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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주 메시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오장 강해 일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말씀 요한복음 5장1-6
요절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그의 병이 오래 된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이 벌써 오래된 것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첫째는 낫고자 하는 삶의 소원을 불러 일으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그가 원하면 그를 낫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 오래된 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때로는 병을 치료해주지 않아도 병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베데스다는 현대사회 축소판입니다.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의 삼대 명절은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입니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추석명절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가서 가족중심으로 교제를 나누죠?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가서 7일 동안 민족적으로 교제를 나눕니다. 성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중심의 민족적인 축제를 합니다.
이런 축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소외되고 슬픈 곳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찾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여러 문이 있습니다. 속죄 제물로 쓰일 양을 끌고 들어오면 양문이라고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오는 문은 어문이라고 합니다. 대변이나 쓰레기를 퍼 나르는 문은 분문(dung gate)이라고 합니다. 속죄양이 드나드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 못에는 정자 다섯이 있었습니다. 정자 안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여러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맹인, 다리를 저는 자, 혈기 말라 마비 된 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비를 아직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첫째는 병든 사회입니다. 이곳은 병든 사람만 모인 곳입니다. 현대인들은 육체적으로 병들든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육체적으로 한 가지씩 병이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의 아내는 기관지확장증이 있고 나는 녹내장이 있습니다. 둘 다 현대 의학으로 불치의 병입니다. 어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자 하람이는 편도성 비대증이 있고 하경이는 어려서 항문의 종기로 오래 고생하였습니다. 정신적인 질병도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황장애가 오면 숨 쉬기가 어렵습니다. 자폐증도 많습니다. 명문대를 나온 한 목자 부부의 아이들은 자폐를 앓고 있습니다. 자폐아들은 자기 세계에 몰두합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힘들어합니다. 조현증이 있어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목자의 딸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밥에 독을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으로도 병들어 있습니다. 허무 무의미 절망 두려움 고독과 소외는 영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과부의 마음은 홀애비가 안다고 이런 병으로 병든 다른 사람들을 동정하고 위로하며 살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며 상부상조합니다. 자비의 집처럼 서로 자비를 베풀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베데스다 못가는 경쟁사회입니다. 그곳에는 천사가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치료 받습니다. 일등만 낫습니다. 그들은 일등을 하고자 경쟁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승진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늙어서 요앙원가는 것도 경쟁하고 공원묘지에 가는 것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으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로인하여 소화불량이나 불면증, 잦은 감기, 기억력 상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체로 많은 병들이 스트레스로 생깁니다. 경쟁하면서 사람들은 열등감과 교만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다가도 경쟁할 때는 자비가 사라지고 이기적이 됩니다.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으로 교만해지고 진 사람은 열등감에 빠집니다. 4600만 비유를 본 ‘비가 오고 그래서 생각이 나서’를 작곡한 다비라는 작곡가 겸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서 이기적이 되었을 때 부모도 친구도 다 밀어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루시퍼 사탄을 경배라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답이라고 생각해서 이름도 다비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끊고 이기적이 되게 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그 후에 그는 어머니의 기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라고 증거하며 주위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셋째는 요행심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경쟁하여 노력한다고 다 우리의 노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는 ‘가끔’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였습니다. 천사가 내려올 때 물 곁에 있는 사람, 깨어 있는 사람이 가장 행운을 잡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들에게 행운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50프로의 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30프로의 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둘을 합치면 어떤 나라와 부모냐에 따라서 80프로의 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그냥 운입니다. 부의 편증은 전적으로 운입니다. 나머지 20프로도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와 생활습관이 많이 좌우합니다. 이런 부는 대물림 됩니다. 똑 같은 한반도이지만 만약 우리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에게 잘못 보이면 세상에서 아웃입니다. 여자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한국은 80년 동안 전쟁이 없고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에 들어갑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이탈리아, 독일을 제치고 8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것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핼조선에 산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계속하여 무한 경쟁을 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베데스다 못가처럼 서로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이기적이 되고 내면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를 찾아가 무엇을 하셨습니까?
(2) 네가 낫고자 하느냐?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베데스다에 가신 예수님은 많은 병자 중에서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가장 오래 된 병자를 주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 중에 그를 샘플로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병이 오래 된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는 낫고자 이곳에 와 있는데 예수님은 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을까요?
첫째, 낫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병이 오래 되다 보면 병과 친근해집니다. 낫고자 하는 소원이 희미해지고 막연해집니다. 일년에 한번씩 물이 움직였다면 38번 실패한 것입니다. 이렇게 실패하면 몸이 기억하고 물만 움직여도 두려움에 몸이 마비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그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소원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병이든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치료의 하나님이지만 모든 사람을 다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소원이 있는 자를 치료하십니다. 우리는 말을 물가까지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먹게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자를 치료해주실 수 있지만 소원이 없는 자를 치료해주시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낫고자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죽을 때는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갖기를 원하는 소원은 병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가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원을 갖는 자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질 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도 실상으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 것은 그가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면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돈이 있냐? 물어보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그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하든지, 돈이 없으면 돈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낫고자 하는 물으신 것은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고 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병도 치료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소원이 있을 때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불러 일으켜주시고 우리의 병을 치료해주십니다. 우리는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우리 안에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소원은 새번역에는 ‘염원’이라고 나옵니다. 염원은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매일 매일 간절한 소원을 주십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소원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생기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천안 개척할 때 일 년 동안 수고하였지만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도 없고 제자양성도 못하고 스트레스로 과민성 대장에 걸려 6개월 설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짐을 싸고 천안을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괴산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취업을 시켜주시겠다고 하는 천척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공부하는 학생이 있어서 차마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해 대전 ubf 여름수양회 참석하였는데 주님은 내가 일년 실패한 것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말씀으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낫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바위에 올라가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2장 8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배우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이 세우신 종에 순종하고자 기도하고 순종을 배웠을 때 하나님은 나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세우게 하셨고 학원직장을 잡게 하셨고 과민성대장을 치료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공부할 때 기도할 때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을 무시하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소원을 주실 때는 우리의 어떤 오래 된 병도 치료하여주실 줄을 믿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천국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래 된 병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래 된 병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치료하시기 전에 먼저 소원을 심으십니다. 강렬한 소원을 심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강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소원을 갖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오래된 병이라도 치료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병을 치료해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병이 낫고자 하는 소원으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병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그에게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의 병을 치료해주시면 그는 교만해져서 교주가 되어 지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병을 갖고 겸손하게 살다가 자신도 천국에 가고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병이 낫고 건강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병이 있고 병든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병도 없고 고통도 슬픔도 없이 사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선은 병이 낫고자 소원해야 합니다.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받으시고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병을 치료해주시지 않을 때는 병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저는 백한나 목동과 백혈병이 재발 되었을 때 기도를 자주 했습니다. 한나 목동은 자신이 죽어도 좋다고 기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좋은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나 목동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죽음에서 자유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 병이 나아도 감사하고 병이 낫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유함을 가지고 병이 낫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9월 첫째주 강해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오장 메시지 일부
말씀 요한복음 5장1-6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절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강해 일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