기자본이 우리나라 기업사냥을 하는데 가잠 훌륭한 길잡이 안내자는 김앤장이 될 테니까.
25. 챗GPT와 메타버스
갑작스레 챗GPT가 뜨기 시작하더니,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작년엔 메타버스가 세상을 바꿀 것 같더니 '메타버스'는 지금 어디갔어?”
제가 대신 대답해드릴까요?
과거 소니의 '워크맨'과 니콘 카메라 등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사라진 건 아닙니다.
수많은 다른 어플들과 함께 스마트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챗GPT 역시 만능은 아닙니다.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더 익숙하고 편리한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남게 됩니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지금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직은 모르는, 메타버스와 챗GPT를 모두 담은, 또 다른 융합기기가 나타나는 새 세상이 대기 중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저 혼란(confusion)스럽지만 머지않아 융합(fusion)을 거쳐 새로운 인공지능 기기가 등장하겠죠.
챗GPT에 대한 지금의 열광도 그저 잠시일 뿐입니다.
26. 잃어버린 생각
사람을 고르는 덴 세 가지 기준이 있어.
ㆍ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능력)
ㆍ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도덕성)
ㆍ계속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인가 (지속성)
그런데 여기엔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
ㆍ평가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가 (리더십)
리더십이 결여된 사람은 배신을 당할까봐 늘 초조해 하지. 그래서 점점 포악해지지.
살아오면서 세 가지 조건을 완벽히 갖춘 사람을 못 봤어. 완전 드물지. 완벽한 인간은 없나봐.
그래서 대개는 情에 호소하고는 하지. 아니면 단지를 하거나 무릎을 꿇거나 해서 인상 깊은 증명을 해주기를 원하거나.
그런데 관계란 건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어. 지구상의 인구만큼이나 천변만화라니까.
그래서 직장에서는 일에서 보다는 사람관계에서 다들 스트레스가 많은 거지.
그러다 욕심을 부려,
ㆍ나에게 쓸모있는 사람
ㆍ나에게 충성하는 사람
ㆍ똘기로 의리 있는 사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들 배신을 낳더라고. 평생 먹고살 돈을 쥐어줄 순 없는 거니까.
그래서 군림하고 지배하려 하지만 잘 안 되지. 서로 동질감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눈치를 보며 배신의 싹이 트거든.
지속적 관계가 참 어려운 거야. 그래서 가스라이팅과 같은 병리적 관계가 생기는 거고.
조직이 병들었다는 건 결국 병리적 관계가 심화됐다는 거지. 즉, 생각의 병이 깊어졌다는 뜻이지.
조직에서는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해, 생각을 안 하게 되고, 명령과 지시만 기다리고, 상관의 심기만 살피게 되고, 떡고물 크기에만 관심을 두지.
그러면서 人性도 깎여나가고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려. 조직에서 달아주는 뱃지에 기대서 쬐그만 권력을 남용하는 데 길들여지고.
날개 없는 추락이지. 飛上을 꿈꾸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리고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탈출할 비상구조차 없게 돼.
자신을 위한 쓸모, 자신에게의 신뢰, 지속될 수 있는 자기 삶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27. 부조리
한 시대가 가고 다시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다들 바쁜 걸음을 떼어놓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만 ‘가마니’로 서 있다는 느낌이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세월호), 혹은 "아무말도 안 하면 아무일도 안 생길 것이다"(용산 대통령실)라는 투로.
미국이 왜 저리도 염치도 모르는 듯 노골적이게 국제 깡패짓을 하는 걸까?
겁을 먹었기 때문이지.
겁을 먹으면 아랫도리부터 후덜거리게 마련인데,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과 기시다 앞에서 아랫도리 힘 빠진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만, 미국이 겁먹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미국은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에 쫓기듯 두려운 것이요,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힘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굴하게 겁먹은 거야.
바이든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겁먹었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에 난입하면서 두려웠고, 반도체 산업과 인공지능 사회의 도래 앞에서 또 겁을 먹었어.
앞으로의 30년, 길게는 100년의 미래가 두려운 거겠지. 자칫하면 미국이 2류 국가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아주 조급하지.
미국이 이렇게 다가올 새시대의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동안, 우리는 내년 성장률, 다음 분기 수출실적 등으로 겁먹고 있어. 동맹관계인 미국의 강압에 낯선 부조리를 느끼면서.
부조리란, 세계는 무심하고 무관심한데 나는 세계를 향해 합리적 설명과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에 생기지. 세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데 말야.
이런 부조리를 뚫고 살아남으려면 다가올 새시대를 읽고 그에 대응해야 하건만, 윤석열 정부는 눈앞의 상황에만 당황해 하고 겁을 먹고 있지.
후줄근한 바지차림, 후덜거리는 걸음으로 겁을 잔뜩 먹은 채, 비굴한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이리저리 좌충우돌 갈팡질팡하는 윤석열 대한민국 수반의 꼴사나운 모습이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에겐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게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 한국이 중립은 지켜주리라 믿었던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는 얼마나 황당해 하고 있을까.
모두가 '세계'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공동체인데, 서로 경쟁하면서 싸울 때 싸우더라도, 각자의 자기가 해야 할 몫과 책임은 다 해야 하지 않겠나.
미국이 우리에게서 강탈하듯 돈을 가져가면서도 비웃고 조롱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울화가 치밀지. 돈을 뺏기더라도 자존감마저 짓밟히면 미래는 없는 거 아냐?
마치, 검사 정순신의 아들에게 학폭을 당한 피해자가 대학 진학조차 못한 것처럼.
앞으로도 부조리한 상황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안착할 때까지는.
그렇게 가마니인 채로 허둥댈 것 같으면 빨리 정권 내려놓고 물러나야지. 니들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꺼져가고 있어.
28. 미국의 기준
전에 이런 말을 했었지.
"기준으로 생각하고, 전제로 말한다."고.
오늘은 '미국의 기준'에 대해서 말해볼까 해.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건 문제가 안 돼. 설사 크게 오르고 내려도 얼마든지 극복하고 해결할 수가 있지.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거래가 실종되는 사태야. 즉, 시장이 붕괴되는 현상이지.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그렇고 채권 시장이 그렇지.
근본 이유는, '시장의 기준'이 무너졌다는 거.
흔히 신용위기라고들 하지.
뭘 믿고서 사고팔아? 불안해서 가격을 정할 수가 없는데.
흔히, 집 안에서 아이들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천방지축으로 들락날락거리면 정신 사납다고 야단치곤 하잖아?
미국이 지금 그래. 미국 국채도 그렇고. 달러도 그래.
달러도 엄청 찍어냈고, 미 국채도 엄청 발행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양적완화로 7조 달러를 찍어냈는데, 최근 양적긴축으로 겨우 4천억 달러 정도만 회수됐다잖아.
지금까지의 세계는 미국이 기준을 세우면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 기준을 따랐어. 공정한 기준이라고 믿었지.
그런데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만 자기가 세운 기준을 자기가 임의적으로 수시로 바꾸니 세계의 의심을 받게 된 거지.
그 기준을 바꾸는 기간도 점점 짧아져가고 있어.
게다가 '억지 기준'을 세워놓고 강압과 협박을 일삼아. 이젠 스스로 뭔가 쫄리나봐.
그러다보니 무슨 현상이 일어나?
미국이 ‘위험 회피’를 안 하고 세계에 전가하려고 하니, 세계가 ‘미국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확대된 거지.
사우디의 빈 살만이 그랬고, 인도도 그랬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건 일본과 윤석열 정권의 한국 뿐. 너무 비굴해 보여.
미국을 ‘의인화’해서 보면, 미국은 지금 무척 화가 난 상태야. 물론 미국 자신이 잘못을 했기 때문이지만, 분풀이할 대상을 미국 밖에 있는 중국에서 찾지. 일부는 내부 정치용이기도 하겠지만.
힘이 예전만 못하게 되니까 안보경제동맹을 빌미로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위세를 유지하려 하지.
그런데 동맹국들이 가진 걸 또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까지 해. 거의 파렴치한 강탈 수준이지. 이젠 염치와 체면도 버린 거야.
생각이란 건, 길을 열어주는 생각이 되어야 하는데, 남의 길을 가로막으려는 생각은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가뜨리는 흉기가 될 수 있어.
그래서 미국이 세계가 공감할 수 있고 동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거지.
29. 생각의 함정
"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경기가 좋아진다"는 시장의 루머(속설)가 있어. 그러면 반대로, 경기가 좋아지면 미니스커트가 짧아지나?
조셉 케네디의 일화가 있어. 어느날 구두를 닦는데 구두닦이 청년이 주식을 샀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주식 얘기를 하더란 거야. 그는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자기 주식들을 모두 팔아버려서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 구두닦이까지 주식을 살 정도면 시장 과열이고 곧 꼭지에서 내리막길 밖에 없단 판단이었다는군.
수영장에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수영복을 입었는 지 안 입었는 지 알게 된다는 버핏의 얘기도 있어. 결국 누가 거품인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거겠지.
이런 솔깃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다들 무슨 생각을 하실까?
우리는 말야 항상 결과만 보고 말을 해. 그러면서 자주 결과와 원인을 뒤바꿔서 생각을 하지. 그래서 결국은 오판을 해서 실수를 하곤 하지.
가령 위에서, 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진 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거지. 경기가 나빠졌다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인 거고. 따라서 미니스커트와 경기 사이클의 상관관계를 뒤바꾸면 오판을 낳게 되는데, 웃픈 건 우리가 아주 상습적으로 그런 성급하게 섣부른 판단을 한다는 거야.
*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의 '햄라인 지수'(1926)가 그런 상관관계를 연구해서 발표해서 당시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엔 전혀 맞지가 않지.
버핏의 얘기도 마찬가지지. 구두닦이의 주식매입(결과)과 주식시장과열(원인)의 상관관계에서, 버핏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판단한 거지.
버핏의 수영장 얘기는 반대의 얘기가 돼. 수영장 물이 빠졌을 때, 즉 거품이 빠졌을 때는 미래의 사건 결과 예측(금융위기)인 셈인데, 수영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부실자산들)은 현재의 원인이 되는 거겠지. 즉, 결과를 예측하고 그로부터 원인을 추론하는 셈.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서 생각하는 또 하나의 예가 있어. 경제학 박사인 박종훈 기자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자고.
"고금리가 호재다. 금리가 높았을 때 주가가 올랐다는 거다. 그런데 이건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된 거다. 경제가 좋았을 때 금리가 높았던 적이 많았다.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것은 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고물가는 불황과 같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고금리는 결코 호재가 아니다. 전에 고금리가 왔던 시기를 잘못 해석하면 오판을 할 수가 있다." (박종훈 기자 '박종훈의 경제한방')
결국 우리는 원인을 먼저 보는 법이 없어. 오로지 결과를 보고서야 원인을 생각해내는 것 뿐이지. 그래서 자주 오판을 하게 돼. 원인과 결과를 바꿔서 상관관계를 판단하려는 우를 범하게 돼.
이건 전후관계를 먼저 따져보지 않는 성급합에서 기인하지. 말하자면 '수레가 말을 끄는 형국'의 '자기 생각의 함정'에 자주 노출된다는 얘기. 결국 자기확신의 토대가 논리적 분석과 종합이 아니라, 자기합리화의 기대심리가 된다는 것. 당연히 오판과 착각의 위험을 안게 되겠지.
여기에 해당되는 논리적 오류들 가운데는, 발에다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다가 발을 맞추려 시도하는 '수레를 말 앞에 놓는 오류'가 하나 있고, 전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전후즉인과의 오류'로서 '원인오판의 오류'라고도 하고 넓게는 '거짓 원인의 오류'라고 불리는 것을 또 하나 들 수 있겠다.
30. 생각의 고리
사람들은 때로 생각이 난폭해질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어지럽기에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 폭력에 호소하려는 까닭이지요.
생각이 난폭해진다는 것은 생각이 연결고리를 잃었거나 못찾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연결고리란 감정의 고리와 사회적 고리를 가리킵니다. 감정을 컨트롤할 매개체를 상실했거나, 즉 감정의 끈을 놓쳤거나, 사회적 관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는 뜻입니다.
생각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간의 약속을 유지시키면서 신뢰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며, 대체로 상식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이자 심리적 안정감의 지속을 의미합니다.
사이비 종교나 물신팽배주의 현상은 생각의 고리가 끊어져나가고 있다는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을 건 돈 밖에 없다”라는 생각은 결국 생각이 난폭해졌다는 징조이기도 합니다.
난폭하다, 즉 어지럽고 폭력적이다라는 것이 생각에 미치고 급기야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그 사회는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며 공동체 사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오징어게임의 사회가 되고 맙니다.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하듯이 생각의 룰을 지키지 않으면 행동의 통제를 이룰 수 없고 범죄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통로들이 모두 막히게 됩니다.
Mattew Lipman의 매개적 판단(the wheel of judgement) 16가지를 보면,
결합(composition) 분할(division) 추리(inference) 적실성(relevance) 인과(causal) 성원(membership) 유비(analogy) 가치(value) 가언적(hypothetical) 반사실적(counterfactual) 사실적(factual) 실천적(practical) 지시(reference) 측정(masual) 시공간(spatio-temporal) 도구적(instrumental)
이 16가지 판단의 매개들은 모두 생각의 합리적 고리를 만들어주는 기능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하나에 대한 집착은 자칫 생각의 고리들을 무력화시켜 생각의 난폭함을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감정 컨트롤을 무너뜨리고 반사회적 반공동체적 행위들을 노정(路程)하기에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