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前夜.
내일이 추석이다. 아내 혼자서 제수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도 나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얘기 해봤자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엉뚱한 잔소리만 할지도 모르니 아예 혼자서 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뭘 요청할지 몰라 밖에 나가지 않고 TV를 보고 있다가 찌짐등을 대강 마무리 하는 걸 보고 아내에게 '뒷산 걷고 올래요 ?' 하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혼자서 우산을 들고 간단한 차림으로 나선다. 비가 제법 뿌린다. 뒷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서 달마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현충원 옆길로 해서 가는데 달마산 정상 동작대옆 정자를 보니 노인들이 쫙 앉아 바둑을 두기도 하는데 내 속으로 저 노인들이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저렇게 함께 모여 있구나 하면서 어딘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달마사 뒤 언덕에 서서 서쪽으로 63빌딩을 쳐다보기도 하고 가운데로 안개속 한강을 바라보기도 하고 동쪽으로는 아득하게 높다란 롯데타워도 보인다. 비마저 추적추적 뿌려서 그런지 가슴이 허허롭고 뭔가 허전한것 같기도 하고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달마사 대웅전을 지나서 봉안당 망자들의 유골들이 들어있는 도자기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착잡한 마음이 더해진다. 오늘따라 달마사 경내가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다.
어제는 책상앞에 앉아있다 우연히 고향 마산친구생각이 나서 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추석을 맞이하여 나이는 들어가고 가슴속에 어쩐지 헛헛한 기분이 들어 불현듯 고향친구 생각이 낫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동생도 사정이 있어 추석에 못 온다고 하고 조카도 외국출장을 갔다고 하고 삼촌가족들도 별도 계획이 있는것 같고 제사 지내고 나서 양평 외삼촌을 찾아볼까 했는데 손녀딸이 고3이라고 아내가 시험 끝나고 방문하는 게 좋다고 해서 이것도 연기해 버렸다. 이러다 외삼촌 부고가 날아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아들과 달랑 둘이서 조상님들을 모시는 좀은 쓸쓸한 추석이 되겠다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무조건 동생에게 올라오라고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하다.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여동생이 제사에 보태라고 돈을 좀 부쳤는데 마음이라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달마사에서 터벅터벅 빗속을 걸어서 집에 도착, 제사 지낼 찌짐 몇개와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겠다.
2019.9.12 (목)
첫댓글 추석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