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영화를 보고 왔다.
조조.... 아침 첫회에 상영하는 영화......
아침에 해야 할 일도 빵꾸가 나고, 예전에, 베란다로 노란 햇볕이 밀려들어오면 길건너 영화관에 가서 아침영화를 보던 기억이 나 영화관으로 향했다.
유치할꺼라고 짐작은 해두었지만,
그래, 유치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자...하고 가볍게 나섰지만,
돌아오는 길은 진짜... 씁쓸했다.
혼자보는 영화는 언제나 나에게 깊은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다.
패왕별희, 연인, 펄프픽션, 저수지의 개들... 그리고 단편영화를 찍던 임순례감독의 첫 장편영화 <세친구>.....
오늘 본 영화는 ...킬러들의 수다였다...
이 영화 볼 사람은 내 글을 읽지 마시라.
티브이에서 영화소개 프로그램 죄 다 보고나면 영화관에 가서 김빠져서 나오는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영화 팜플렛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오늘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뭔가 찜찜했던 마음은 그 팜플렛을 보고 나서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다.
팜플렛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멋진 남자들의 죽여주는 프로젝트!"
누군가를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때
때론, 경찰이나 법보다 킬러를 더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내가 본 그 킬러들은 멋진 남자들도 아니었고, 죽여주는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난 그것이 감독의 잘못이라고 본다.
1. 그들은 그냥 킬러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다. 그래서 그들이 죽여야 하는 사람에 대해 살인을 의뢰한 사람만큼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말한다.
살면서 누군가 한명쯤은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자기들은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적어도, 그들을 철저한 냉혈한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의존하는 살인이 아닌 계획과 이성적 판단에서 이끌어내는 살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냉혈한도 아니고, 똑똑한 킬러도 아니다.
감독은 킬러들에게 조금은 어눌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입힙으로써 킬러라는 어감이 주는 정공법을 피해갔다. 말하자면 그들의 어눌함과 모자람은 그들이 그냥 킬러가 아닌 인간적인 킬러라는 사실에 관객들이 동화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킬러들의 편에 서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한다. 즉 그들이 작전모의를 한다던가, 그래서 그들의 작전대로 과연 일이 진행될 수 있을런지 관객이 기대를 하게 한다던가, 임무를 수행하고 현장을 떠날 때 어려움을 겪게 한다든가 해서, 마치 킬러들이 아닌 내가 그 사건현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절박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어야 한다.
천재소리를 듣는 장진감독은 이 모든것이 너무 진부하고 구구절절해서 과감하게 삭제해 버린 것일까?
오페라 하우스의 살인사건에서 킬러들은 살인 후 삼엄한 경찰병력을 뚫고 나올 걱정에 의뢰받은 사건을 주저하지만, 단지 의뢰인이 오영란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진행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유유히 사건현장을 나왔는지, 총이라도 쏘면서 나왔는지, 죽을뻔하다 살아났는지의 여부는 몽땅 증발이다.
영화에서 가장 주축을 이루는 스케일의 장면이었는데, 내가 킬러가 된 듯한 절박함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나 탈출장면조차도 없다면 그 어수룩하지만 인간적인 킬러들에게 동화되어 달라는 감독의 주문은 말 그대로 강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들은 어수룩하지만 일만큼은 완벽한 킬러들이라서 그렇다고?
아니다... 이것은 그냥 단순한 살인사건의 나열일 뿐이다. 나는 그 사건의 목격자가 된 것일 뿐이다. 킬러들을 나 자신으로 느끼지 못하고 객관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면, 킬러들과 관객 사이에는 단순한 살인사건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 <겟 어웨이>를 보셨는지....
난 알렉볼드윈과 킴 베이싱어의 리바이블 버젼을 원판보다 먼저 보았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에서 도망가고 쫓고, 총쏘고 피하고 하는 장면이 그토록 많이 나왔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악인이고 누가 착한사람인지에 대한 판결 이전에 내가 쫓기는 자가 된 듯한 심정으로 제발 저 부부가 무사히, 무사히 탈출을 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생길 때 바로 그 영화의 캐릭터에 저절로 동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구절절한 설명도 아니고 쓸떼없이 필름을 늘리는 행위도 아니다. 내가 그 순간 알렉볼드윈이 되고 킴 베이싱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그냥 킬러들일 뿐이었다.
2.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입장이 싫다.
극중에서 조검사는 말한다. "너는 의뢰를 받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
그들이 결국은 있어도 좋음직한 킬러이며 조검사가 킬러들을 비로소 이해한다는 것을 확연하게 관객들에게 일깨워주는 중요한 대사이다.
그러나, 영화 자카르타의 임창정과 진희경 일당처럼, 겟어웨이의 알렉볼드윈이나 킴 베이싱어처럼, 서부영화의 유명한 킬러 쟝고처럼, 폭풍속으로의 페트릭 스웨이지처럼, 킬러들이 그들처럼 법의심판아래 있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타당한 개연성이 없다.
조검사는 왜 상연에게 수갑대신 총을 쏘았을까...
역시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도 잘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답은 영화가 아닌 팜플렛에서 찾을 수 있다. 조검사는 킬러들을 이해할 수 있는, 도닦은 이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3년간의 수사작업을 망쳐놓은 그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차라리 영화가 비극으로 끝났으면 어땠을까...
세상은, 때론 경찰이나 법보다 킬러들을 더 필요로 한다는 이 영화의 주된 컨셉은 조검사가 "난 너희들을 굶겨 죽일꺼야....'라고 내뱉은 한마디로는 커버할 수 없는게 아닐까....
영화 <게임의 법칙>을 보면 총 한자루로 기고만장하던 박중훈이 마지막 장면에 어이없게 죽고 만다. 그러나 그 어이없는 죽음이야말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그리고 영화제목처럼, 살인게임의 법칙을 극명하고도 간결하게 보여주는 백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진감독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영화가 어이없는 코믹극으로 끝나도록 한 마지막 장면은 상연이 검찰청을 찾아가 조검사의 전화기와 컴퓨터 모니터에 총을 쏘고 조검사가 돈 5만원만 내고 가라고 말했던 장면 다음으로 억울함에 눈물이 나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여고생에서부터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회사원, 시끌벅적한 촌부에 이르기까지 살인을 의뢰한 사람들의 군상을 좀 더 리얼하게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내내 조금씩 코믹하게 흐르던 극의 흐름을 비장하게 멈추게 함으로써 과연 이땅에 킬러들이 존재해야 하느냐의 판단 여부를 관객들에게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정통 킬러극도 아닌, 코믹도 아닌, 블록버스터도 아닌, 이것저것을 버무려 놓은 듯한 애매한 입장..... 정말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3. 그래도 눈을 즐겁게 해준 볼만한 장면도 있었던 영화....
햄릿이 죽어서 무대위에서 피를 흘리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충실히 기여했던 장면으로 기억된다. 하얀무대, 하얀옷게 검붉은 피.... 시각적 이미지가 압권이었던 것 같다.
또하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원빈이다.
개인적으로 멜로물이 아닌 액션극의 조연을 자청했던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어리광스러운 막내역할을 제대로 잘 수행해냈다는 평을 받는다는데, 우중충한 킬러들 사이에서 꽃미남으로써 시각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ㅋㅋ.... 보는 즐거움 선사해준.......
아...
그리고 또 하나....
숨은그림찾기하듯 장진사단의 배우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형사반장이나, 피살자들도 그했고, 이제 준주연급으로 부상한 정재영도 이전 작품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