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개미가 인간보다 뛰어난 건축가인 이유는?
흰개미가 주는 교훈
The Lesson from the
Isop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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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일개미 – 전투 병정개미 – 병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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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문화재 중에서 목조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조건물은 친근감이 있고 보기에는 좋지만 수명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목조건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연재해나 화마(火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저는 흰개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 전 9시 뉴스 시간에 문화재청에서 흰개미로부터 목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흰개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문화재청에서 흰개미와 싸우기 위한 구체적인 전술로 삽살개를 6개월 동안 훈련시켜 흰개미가 있는 곳을 냄새로 찾아내어
박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12시에 EBS 방송에서는 곤충을 연구하고 있는 모 교수님이 마침 흰개미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흰개미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며 흰개미를 칭송하였습니다.
흰개미는 곤충강-흰개미목에
속하는 곤충을 총칭하여 부르는 이름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2,050 여 종이 있으며 열대 아프리카에만 5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생활양식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색깔은 유백색이며 서식장소는 지하, 죽은
나무, 자른 그루터기나 재목 속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한랭지를 제외한 세계 각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흰개미는 세계 제일의 건축가인 동시에
파괴의 명수이기도 합니다. 냄새와 촉각 이외에는 의존할 수단이 없는 흰개미는 집을 지면보다 높이 쌓아올려 거대한 탑을 만듭니다. 이 안에는
땅굴과 작은 방들이 복잡하게 짜여 있는데, 그 건평이 통틀어 몇 ha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흰개미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마운트 아서(Mount Arthur)와 다윈(Darwin) 사이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높이 3.5~6m, 지름 3m에 이르는 바위처럼 생긴 첨탑이 솟아 있는 ‘개미의 사원’이 몇 천개나 있어 관광객들의 눈을
호강시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흰개미가 세워놓은 개미탑 중 큰 것은 높이 9m, 지름 30m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흰개미가 이 정도 규모의 큰 탑을 세우려면 대략 8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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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의 걸작인 흰개미집. ‘집’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탑’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데 높이가 9m에 달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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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흰개미가 만든 탑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 탑을 쌓을 때 흰개미는 특별한 리더 없이 입으로 흙을 물어와서 순서대로 쌓으며
탑을 완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침과 저녁에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탑 내부의 온도가 2도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건물은 우리가 생활하기 위해 전기나 가스를 이용해 냉난방을 해야 합니다. 이에 비해 흰개미탑은 냉난방도 필요 없고 습도도
자동적으로 조절된다고 하니 인간이 만든 건물보다 두 수 위라고 생각해 봅니다.
현재 인간이 만든 최고 높이의 빌딩은 2009년에 아랍에밀레이트 두바이 신도심 지역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인데 163층에 828.9m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키를 2m로 계산해도 415배 정도의 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흰개미탑은 흰개미의 키를 1cm로 잡더라도 9m이면 900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이 만든 빌딩보다 흰개미집이
자연재해에 더 강한 과학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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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신도심 지역에 위치한 부르즈 할리파는 삼성이 건축하였으며 2016년 4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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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건축가들은 매년 2.2%씩 증가하는 지구 인구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보다 집중된 도시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0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 건축가인 유진 추이(Eugene Tsui)는 「World Architecture
Review」 지에 흰개미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높이 2마일, 지름 1마일 크기에 백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Ultima Tower
Plan」을 소개하여 건축가들, 환경보호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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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집을 본딴 2마일 높이의 Ultima Tower. 바람, 수해, 지진에도 문제없는 이 거대한 타워는
건축 프로젝트이기 이전에 작은 에코시스템으로 흰개미집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흰개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무 도움도 없이 각자 서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탑을 쌓아 올리는 흰개미를 보면서 ‘횡적
리더십(lateral leadership)’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적 리더십(conventional
leadership)’과 대비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는 너무 리더십에 심취해 있다보니 모든
상황이나 단어를 리더십에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용하는 표현이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단어에서 핵심단어는 ‘리더십’입니다. ‘섬기는’은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꾸미고 있습니다. 섬기는 리더의 예로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보며 섬기는 리더십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자, 잘 봐. 내가
보여주는 이것이 servant leadership이야!”라고 하셨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삶을 통해 보여주신 모습은
‘servantship(섬김의 道)’ 그 자체를 보여주신 것이지요. 자, 이제 다시 흰개미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흰개미들이 인간과
대화가 통한다고 가정했을 때, 흰개미에게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이것이 횡적 리더십이니?”라고 묻는다면 흰개미는 어떤 대답을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들의 대답은 “우린 그런 건 몰라요. 우리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을 할 뿐이에요.”가 아닐까요?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리더는 많은 수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어디 곳에 가나 ‘리더십-리더십-리더십’만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지금 우리 사회는 훌륭한 리더들이 풍성한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을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는 동료(fellow)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부류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를 따라가면서 방향을 바로 잡도록 밀어주는
조력자(follower)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후
해군사관학교 교수로서의 길을 선택하여 28년 동안 한 길을 걸어 온 후 전역하였습니다. 저는 후배들을 가르치고 특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자신이 리더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장교로서, 단지 인생행로를 먼저 걸어 온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에게 보다 더 올바른 인격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정확한 의미는 ‘follower’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leader나 fellow의 역할도 누군가 해야겠지만, 저는
follower로서의 역할이 제가 가장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눈에 보이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리더의 역할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인간은 계급 구조를 참 좋아합니다. 군대에서는 이병에서부터 4성
장군까지, 회사에서는 말단 사원에서부터 회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까지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보다 더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여러 분 주위와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면면과 그들의
마음도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달픈 삶에 지쳐 어깨가 축 쳐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여러분의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저는 하루 사이에 참으로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9시 뉴스 시간에는 흰개미가 ‘박멸의 대상’이었는데, 불과 3시간 뒤에 만난 흰개미는 인간이 배워야 할 ‘교훈의 대상’이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만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삽살개를 풀어 흰개미를 열심히 찾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나무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흰개미들에게 미리 달려가서 알려주고 싶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인간들이 싫어하는 이곳에 있지
말고 빨리 도망가. 어서. 그리고 너희들이 제일 자신있게 잘하는 일이 있잖아. 멋있는 탑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앞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들려주면 어떻겠니?”오래 전 창원시 진해구 복지관 입구에 저의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더디 가도 함께 가는 사회를!”(‘더디’는 ‘느리게’의 사투리입니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60419888&nidx=19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