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누워서 인사하는 7급 高卒 공무원에 장차관·도지사가 줄 선다
조선일보
[김윤덕이 만난 사람] 김선태 충주시 주무관
김윤덕 선임기자
입력 2023.04.17. 03:00업데이트 2023.04.17. 07:25
https://www.chosun.com/opinion/2023/04/17/4CPWJGQCQZHARO55XLYWLPCKIE/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충북 충주시청에서 ‘충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7급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이 30만 구독자 돌파 기념으로 누워서 인사했던 파격적인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두 아이 아빠이기도 한 김 주무관은 "교통과 의료만 확보되면 지방 소멸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서른여섯 살 김선태씨는 선출직을 제외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이다. 장차관 도지사가 이 7급 공무원이 제작하는 충주시청 유튜브 ‘충TV’에 나오려고 앞다퉈 줄을 선다. 충TV는 지자체 유튜브 최초로 지난달 구독자 30만명을 돌파했다. 그는 30만 돌파 감사 인사를 책상에 두 발을 올린 뒤 ‘누워서’ 했다. “30만이면 납득 가능한 자세” “미친 센스” “멋져, 늘공이 아냐” 등 2000개 댓글이 달렸다.
‘눕방’뿐 아니다. 하수처리장에서 하이라이스를 먹으며 하수처리과의 고충을 들려주고, 충주구치소를 소개하려 감방에 직접 갇히는가 하면, ‘충주 개신남 펫스티벌’을 홍보하기 위해 개 분장을 하고 축제 현장을 기어서 다녔다. 가나의 장례식을 패러디해 만든 코로나 예방 영상 ‘관짝춤’은 조회수 840만을 넘겼다.
먼지 풀풀 날리는 충주시청 창고에서 김선태 주무관을 만났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사골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오셨군요.”
충북 충주시청에서 ‘충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홍보담당관실 7급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이 자신이 촬영해온 영상을 편집하는 7층 작업실에서 재미있게 포즈를 취했다. /신현종 기자
◇ “세수하는 영상만 올려도 성공하겠더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무원이라던데.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하하!”
-누워서 인사하는 공무원은 처음 봤습니다.
“30만 돌파 기념 콘셉트를 고민하다 가장 건방진 자세로 인사를 해보자 한 거죠.”
-충TV 구독자 수(34만)가 충주시 인구(21만)보다 많던데, 알아보는 사람이 많습니까?
“얼마 전 시청에서 터미널까지 걸어가는데 세 분이 말을 걸더군요. ‘응원합니다!’ 하면서. 지역 축제 현장에 가면 반갑게 인사하는 분들이 대부분 타 지역 주민들입니다.”
-저를 시청까지 태워다준 택시 기사님은 모르던데.
“음…. 아쉽네요, 하하하!”
-구독자 10만을 돌파했을 땐 tvN ‘유퀴즈’에 출연했더군요.
“(조선일보는) 사골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온 겁니다.”
-구독자 10만과 30만의 차이를 피부로 실감하나요?
“아무리 유명한 식당도 사람들이 북적대야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죠. 영화 ‘기생충’도 아카데미상을 받으니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복지부 장관, 행안부 차관, 제주지사, 인사혁신처장까지 출연했더군요.
“중앙 부처에서 정책 홍보 협업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바빠서 다 들어드리진 못하고요.”
-장차관들 만나면 떨리지 않나요?
“아뇨. 어차피 남인데요, 하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충주고 선배라 출연을 의뢰했나요?
“당시 그분이 이끌던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부탁이 와서…. 저는 제가 먼저 출연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충TV'에 출연해 김선태 주무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반씨 중에 유명한 사람 이야기를 하다 웃음이 터졌다. /유튜브 캡처
◇기획·출연·촬영·편집까지 나 홀로
-2019년 4월10일에 첫 방송했지요? 최대 수혜자는 삼선(三選)에 성공한 조길형 충주 시장이 아닐지.
“시장님이 지시해서 유튜브를 시작한 건 맞죠. 분명 도움을 받으셨을텐데… 뭐 그냥 (절 보면) 웃어주시긴 합니다, 하하!”
-그런데 여기가 창고 맞지요?
“국민이 공무원들 ‘세금 도둑’이라고 욕 많이 하시는데, 예산도 없이 말단 공무원이 허름한 공간에서 기획·연출·촬영·편집까지 혼자 다하며 고향 알리는 모습을 좋게 봐주십니다. 누워서 인사를 해도 ‘겸손하다’ 해주시고(웃음).”
-1년 예산이 61만원이던가요?
“구독자가 많아지니 제작 예산을 세워보라고 시장님도, 의회도 권했는데 제가 거부했습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3억 정도는 당길 수 있죠, 하하!”
-액션캠 한 대 들고 저예산으로 찍는 B급 영상이 왜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전국 지자체들 홍보 영상은 99% 용역 업체에 돈을 주고 제작합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제일 편한 방식이죠. 그러니 조회 수가 잘 나올 리 없어요. 2019년 당시 부산시 유튜브 조회수가 2회? 유튜브 전용 예산만 부산시가 5억원, 서울이 6억원 정도인데 그렇게 만들면 BTS, 김연아 선수가 나와도 안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반대로 가보자 한 거죠.”
-패러디, 먹방, 꽁트까지 다양하더군요.
“시장님, 구청장님이 한복 곱게 입고 나와서 ‘안녕하세요?’ 하는 장면이 썸네일에 걸리면 그냥 망한다고 봐야죠. 제가 본 지자체 유튜브들이 거의 다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세수하는 영상만 올려도 성공하겠다 확신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범 내려온다’(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와 함께 관공서가 만든 가장 재미있는 홍보영상이 아닐지.
“한국관광공사도 저희 B급 감성을 벤치마킹 한 겁니다. (공사 직원들이) 충주에 세 번 내려오셨죠. 물론 그 영상은 120억 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하!”
'충TV'에서 충주구치소에 수감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연출한 김선태 주무관. /유튜브 캡처
-충TV 속 홍보맨은 상명하복 안 하고, 자기 주장 강하고, 스스로 철밥통이라 자랑도 하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무원’입니다.
“모든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랄까요? 틀을 깨고 싶은? 기자도 그렇지 않나요?”
-김선태도 실제 그런 공무원입니까?
“튀긴 하죠. 선배들 커피 타드리고 사근사근 말 걸어주는 후배는 아니니까요. 충TV도 시청 내에서 인정받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어요. 30만이 넘으니 이제 좀 마음을 여신달까?(웃음)”
-’공무원은 논다’ ‘공무원은 칼퇴한다’ 같은 편견을 깨뜨리는 영상도 있더군요.
“나쁜 공무원도 있지만 99%는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소수의 나쁜 사례들이 모이다 보니 불친절한 철밥통으로 낙인찍혔지만 불쌍할 정도로 일 열심히 하는 분들이 제가 볼 땐 더 많습니다.”
-그래서 충주시청 1500명 직원이 몇 시에 퇴근하는지 저녁 나절 내내 출입구를 촬영했나요?
“저도 공무원은 칼퇴근 하는 직업인 줄 알았어요. 놀기 위해 공무원 시험 봐서 들어온 거고요(웃음). 근데 칼퇴하는 공무원은 15%에 불과했습니다.”
-악성 민원인 연기도 압권이었습니다.
“여러 번 당해봐서 그분들 말투, 스타일이 다 연구돼 있죠. 산척면 9급 공무원 시절부터 동네 어르신들한테 지팡이로 맞아가면서 일했습니다, 하하하!”
-반대로 ‘인수인계 안되는 공무원’ ‘전화 돌리기 하는 공무원’ 등 공직 사회의 나쁜 관행을 보여주는 영상도 있던데요.
“우리 민낯도 다 까야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어요. 인수인계 안 되는 공직 문화를 꼬집은 영상은 불편해하는 공무원들이 많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요. 저도 전임자가 데이터를 다 지우고 떠나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충주 한우 홍보 영상엔 ‘선태 형처럼 충주 시청 가서 공무원 하고 싶다’는 댓글도 있습니다.
“도내 공무원 시험에서 충주시 경쟁률과 커트라인이 가장 높습니다. 한번은 신규 직원이 절 보고 인사를 해요. 대구 사람인데 ‘충TV’ 보고 지망했다고.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속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요, 하하!”
-지자체 강연도 많이 다니지요? 노하우 일러주러?
“답은 하나예요. 타깃이 전국의 젊은 층이어야지, 자기네 팀장·과장이면 안 된다는 것. 결재권 쥔 그들을 통과해야 하니 늘 하던 방식으로 만드는 거죠. 결국은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충TV라는 타이틀도 직접 붙였나요?
“충칭 말고, ‘충’이란 단어가 들어간 지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웃음).”
-충주 시민들 중에는 유튜브만 잘되면 뭐하냐, 일자리가 늘고 KTX가 들어와야지, 하는 분들도 있던데.
“맞아요. 충북 제1도시인 청주와 제2도시인 충주에 고속도로가 없다는 걸 아십니까. 인구 20만 도시에 응급수술할 의사가 없습니다. 교통과 의료가 확보가 안 되면 지역 균형 발전은 물 건너가지요. 충청북도만 해도 도청소재지인 청주로 모든 혜택이 몰려 있어서 속이 상합니다.”
-충TV에 윤석열 대통령이 출연해야겠네요.
“제주지사 때 출연한 원희룡 장관님께 ‘형, 내 덕에 잘됐잖아’ 하면서 대통령님 전화번호를 따볼까 합니다, 하하!”
-대통령을 만난다면 뭘 요청하겠습니까.
“전국에 기업도시가 4개 있고, 혁신도시는 도마다 선정합니다. 그런데 혁신도시는 속된 말로 개꿀, 기업도시는 개털입니다. 충주를 기업도시로 선정해놨으면 반도체, 하이닉스가 오도록 파격적 혜택을 주셨어야죠. 선정만 해놓고 나 몰라라. 수도권 공장 총량제 원칙도 무너질 판인데 누가 옵니까. 충주댐 용수는 다 갖다 쓰면서 말이죠. 충주 시민들이 너무 착해요. 다른 지역 같으면 벌써 피켓 들고 용산 갔을 겁니다, 하하!”
◇할 말은 하는 고졸 7급 공무원
-고졸이더군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다 2학년때 중퇴했어요.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꼈죠. 그리고 바로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롤모델이겠군요.
“그랬죠. 근데 그분 손으로 사시를 없앨 줄이야, 하하!”
-대학 그만둔 걸 후회하나요?
“대학 나왔다고 제가 더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을 가고 안 가고는 자기 목표를 이루는 데 대학 공부가 필요하냐 아니냐로 결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최근 공무원시험 응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연봉과 안정감을 합산해서 사명감이 나오는 건데, 연금 개혁으로 안정성도 떨어지고 임금은 4~5%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니 인기가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예산, 특히 복지 예산이 늘면서 9급, 8급, 7급들 하는 일이 삼라만상을 관장해야 할 만큼 늘고 있다는 거죠. 어차피 월급도 안 오르고 승진도 못한다면 대강대강 일하자, 뭐 이런 분위기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누칼협(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로 협박했냐)’ 같은 댓글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혐오는 혐오를 낳을 뿐. 공무원도 알고 보면 월급 받는 직장인입니다. 서로 응원해주시면 어떨까요.”
-챗GPT 의 등장으로 공무원이란 직업도 없어질 거란 전망이 나오는데.
“그냥 웃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에겐 여전히 지팡이로 맞아줄 총각이 필요하고, 눈을 대신 치워주고, 신청 기간이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떼를 쓰면 욕 먹으며 받아주는 공무원이 필요하니까요(웃음).”
-공무원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생각보다 별로고,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너무 좋을 거란 기대, 너무 절망적일 거란 기대만 안 하시면 됩니다.”
-중앙 부처와 대기업들 스카우트 제의는 왜 거절합니까.
“내 몸에 맞는 옷은 충주시니까요. 액션캠 하나 들고 고향을 알리려 뛰어다니던 말단 공무원이 갑자기 국가 기관을 홍보하고 대기업을 홍보하면 금세 망가지지 않을지(웃음). 제 고향 충주가 온라인에서 핫한 도시가 됐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충TV 덕에 관광객이 늘었지요?
“심지어 이곳, 충주시청도 관광지가 됐답니다, 하하!”
충북 충주시청에서 ‘충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7급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이 충주시청 앞에서 재미있게 포즈를 취했다. /신현종 기자
☞김선태
198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를 졸업했다. 아주대 경영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충주시청 9급 공무원으로 입사했다. 충주시 산척면에서 일하다 2019년 시청 홍보담당관실로 옮겨 그해 4월부터 ‘충TV’를 제작했다. 현재 구독자 수가 34만1000명. 서울시(18만2000명)의 두 배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