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는 인간 존엄성의 파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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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항쟁 당시인 6월 10일 부산 충무동 로터리 시위. 변호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문 살인 은폐조작 왠말이냐 군부독재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시위대열 앞에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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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주를 맞은 사제단은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영령들을 기리며 의로운 죽음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민주화의 완성을 다짐하자는 '군부독재는 인간존엄성의 파괴자다'란 〈강론〉의 문건을 제작, 전국의 성당과 사제들에게 발송했다.
〈강론〉은 "광주사태 때 죽은 2천여 명을 제외하더라도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민주주의 제단에 바쳐진 사람이 현재 확인된 수만도 62명에 달하고 있다"고 전제, "의로운 죽음들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안일과 나약함을 반성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생명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다짐하는 미사"라고 의미를 덧붙였다.
〈강론〉은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들고 군부독재의 죄상을 거듭 지적한다.
우리가 아직도 광주를 기억하며 그 진상의 공개와 책임자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를 제5공화국의 역사는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박정희 시대에 비해 두드러지고 있는 점은 부정부패의 규모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과 국민 앞에서 과거를 회개할 줄 모르는 권력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과오였습니다.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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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민주항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6월 28일. 농성이 벌어졌던 부산 카톨릭센터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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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이 6월항쟁의 마무리 과정에서 정작으로 정치인들과 국민에게 하고자 한 말은 〈강론〉의 마지막 부문인 '의로운 죽음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는 내용일 것이다.
우리는 이 의로운 죽음들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자임하는 정치인들은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기 몸에 불을 당긴 젊은 노동자, 학생들의 비통한 절규 앞에서 한층 겸허해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사야 예언자의 때처럼 마구 짓밟던 군화와 피 묻은 군복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입니다.(이사 9.1~2) 얼마 전 박관현 열사의 이장(移葬)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의로운 죽음은 장례마저 마음대로 치루지 못하고 시신이 최루탄에 휩쌓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축소조작사건이 폭로된 후 전출되었던 치안본부 요원들은 대통령의 하계 기자회견이 있은 지난 8월 21일 전원 원상 복귀되었으며, 당시 내무장관이던 정호용씨가 철저한 진상조사를 공언한 바 있는 우종원, 김성수, 신호수씨의 의문의 변사 사건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우리는 조사의 진행경과에 대해 한 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광주 영령들과 더불어 이들의 고혼(孤魂)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는 군부독재의 망령이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죄의 노예로서(요한 3.5) 죄의 은폐를 기도하며 끝내 죄로부터 해방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이들의 영혼이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게 하고, 이들의 죽음을 우리 안에서 부활로 이끌기 위해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고문과 최루탄으로 유지되는, 기만과 위선으로 현혹하는 군정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민간정부를 수립하고 통일에의 문을 활짝 열 때 죽은 이들도 우리와 함께 덩실 어깨춤을 출 것입니다.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메마른 땅에 거름만 뿌린다고 싹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척박한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호세아가 전한대로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심지 않으면 안 됩니다.(호세 10.12) (주석 8)
주석
7> 앞의 책, 288쪽.
8> 앞의 책, 289~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