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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성, 가족 22-32, 응원해요, 고마워요
이보성 씨를 전담 지원하며 쓰는 마지막 글이다.
2018년 9월 1일, 드디어 월평빌라 신입 직원이 되어 이보성 씨 지원 기록을 쓰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처음 쓴 글은 ‘이보성, 일상 18-16, 빨래 개는 보성 씨’(2018. 9. 1.).
‘보성 씨가 직접 하는 집안일이 하나둘 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다음 기록이 ‘이보성, 여가(마라톤) 18-35, 34분 40초’(2018. 9. 9.).
마라톤동호회를 꿈꾸게 했던 출발점, 거창사과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첫 완주 메달을 목에 건 날이다.
이렇게 썼다.
아주 잠깐 보성 씨가 목에 걸린 메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보성 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으니 궁금할 따름이다.
달리는 보성 씨에게서 평소에 보지 못한 진지한 얼굴을 마주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볼 때와는 다른 뚜렷한 시선의 집중하는 얼굴이다.
그만 멈추고 싶은 스스로를 이겨내고, 가쁜 호흡을 구령에 맞춰 조절하는 보성 씨에게서는
어떤 약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보성 씨가 반갑다.
보성 씨는 어땠을까?
보성 씨를 지원하며 돕는 내내, 오늘의 값진 34분 40초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쉽게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자 기억이다.
「2018년 9월 9일 일요일 일지, ‘34분 40초’」 발췌
이보성 씨 기록에는 유난히 ‘순간’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1.
“와, 보성 씨 진짜 양치하네요. 잘했어요. 밥 먹고 스스로 하니까 정말 좋네요. 보성 씨도 상쾌하죠?”
입 안 가득 거품을 문 채로 보성 씨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흐흐’ 하며 웃는 통에 입 주변으로 치약 거품이 흘러내렸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다.
휴대전화를 들어 급하게 이 닦는 보성 씨를 찍었다.
「2019년 2월 22일 금요일 일지, ‘양치질했어요’」 발췌
2.
달리는 동안 빗방울이 굵어졌다.
나중에는 빗물이 얼굴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비를 맞으며 달린 게 얼마 만일까.
금세 온몸이 젖었다.
바람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 좋았다.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트랙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보성 씨도 같은 마음이기 바랐다.
동호회를 제대로 즐기는 보성 씨에게, 그런 보성 씨와 함께하는 나에게 소중한 순간이다.
「2019년 6월 6일 목요일 일지, ‘목달 우중주’」 발췌
3.
메달을 목에 건 보성 씨가 집에 돌아와 다시 축하를 받았다.
월평빌라 직원과 이웃들이 보성 씨를 격려했다.
입주자 대표님이 보성 씨 메달을 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이거 보성이가 딴 거 맞죠? 아이고, 잘했네. 축하합니다.”
그 말이 좋았는지 보성 씨가 한참 웃었다.
완주 메달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좋아 보성 씨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두고두고 추억할 순간이라 생각했다.
“자, 보성 씨 찍을게요. 여기 보고 활짝 웃어 주세요. 하나, 둘, 셋!”
2019년 7월 28일, 보성 씨도 직원도, 어쩌면 거창마라톤클럽 회원들도 오늘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2019년 7월 28일 일요일 일지, ‘제12회 옥천포도 금강마라톤대회’」 발췌
4.
“선생님!”
“선생님 아니고 엄마.”
“엄마! 이 사람 누군데요?”
“선생님. 선생님이지.”
“정진호. 정진호 선생님, 맞죠?”
경험으로 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좋아서 묻는다는 걸.
엄마도, 지금 이 순간 같이 온 직원도.
“보성 씨가 아버지 성함도 잘 알더라고요. 그런데 발음을 ‘현’이 아니라 ‘형’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이형석!”
“‘현석’, 보성아 ‘이현석’.”
“이, 현, 석. 따라 해 봐라. 이형석. 맞죠? 맞죠?”
장난스럽게 웃는 걸 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이보성 씨 말에 다 같이 웃는다.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일지, ‘부모님 댁 방문 ③ 까만 밤바다’」 발췌
5.
“선생님!”
“아이고, 여기 있었네. 나는 또 어디 가는 줄 알고….”
김창석 선생님도 헐레벌떡 뛰어온 기색이 역력하다.
무슨 일인지 여쭈니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학원으로 오는데 멀리서 우리가 보인 모양이다.
어디로 뛰어가는 이보성 씨가 보이고, 그 뒤를 바쁘게 좇는 직원이 보여서
뭔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얼른 뒤따라 달렸다고 한다.
“아니, 뛰어가는 거 보고 혹시나 보성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알고 얼른 왔지요. 아니었네. 아이고!”
김창석 선생님과 나는 웃음이 터졌고, 이보성 씨는 이래저래 불만이 가득하다.
자기보다 10초쯤 늦은 선생님 때문에 늦어진 수업이 불만인 모양이다.
“쌤, 안 하고 뭐 해요, 지금. 시간 없단 말이에요. 얼른요, 얼른! 으이구.”
무사히 수업을 시작한 이보성 씨를 뒤로하고 학원에서 나오는데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불과 몇 분 사이, 대단히 박진감 넘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웃는다.
상황과 풍경이 마음에 박혀 기록으로 남긴다.
「2022년 10월 6일 목요일 일지, ‘뛰어가는 거 보고’」 발췌
6.
이보성 씨의 뜻을 붙잡아 보겠다는 의지, 조금이라도 더 해 보겠다는 김창석 선생님의 의지가 감사하다.
드럼학원 수업 시간 중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남은 순간을 보니 그럴싸하다.
집중해서 연습도 하고, 열심히 즐기기도 했으니 이미 충분하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겠지.
「2022년 10월 20일 목요일 일지, ‘붙잡아 보겠다는 의지’」 발췌
이보성 씨를 돕는 전담 직원으로 함께한 지난 4년을 돌아본다.
그 순간이 하나하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회사업가로서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를 키우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고,
나를 키우고 지킨 기억들….
며칠 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이보성 씨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잠겼는데,
그러는 중에도 혹시나 아버지가 걱정할 일이라 생각할까 봐
얼른 ‘염려할 일은 없고, 전할 소식이 있어 연락드렸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우성 씨를 전담해 지원한 오 년간의 소회를 나누었고
아쉬운 마음과 더 세심하게 지원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전했습니다.
전종범 선생님을 도와 우성 씨 일상생활 지켜보며 언제든 필요한 도움 주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지켜보며 지원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시라고
그러니, 오히려 든든하게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일지, 염순홍」 발췌
후임자를 소개하며 입주자 부모님에게 동료가 건넸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아 따라 한다.
정말 그러기 바라는 마음, 그럴 수 있겠다는 다짐, 모두에게 아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중첩되어 쌓인다.
“아버님, 새해에 제가 보성 씨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나지 않는 건 아니고요.
출근하면 매일 봅니다.
새로 지원하는 직원이 여유 있게, 세심하게 거들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성 씨를 잘 아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생각하고, 마음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축하할 일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아무튼간에 그동안 보성이 챙기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건데.”
“아닙니다, 아버님. 아버님이 때마다 나서서 살펴 주셔서 제가 수월했습니다.
보성 씨 지원하면서 많이 깨달으면서 배웠고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니까 감사하네요.”
“그럼요. 언제 보성 씨 집에 오시면 그때 꼭 얼굴 뵙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계속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럽시다. 들어가시고요. 고생하십시오.”
마지막은 이보성 씨.
충분히 의논할 만할 때, 이보성 씨가 그러고 싶을 때를 살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좀처럼 틈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해가 지는 오후, 계단 앞에서 이보성 씨와 마주쳤다.
“보성 씨, 여기서 뭐 해요?”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그래요.”
“쌤.”
“네?”
“아니, 그러니까…. 아닙니다.”
“보성 씨, 전에 제가 했던 말 기억하죠?”
“네? 뭐요? 뭔데요? 나는…, 모르겠는데요?”
“새해부터 제가 아니라 박현준 선생님이 보성 씨 일 도울 거라는 이야기 말이에요.”
“아, 네.”
“그래도 되죠? 괜찮죠? 어때요? 생각해 봤어요?”
“어…, 나는 괜찮습니다. 네, 네.”
“그래요? 그래도 바로 괜찮다니까 아쉽네요.”
“아니, 뭐라고요? 아쉽다고요? 아쉽다, 이 말입니까? 이거 안 되겠네, 이거.”
“안 되긴요, 뭘. 보성 씨가 괜찮다면서요. 그럼 괜찮죠, 뭐. 뭐가 아쉬워요.”
“으이구. 못 살아, 정말!”
“보성 씨, 아무튼 새해가 되어도 우리는 계속 만날 거잖아요?”
“네, 네.”
“여긴 보성 씨 집이고, 저는 또 출근할 거니까 우리는 계속 만나잖아요.”
“그렇죠.”
“그럼 반갑게 인사하고, 또 서로 도울 일은 도와요.
지금처럼 보성 씨 드럼학원 가고, 마라톤 나가고 하는 데까지 같이 가기는 어렵겠지만요.”
“네, 네. 확실합니다!”
“그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는 보성 씨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도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요?”
“네. 그래도 보성 씨한테 미안하고 아쉬운 일도 많아요.
외출하자고 할 때, 바쁘다고 기다려 달라고만 해서 미안해요.
우리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그렇죠? 하나하나 같이 못 해서 미안해요.”
“….”
“박현준 선생님이 도우면 아마 더 좋을 거예요. 외출도 자주 하고, 보성 씨 하고 싶었던 일도 많이 하세요.
드럼학원, 마라톤동호회도 열심히 나가고요. 아버지 어머니도 자주 찾아뵙고요.”
“아버지? 가야지. 갑니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고마웠어요.”
“쌤!”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진호, 정진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했지.
사회사업가에게 사랑의 실제는 사회사업 근본에 있다고 했지.
늘 그렇게 생각해 왔고, 그래서 한 번도 이보성 씨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았지.
그래도 오늘은, 우리 앞에 놓인 그 ‘사랑’을 말해 주어야지.
내가 당신을 사랑했듯, 당신도 나를 사랑했을 거라고.
우리 함께한 시간, 서로 많이 성장하고 자랐을 거라고.
응원해요, 고마워요.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 13절 발췌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4~7절, 13절 발췌)
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정진호
보성 씨가 정진호 선생님에게 지원하는 첫 사람이고, 헤어지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네요. 그동안 수고했고 잘 지원했습니다. 보성 씨가 언제쯤 후임자 박현준 선생님을 정진호 선생님처럼 찾고 의지할까 궁금해지네요.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신아름
애틋합니다. 이런 감정도 부러울 때가, 하하! 사랑을 경계해야 하나 사랑 없이는 이룰 수 없지요. 헤아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분 보며 많이 배우고 성찰했습니다. 월평
이보성, 가족 22-14, 한약 ③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이보성, 가족 22-17, 본가 ① 집에 올 수 있습니까?
이보성, 가족 22-19, 본가 ③ 부모님께 손 흔들고
이보성, 가족 22-20, 본가 ④ 여름휴가 전에 보성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