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05월 산오름산악회 정기산행 계획 – 경남 하동 성제봉<형제봉>(1,115m)
위 치 :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성제봉<형제봉>(1,115m)
하동군 악양면의 형제봉(성제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은 봉우리다. 멀리 천왕봉에서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능선을 따라 이어져 온 지리의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성제봉~신선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긴다. 지리산의 산세는 섬진강 밑을 지나
다시 광양의 백운산으로 이어진다. 성제봉은 세석에서 시작되는 남부능선의 종착 봉우리로 불리지만 대게
남부능선 등반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이는 세석~삼신봉~성불재 구간에서 대부분 불일폭포, 쌍계사 코스로 직행하고 비교적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성불재~성제봉 코스를 포기하고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의 남부능선은 분명 세석~삼신봉~성불재~성제봉~신선봉~고소산성에
이르는 30Km의 장쾌한 능선이지만 대개 세석~삼신봉~쌍계사간 20Km 구간만 산행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쌍계사, 불일폭포 등의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불재~성제봉~신선봉~고소산성구간의 빼어난 산세 역시 불일폭포,쌍계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해발 1,115m의 성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지명이다. 성제는 형제의 경상도 사투리다. 남부능선의
끝자락이면서도 정작 남부능선 종주산행에서 제외되곤 하는 성제봉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산행대상지여서 최근 주말 산꾼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녁의 풍성함과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는 섬진강의 비경 그리고 섬진강 건너
자리의 지맥이 그대로 이어져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제봉이기 때문이다. 삼신봉에서
성불재,재원재를 지나 시루봉 못미쳐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성제봉이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시루봉을 지나 조식선생이 넘었다는 화남재를 거쳐 청학동과 묵계에 이를수 있다. 성불재에서 성제봉까지도 대략 2~3시간이면 닿는다. 성제봉의 등산로는 대부분 악양면 등촌리에서 시작되는데 하산은 신선봉, 고소성을
따라 19번 국도로 향하는 코스와 성불재를 거쳐 쌍계사로 향하는 코스가 있다. 주말 산꾼들은 주로 악양면 등촌리를 시발점으로 해 성재봉에 올랐다가 고소성을 따라 하산하기도 하며 쌍계사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 산행이라기보다 독립된 성제봉으로서의 산행을 만끽할수 있다. 성제봉을 산행하면서 음미해 볼 수 있는 것은 해발300m에 위치해
있는 고소성과 토지의 평사리, 그리고 중국의 악양형과 지세가 유사하다는 악양의 절경을 들 수 있다. 또한 매년 철쭉이 만개할 시기에 "성제봉 철쭉제"가 개최되어 산악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난 66년 사적 제 151호로 지정된 고소성은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향하는
국도 19번을 따라 차편으로 20여분 거리로 지리산의 여맥이
성제봉에서 흘러 섬진강으로 떨어지기 직전 해발 300m에 위치해있다.
먼 옛날 삼국시대의 아픈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고소산성은 정확한 축조시기 등에 관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나 천혜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는 만큼 1,000여년전 삼국시대 당시 이 요충지를 중심으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해 볼수 있다. 그러나 이 설은 당시 나당연합군과 주력부대가 금강을 침공할
때 소정방이 군을 지휘했던 점과 악양일대의 지명이 중국의 그것과 흡사해 산성이름에 소정방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빙성이 덜하다는
주장이 있다. 오히려 신라가 백제와 왜와의 협력을 차단 하려는 목적으로 그 전에 산성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튼 고소성은 신라인에 의해 백제를 견제 또는 침공할 목적으로 축조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 고소성의 축조 유래는 蘇씨 성에 얽힌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蘇장군의 부친과 모친 경주 金씨는 후손이 없어 걱정을 하던중 어느날 金씨 꿈에 신령이 나타나 진주부근으로 이사를
하면 후손을 볼 것이라고해 그대로 했더니 아들을 얻었다 한다. 그후 蘇장군이 성장, 外城을 쌓으라는 어머니 金씨의 명에 따라 산성을 축조했는데 소장군의 성씨를 따 고소성이라 부른다는 전설이다. 성제봉 기슭의 고소성에 얽힌 역사의 애환과 설화 못지않게 성제봉 주변에서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비옥한 대지인
평사리 들녁을 주무대로 한 소설 토지의 배경이 서려있음을 음미해 볼 수 있어 찾는 이들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있다.
눈앞에 가야 할 성제봉 능선이 보이고...
최참판댁을 당겨본다
한옥체험관의 지리재
김평산과 함안댁의 집...
김훈장댁...
김훈장은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보수주의자로
물질적 욕심이 없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평사리 대소사를 관장하는 서희의 글선생이었다.
박경리 문학관...
박경리선생 동상...
최참판댁..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학운동, 개항과 일본의 세력강화, 갑오개혁등이
토지 전체의 구체적인 이야기로 옮겨진다.
동학장군 김개주와 윤씨부인에 얽힌 비밀이 차차 풀려 나가고,
신분문제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귀녀와 평산 등이 최치수를 죽이게 되고,
전염병의 발생과 대흉년, 조준구의 계약등으로 결국 최참판댁은 몰락하게 된다.
이후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는
길상과 조준구의 세력에 맞섰던 마을사람들과 함께 간도로 이주한다.
간도로 간 서희는 공노인의 도움으로 용정에서 큰 상인으로 성장하나,
함께 온 농민들은 외지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희와 길상은 혼인을 하고, 일본의 밀정이 된 김두수와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의 대립 등이 펼쳐진다.
진주에 자리잡은 서희는 공노인 등으로 하여금
평사리의 집과 땅을 조준구로부터 다시 되찾고..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가 별당 연못가를 거닐때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위대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중문채..
별당...
안채...
뒷채...
사랑채...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25년에 걸쳐 완성된 대하소설로서
4만매의 원고지에 600만 자로 이룩된 우리 문학 최대의 작품이다.
그것은 갑오동학 농민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백 년간 유지되어 온 봉건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한말의 혼돈에서 시작하여
일제의 식민지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을 관통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경남 하동의 평사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발원한 사건들이
지리산, 진주, 통영, 서울, 간도, 만주, 일본, 중국 등지로
활동무대를 확대하면서 줄기와 가지를 뻗히고 있는 거목이다.
이러한 외적인 양상은 그 규모만을 가지고도 경탄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크기는 작품속에 마련된 정신적 세계의 넓이와 깊이,
그 풍요함에 비하면 족히 거론할 만한 것이 못된다.
<토지>보다 더 광활산 시공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고
실제로 더 큰 규모의 작품이 여러나라에 있지만
그것들이 펼쳐 보여주는 정신세계가 <토지>처럼
우리들 삶의 양식이 되는 풍부한 자양과 삶의 지표를 온축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한 <토지>는 규모의 면에서 대작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이 스스로 위대한 존재로 일구어낸
조선 근대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화폭에 담은 민족의 서사시이며,
그 자체가 사상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풍요하며 장엄하고 위대한 작품이다.
바로 이곳이 소설 <토지>의 근간이며 뿌리인 곳이다
상평마을의 유래
평사는 변한시대에도 악양의 대외 창구였고, 마을 형성의 깃점이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섬진강을 통한 교통의 발달이 포구로서 역할이었다면
산라때나 가야시대에 성립되고 번성된 역촌은 육로의 교통을 활발하게 만들어
외래문화의 수용이나 교역에 있어 중요한 목이었던 만큼
변한시대의 이 땅에 낙노국이 유지되는 활력소였다고 여겨진다.
본래 진주목 화개현의 지역으로서
악양 소상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과 같다하여 평사라 하였는데,
숙종 28년(1702년)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개면의 둔촌과 악양면의 신암, 삽암, 평사역촌을 병합하여
평사리라해서 악양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상평, 외둔을 합하여 평사리라하며
문학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인 소설 토지의 고향 주 무대이며
매년 10월이면 평사리 토지 문학제가 열리는 곳이다.
평사 위쪽 마을이다.
1.산 행 지 :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2.산 행 일 : 2017년 05월 21일 (셋째주 일요일), 05:00분 따뚜주차장 집결 & 인원점검후 출발
3.산행코스 : 노전마을→청학사→수리봉→신선대→신성봉→봉화대→통천문→최참판댁갈림길→최참판댁→펑사리주차장
(산행루트는 현지사정 및 기상변화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습니다)
4.산행난이도: 중급이하
5.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 (약12km)- 후미 기준
6.참가대상 : 회원/비회원
모두 신청가능
7.회 비 : 50,000원 및 하산후 저녁식사 제공
8.준 비 물 : 점심, 방풍의, 보온자켓, 행동식, 식수 및 개인구급약등 산행에 필요한 준비물
9.산행리더 : 산악회장 (카우보이) - 010-5361-5048
:
등반대장 (포 맨)
- 010-4198-3996
: 총
무(프리티우먼) - 010-8878-1468
10.산행신청은 아래 글을 필독하신 후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본 원주 산오름산악회는 비영리 산악회로서 산행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이 없으므로, 개인별
안전산행에 만전을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항상
산악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안전산행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주 산오름산악회장 올림
어제밤 급체로 지금까지
(2시) 상태가 좋지않어
산행참가가 무리일것
같습니다
갑자기 목전에 취소하여
죄송하고 모두 안산즐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