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실력과 생각을 상대방에게 감추고 때를 기다려라.
조조는 의심병이 심했다.
자나 깨나 암살당할까봐 겁을 먹었다.
전쟁에서 패해 죽음을 당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항상 주위의 신하가 등 뒤에서 칼을 꽂을세라 마음 졸였다.
조조는 수하들에게 자주
“나는 꿈속에서도 살인을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
봄은 왔다지만 아직도 쌀쌀한 어느 날,
조조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덮고 있던 이불이 침대 밑으로 흘러내렸다.
지나가던 신하가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벌떡 일어난 조조가 칼을 휘둘렀다.
그 칼에 신하는
선혈을 뿌렸고 이내 이승을 하직했다.
다시 쓰러져 코를 골던 조조가 일어나
시치미를 떼고 코를 쥐며 “웬 비린내냐” 했다.
그 충직한 신하의 갈라진 배에서
아직도 창자와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봐, 내 말이 틀렸냐’는 듯 조조는 끌끌 혀를 찼다.
“여봐라, 격식을 갖춰 엄숙히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
죽은 신하의 친구이자 동료인 양수가 관을 잡고
“승상이 꿈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네가 꿈을 꾸고 있었어” 하며 눈물을 떨궜다.
기둥 뒤에서 조조가
양수의 독백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모두를 속일 수 있어도 양수만은 속일 수 없구나.’
양수는 영악스러웠다. 조조의 신하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양수는 조조의 최측근 책사가 돼 수많은 전과(戰果)를 올렸다.
조조가 고사를 들춰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텐가” 하고 문제를 내면
다른 신하들이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 양수는 척 정답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첫번째 해결책이 빗나갔을 때를 대비해 차선책까지 제시했다.
다른 신하들은 쥐구멍을 찾았고 조조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조가 하나를 물어보면 양수는 두개, 세개를 답했다.
문무를 가리지 않고 양수는 조조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다른 신하들이 알고도 모르는 척할 때도 양수는 자신의 총명함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결국 조조는 양수의 목을 쳤다.
양수는 죽기 전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세상만사를 다 알았지만 수구여병(守口如甁),
제 입을 병뚜껑 닫듯이 꼭 막으라는 선현들의 옛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통탄했다.
☆☆☆
조조는 양수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줬다.
어수룩한 변방의 장수 한 사람이 전쟁에 참패하고 도망쳐서 조조의 성채로 들어왔다.
조조의 눈은 매 눈보다 예리했다.
그를 유심히 살폈다.
허름한 옷에 어눌한 말솜씨, 민첩하지 못한 행동거지,
흐리멍덩한 눈빛,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대인의 기품이 우러났다.
조조는 그를 융숭하게 대접하며 한편으로는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조는 자신이 타는 것과 똑같은 마차를 만들어 그에게 줬다.
그는 극구 사양하다가 마차를 받았지만 좀처럼 타지 않았다.
그는 조조 곁을 벗어나려 했지만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조조는 가끔 이상한 꿈을 꿨다.
천하를 움켜쥐려는 강호의 호걸들이 중원에서 칼과 창을 휘두를 때
식객으로 있는 그 패장이 조조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벙한 패장 한 사람에게 자신이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라며
코웃음을 치다가도 그를 보면
‘아니야, 필부는 아니야’ 하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닥쳐왔다.
그 남자는 농사를 짓겠다고 들판으로 나갔다.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는 그 남자를 보며 조조는
‘큰 꿈을 꾸는 남자가 아니구나’ 하면서도
심복을 보내 그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
어느 날 조조는
알거지가 된 그 패장을 불러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한창 술판이 무르익어 갈 때 천둥번개가 쳤다.
그 못난 패장은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트리고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제야 조조는 껄껄 웃으며 술 한잔을 기분 좋게 들이켰다.
‘저런 졸장부가 나를 막을 적수가 된다고?’
그 패장은 조조의 수하가 돼
조조로부터 한 무리의 군졸을 받아 출전명령을 받고
그길로 도망쳐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조조의 신하 정욱이 사실을 알리자
화들짝 놀란 조조가 추격대를 보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여포의 공격에 맨손으로 패주해 조조에게 의탁했다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패장은 바로 유현덕, 촉한의 초대황제 유비(劉備·161∼223)였다.
☆☆☆
조조의 손아귀 속에 있던 두 사람,
양수는 죽고 유비는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유가 무얼까?
양수는 너무 영리했고 유비는 어벙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양수는 어리석어 잘난 체를 했고
유비는 영리해서 어리석은 척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유비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실천에 옮겼고
양수는 자기의 실력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생과 사가 거기에서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