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일 년 중 바닷물이 가장 많이 나가는 썰물 때라는 처제의 연락을 받고 집사람이 갑자기 고향나들이를 떠났다. 바닷물이 나간 갯벌에서 오랜만에 조개도 캐고 해초도 따면서 친자매들끼리 지난 시절 추억에 잠겨 보겠다는 거다. 나는 주말에 있을 거리설교와 주일설교 준비로 틈이 없어 부득이 동행하지 못하고, 새달 3일 월요일쯤에 데리러 가마고 약속을 했다.
주일 오후 저녁 무렵이 되자 갑작스레 창원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 J가 생각났다. 그는 두 해 전 K시인이 낸 시 해설집에서 우연히 거기 수록된 나의 시를 읽고 마음에 들어 썼다는 편지를 보내온 이후 줄곧 소식을 주고받고 있는 장기수이다. 나는 그에게 언젠가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뜻을 세우고, 우선 시를 배울 것을 권유하여 달마다 시작법을 보내주었는데, 그는 이따금씩 자신이 쓴 습작시를 보내오곤 했다. 나는 그에게 그동안 한 번 편지로 복음을 전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차차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해 창원에 사는 구순의 처이모 병문안 차 들렀을 때 그를 면회하려 했으나, 병문안과 거리설교, 점심식사까지 하느라 시간이 흘러 버려 아쉽게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집사람 데리러 가는 길에 겸사겸사 해서 면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나는 순간 그 생각이 성령님께서 내게 넣어주신 생각임을 직감했다.
주일 저녁에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나 데리러 올 거지요? 몇 시쯤 올 거예요?” 하는 물음에 창원교도소 면회 건을 얘기했더니 집사람도 좋아라고 찬성을 했다. “하나님 아버지, 내일 아침나절에 그를 면회하고자 합니다. 면회를 순조롭게 인도해 주시고, 부디 그 불쌍한 혼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고 그날 밤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튿날 9시에 창원교도소에 전화를 했다. 면회 예약은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내가 가는 동안 J에게 면회신청이 없으면 면회가 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경주에서 창원까지는 승용차로 약 두 시간의 거리,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차를 몰았다. 교도소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하게 그곳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교도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면회소로 들어가 즉시 면회신청을 했다. 다행히. 아무도 당일에 J에게 면회를 신청한 사람이 없어 면회가 가능했다. 직접 전달이 가능한 줄 알고 종합비타민 한 통과 책 일곱 권을 가져갔는데, 약은 반입이 불가능했고 책은 접수해 두고 가면 전해주마고 해서 맡겼다. 마침내 J와의 역사적 대면이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20여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혼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몇 번이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윽고 대기실의 화면에 번호가 떠오르면서 1번 면회실로 입장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한 평이 채 못 되는 면회실에 들어서자 유리 저편에 J가 서 있었다. 좀 마른 보통 체격에 갸름한 얼굴이었다.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은 총15분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후 나는 가지고 들어간 성경에서 창세기 1장 1절을 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작은 열쇠 하나도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이 오묘한 하늘과 땅이 저절로 만들어지겠느냐고 한 다음, 하나님이 바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며, 이것(성경)이 그분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전해 주었다. 이어서 로마서 5장 12절과 19절을 펴서 읽은 다음, 아담의 모든 후손이 죽게 된 연유와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말했다. 다시 에베소서 2장 8절을 펴서 읽어주고 구원이 그냥 믿음으로 받으면 자기 것이 되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지시켰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로마서 10장 9,10절을 펴서 천천히 또박또박 읽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나는 유리 저쪽의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나는 그가 촉박한 시간에 미적대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단호한 목소리가 유리 저편에서 들려왔다. “예,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세주로 영접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말했다. “예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나를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위대하신 하나님, 저는 오늘 제가 멸망 받을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도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영접하오니 제 안에 들어오셔서 제 혼을 구원해주십시오. 제 혼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원합니다. 아멘.’ ” 그는 여기까지 분명한 목소리로 나를 따라서 고백했다. 나는 그를 향해 선언했다. “이제 이 고백으로 ○○씨는 지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나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5분 가운데 14분이 훌쩍 흘러 마지막 1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18년 동안 복역한 장기수인데 현재는 빵 만드는 기술을 공부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오늘부터는 성경을 한두 장씩이라도 매일매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시간이 다 되었다는 부저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와 나는 환하게 웃으며 유리를 사이 두고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창원교도소를 나와 바로 고속도로로 차를 올려 함안의 처제 집으로 향했다. 문득 나의 머릿속에 사도행전 8장의 사건이 떠올랐다. 빌립이 예루살렘에서 가자에 이르는 길까지 가라는 주의 천사의 명령을 듣고 성령님의 축지법으로 이동하여 에디오피아의 큰 권세를 지닌 내시를 만나 그를 구령한 역사적 사건이다. A.D. 34년의 일이니 지금부터 꼭 198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 나의 그날의 구령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빌립이 주의 천사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신속무비한 축지법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자까지 이동한 것에 비해서는 많이 못 미치지만, 생각으로 넣어주신 성령님의 계시와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의 현대판 축지법인 승용차로 경주에서 창원까지 이동시키신 일이 흡사하다면 아주 흡사했다. 빌립이 이방의 내시를 구령한 데 비해 나는 동족의 죄수 한 사람을 구령했으니 이 또한 흡사한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빌립이 귀로 들은 그 당시 내시의 고백은 확실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 나는 이 고백이 비록 길이의 차이는 있을망정 바로 그날 죄수 J가 나의 귀에 들려준 고백과 정확하게 동일한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만났으나 언젠가는 주님과 함께 주님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얼굴과 얼굴로 대면할 날이 있을 것(고전 13:12)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롬 10:13-15) 그날의 나의 발을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으로 기록해 두신 하나님께 내 깊은 영으로부터 감사를 드렸다.
<찬송시 3>
저 하늘 생명책에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계 20:12)
1
저 하늘 생명책에 그대 이름 있는가
이 세상 부귀영화 누리고 또 누려도
그 책에 그대 이름 기록되지 않으면
공중에 주님 오셔도 들림 받지 못하리
2
저 하늘 생명책에 그대 이름 있는가
이 세상 높은 권세 오르고 또 올라도
그 책에 그대 이름 기록되지 않으면
하나님 의로운 심판 피할 길이 없으리
3
저 하늘 생명책에 그대 이름 있는가
이 세상 온갖 명예 떨치고 또 떨쳐도
그 책에 그대 이름 기록되지 않으면
불타는 형벌의 장소 벗어나지 못하리
4
저 하늘 생명책에 그대 이름 있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 구주로 영접하여
그 책에 그대 이름 기록되어 있으면
영원한 새 예루살렘 주와 함께 살겠네
http://jodonghwa.blog.me/220655008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