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반성2
2022.03.02.개학날.수요일.
새로 부임한 교감 선생님께서 개학날 출근하지 않는 나에게 수석교사께서 우리반 강사로 들어오신다는소식과 함께 나의 건강과 등교 날짜를 확인하셨다. 자가 격리가 해제되는 내일부터 학교 나갈 수 있다고 전하니 일년간 함께 할 반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등으로 올라온다.
이번에 처음으로 영어 수업을 맡게 되었다. 3학년을 맡으신 교과 선생님께서 과학만 3시간 들어오시기로 결정되어 할 수 없이 3학년 선생님 모두 처음으로 영어 수업을 떠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영어 수업을 甘受감수해야 한다. 영어수업 속에 교육을 가미하도록 분투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과제다.
영어 수업과 국어 수업 간에 언어의 종류가 다를 뿐 근우너적인 방법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크라센의 읽기혁명』이다. 크라센은 억지로 ‘공부’하지 않아도 언어 실력이 저절로 느는 방법으로 ‘자발적 읽기’를 강조한다. 초등학생에게 그림책 읽기 이상의 소재가 없을 듯 싶다. 그래서 3학년 담임을 맡은 올해에는 국어와 영어를 소재로 그림책 읽기와 발표, 반복 읽기를 통해 자발적 읽기에 도전하고자 한다. 자연스레 교육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 과정의 반성과 평가가 올해 교단일기의 주요 소재가 될 것이다.
개학 첫날 자리를 비웠기에 내일 줌(Zoom)dmf 이용한 원격수업을 안내하고자 카톡을 이용하여 단톡방을 만들어서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몇몇 아빠는 곧바로 빠져나간다. 자녀 학교생활은 고스란히 엄마 손길에 남는다는 뜻이다. 아빠가 빠진 자녀의 학교 생활은 온전하지 않다. 자녀 양육이 부부의 공동책임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치우쳐 학교는 엄마의 이기적인 마음에 갇혀 근원적인 개선을 기획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교사마저 공적인 마음이 아니라 사사로이 학생을 대한다면 엄마의 사적인 마음과 맞물려 잘못을 자초할 수 있다. 아빠의 공적인 경영관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학교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결국 학교 개혁은 학부모의 학교관이 나아지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학부모의 자녀의 학교생활과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학교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
작년까지 통제했던 코로나19 상황이 올해 1학기에 대유행을 예고한다.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으로 1교시에 줌을 이용하여 개인 발표와 과제를 제시하는 수업을 계획했다. 원격 수업을 지속하기에는 재미를 보장하기 힘들더라도 적절한 과제를 통하여 학생들의 생활을 통제 가능하다. 과제 확인은 부모님 카톡을 통한 사진 확인으로도 가능한데, 바깥 일에 바쁜 학부모님께서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학부모가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느 일을 부담지우면, 즉 학부모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지속시키기 어렵다. 교사는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상대로 만족의 성과를 쌓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학교 나오는 날 과제 확인하는 것이 적절하다.
학급운영을 이익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제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인간이 학생과 교사의 욕망을 놓칠 수 있다. 욕망을 저버리면 소외가 깃들기 때문이다. 학생의 소외는 곧바로 학부모의 싸늘한 무관심으로 돨아와 학급을 침몰시킨다. 그래서 적절한 소통을 통해 학부모를 이해와 설득으로 풀어가야 한다. 제도의 편안보다 상호 이익의 이해와 설득을 통해 좀 더 교육의 내밀한 세계로 다가갈 수 있다. 학생의 품위와 지식을 세계를 확장, 심화시킬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이익은 없을 것이다. 바로 교육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다. 결국 이익의 관점에서 수업을 이해할 때 교육의 관점이 우선하게 된다. 조건화와 행동통제, 교조화와 사회 등 다양한 기제가 있지만 교육만큼 지속적인 상호 이익은 없기에 교사가 펼칠 수 있는 최선의 수업은 교육적인 수업이요, 교육적인 수업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이익을 낳는 수업이다. 내일부터 매시간 교육적인 수업을 위한 칼날 위에 서야한다. 이를 언어로 일깨우기 위해서는 교육하는 교사 뿐만 아니라 교육학도로서의 사명도 함께 지녀야 한다. 나의 교단일기는 교육학도로서 교사의 나날을 지키는 준엄한 평가서요, 방향키라고 볼 수 있다. 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아무리 땀흘려도 헛수고로 전락한다. 그래서 교단일기를 쓴다.
교단 반성1
2022.03.01.삼일절.화요일.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학년의 출발점에 서있다. 바둑에 있어서 시작을 布石포석이라고 하여 바둑 시합에서 처음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학급 운영 역시 첫 날 학생들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개학은 내일인데,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 不祥事불상사! 우리집 둘째 아이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우리 가족 모두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중합효소연쇄반응)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나와 처, 첫째가 모두 음성으로 나왔지만, 나는 3차 접종을 하지 않아 일주일 간 자가 격리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감 선생님과 동학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여 개학날 우리 반 3학년 3반 교실에 강사 선생님께서 하루를 지내시지만, 擔任담임으로서는 개학날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학교 제도로서 신현초등학교 3학년 3반 담임 교사만큼이나 나에게 중요한 역할은 무본스쿨의 커리큘럼(Curriculum)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1시간 수업을 위해서 내가 쏟는 시간과 열정은 학교 교사의 집중에 못지 않다. 학교 교사는 제도로 이미 주어진 절차와 기능이 거의 고정되었기에 주어진대로 따르면 아무런 탈이 없다. 하지만 그대로 주어진 것에 만족한다면 무슨 발전과 개선을 기대하겠는가? 무본스쿨이라는 나의 새로운 학교 운동은 기존 학교 제도의 견고한 틀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으로 새바람을 불어넣는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학교 운동을 위해서 평상시에 무본스쿨에 들이는 시간은 무한정에 가깝다. 자나 깨나, 학교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출퇴근 자전거를 탈 때나 퇴근길 장 볼 때도 늘 무본스쿨을 企劃기획한다.
무본스쿨의 주중 활동으로 HQT(Hint Quotient Test 우리말 속뜻인지 능력 시험)라는 우리말 속에 있는 한자어를 뜻풀이하는 시험을 준비하고 치른다. 시험을 보고 안보고는 학생의 자발적인 선택에 맡기지만, 시험지와 정답지 작성은 내가 손수 한다. 시험지와 문제지 작성에 대략 2시간 걸린다. 대략 화요일 작성하여 수요일 배포하고 이후 수업이 있는 일요일까지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채점 및 확인을 부탁하면 이를 손수 평가하여 되돌려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생은 없다. 간담회에 친절하게 얘기를 해야하는데, 매번 잊어버린다.
HQT는 무본스쿨의 핵심 과정이다. 어휘력이 뭐가 대단하냐고 一蹴일축할 수 있지만, 한글전용주의로 인해 어휘력의 중요성을 민감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사회와 학교의 풍조가 우려할 상황이다. 최근에 ‘文解力문해력’으로 살아나고 있지만, 문해력의 핵심이 어휘력에 있다는 것을 콕 집어서 강조하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엉뚱한 길로 미끄러지고 있어 유행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어수업이 갈피를 못잡는 사이에 유행사조는 결국 어휘력을 초점으로 삼지 않는 독서, 토론 수업으로 미끄러진다.
사람의 생각의 수준은 발표와 작문, 토론 능력을 통해서 깊이 평가할 수 있다. 발표와 질문, 작문과 토론 능력과 어휘력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대강은 비슷하게 가리라 짐작하지만,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시한다. 발표와 작문, 질문과 토론 능력이 중요하다면 어휘력의 문제는 학교의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근데 왜 학교와 사회는 이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는가? 바로 학교 시험에서 발표와 작문,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지 않고 암기에 의한 수준 낮은 시험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 저급하니 당장의 암기가 사전활용을 통한 어휘력 개선보다는 간편하고 유리하니 학교와 사회, 가정이 모두 어휘력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떠올리지 못한다. 내가 이 문제를 자각한 이상, 초등학교이든, 무본스쿨 교사이든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환경으로 우리나라의 학교 제도가 답답하기에 나로서는 새로운 학교 운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진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어휘력 개선이 중요하다면 효과적인 수업으로 풀어내야 한다. 기획과 실천, 평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교육의 수레바퀴가 돌아간다. 나에게 교육은 기적과도 비슷하게 들어온다. 몸부림을 치자. 1919년 삼일절의 함성소리에 담긴 실제적인 행동이 즉각 이루어져야한다. “대한독립만세!”, “대한교육만세!”, “대한학교만세!” 학교가 만세를 이룰려면 학교 안에 교육이 活潑潑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