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여름 특선여행
(전남 강진 하이라이트)
전라남도 서남쪽 바닷가에 육지로 오목하게 파고들어온 강진만이 있습니다. 강진 땅은 육지의 갈피로 깊숙이 스며든 바다에 살을 붙이듯 만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월출산을 사이에 두고 영암이 있고, 동쪽 장흥에서부터 흘러온 탐진강은 강진 땅으로 와서 강진만으로 들어갑니다. 이 강진만은 탐진강의 하구이기도 하고, 그밖에 많은 하천이 흘러들기 때문에 아홉 고을의 물길이 흘러든다는 뜻으로 구강포라고도 불립니다.
조선 태종 17년(1417) 이전까지 강진이라는 고을은 없었습니다. 강진은 그 전까지 영암군에 속하던 도강현과 장흥부에 속하던 탐진현을 합친 후, 두 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만든 지명입니다. 그때 도강현 소재지에는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영이 설치되었고 바닷가 마량에는 수군 만호진이 두어졌습니다. 육군과 수군이 주둔했던 당시의 흔적은 오늘날 옛 도강현이 있던 자리에 병영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한국문화유산답사회 · ‘한국답사여행의 길잡이’ 5)
제주도를 탐라(耽羅)라 부르던 시절에 뭍에서 섬으로 떠나는 배가 여기 강진에서 출항한다고 해서 耽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더러 道康, 道武. 陽武라 부르기도 하고, 탐진이라 하다가 지금은 강진으로 지명이 정착되었습니다. 백제시대 이미 국제 항구로 개척되었던 듯하며, 고려시대에는 연안 해운이지만 해운업이 번성하였습니다. 특히 고려청자가 다량 생산되던 시기에는 왕경이 있는 예성강으로 수송해야 하였기에 배가 빈번히 출항하던 그런 곳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서·북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지맥으로 둘러싸여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하고, 남쪽으로는 아늑하고 넓은 바다와 수많은 섬이 있어 생업이 윤택한 고장으로 손꼽힙니다.(신영훈 · ‘신국토기행’ 28)
백운동 별서정원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불립니다. 다산 선생은 월출산을 탐방하면서 백운동에서 며칠을 머물렀습니다. 한마디로 백운동을 베이스캠프 삼았던 것입니다. 백운동의 숲에 감탄했던 다산 선생은 13편의 시를 지었고, 제자였던 초의선사에게 백운동 일대를 그림으로 그린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한 뒤 자신의 친필 시를 함께 실어 ‘백운첩’을 엮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작성된 화첩이 지난 2001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별서정원(別墅庭園)이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해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삶을 보내고자 만들어 놓은 공간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강진 백운동의 별서는 유서 깊은 정원으로 손꼽힙니다. 이곳에 강진의 양반 원주 이씨 이담로(1627-1701)의 공간이 마련된 뒤에는 역대 이름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이담로는 강진읍 금당리에 있는 연당고택에 살았으나 계속되는 과거 응시에 실패하자 중년의 나이에 손자만 데리고 이곳에 들어와 은거하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원래 이곳은 백운암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다가 16세기경에 원주 이씨 청련 이후백(靑蓮 李後白, 1520-1578)에게 임금이 전답으로 하사한 사전(賜田)이었던 것을 이담로가 백마 한 필을 주고 구입했다고 합니다. 5대 동주(洞主)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이 정약용의 제자가 되면서 그 인연이 시작돼 ‘백운첩’이 태어나게 됩니다. 10대 동주인 이효천(李孝天, 1933-2012)에 이르러 백운동별서정원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고, 이승현이 이어받았으나 현재는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고 있습니다. 강진군은 2004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2007년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강진다원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은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으로 그 경치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 놓은 것과 같이 산세가 뛰어나며 예로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 되었던 곳입니다. 10만여 평에 이르는 이곳 다원은 이른 봄부터 어린 싹을 채엽하기 시작하여 1년에 3~4회 채엽을 합니다. 넓은 차밭과 서리 방지용 팬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입니다.
방상(防霜) 팬은 고산지대에 자리한 강진다원의 찻잎들이 높은 일교차 등에 의해 발생하는 차가운 바람과 온도에 냉해를 입지 않도록 지상 6~10m 높이의 따뜻한 공기층을 아래의 차밭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찻잎과 새순을 보호해주는 방상 팬은 그 역할도 중요하지만 초록의 찻잎들과 함께 강진다원의 경치를 아름답게 하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가늘고 기다란 몸통에 비해 바람을 조절하는 프로펠러는 앙증맞은 크기를 하고 있어 사뭇 귀여운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월출산 아래의 이곳 볼모 야산은 1981년 5월에 개간되기 시작했는데, 월출산의 경사면을 활용해 강한 햇빛은 막아주고 맑은 안개를 통해 녹차를 생산하는 곳으로, 녹차 특유의 떫은맛은 적고 녹차 향이 진하기로 유명합니다. 예로부터 좋은 차는 명산에서 생산된다는 말이 있듯이 해방 직전까지 국내 최초의 녹차 제품인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라는 전차(錢茶)를 생산하던 차 산지이기도 한 월출산은 적당한 습도와 주야간 온도 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 차의 떫은맛이 적고 향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강진만 생태공원
탐진강과 강진만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 강진만은 남해안 최대의 생태 서식지로, 1131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천혜의 자연공간입니다. 특히, 20만평에 이르는 갈대숲 내에 3km에 걸쳐 형성된 탐방로 데크 길과 갈대숲 가장자리의 자전거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탁 트인 자연경치를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를 비롯하여 도요새, 노랑부리저어새, 청둥오리, 큰 기러기, 흰빰검둥오리 등 철새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하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소하천 정비사업 등으로 갈대숲이 일부 사라졌음에도 탐진강은 좌우로 펼쳐진 드넓은 갈대군락지와 청정 갯벌을 자랑하며 큰고니 등 철새 집단서식지 등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공간이며, 다산 선생의 유배길, 남해안 제주도행 대표 뱃길 남당포구, 1919년 전남지역 최초 최대 규모의 독립만세 운동이 펼쳐진 남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 2014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강진만생태공원은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군민과 관광객의 쉼터로, 생태자원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강진 초당림(草堂林)
강진군 칠량면 명주마을에 있는 초당림은 960ha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인공조림지입니다. 여의도 3배 면적의 숲에 수십 미터씩 자란 아름드리 고목과 함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고, 고즈넉한 오솔길은 은은한 산들바람을 타고 피톤치드 향기로 가득합니다. 1968년 백제약품 창업자 초당 김기운 회장이 조성한 후 50여 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비밀의 정원’으로 불렸습니다. 처음 숲을 만들 당시에는 경제수림으로 조성되면서 자연훼손을 우려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초당림 ‘비밀의 숲’에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그리고 백합나무 등 500만 그루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곳입니다. 숲과 계곡을 따라 2.5㎞ 정도의 잘 정비된 데크 로드는 산새소리와 물줄기 흐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하는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절경을 이루는 물놀이장은 여름 혹서기에 무료로 개방합니다. 비밀의 숲에서 느끼는 특별한 이색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고려청자박물관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우리나라 중세 미술을 대표하는 고려청자의 생산지입니다. 1963년 사적 제68호로 지정된 고려청자 도요지는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500여 년간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9개 마을에 180여 개소의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으며 약 18만 여 평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400여 기의 엣 가마터 중 200여 기의 가마터가 강진에 현존하고 있을 만큼 청자의 집산지로 강진이 청자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던 점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태토, 연료, 수질, 기후 등 여건이 적합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려청자는 한국문화예술사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 예술품으로, 비색상감무늬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표현되고 있으며 인공을 떠난 천공의 경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청자는 중국에서 5-6세기경부터 생산했으며, 우리나라는 8-9세기 경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런 시기에 강진에서 20km 떨어진 청해진에서 중국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한 장보고 대사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14세기 쇠퇴기까지 고려 500년 동안 대구면 정수사에서 미산까지 6km의 산하에서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보, 보물급 청자 중 80%가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세계 여러 곳에 귀중품으로 보관되어 있는 명품들 대부분이 강진의 작품들입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 계승하기 위해 1997년에 개관하였으며,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으로 고려청자 연구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청자와 가마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 이외에 고려청자를 재현, 판매하는 작업장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눈으로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자를 직접 빚어보고, 조각해보는 등 10여 종의 청자 빚기 체험장과 함께 소속 도예가 선생님들이 직접 작업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상형실 · 조각실 · 성형실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
높이 16m, 밑부분의 둘레가 8.5m인 노거수로 수령은 300년으로 추정됩니다. 300여 년 전 폭풍 때 밑동이 부러져 그 가장자리에서 나온 싹이 자라서 현재와 같이 자랐다고 보고 있는데, 땅에서 87㎝ 높이에서 원줄기는 죽고 여섯의 가지가 갈라져 사방 14m 정도씩 퍼져 있습니다. 이 근처에 고려자기의 도요지가 있었는데, 도공들의 보살핌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위엄 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나무꾼이 가지를 잘랐다가 급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마을 단합의 중심점으로 삼았으며 한때 이러한 풍습이 일시 중단된 적이 있으나 다시 제를 지내고 있습니다.(천연기념물 제35호)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인 푸조나무는 따뜻한 지방의 하천과 마을 부근에 많이 자란다. 곰솔, 팽나무와 함께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에 잘 견디기 때문에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에 적당하다. 팽나무와 비슷해서 곳에 따라서는 개팽나무, 개평나무 또는 검팽나무라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