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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삶이 사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해 연출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 개의 모험을 다루는 ‘볼트’(Bolt-12월31일 개봉)는 영화 ‘트루먼 쇼’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전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 캐릭터 버즈의 딜레마는 ‘볼트’가 차용한 핵심 모티브가 된다. 또한 머나먼 길을 밟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개의 여정은 영화 ‘래시’를 포함해 전세계 어디서나 흔히 발견되는 전형적인 충견(忠犬) 스토리다.
성장 드라마와 로드 무비가 결합된 디즈니의 올 겨울 애니메이션 ‘볼트’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모티브들을 맛깔스럽게 엮어내는 이 영화의 솜씨는 매력적이다. 기본적으로 어린이 관객들에게 좀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성인 관객들의 마음까지 제대로 건드리는 부분도 적지 않다.
모든 것을 걸었던 대상에게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할 때,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일임을 확인할 때, 원대한 포부와 달리 실제 자신은 보잘 것 없는 능력을 가진 평범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그리고 자신이 현실로 생각했던 미래가 사실은 불가능한 꿈이었음을 깨달을 때, 이 깜찍한 애니메이션은 쓸쓸하고 아릿한 뒷맛을 슬쩍 남기기도 한다.
극 초반 ‘볼트’는 극중극의 형태로 수퍼독 볼트가 맹활약을 벌이는 장면들을 다양한 볼거리와 스피드를 함께 갖춘 액션으로 멋지게 보여준다. (이 부분은 이 작품이 3-D로 제작된 이유를 제시한다.) 이어 볼트가 대륙 횡단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유쾌한 유머와 재치 있는 대사, 그리고 이야기의 힘으로 이끌어간다.
그런 가운데서 볼트의 다양하고도 귀여운 표정을 적극적으로 전시하기도 하고, 맨하탄 거리와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를 무척이나 세밀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제니 루이스의 노래 ‘Barking at the moon’이 흐르면서 세 캐릭터가 라스베가스로 여행하는 과정을 뮤직 비디오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좀 뻔한 감은 있어도 충분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거대한 폭발의 위력을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일회용 컵이 툭 쓰러지는 것으로 스케치하는 쇼트처럼, 재치있는 표현도 종종 눈에 띈다.
‘볼트’를 픽사가 만든 ‘니모를 찾아서’나 ‘월-E’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걸작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질감이 잘 살아 있는 ‘볼트’는 최고 두뇌집단인 픽사의 제작물이 아니더라도 디즈니가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명가(名家)임을 다시금 입증하는 영화다. 디즈니의 저력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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