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독서 모임 질문들
책 제목: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1.가장 감동을 느낀 대목은?
2.내가 느낀 매력적인 문장은?
3.내가 사랑했던 대상 은?
4.내가 느낀 최초의 커다란 슬픔은?
이번은 위 4가지 만 각자의 소견을 준비합니다.
좀더 깊이 생각 한 회원이 있으면
정서적 카타르시스
존엄사에 대한 입장
여러 문화의 충돌에 대한 해결까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독서를 이기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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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7일 금요일
책 제목: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1.가장 감동을 느낀 대목은?
18쪽. ‘한 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모모가 식료품 가게에서 계란을 훔쳤을 때 그 여주인이 그를 혼내지 않고 계란을 하나 더 주면서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때 그 여주인은 모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너 참 귀엽구나!’라고 말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사랑이었다. 도벽은 사랑의 결핍증이다. 그런데 그것을 치료하는 방법은 따뜻하고 진실된 친절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황홀한 마약과 같다. 아니, 묘약과 같다.
살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무엇인가 갈망하며 허덕일 때 그에게 다가온 따뜻한 친절은 ‘한 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보았다!’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인간은 그 희망 경험을 통해서 치료받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로자 아줌마의 악몽과 은신처…
로자 아줌마는 연인의 배신으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거기서 악몽 같은 고통을 깊이 겪었다. 그것은 그녀의 기억에 크나큰 상처를 입혔고 그 상처는 가끔 덧난다. 그리고 그녀는 기억의 상처가 덧날 때마다 다시 고통을 겪는다. 그것이 그녀의 악몽이다. 우리가 말하는 트라우마가 그것이다.
그런 고통에서 해방되는 자리가 로자 아줌마의 유대인 은신처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에 고통을 겪을 때 그처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자리를 간절히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은신처가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그토록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자 아줌마는 은신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은신처에서 나와 엄마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들을 돌본다.
로자 아줌마와 로모에게 서로 다른 의미의 암사자
모모가 암사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계기는 로자 아줌마가 암사자의 습성에 대하여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모모는 자기 엄마가 암사자처럼 그렇게 자기에게 가까이 있으며 언제나 자기를 돌보아 줄 것을 믿었다. 그에게 암사자의 환상은 애정과 안정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런데 로자 아줌마에게 암사자는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두려움이다. 83쪽에서 그녀는 카츠 선생님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말한다. 그녀는 모모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모모에게 집착하는 것은 단지 돈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그곳에 맡긴 여성들에게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인 것처럼 어느 새 모모가 로자 아줌마에게 그런 희망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나는 자녀들에게 신앙에 대하여, 양심에 대하여, 그리고 인생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것은 설교나 성경 동화, 그리고 독서모임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나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것을 보고 자녀를 잃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실감을 느낀다. 암사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두 사람에게 그것이 다른 의미였던 것과 같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이 들려준 그 암사자 이야기가 모모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만일 알았다면 의사에게 그 아이의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지 봐 달라고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2.내가 느낀 매력적인 문장은?
27쪽.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하밀 할아버지가 어린 아랍인 모모에게 암송하도록 지도한 신앙의 언어다. 이것은 시편 27편에 나오는 구절과 유사하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편 73:25
63쪽.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저자는 이것이 자기 경험에서 나온 말이며 단지 철학자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잠언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다. 네 입의 말에 네가 얽혔다(잠언 6:2)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은다 아메데 씨의 장광설을 로자 아줌마가 편지에 담아주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모모는 아메데 씨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말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말은 언제나 마음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말을 통해서 마음의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그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샘은 언제나 깊은 곳에서 물을 흘려 보내준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마중물이 깊은 샘물을 솟아나게 한다.
3.내가 사랑했던 대상은?
4.내가 느낀 최초의 커다란 슬픔은?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 2~3학년이었을까. 우리집에 약간 먼 동네에서 온 아이가 하룻밤을 자고 간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집을 나왔는지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날 밤에 우리는 같이 잤는데 그 아이는 이불에 오줌을 싸고 아침에 사라졌다. 그때 나는 엄마를 잃고 홀로 된다는 것이 얼마나 처량한 것인지를 그 아이를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그것은 큰 슬픔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첫 아이를 낳게 되었다. 사산이었다. 병원에 아내와 함께 갔는데 아이 없이 돌아왔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한 끝에 나는 이전 교회에 찾아갔다. 그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는가 하여 그 교회에 갔는데 그만 화려하게 바뀐 교회를 보고 조용히 나왔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일로 벌주시는 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 교회는 더 잘 되고 번창하고 있었다.
이번은 위 4가지 만 각자의 소견을 준비합니다.
좀더 깊이 생각 한 회원이 있으면
정서적 카타르시스
존엄사에 대한 입장
여러 문화의 충돌에 대한 해결까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독서를 이기는 것은 없다"
p.s.: 질문 4번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를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느낀 것을 말하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