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정가·수의매매 (상)정가·수의매매란 무엇인가
정가매매 값·물량 지정 후 거래 수의매매 상대방 특정 후 거래
2012년 8월 도매시장 도입 후 가격변동폭 큰 경매 대안으로
판로확보·농가수입 안정 도움 수취값 증대 및 산지 조직화도 물가안정돼 소비자 역시 수혜
농산물 유통업계에서는 정가·수의매매를 ‘공영도매시장의 미래’라고 일컫는다. 급변하는 유통환경 속에서 공영도매시장이 살아남기 위한 핵심 생존전략이란 뜻이다. 산지의 조직화·규모화 유도와 거래 안정성 확보로 ‘농산물 제값 받기’는 물론이고, 물가안정에도 두루 이바지할 것이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정가·수의매매의 개념과 장점, 내실화 방안을 세차례에 걸쳐 톺아본다.
◆정가·수의매매란=말 그대로 경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가격을 정하고 거래(정가매매)’하거나 ‘상대방을 특정해놓고 거래(수의매매)’하는 방식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정가매매부터 알아보자. 출하자가 미리 농산물을 얼마에 팔지, 물량은 얼마나 내놓을지 정한다. 그러면 도매법인은 이를 여러 구매자(중도매인·매매참가인)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애호박 20개들이 50상자를 한상자당 2만원에 팔고 싶은 출하자가 있다’는 형태다. 이 가격과 물량이 만족스러워 사겠다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거래가 성사된다.
반면 수의매매는 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 중도매인이 ‘대형마트 납품을 위해 한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배추를 고정적으로 출하할 수 있는 출하자를 찾는다’고 나서면, 도매법인(경매사)이 중간에서 적당한 출하자와 해당 중도매인이 1대1로 가격과 물량을 협상하도록 도와 매매가 성사되게 하는 방식이다. 수의매매는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따라 거래 2~3일 혹은 일주일 전에 가격과 수량이 결정되는 ‘단기형 예약수의매매’와 일주일 혹은 수개월 전에 미리 예약하는 ‘장기형 예약수의매매’로 구분되기도 한다.
정가매매와 수의매매가 함께 이뤄지는 방식도 있다. 예컨대 출하자가 처음에 ‘딸기 2㎏들이 20상자를 한상자당 1만5000원에 팔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한 매매참가인이 ‘한상자당 1만4000원에, 2주 동안 날마다 거래를 하고 싶다’고 협상을 원하는 경우다. 이때도 경매사가 중간에서 협상을 도와 출하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거래를 성사시키면 정가·수의매매가 된다.
정리하자면 정가·수의매매는 가격과 물량이 미리 정해지거나, 1대1 협상을 통해 조절된다. 그날그날 출하된 농산물을 중도매인과 매매참가인이 살펴보고 나서 경쟁을 통해 경락값이 매겨지는 경매와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도입배경과 장점은=정가·수의매매가 본격적으로 공영도매시장에 도입된 건 2012년 8월부터다. 이때 개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경매와 동등한 거래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전에는 농산물이 정해진 경매시간보다 뒤늦게 경매장에 운송된 경우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정가·수의매매가 가능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락값의 오르내림이 큰 경매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경매는 투명하게 농산물 시세가 결정된다는 장점을 지녔다. 문제는 시장 반입량에 따라 일주일 새 평균 경락값이 두배 뛰어오르거나 반토막이 나는 일이 잦다는 데 있다.
언제 출하하느냐에 따라 경락값이 큰 차이를 보이는 탓에 농민은 수입이 불안정하니 힘들고, 소비자 역시 과일·채소값이 들쑥날쑥하다는 불만이 만만찮았다. 물론 정가·수의매매도 최근 경락값을 토대로 가격교섭이 이뤄지지만, 단 몇초 만에 경락값이 매겨지는 경매보단 훨씬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정가·수의매매가 지닌 이점은 무엇보다 판로가 안정적이고 등락폭도 적어 농가 수취값 증대에 효과적이라는 데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산지가 뭉칠수록 가격교섭에 유리하기 때문에 조직화·규모화 촉진에도 도움이 된다.
또 사전에 가격과 물량을 조절할 수 있어 장기간·대규모로 거래하는 비중이 높은 대형 유통업체를 도매시장으로 이끌기도 좋다. 갈수록 위축되는 도매시장의 활성화 방안으로 정가·수의매매가 손꼽히는 이유다.
이와 함께 출하량을 미리 가늠하기가 쉬워 물류효율화에도 긍정적이다. 나아가 실물을 직접 보지 않고 화면으로만 확인하는 화상거래를 이용해 정가·수의매매가 활성화되면 상물분리(도매시장에 농산물을 반입하지 않고 거래하는 행위)로 산지·소비지 모두 운송비를 줄일 수 있다.
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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