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에서 백흥암, 중암암.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주말 등산객이 줄을 잇는 유명한 등산로다.
하지만 백흥암은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없는 제한구역이다. 대문에 해당하는 보화루는 일 년 내내 굳게 잠겨 있다. 선원의 수행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비구선원으로서 신도와 일반인의 발길을 막고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하는 문경 봉암사처럼, 백흥암은 스스로 문을 걸고 궁핍한 살림살이를 자처한다.
그렇다 보니 다른 선원보다 울력이 많다. 1988년부터 전기가 공급되기 이전에는 나무를 해다가 불을 땠고, 목욕물도 불을 때서 데워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쌀을 제외한 채소류는 직접 길러서 먹는다. 고추만 해도 300근을 자급자족하며 1,500포기나 되는 김장을 배추도 절 앞, 뒤 채마밭에서 직접 재비해서 쓴다. 다음해 5월까지 먹을 수 있도록 담그는 김장은 겨울김치 11동이, 여름김치 3동이, 동치미, 갓김치, 앞다리김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무위도식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육문 스님의 지론. 장작을 패고, 나물을 뜯으며 소채를 가꾸는 등 울력은 선원에서 노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살림이 빠듯해도 백흥암에선 ‘돈 되는’일을 하지 않는다. 신도들에게는 초하루에만 개방하고 재도 올리지 않는다. 법당에는 인등도 없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등값을 따로 매기지 않고 신도들이 알아서 내도록 한다.
멀리서 누가 찾아오겠다거나 기도하러 온다고 하면 “서울 사람은 서울에서, 부산 사람은 부산에서 재 지내면 되지 않느냐, 처처에 부처님 안 계신 곳이 없으니 기도는 집에서 하면 된다. 굳이 절에 와서 할 필요가 있느냐”며 거절한다. 법문도 잘 하지 않는다. 부처님 말씀이 경전에 다 나와 있고, 조사어록에도 다 있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느냐며 백흥암을 온전한 수행공간으로 만드는데 정성을 쏟는다.
“부처님 복이 무량해서 수행만 잘 하면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요. 명심보감 순명편에도 ‘만사분이정인데 부생공자만’이라고 했어요. 만사가 다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공연히 욕심내서 바쁘게 살 게 있나요.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자는 게 사람 사는 일치에요. 참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말 끊어지는 자리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조사들은 참선을 하려면 많은 말이 필요없다고 승찬 스님도 ‘신십명’에서 ‘말과 생각이 많으면 더욱더 상응하지 못하고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했어요.
“사람마다 마음을 다 갖고 다니지만 진실로 그 마음을 찾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지금 한국불교에 조계종을 비롯해서 스님들이 3만여 명은 될 텐데 그중 참선하는 이는 한 철에 2,000명 좀 넘는 정도예요. 그래도 이들이 불교의 맥을 잇고 정통성을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원이 중요한 겁니다.”
출처 : 서화동 / 선방에서 길을 물었더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