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조영남 만나 인생 끝냈기에 배우로 부활할 수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 찍은 ‘코메리칸의 낮과 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그 영화를 찍게 된 과정도 참 재미있어요. 원래 제작사에서는 윤정희씨를 염두에 두고 섭외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그 무렵에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북 미수사건’이 터졌어요. 윤정희씨가 미국에 나오기 어려워졌죠. 그래서 급히 저를 찾아온 거예요.
미국 이민의 비애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별로 좋아하는 출연작은 아니에요. 완성도가 없는 작품이었어요. 대본이고 촬영이고 전부 다. 비극을 만들자니 여주인공을 죽여야 하잖아요.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것으로 설정은 했는데, 병원에 알아보니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맞는 피가 없어서 죽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죠. 근데 사실 그것도 미국 현실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억지로 꿰어 맞추느라 감독하고 나하고 무척 고생했던 생각이 나네요.”
-‘바람난 가족’ 얘기를 해볼까요. 오랜만에 출연해 여우조연상도 타고, 아주 행복한 경험이셨을 것 같은데요.
“조연상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생각이 좀 달라요. 임상수 감독이 술 먹고 나서 그러더라고요, 조연상은 김인문 씨가 타야 옳았다고. 정직한 얘기예요. 나도 맞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왜 윤여정이 탔느냐, 내가 기가 세기 때문에 김인문씨가 밀린 거다’ 내가 술 먹으면서 다 얘기했어요.”
대담한 성적담론과 사회에 대한 질타와 도발로 유명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시어머니부터 며느리까지 두루 바람이 난 어느 가족의 집단 불륜기다. 그러나 어찌 보면 ‘바람난 가족’은 바람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페미니즘, 일부일처제, 불륜과 간통의 질곡에 기대어, 임상수는 자신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성이 아닌 죽음과 죄의식, 특히 ‘몸’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모두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마다 손을 베이고 몸을 다치고 피를 토하고 마사지를 하고 요가를 하며 춤을 추고 등산을 한다. 감독은 이야기한다. 인간은 몸을 위해 살고, 몸이 마음을 배신하고, 몸이 늙으면 죽어버린다고.
‘자유부인’ 이래 불륜을 다룬 영화들은 그 시대의 여성관이나 가족관 등 여러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해왔지만, ‘바람난 가족’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누가 보아도 급진적이다. 가족의 해체는 전적으로 호정과 시어머니 두 안주인의 손에 달려 있고 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을 막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윤여정이 맡은 인물은 죽어가는 남편을 두고도 ‘내 몸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급진적인 시어머니로, 18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윤여정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의식이 넘치는 특유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윤여정의 바람난 시어머니상은 죽어가는 김인문, 즉 나쁜 피를 쏟아내는 남성들의 과거와 대비되는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가장 도발적인 새로운 ‘할머니’상의 등장이기도 하다.
“그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사실은 ‘조용한 가족’ 출연제의가 먼저 들어왔죠. 내가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김지운 감독이 미용실까지 쫓아왔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대본을 읽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읽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끝내 마다했죠. 그때 참 많이 미안했어요,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피할 정도로. 그렇게 영화랑은 멀어지나 생각했죠.
한참이 지나서 이번에는 임상수 감독이 ‘바람난 가족’을 들고 왔어요. ‘내가 첫 번째요?’ 하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래요. 원래는 정혜선씨를 생각했다더군요. 내가 솔직한 것에는 약하잖아요. 감독하고 제작사인 명필름 사람들이 열심히 설득하는 걸 보고 ‘김지운 감독한테처럼 무식한 짓은 안 하리라’ 결심을 하고 대본을 읽었죠. ‘조용한 가족’보다는 쉬웠지만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죠. ‘고딩’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내가 임상수 감독에게 물었어요. ‘거기서 애는 왜 느닷없이 죽어요? 참 기분 나쁘대요’ 했더니만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다 느닷없이 죽잖아요?’ 이 친구 바보는 아니구나 싶었죠. 다시 ‘좋소, 그러면 섹스에는 왜 이렇게 매달려요?’ 그랬더니 ‘제가 잘 못하니까 그렇죠’ 그러더라고. (웃음)
처음에는 역할이나 비중이 큰 것도 아니고 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었죠. 촬영하면서 몇 번이고 하기를 잘했다고 되뇌었어요. 그리고 ‘내가 아직도 정말 구시대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역할비중이나 따졌다니’ 그런 생각도 했어요.
지금은 ‘바람난 가족’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기회를 놓쳤으면 내가 알고 있던 1970년대 영화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거예요. 영화가 좋아서 미친 듯이 작업을 하는 똘똘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겠죠. 그 사람들을 보고 ‘얘네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계속)
빨랫줄과 총알
-TV와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자면 뭘까요.
“솔직히 얼마나 박수를 받았느냐보다는 얼마나 고생했는가에 따라서 기억에 남는 강도가 달라져요. 내 경우에는 ‘관촌수필’이 참 기억에 남아요. 워낙 이문구씨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팔자에 없는 사투리를 하느라 고생 많이 했거든요. 영어 못하는 사람이 한글로 적어서 외우듯 그렇게 연습했어요. ‘사랑이 뭐길래’처럼 박수를 많이 받은 작품은 그만큼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어요. 누릴 만큼 누렸으니까. 하지만 ‘관촌수필’은 본 사람도 얼마 없거든요. 그러니 그 작품을 봤다는 사람만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는 거예요.”
-흔히들 윤여정씨를 ‘김수현표 드라마를 가장 잘 소화해내는 배우’라고 합니다. 사실 김수현씨 드라마가 연기자들 사이에서는 힘들기로 악명 높잖아요. ‘완전한 사랑’에 출연했던 김희애씨도 소감을 물었더니 ‘대사가 너무 많아 고생했다’고만 하더군요.
“너무 많아요. 다른 것 아무것도 생각할 여지 없이 오로지 대본하고 연기만 생각하며 가야 돼요. 조금만 덜 썼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한번은 (김)혜자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김수현씨 드라마 잘 쓰고 참 재미있는데, 배우를 너무 가둬놓기 때문에 그 분량에 치여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조금만 여유를 주면….’ 그 말을 김수현씨에게 했더니 ‘나는 그런 꼴 제일 보기 싫어해. 배우가 노는 모습은 절대 못 봐’ 하고 딱 자르시더군요.”
-김수현씨 대본을 보면 지문도 아주 세세하게 쓰여있죠.
“그러니까 연출가들도 많이 힘들죠. 은퇴한 드라마 PD 한 분이 예전에 김수현씨랑 작업을 하다가 이런 말 한 적이 있었어요. ‘아니, 감독이 무슨 노예야? 내가 노예는 아니잖아?’”
-김수현씨 드라마는 빨랫줄 같으면서도 총알 같은 면이 있어요.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내적인 상처가 가족관계에 투사되면서 굉장히 가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교훈을 남기려고 하고요. 또 김수현씨 특유의 오만함, 당당함이 배어나죠. 그런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가 윤여정씨인 것 같아요.
“솔직히 김수현씨 드라마는 형벌이에요.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돼요. 내가 제일 괴로웠던 게 ‘목욕탕집 남자들’ 하면서 시 외울 때였어요. 시인이라는 시인은 다 죽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자기네 마음대로 문법 같은 건 무시하고 떠오르는 시상에 맞춰서 쓴 건데, 나는 그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하면서 대사 중간중간에 다 해야 되잖아요.
반찬을 놓아가며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 반찬을 놓는 시간이랑 대사가 끝나는 시간이 딱 맞아야 돼요. 김수현씨 드라마를 하면서 배우들이 낭패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냥 앉아서 대사를 외우기 때문이에요. 일단 외우기는 했지만 일어서서 모션을 같이 취하면 달라지거든요.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로 함께 안 돼요. 저는 일어나서 동작을 하며 같이 외워요. 다림질이면 다림질, 빨래 널기면 빨래 널기…. 다른 배우들은 농담 삼아 ‘상당히 열심히 하는데 생색은 안 나는구먼’ 그러죠.
다음날 김수현씨 드라마 녹화가 있으면 나는 잠을 못 자요. 대본을 1페이지부터 달달 외워서 그 흐름을 꿰뚫고 있는지 되뇌는 거예요. 한군데라도 막힌 곳이 있으면 또 봐야지 그냥은 못 자요. 밤새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 김수현씨가 저에게 ‘네 얼굴이 곱게 나오겠냐, 가뜩이나 피부도 좋지 않은데’ 그러죠. 그럴 수밖에요. 그렇게 안 하면 내가 여유를 가질 수가 없거든요.
대신 좋은 건 이제는 그게 습관이 돼서 다른 작가 드라마를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사실 다른 건 훨씬 여유롭거든요. 그렇다고 누구 껀 열심히 하고 누구 껀 설렁설렁하자니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채찍이죠. 솔직히 김수현씨 작품은 내가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채찍이었던 것 같아요.”
“여정씨도 대사 외워?”
-그럼 윤여정씨는 스스로를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많이 노력하는 편이죠. 예전에는 그걸 창피하다고 생각했어요. 타고난 게 없으니 노력하는 것 아니냐 하고요. 그런데 캐서린 햅번이 쓴 ‘미인’이라는 자서전을 읽으면서 생각을 바꿨어요. 그 여자가 스펜서 트레이시한테 반한 게 그 사람은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래요. 반면 자기는 늘 노력하고 연습해야 하는 배우고. 그렇지만 여러 가지 스타일의 배우가 필요하지, 꼭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배우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다른 배우들이나 동료들은 제가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나한테 와서는 ‘여정씨도 대사 외워? 그냥 한번 쓱 보고는 줄줄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물어요. 그건 절대 아닌데.
(계속)
다른 게 있다면, 나는 남들하고 똑같은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드라마에서는 고정된 유형의 연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전화통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갑자기 끊으면 꼭 수화기를 한번 쳐다보는 식이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안 하잖아요. ‘끊었구나’ 생각하고 그냥 돌아서버리고 말죠. 그런 고정화된 유형이 젊은 연기자들에게도 전달이 돼서 또 그대로 해요.
그래서 나는 그런 부분이 있으면 속으로 한참 다짐을 하죠. ‘절대로 보지 말아야지, 그냥 탁 끊어야지’ 하고. 그런데 촬영현장에서 마음먹은 대로 하면 PD가 그러는 거에요. ‘전화기를 한번 봐주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럴 땐 굉장히 속상해요. 나는 애써서 다르게 하려고 노력한 건데, 보는 사람은 그냥 성의 없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보는 거니까요. 대신 가끔 그런 걸 알아보는 젊은 감독이 있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죠, 그 디테일을 알아준다는 게. 내가 그렇게 예민해요.
동료들이 자주 그 예민함을 지적하곤 하거든요. 좀 과장하자면 핍박을 받았다고 할까. (웃음) ‘윤여정이는 너무 예민해서 살도 안 찐다더라’ 등등. 처음에는 내가 인격적으로 부족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고 굉장히 미안해했어요. 거기에다 이혼하고 나서 열등의식이 덧붙여졌죠. 내가 잘못 살았나 보다, 이제부터 모든 걸 고쳐야겠다, 성격도 모난 데가 많다, 그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다구요.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마음을 바꿨어요. 그냥 이렇게 살다가 늙어 죽는 게 낫겠다고. 예민하지 않으면 어떻게 배우를 하겠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예’자가 들어간 일을 하려고 하냐고요. 그게 싫으면 다른 일을 하면 돼요. 아마 공장에서 일하는 숙련공도 예민해야 할걸요. 그래서 이제 안 고치기로 했어요. 이젠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싫다’고 대놓고 얘기하죠.”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게, 젊은 시절의 윤여정씨 얼굴은 귀엽고 순진한 면이 드러나거든요. 꿈꾸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명민함 같은 게 담겨 있었는데, 많은 풍상을 거치면서 지금은 약간 메마른 얼굴로 변했어요.
“사실이에요. 많이 드라이해졌어요. 나도 그걸 혼자서 서글퍼하곤 해요.”
“그것이 내 업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윤여정씨는 지금까지 많은 동료 연기자들과 여성적인 연대를 이루며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다면 무슨 힘으로 이제까지 살아오셨어요?
“애들을 키워야 된다, 애들을 공부시켜야 된다는 다급함이었죠. 그게 나한테 큰 원동력이었어요.”
-아이들 둘이 있으면 항상 한 애는 엄마를 닮고 한 애는 아빠를 닮잖아요. 자식에게서 헤어진 남편의 모습을 본다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큰애는 나하고 똑같아요, 작은애는 아버지하고 똑같고. 내 업이려니 생각하죠. 큰아이는 공부를 굉장히 잘 했어요. 나도 여유로웠고. 다른 학부형들이 애들 성적 걱정을 하면 ‘신경쓰지 마세요. 그거 하루 다그친다고 되는 거 아니니까 그냥 내버려두세요’ 그랬거든요. 그런데 작은아이는 공부를 진짜 안 하더라고. 그러니 이제는 내가 급해져서 다른 집에 물어보게 되는 거야, ‘걔는 몇 점 받았수?’ 하면서. (웃음) 그러고 나니까 남의 애 흉을 못 보겠더라고요.
이제는 그걸 즐기기로 했어요. 내가 싫어했고 미워했고 그래서 결국은 끝낼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아이가 다 갖고 있는데, 내 애니까 그게 모두 사랑스럽게 보이잖아요. 그냥 ‘이게 내가 받는 죄구나, 그 사람을 자식 속에서 또 이렇게 보는 게 내 업이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그 애를 고치려고 애쓰지도 않아요. 그저 그 자체를 즐기는 거죠.”
심 영 섭
● 1966년 서울 출생
●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 고려대 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 제3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등단
● 고려대·상명대 영화학 강사
● 저서 : ‘영화 내 영혼의 순례’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작별인사를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람들은 보통 두 말 없이 꽉 잡지만, 그녀는 다르다. 살짝 잡는다. 강단 있는 목소리와 달리 이 여자의 손은 유달리 작고 부드러웠다. 문득 그녀가 단단한 껍질 뒤에 부드러운 속살을 숨긴 석류 같은 여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칼칼한 쇳소리 사이에 섞인 그녀의 손은, 시어머니의 깐깐함이 아니라 소녀의 체취가 담긴 현명함과 상냥함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 영화잡지를 검색해보니 ‘바람난 가족’으로 컴백하는 그녀에 대한 특집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천상천하 이 땅에 윤여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