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강여울
바퀴 달린 시방바구니를 끌고 시장을 가는데 몇 십 미터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달려서 건너, 말아? 고민하다 냅다 달린다.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건너기 시작한 사람은 벌써 중앙선을 넘어 건너 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서 앞서 여유 있게 걷는 사람들 틈에 섞여 건널목을 무사히 건넜다. 다음 신호등까지의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시장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힐끔 힐끔 보내는 눈길에 나는 한껏 고개를 쳐들고 걸었다. 그러나 시장 본 물건을 담으려고 보니 바구니가 달아나고 없다. 그제야 사람들이 보낸 눈길의 의미가 깨달아 졌다. 바퀴와 손잡이가 달린 뼈대만 덩그마니 있는, 장바구니가 없는 구루마, 생선 수레 안이라도 숨고 싶었다. 마침 생선 파는 아저씨가 종이박스 하나를 바구니 대신 묶어 주었다. 어디서 장바구니가 떨어졌나, 왜 나는 그것도 몰랐을까. 갈래갈래 흩어지는 생각들로 아저씨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왔다. 좀처럼 잡히는 짐작이 없어 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까의 건널목 앞에 섰다. 빨간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길 건너를 살폈다. 저 만치, 내가 막 뛰기 시작했던 곳에 장바구니가 보였다. 신호등이 색을 바꾸어 초록 불을 켰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건널목을 건넜다. 바구니를 대신해 얹힌 박스와 그 안에 든 물건들이 쏟길까봐 신경 써 가며 걷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어깨로 치며 나보다 한 발 앞서 길을 건넜다. 조금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몃슬몃 웃음이 나왔다. 구루마에서 종이박스를 내리고 장바구니를 주워 다는 내 모습을 보고 지나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바구니가 떨어지는 줄도 몰랐나 보네, 요즘 사람들은 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장바구니를 끌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사려고 했으나 미처 사지 못한 물건들이 생각났다. 무리하게 건널목을 빨리 건너려 했던 자신이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또 신호등이 바뀐 모양이다. 손을 잡고 걷던 여학생 둘이 뛰자! 하더니 손을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그들 역시 주위를 살피며 보통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 그들보다 한 발 먼저 길을 건넜다. 신호등이 또 색을 바꾸었다. 그러나 지팡이를 의지한 한 아저씨가 더듬더듬 아직 흰 선을 몇 남겨두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앞줄의 차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며 답답해하는데 뒤에 기다리는 차들은 클랙슨을 눌러 댔다. 아저씨의 지팡이가 인도 보도블록에 닿자마자 차들이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미끄러졌다. 불에 데인 듯 달리는 차들을 보며 지팡이를 짚은 아저씨는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숨을 고fms다. 바퀴를 단 차들은 더 빨리 달리지 못해 안달인 것 같다. 운전대를 잡은 내 모습은 어떤가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었다.
팔월의 땡볕은 달걀을 익힐 듯 뜨거웠다. 아이는 에어컨 앞에서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하더니 결국은 발을 동동 구르며 늦었는데 하루 쉬면 안 돼? 했다. 학원까지 태워다 줄게 하고 차 문을 여니 사우나 실은 저리 가라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냉기가 퍼지기도 전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런 날 길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가로수의 잎들이 새들새들 늘어진 길,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 건널목 앞에서 잠시 차를 멈추었다. 좌우 차를 확인하고 왼쪽 인도를 보니 파라솔을 쓴 모자(母子)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건널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고 엑셀을 밟았다. 순간,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여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느닷없이 건널목으로 들어섰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당황해서 발에 힘이 덜 실렸던지 차가 약간 미끌리면서 차 앞 모서리에 약간 부딪혀 모자가 넘어졌다.
아이는 타박상 하나 없었지만 여인은 진단 11주의 골절상을 입었다. 드물게도 쉰하나에 늦둥이를 낳은 탓에 여인은 조금만 건드려도 뼈가 상처를 입는 골다공증 환자였던 것이다. 그 일로 나는 형편에 버거운 벌금과 벌점을 받았다. 그 날 이후 차로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긴장을 한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는 더 긴장을 한다. 사고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급할 때일수록 나 자신에게 스스로 주의를 환기 시킨다. 조심, 또 조심하자고.
날씨가 덥다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다 바퀴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춘다. 내장을 훑어 올리는 고무 냄새가 튀어서 후각이 얼굴에 주름살을 일게 했다. 물밀듯 미끄러지는 차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차선과 줄줄이 꽁무니를 이어 차들이 멈추는 마주보는 두 차선을 가로막는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쪽 건널목에 횡단보도를 물고,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서 있는 승용차 한 대와 한 남자. 적요한 찰나를 지나 차에 탄 남자가 차창으로 손을 내밀고 횡단보도의 남자도 손을 올려 서로를 향해 집게손가락을 폈다 접고 만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서두른 자신을 반성하듯 창백해진 얼굴을 돌린다.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걸음을 멈추었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이어갔다. 서 있던 사람도 길을 건너고, 차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가슴을 쓰다듬었다 했다. 후유, 깊은 숨을 내쉬며 나도 가던 길을 이었다.
건널목, 신호등이 있든 없든 건널목은 단순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길만을 건너는 곳이 아니다. 건널목은 차에게도 사람에게도 안전과 위험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야누스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건널목에서도 사고는 난다. 사고란 늘 긴장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예고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길을 건너는 사람도,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도 똑같이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이든 차든 신호를 정확하게 잘 지킬 때, 건널목이 안전목이 된다. 나는 초록과 빨강 사이 노란색을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문이라는 생각 한다. 또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는 사람이든 차든 반드시 멈추어 양쪽을 잘 살핀 다음 건널 때 건널목이 사고를 막는 안전목의 역할을 한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서두르는 행위가 이승을 건너 저승으로 가려는 몸짓이 될지 모른다. 건널목이란 삶과 죽음의 얇은 막일 수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려 하다 죽음으로 건너가 버리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 사고는 참지 못하거나 기다리지 못하는, 그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 눈 깜박할 사이가 엄청난 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지킬 것을 지키면 건널목이란 맘 놓고 건너도 좋은 안전한 길이지만, 부주의 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내가 누구를 죽게 할 수 있는 무서운 길이다.
건널목, 어디 길에만 있는 것이겠는가. 삶도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하나의 길이 아닌가.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이 땅에 복잡하게 얽힌 길들이 다 저마다의 집으로 이어져 있는 것과 같다. 집으로 가는 길, 또한 늘 한 길은 아니다. 수많은 차들이 동시에 달릴 수 있는 12차선 도로가 있는가 하면 진입하면 안 되는 일방통행 도로를 만나 돌아가는 길도 있고, 마주 오는 차를 비키기 위해서는 후진을 해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좁을 길도 있다. 또 직선도로가 있는가 하면 굽이굽이 곡선인 도로도 있고, 지하 차도가 있는가 하면 고가차도도 있다. 똑같은 기능과 모양을 가진 차들이 다니는 길도 이와 같은데 느리지만 섬세하기 그지 않는 사람의 길이란 얼마나 더 복잡한 미로가 많겠는가. 차도에 수많은 건널목이 있듯이 저마다의 사람이 걷는 길에는 더 많은 건널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 많은 건널목 앞에서 때로는 서두르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넘어지거나 부딪쳐 다칠 수도 있다. 또 부주의로 엄청난 사고나 재난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건널목이 안전목이 되기 위해서는 천천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신호등을 잘 보고, 신호등이 없으면 건너가도 안전한지 잘 살핀 다음 건너야 하리라. 내가 지나온 수많은 건널목, 그때마다 달랐던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또 하나의 건널목 앞,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진다. 엄마의 손을 잡은 여자 아이가 한 손을 번쩍 들고 자랑스럽게 왜? 하는 눈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멈추어 선 차 안의 시선들이 모두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첫댓글 건널목 앞에서 때로는 서두르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넘어지거나 부딪쳐 다칠 수도 있다. 또 부주의로 엄청난 사고나 재난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몇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우리들의 조급함 조금만 여유를가지면 되는데.... 건널목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시다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