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88/1102]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려울손가?
여행은 기차여행이 최고인 듯합니다. 밖의 풍광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좌석 공간이 제법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기차삯도 제법 싼 편(오수-용산 21000원)입니다. 옛날의 완행열차에 해당하는 무궁화호는 용산역에서 오수역까지 약 4시간 걸립니다. 나같은 한량이자 백수에게는 안성맞춤입니다. 1시간은 눈을 좀 붙이고, 1시간정도는 책을 읽고, 또 1시간은 멍 때린 채 밖을 쳐다보면 금세입니다. 시간만 되면 기차여행을 즐기는 까닭입니다. 허기야 요즘같이 ‘시간이 돈’인 세상엔 KTX가 으뜸이겠으나 값이 좀 비싸고 좌석도 좁습니다. 그럴 때에는 익산에서 환승을 하는데, 그리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어제 오후 수원역에서 고향 오는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3시간여 내내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더군요. 가을비, 이 비가 그치면 제법 추워지겠지요. 상강霜降이 지났으니 서리도 자주 내리겠지요. 가을일 마무리를 서둘러야겠습니다. 텅 빈 들판엔 짚들을 묶어놓은 희고 커다란 ‘화장지뭉치’만 눈에 띕니다. 마음이 한없이 허허롭습니다. 친한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코자 다녀간 길입니다. 두 밤을 잤는데,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집은 어디냐? 시골이냐, 여기야?” 답변이 좀 옹색할 때에는 얼른 대답을 해버려야 합니다. “당연히 거기지” 거기가 어딜까요? 아내가 있는 용인, 아버지가 계시는 오수? 남편의 부재不在가 1년하고도 반년이 넘으니, 조금은 심란하고 우울한가 봅니다. 왜 그러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조금은 미안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첫번째 제 소명이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니까요(사실은 제가 모심을 당하고 있지만). 아내는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운 '전문직'으로 대도시에서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흐흐.
이번에 갔더니,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생각하다가 그것도 성가신 스트레스가 될 것같다해 다육식물 10여개를 구입, 거실에 멋지게 진열해 놓았더군요. 한 달에 한번쯤 물을 주면 된다는데, 들여다보니 신기합디다. 이 작은 식물이 물 조금 먹고도 얼마든지 자란다는 게. 페트동물을 기르지 않는다는데 무조건 찬성입니다. 아니 결사반대했을 것입니다. 대단한 편견이겠지만, 마당 있는 집에서 복슬강아지나 나비(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나, 언젠가 두 아들이 하도 졸라 키웠던 강아지와 토끼 때문에 혼이 난 악몽이 있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이나 형수들을 뭐라고 하거나 사시斜視로 보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언젠가도 글을 썼지만, 고향에 살고 있으면서도 고향에 오는 길은 늘 마음이 설렙니다. 그곳에 아버지마저 계시지 않으면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탯자리는 그러나 봅니다. 종종 저를 낳아주신 시커멓고 작은 골방(지금은 합쳐버려 흔적이 없지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취미나 성향이 미래가 아닌 과거형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발전이 없겠지만 할 수 없습니다. 진취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차라리 퇴영退嬰적인 성향이라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추억을 먹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은 대신, 골치 아픈 정치나 경제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저는 차라리 전자前者가 낫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상기후의 지구를 가끔씩은 걱정하기도 합니다. 쓰레기, 공해, 환경보호 이런 문제들말입니다.
시골의 삶은 아내 부재의 문제도 크지만, 다섯 살 손자를 자주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다고 할 것입니다. 탯자리 다음의 ‘핏줄문제’일 것입니다. 남의 애기들도 원래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나와 우리의 진짜 애기이니 어쩌겠습니까. 그제밤 다섯 살 녀석에게 팔벼개를 해주고 보들보들한 고사리손을 쥐고 잠을 자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흐흐. 아, 니가 우리 새끼구나, 나의 손자구나 싶어 자꾸 들여다봅니다. 게다가 할아버지를 따르기는 어찌 그리 잘 따르는지요. 잠깐 몇 시간 같이 있는데도 ‘할아버지’ ‘할아버지’ 를 골백번도 넘게 불러댑니다. 이래서 재벌총수들이 자신의 재산을 온갖 편법으로 상속-증여세를 줄여 아들과 손자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이겠지요. 그러기에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의 진로와 미래를 담보한다는 말까지 있겠지요. 하지만 ‘금수저’도 아닌 ‘흙수저’인 우리 아이도 잘 성장할 길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부모 하기 나름일 터이고, 제가 보고 듣고 생각하기 따라 얼마든지 ‘위인偉人’이 될 것을 믿어봅니다.
오후 5시 오수역에 내리면서 마음먹었습니다. 내일부터 ‘가을 갈무리’를 하자. 비닐하우스도 내처 완성하고, 얼마 안되지만 대봉도 따고 생강도 캐고 들깨기름도 짜고, 참나무 토막에 물도 수시로 주는 등 가을 갈무리를 한 후, 올 겨울내내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갖으며, 왕성한 독서와 쓰고 싶은 글들을 쓰자. 쓰고 싶은 글은 이런 생활졸문이 아닌 인문대중교양서로 손색이 없고 '스테디셀러'가 될, 세계에 얼마든지 자랑할 '우리나라의 기록문화유산'에 대한 것입니다. 흐흐. 출판해주겠다는 곳이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해도 인세印稅가 조금씩이라도 쌓여 노후에 손자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어야 할 터인데. 크게 아프지만 않는다면, 나훈아의 ‘테스형’처럼 ‘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려울’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와주는 오늘, 오늘, 하루하루의 오늘만을 그저 고맙게 생각하면 될 일이지 않겠습니까? 흐흐.
첫댓글 예전에 기차를 타면 홍익회라는 분들이 기차안에서 김밥도 삶은 계란도 팔았던 기억이 있다.차표를 끊지않은 통학생들은 기차가 정차할때마다 우르르 몰려 차장아저씨의 검표가 끝난 다른 칸으로 옮겨다니며 도둑기차를 타는. 재미를 즐기는 진풍경도 있었다.
부모님이 주신 기차삯은 빵값으로 입으로 들어가고 한달내내 도둑 기차를 타고 다니던 중학동창 삼례살던 XX이 ㅎ고교시절은 야간자율학습에 자취하숙들 하느라 통학들을 못했지만 중학시절엔 기차통학을 많이 했었다.
난 기차 통학은 안해봤지만 솜리사는 친구들
오수.임실사는 친구들 통학풍경을 잘 안다.
새벽같이 일어나도 기차시간을 맞추기 힘들기에 거의 매일 지각하고 학교앞에서 규율부에 검문당해 한차례 기압받고 교실에 들어가고
고생하던 친구들 기억이 눈에 선하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지난 여름 코로나덕분에 KTX타고 오가며 손주들 보느라 나도 즐긴 기억이 남는다.
큰손주 작은손녀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할아버지집 전주를 오갔다 한시간 조금 더 타는 기차시간이지만 할아버지 다왔어?
소리를 연신 물어본다.
여행은 기차 여행이 최고지만
요즘 아이들이 그 재미를 알겠는가?
스피드 시대세 태어난 죄이지ㆍ
으잉, 따르릉 형님 기억력도 만만찮네. 어찌그리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지,역시 우천과 쌍벽일세.
아침에 우천의 글을 읽노라면 너무 맘이 편해진다. 너무 가식이 없다.불랙박스아닌 하나의 투명박스랄까? 저 프르고 맑은 가을 하늘같이 말이지. 오늘 글응 ^오수역 오후 5시^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 빅힛트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