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내면을 간직한,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거친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모순적 캐릭터로 80년대 동남아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 유덕화. 1982년 [채군곡1982]로 데뷔를 했으니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변함없이 젊은 오빠이며 곽부성 장학우 여명과 함께 홍콩 연예계를 대표하는 사대천왕 중 한 사람이다.
지난 12월말, 그의 신작 [묵공]의 첫 한국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검정색 고등학교 교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과장이 아니다,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여전히 멋있었고 늙지 않았으며 해맑았다. 그를 이렇게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통해 자신의 실제 인생과는 다른 수많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배역을 연기하는 몇 달 동안, 그는 실재에서도 극중 인물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극중 인물로 몰입해 들어가려면 이미 늦는다. 유덕화는, 살아있는 청춘이다. 그는 청춘의 대표적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극중에서 오랫동안 누려왔었다.
기자시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유덕화의 한국 내 열혈 팬들이 전자피켓을 들고 찾아와 그가 무대인사를 하는 동안 객석에서 조용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 여성 팬들은 다른 팬클럽들과는 달리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묵공]의 주인공들인 안성기 최시원 등이 무대 인사를 마치고 객석에 착석하는 동안 유덕화만 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그의 팬들도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스타와 함께 움직이는 팬들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 다시 나타난 유덕화는 먼저 같이 공연한 안성기에 대해 극도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성기 선생은 자기 연기에 대한 만족도나 기준이 매우 높다. 손동작을 비롯한 미세한 동작을 보면 상당한 노력과 내공을 알 수 있다. 영화를 같이 찍는 동안 왜 안성기 선생이 한국의 국민배우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유덕화의 80년대가 처음부터 빛났던 것은 아니다. [칠복성][최가손우] 등의 작품들이 80년대 전반기에 있었지만 오늘의 유덕화를 만들어 낸 것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년)다. 그 이후 홍콩의 중국반환으로 불안해진 홍콩 내 공기를 절묘하게 영화적으로 형상화 한 홍콩 누아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상처 받은 내면을 지닌 유덕화의 이미지와 너무나 흡사해서 [정전자](1989년) [지존무상](1989년)을 거쳐 [천장지구](1990년)와 [아비정전](1990년)에서 정점에 달했다. 90년대 중반 [열화전차][용등사해]를 거쳐 2천년대에 들어서서도 유덕화는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2002년)와 한중일 합작 영화 [묵공](2006년)의 혁리 역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유덕화는 지난 25년동안 배우와 가수로 크게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그러나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중국어권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의 금마장상 시상식에서 유덕화는 [무간도3]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었다. 그때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앞으로 진짜 연기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 성공했고 헐리우드에서는 마틴 스코세즈 감독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무간도]에서 유덕화는 경찰 내에 잠입한 조직의 스파이로 냉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유덕화는 겸손하다. 지난 25년동안 그가 한결같이 정상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성실함이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다. 어느 약속 장소든 그는 늦는 법이 없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몇 십분은 예사로 늦는 것에 비하면 그의 정확한 시간 지키기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유덕화의 최근작 [묵공]은 범아시아 프로젝트다. 기원전 5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자백가 중 묵가의 일원인 혁기가, 조나라 10만 군대에 함락당할 위험에 처해 있는 4천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양성을 구해내는 과정을, 일본의 만화가 모리 히데키가 만화 [묵공]으로 만들었다. 원작만화를 한국과 일본의 제작자가 홍콩의 장지량 감독을 영입해서 한, 중, 일 3국의 스텝들과 함께 영화로 제작한 것이 [묵공]이다.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묵공]에서 유덕화는 홀홀단신으로 10만 대군에 포위된 성 안으로 들어가 오직 지략만으로 대군을 물리치는 혁기 역을 맡았다. 위기에 처해서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제자백가 중 묵가의 일원인 혁기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며 조나라 10만 대군에 포위되어 풍전등화 위기에 처해 있는 양성의 주민들에게 신망을 받는다. 한때 청춘의 심볼이었던 유덕화는 도포를 휘날리며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묵공]은 대규모 성곽 셋트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스케일이라든가 성을 사이에 두고 양측 진영에서 펼쳐지는 공방전에 많은 물량이 동원되었다. 조나라 장수 항엄중(안성기 분)과 양성을 지키려는 묵가의 혁기(유덕화 분)의 머리싸움이 가장 긴박하게 펼쳐져야 한다.
그러나 원작만화를 압축한 대본은 조금 산만하다. 이야기의 얼개는 살아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힘 있게 연결되어 있지는 못하다. 나름대로 이야기는 있지만, 그 연결 이음새가 깔끔하지 못하다. 또 기술적 오류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시제의 불일치라든가 연결동작의 불일치 같은 편집에 있어서의 기본적 요소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아직 이 거대한 스케일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내공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을 지켜야 하는 혁리에게는 내부의 적이 있다. 양성을 다스리는 왕과 그 심복들은 양성이 위기에 처하자 일시적으로 병권을 혁기에게 양도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점차 혁기를 따르게 되자 역모 혐의를 씌워 혁기를 제거하려고 한다. 즉 혁기는 외부의 적 조나라 군대의 항엄중과 싸우고 내부의 적 왕 일파들과 싸워야 한다. 물론 혈혈단신 그는 힘이 없다. 가진 것은 오직 지략 뿐이다. 여기에 혁기를 사랑하는 양성 기병대 책임자 일열(판빙빙 분)의 멜로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혁기를 사랑하는 기병대 책임자 일열, 혁기를 따르는 궁수부대 장군 자단(오기륭 분) 등이 혁기 휘하의 장수들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왕에게 충성하는 우장군과 간신들이 있다. 혁기는 오히려 적인 조나라 장군 항엄중보다는 백성들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한 양성 내부의 적들에게 더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내부의 적과는 선명하게 힘의 대립이 서 있지만 항엄중과의 지략 싸움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드러나 있다. 이것이 거대한 스케일의 이 영화를 왜소하게 만드는 이유다.
[묵공]의 제작발표회 때도 유덕화는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스텝들과 함께 의자를 정리하고 테이블보를 펼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스타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준다.
1961년생인 유덕화는 올해 47세. 지금까지 1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대만과 홍콩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가수로서도 30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는, 아직도 여전히 스크린 속에서는 청춘의 심볼이다. 사극의 주인공이 된 그에게서 펄펄 피가 끓는 청춘의 싱싱한 냄새가 나는 것은, 항상 깨어 있으려는 그의 무서운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남자 배우가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유덕화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