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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넥스배드민턴라켓 원문보기 글쓴이: 이용희
"개도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섬 이름 때문에 한번쯤 머쓱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도는 장수만이나 가막만 바다에서 배를 타고서 보면 천제봉과 봉화산의 산꼭대기가 뾰족하게 올라온 것이 꼭 개의 쫑긋한 귀 모습 같아서 '개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자 개도(蓋島)에서 '개'는 덮을 '개'로, 개도의 주산(主山) 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개산(華蓋山)의 모양이 마치 솥뚜껑 모양 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여수시내에서 개도를 가는 방법은 교동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되지만 1시간 정도 걸리고, 백야도에서 타면 25분 정도 걸린다.
삐비가 생각나는 모전마을 모전마을은 '띠밭몰'이라는 뜻이다. 띠는 '잔디'라는 뜻으로, 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있는 식물이다. 일명 '삐비'라고 하여, 잎과 줄기가 돋아날 때 줄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면 쪽 빼내서 하얀 솜털 같은 것을 입에 넣어 껌처럼 씹어먹으면 달짝지근하다. 이제는 그보다 맛있는 것이 많아서 누구 하나 뽑지를 않아 그대로 꽃이 피어서 바람에 물결치는 것이 영낙없는 모전마을 이름대로이다. 선착장에서 나오는 길가에 온통 돌나물 노란색 꽃이 피어서 환하게 밝혀준다.
모전마을앞 호녘개는 자갈해수욕장이다. 평소에는 멸치를 삶아서 말리는 곳이지만 옛날 따로 떨어져 섬이었던 곶으로 육고여라고 한다. 이 자갈밭은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와 파도가 빠져나가면서 내는 소리가 클래식 음악이 되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갯가라는 것을 보여주듯 갯메꽃이 나팔꽃처럼 피어 연주를 하면서 반겨준다. 여수의 명물 풍을 예방한다는 '방풍나물'은 금오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개도에도 많이 심어져 있다. 지금은 꽃이 피기 전에 모두 베어내버린다. 웃자란 지금은 잎이 딱딱해서 먹을 수도 없지만 그대로 놔둬 꽃이 피면 다시 돋아나 감당을 못한다고 한다. 지금 베어내고 놔두면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고 하니 경제성이 높은 나물이다.
무섭지 않은 호랑이마을 개도를 가서 누구나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호령마을을 지나쳐버린다. 마을 뒷산이 꼭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호야개', '호녁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호령(號令)마을이 되었다. 마을 뒤에서 고개를 오르면 생금산과 천제봉 사이 재가 나온다. '호랑이 고개' 아래 마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마을 뒤 당산나무 숲에는 허물어진 당집이 보인다. 그대로 복원을 하면 중요한 민속문화재가 될 것인데 아쉽다. 각자 싸온 점심을 맛있게 나눠 먹고서 천제봉으로 오른다.
개도에는 곳곳에 푸른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또, 그곳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본다. 개도는 조선시대 화양면 곡화목장에 속했다고 한다. 지금은 소를 키우지만 그 때는 군마를 기르던 곳이다. 군마와 관련된 전설로 '마녀목'이 있다.
군마 대신 소가 뛰노는 초지 조선 중기 숙종 때, 군마를 기르던 개도 화산마을에는 말의 병이 크게 번졌다. 화산마을에 사는 마부 이돌수의 14살 된 무남독녀 복녀가 있었다. 복녀는 아버지를 도와 말을 정성껏 돌보아 이 집 말들은 병이 들지 않고 잘 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녀가 가장 아끼던 검은 점박이 말이 그만 앞다리가 부러진 사고가 발생하였다. 복녀의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목장 책임자인 감목관에게 연락하여 그 말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복녀는 자신이 치료해 보겠으니 10일간 만 여유를 달라고 아버지에게 애원하였다.
'무슨 소원을 빌까?' 천제봉
이제 천제봉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려면 다시 내려가야 한다. 천제봉과 봉화산 사이에 넓은 재가 있다. 바다에서 오르는 만낭골과 화산마을로 내려가는 논밭골이 만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지 않았는지 가는 길마다 산딸기가 빨갛게 익은채로 있다. 걸어가다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걸으니 뱃속에서는 흔들어 주기만 하면 복분자술이 되는 것 같다.
봉화산과 산등성마루 337.8m인 봉화산에 오를 때는 조금 힘이 들지만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이 맺히기도 전에 식혀주어서 시원하다. 봉화산 봉수대에는 '백선' 꽃이 수백년 전 예쁜 꽃을 피워서 봉수꾼들을 달래주었던 것처럼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개도 봉화산 봉수대 주변의 돌무더기와 돌담이 예사롭지 않다. 사방이 확 트인 곳에 봉수대를 두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서 봉수대 지역으로서 안성맞춤이다.
봉수대를 지나서 화산마을로 내려가는 산등성이에는 곳곳에 큰 바위로 된 산등성마루가 연속으로 나타난다. 나무와 풀로 된 숲을 조금 지나면, 산등성마루가 나타나 사방을 둘러보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건너편 금오도 함구미 용두에서 시작하는 비렁길이 켜켜이 싸여서 보인다. 몇차례 반복을 하면서 만나는 산등성마루에서 보면 똑같은 개도 솔머리산과 금오도가 다 다른 느낌으로 마주한다. 금오도쪽에서 보면 개도 봉화산과 천제봉 뒷자락의 벼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는데, 개도에서 금오도를 보니까 금오도가 아름답다. 이 두섬은 천생연분으로 서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반포지교 같은 친구 섬인 것 같다.
아마 옛날 개도에 사는 어린 아이가 고기 잡으러 갔던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금오도와 개도 사이 해협을 지나들어오는 아버지가 탄 고깃배를 따라 기뻐서 산등성마루를 뛰었을 것 같다. 산등성이로 난 길을 걸어서 포구로 내려가면서 빼꼼한 곳, 하늘문이 열린 곳에서 배 한번 내려다보고, 또 뛰어가다 빼꼼한 산등성마루에서 아버지를 향해 손을 들어 돌리면서 아버지를 외쳤을 것 같다.
청석포와 신흥마을로 내려가는 둘레길과 화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곳에도 널따란 초지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북쪽을 향해 고개를 들면 돌산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천제봉에서 이곳 화산마을 뒤편까지 오면서 잠시도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못하고 감동과 감탄을 하면서 걸었던 그 길이 망망대해, 태평양을 향해서 막힘이 없이 끝없이 뻗어나가는 바다길은 희망을 싣고 드나드는 길이다.
개도 막걸리와 갯마을식당 화산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개도중학교와 화정초등학교의 체육관과 푸른 잔디밭의 운동장이 눈에 띄인다. 마을을 지나 개도의 대표적인 명물인 '개도 막걸리' 주조장을 찾았다. 많은 공산품이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오지만 이곳 개도에서 생산되는 '개도막걸리'는 육지로 팔려나간다. 취기를 느끼기 보다는 달콤해서 여성들을 비롯해 누구나 먹기가 좋다. 비록 조그만 주조장이지만 주조장 마당에 질펀하게 앉아서 막걸리를 부어마신다. 술이라기보다는 섬의 문화를 품는 것 같아서 격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걸음을 재촉하며 선착장쪽으로 걸어나갔다. 담벼락에 검정 페인트 글씨로 씌여진 '갯마을식당'이라는 이름에 정감이 간다. 그럴싸한 거창한 집보다는 금세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형수님 같은 아짐쎄가 양념 묻힌 손으로 한 입 건네는 그런 집이 좋다. 여주인은 평상에 앉아서 전복을 비우고, 말린 생선 구이를 안주 삼아 술을 들고 있는 손님들에게 줄 양념 돌게장을 만들고 있다. 이런 여주인이 바로 우리들의 누이이고, 형수이지 않을까 한다. 섬에 있는 식당은 수족관이 따로 없다. 고기와 조개를 잡으면 배에 매달아둔 그물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바로 바다에서 건져서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자꾸 가격을 물어도 자연산 고기를 손님이 해주라는대로 그 가격에 맞춰서 해주겠다고 한다.
운꼬지마을에서 숫돌기미 밀림 숲길 시내로 나가는 선착장으로 가지 않고, 뒷편 운꼬지마을로 들어섰다. 운꼬지 마을 앞에는 조그만 섬인 '찰떡여'가 있다.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찰떡을 칠 때 처럼 "찰떡찰떡" 소리가 나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손에 잡힐 듯 구봉산과 신월동이 보인다. 산 2개를 오른 4시간에 걸친 개도 갯가길 답사에서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주는 길이 바로 운꼬지마을에서 숫돌기미마을까지 갯가길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말채나무 등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길이 계속된다. 1시간 가까이 걷는 숲길은 숲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겉옷을 벗어제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백야도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은 여석항이다. 여석은 숫돌 '여(礪)'에 돌 '석'으로 숫돌기미라고 불렀다. 여석항으로 가는 길에 여수의 상징인 벅수 2기가 있었다. 개도 여석 벅수는 숫돌로 조각되어 단단하고 강하며, 바닷가의 비바람에도 잘 보전되어 있었다. 2기의 돌벅수 중 남자상은 할아버지 벅수로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여자상은 할머니 벅수로 마을쪽을 바라보고 있다. 2기 모두 무관(無冠)의 민머리형이며, 명문은 여수 다른 벅수와 같이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도로에서 보면 해경 시설이 백야도 등대를 가려서 보기 흉하지만 바다에서 보는 등대는 뱃사람들의 희망이었을 것 같다. 당두 산몰랑에 있는 김정일 님의 '하뉘바람따지' 흙집에서 보이차를 마시면서 품격있는 시간을 보냈다. 해 떨어지는 시간 장수만을 한 바퀴 돌아서 벌가로 와서 벌가횟집에서 가오리, 간잽이회와 찜을 먹고서야 개도 답사길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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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주니네집은 어디여???
저위에 보이는



파란집
형주니네,미애네 집 새루 지여야겟는디....
둘다
새로 지은 파란집인디
요즘엔 빨간집이 대세인디...ㅋㅋ
북북북북북북북북북북
이글 회장님이 쓰신거에요? 와 완전 감동이다 ~~ 눈물나네요 ~
어렸을적 천제봉 많이 올라가서 놀았는데 ~ 우리집도 보이고 너무 좋네요
마녀목에대한 이야기 써서 백일장에서 큰상도 받았는데 ㅋ 아 그리운 고향이여 ~
미애네집은 교회 옆 이쁜집이지요











미애 어릴때 엄청 이쁘고 똑똑했다구 개도시내에 소문 났더만
소띠낀다고 올라선 마녀목 맹감가시에 볼테기가...ㅠㅠ
옵빠 !!!!! ㅋㅋㅋ 마녀목은 작은아버지집앞에있는 나무여요 ~~ 오해하지마 나 이래뵈도 개도사람이여 ~ ㅋ
고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