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 시인 김영승
나는 대변을 보는 게 아니라
밀어내기 하는 것 같다.
만루 때의 훠볼처럼
밀어내는 것 같다.
죽기는 싫어서 억지로 밥을 먹고
먹으면 먹자마자
조금 있으면 곧 대변이 나온다.
안 먹으면 안 나온다.
입학도 졸업도 결혼도 출산도
히히 밀어내는 것 같다.
먹고 배설해 버리는 것 같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ㅎㅎㅎㅎㅎ~
반성 /10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 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ㅎㅎㅎㅎㅎ~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뭐라구요~?
반성/ 99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처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이런 저런 생각에 ㅎㅎㅎ~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무너진 언덕길을 닦았다.
삽질을 하는데 회충만한 지렁이가
삽날에 허리가 잘려 버둥거린다.
지렁이는 재수없이 당했다.
사람들은 다만 길을 닦았을 뿐이고
지렁이는 두 동강이 났을 뿐이다.
모두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땅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지렁이.
모두들.국토분단이 재미있다.
두 동강이 나고도 각자 살아가는 지렁이
붙을 생각 아예 없는 지렁이.
자웅동체, 자급자족 섹스 걱정 전혀 없는
지렁이 재미보는 지렁이. ㅎㅎㅎ~
- 김영승 시집중에서 /펌『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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