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몽골, 새 질서가 시작되다- 무능한 권력과 각자도생에 내몰린 백성들의 분투!
무신집권기 고려는 대륙을 석권하고 급부상하던 몽골과 마주한다. 천하의 몽골군에 맞서 고려의 기상을 보여준 귀주성의 박서•김경손, 자주성의 최춘명, 처인성의 승려 김윤휴 등은 물론 기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백성이 30년 항전을 이끌었다. 반면 무신 집권자들은 강화로 천도하고 몽골의 친조와 출륙 요구를 무시하며 백성의 피해를 못 본 체했다. 항복 후 원종이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항쟁을 기치로 삼별초가 반기를 들었고, 고려 왕실은 몽골과 손잡고 삼별초를 토벌한다. 100년을 이어온 무신의 권력은 고스란히 몽골에 넘어갔고, 고려는 충렬왕을 시작으로 원의 부마국으로서 새로운 질서 속에 편입되며 격동의 시기를 맞이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한 강력한 몽골군의 공격에 맞서 고려는 수십 년간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 작지만 강한 나라 고려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기엔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처음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귀주성, 서경성, 자주성 등에서는 항복을 거부하고 몽골군의 집요한 공격을 끝까지 막아냄으로써 몽골군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이후 무신정권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안전한 강화도로 천도했고, 몽골군이 쳐들어올 때마다 취한 대책이라곤 백성들로 하여금 산성이나 섬으로 대피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백성들은 마을을 버리고 산성이나 해도 혹은 산속으로 들어가 연명했고 몽골군을 상대로 산성에 의지해 싸우거나 유격전을 펼쳤다. 수십 년에 걸친 대몽항쟁은 중앙정부의 이렇다 할 지원 없이 펼쳐진, 말하자면 백성들의 생존 투쟁이었다.
무신 집권자들은 항복해서 강화도를 나오는 순간 자신들의 권력이 종말을 맞을 것임을 알았고 실제로 이후 그렇게 되었다.
원의 간섭이 정착되면서 원나라 수도에서는 고려 여인과 환관 들이 무시 못 할 권력을 형성해 갔다. 고려 여인들은 후궁이나 심지어 황후가 되는가 하면 환관들은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