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쟁하시는 하나님(호4:1-3)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세아와 고멜과의 관계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진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집니다.
먼저 음란한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이 4장에 나옵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4:1-2)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이 한 마디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서는 진실을 찾아볼 수 없고, 저주와 사위, 즉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강포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악을 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없고’ 금하신 것들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행치 않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행하는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심각하게 병들어 치유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프리처스 설교성경]
하나님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십니다. '논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브'은 다른 곳에서 '다툼'(창 13:7), '송사'(출 23:2)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 주민들의 악을 재판정의 검사가 열거하듯이 조목조목 지적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귀가 따갑게 말씀하십니다. 버리지 말 것을 버리지 말고 버릴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을 버리면 결국에 남는 것은 악이며 음란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망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도 능력이 없어서도 인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쫓고 사랑을 좇아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음행과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잘못된 악으로 빠집니다. 한순간의 즐거움이 취미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행복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논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수치를 돌려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배은 망덕하게 갚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그 입이 정죄와 심판을 선고 받게 되었습니다.”[QA시스템 성경연구]
1.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본문1절의 첫 문장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첫 단어가 쉐마( שָׁמַע) 이렇게 말합니다. 들으라라는 뜻입니다. 지금 죄의 타성에 젖어서 무감각해진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금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주의를 일깨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신앙의 핵심인 쉐마( שָׁמַע)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분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습니다. 들어야 하고 듣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과 논쟁한다고 하십니다.
신명기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이 많이 나옵니다.
1절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복”까지 주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청종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신앙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양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영적인 건강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유지됩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신앙은 반드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잠언28장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49편1절-4절에 “[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시편 저자는 세상 만민들에게 ‘들으라,’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고(롬 10:17), 그래야 온전한 자가 됩니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은 천하 만민을 대상으로 선포하십니다. 모든 자연계와 기상계까지 지배하시며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미 율법이 주어졌고, 그들은 말씀 중심으로 생활한다고 하여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시며 "들을지어다"라고 간절하고 위엄있게 선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듣는 자는 멸망에서 건짐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멸망의 길에 빠집니다.
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길을 바로 비추어 주고 우리의 길을 바로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읽고 사모하며 오늘도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 앞에 우리가 나온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변화가 옵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 그 말씀이 우리의 길을 바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들은 하루 동안에 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노 속에 말씀이 있고, 진노 속에 경고가 있고, 진노 속에 예언이 있고, 진노 속에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시련을 겪는다고 해서, 혹은 내가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내 죄가 다 사해진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죄 문제가 아니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릴 때,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심령을 열고, 귀를 열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소리로 들으면, 별 유익한 것을 얻을 수 없지만,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좋은 것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범죄함으로 실망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이기적인 탐심죄를 범하였고, 사치하며 방탕한 죄를 범했고, 정의를 짓밟고 부정 부패한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을 실망케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든지 경청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습니다. 남이 말하는데 들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을 수가 없습니다.
“형제들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사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잘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직 사람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살기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나의 영혼이 살아나는 말씀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2.있게 할 것과 없게 할 것(1-2)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본장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부도덕한 행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땅과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있을 것이 없고 없을 것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보다는 딴 길로 향하여 계속 범죄하자 책망과 경고를 줌으로써 어떻게든 돌이키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당시 이스라엘에게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도 없었던 것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범죄 원인을 규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실(faithfulness)-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인애(hesed-love of God)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God)도 잃어버렸습니다.
진실 편에 서야 할 우리가 피해를 입을까 염려되어 거짓의 편에 섰었고 불의한 강자에 붙어서 부스러기 권세를 누리려는 불한당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과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과 다를 바 없이 한 일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하여 이 땅에 진실이 회복되고, 인애가 넘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민족이 되기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있어야 할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며 우리들의 마음과 가정과 우리 교회에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진실과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비어 있으면 그 자리에는 필연적으로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포악이 메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잠복해 있다가 상황과 조건만 맞아 떨어지면 언제든지 불쑥불쑥 튀어나와 야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본문2절에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1절의 기본적인 죄악에서 좀 더 구체적인 죄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속임입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갑니다.
또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습니다. 즉 유대사회 전체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여기 나오는 여섯가지 악덕은 근원적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도덕성과 통제 불능의 타락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롬1:28-32).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바른 관계가 두절 되면 사람과 사이에 이루어져야 될 도덕적 기준도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로마서 1장32절에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 사회는 타인에게 욕설과 악담의 저주가 있으며, 거짓말과 사기의 속임이 있으며, 살인이 있으며, 도둑질이 있으며, 외도와 음란한 행위의 간음이 있습니다.
진실과 인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와 용서가 없기에 포악해져서 보복에 보복, 원수가 원수를 낳는 ‘피가 피를 뒤이음’만 있을 뿐입니다.
피는 상징적으로“생명의 거처”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피 흘리는 행위에 또 다른 피 흘림이 뒤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이는 폭력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사회의 비극적인 상황을 반영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들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많은 슬픔과 고난이 임하였습니다.
우리는 없어야 할 저주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포악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오직 있어야 할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3.이 땅이 슬퍼함(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628).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죄악에 빠지게 하고 불행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생태계의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뜻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땅, 그 거주지에서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과 사랑과 지식을 잃었을 때,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도 역시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하여 그 땅은 슬퍼합니다. 그리하여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하늘을 나는 모든 새와 바다에 있는 모든 고기도 결국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제외한 동물이나 식물이 죄를 범하였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죄는 사람이 범하고, 그리하여 피조물이 멸망에 이르게 될 때, 또 그 결과가 사람에 대한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환경에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만 우리의 환경도 우리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고, 그 결과로 인하여 우리가 다시 고통을 당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난무하며 잔인하기 그지없는 사회를 하나님께서 계속 묵과하실 리가 없습니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하시게 되면, 사람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사람이 저질렀건만,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그 결과 황무하게 됩니다(창 3:17). 땅이 황무하게 되면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모두 쇠잔해지고, 바다의 고기조차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재앙들을 목격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렇게 망했고,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자, 그 땅이 황무지가 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래에 인류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온 땅이 저주를 받아 황무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을 살펴보면, 하늘, 땅, 강, 바다 모두가 그렇게 쇠잔해집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인데 어떻게 21세기 지구의 모습을 이와 같이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아름답게, 보시기에 선하게 지으셨습니다.
세상을 잘 관리해서 그런 모습으로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문 3절은 북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다 쇠약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가뭄과 재난으로 인하여 땅이 황무 하고 땅의 모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말라 버릴 것이며, 초목이 시들고 메말라 들 짐승과 공중의 새들까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욜1:10).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가문과 전염병 등)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는 사람의 타락이 자연계의 파멸과 창조물의 멸망을 가져오는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사람에게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하신(창1:26)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 하자, 이제 그들이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창조물들까지 고통과 파멸을 당하게 함으로써 사람의 죄악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즉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까지도 가뭄으로 인하여 말라버린 물처럼 쇠약하여질 것입니다(사50:2).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전염병과 기근과 가뭄를 통하여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창조물들을 멸절시킴으로써 징벌하실 것입니다(신28:23, 24,51).
특별히 땅은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데 이들의 죄가 아무 소산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란 나만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망하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으면 나도 복을 받고 환경도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복이 임했습니다. 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로마서8장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바울은 사람의 죄와 함께 시작된 피조물에게 내린 저주가 사람과 함께 지금까지 탄식하였고 고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로 인하여 잉태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 것처럼 피조물도 못지않은 고통을 겪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말합니다
사실 피조물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약육강식의 원리에 지배되어 왔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숲속에는 무서운 생존의 싸움, 즉 살벌한 약육강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은 모두 자기보다 약한 것을 학대하고 자기보다 강한 것으로부터 학대받는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가령 족제비는 닭만 보면 해칩니다. 사자들은 치타의 새끼를 찾아내어 죽여 버립니다. 또 같은 사자라도 자기 그룹이 낳지 않은 새끼들을 수사자가 물어 죽입니다. 이런 일을 다 열거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피조세계의 질서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깨뜨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파괴하고 있습니다. 또 힘 있는 나라들은 피조물들을 자원으로 삼아 독점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세계의 자원을 민족끼리 골고루 배분하면 모두 다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대국들이 피조물들을 독점하고, 그것들을 무기로 삼는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불의한 탐심 때문에 피조물들 중에 멸종되는 것들이 생기면서 자연계는 파괴되고 있습니다. 지금 대기권의 오존층이 파괴되어 가는 것도 사실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손대고 가는 곳마다 피조물들은 파괴되고 오염되어 갑니다. 산, 강, 바다까지 모두 사람들로 인해 오염되어 가고, 죽어 가고 있으며, 심지어 대기권 밖에는 폐기된 인공위성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탄식과 고통은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사람을 결코 그냥 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멸망시키기보다는 회개시켜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악한 백성들과 논쟁하시고 선한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여 하나님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1)
2.있게 할 것과 없게 할 것(1-2)
3.이 땅이 슬퍼함(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