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호랑이 신돌석을 아시나요?
어떤 일의 조짐을 보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짐작하고 대처하는 이들을 선각자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의 문제라도 혜안을 가지고 대응하는 현인들이 많은 집단은
문제를 해결할 저력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보면서 드는 생각은 개인이나 국가가 자기를 지킬 힘을 잃어버리면
타인이나 타국이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주권이 일제에 의해 유린당하게 됩니다.
일제 40년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언급하며 감정을 앞세우는데는 열을 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자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고 지킬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역사의 뼈아픔이 언제든지 재연될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태정도는 고향 선산 벌초를 형님께서 해주셔서 고향을 못 갔습니다.
가을철 벌초를 위해 영덕에서 영해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신돌석 장군 생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113년 전, 평민출신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경북 북부지역에서 이끌었던 전설적 인물이
바로 신돌석 장군입니다.
영덕 지역에서는 젊은 나이인 31세에(1908년) 친인척의 손에 살해된 인물이기에
신돌석 장군은 민초들의 가슴속에 영웅으로, 신화 속 인물처럼 하루에 몇 천리를 걷는 축지법을 행한,
또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의 괴력을 지닌 장사로,
손가락 정도 굵기의 쇠 젓가락을 종이처럼 휘고 폈다는 등의 영웅담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아득한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신돌석 장군이라 여기며, 숱하게 영해에서
영덕 외곽도로를 다녔지만 한번도 장군의 생가나 기념관을 들려 볼 여유도, 생각도 없었습니다.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 중 한분으로 장군을 생각했었기에
별다르게 살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최근 우연하게 어떤 책을 읽다가 인터넷을 통해 신돌석 장군에 대한
소설이 지난 2018년에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소설 신돌석, 백상태 지음, 나남 출판사”>
반가운 마음에 양구 도서관에 신간 목록 신청을 통해 최근 정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쓴 백상태라는 작가분은 알지 못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가운데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고향지역과 지명이 등장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옛 속담에“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 하죠!”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군대를 강제 해산 시키는 등 일제의 조선 침략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을사늑약의 소식을 고향 영해에서 들었던 신돌석(본명 신태호)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지리적 이점과 활동 기반이었던 경북 북부 내륙지역에서 왜놈들을 쫓아내려는
무장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가 본격적인 무장 항쟁을 준비하며 울진 평해에 있는 월송정에 올라 지었다는
한시만 보더라도 그분의 기개와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각에 오른 나그네 문득 갈 길을 잊어, 낙목이 가로누운 단군의 폐허를
탄식하노라.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
잠시 추풍 속에 앉아 감회에 젖네
[登樓遊子却行路 可歎檀墟落木橫 男子二七成何事 暫倚秋風感慨生]“
1906년 3월 뜻을 같이하는 구국의 청년들 160여명과 영해의 한 주막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며
무장 투쟁 출정식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 신돌석 부대의 정식 명칭을“영릉의진(寧陵義陳)”으로 정합니다.
영릉은 영해의 寧(영) 자에 강릉의 陵(릉) 자를 합친 것으로 신돌석 부대의 활동 반경과
성격을 집약적으로 담은 명칭입니다.
부대원 대부분이 농부나 평민 그리고 글을 읽던 양반들인 영릉의진 구성원들의 한계점은
전투력이나 무기, 보급품등 모든 부분에서 일본군이나 당시의 관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대였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과 성동격서의 상대를 교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약 2년 8개월 동안 평민 출신의 의병장으로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구국의 일념에
찬 젊은이들을, 최저는 3백명에서 최고는 3천명에 까지 휘하 부대원으로 지휘했다니
그저 놀랍고 감탄할 뿐입니다.
(당시 영릉의진 깃발을 강원도 양구 지역의 의병들도 사용했다 합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삼척 장호에서 경주 청하에 이르기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던
영릉의진 부대와 신돌석 장군은 당시 경북 북부지역의 일본군들에게는 입안의 가시와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합니다.
또한 이 소설은 근대사의 한 인물에 대한 미화가 아닌 당시 영릉의진에 참가하여
독립투쟁을 행한 부대원의 기록과 김희곤 안동대학교 교수의 논문 “신돌석- 백년만의 귀향”을
바탕으로 쓴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하겠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신돌석 장군이 아닌, 불타는 애국정신과 애민과 애향 정신으로
고향땅의 왜적을 쫓아내는 것이 구국의 실천임을 깨닫고서 온 몸으로 저항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나라사랑의 정신과 얼을 오늘에 구체화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