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산 씨족학 3대성과 / 출처 원산 씨족학 연구
학문의 동기와 원인도 중요하지만 결과나 그 산물도 무시할 수 없다. 결과는
통상 성과나 업적으로 표시되기도 하며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원산
씨족학의 성과를 열거하자면 유, 무형을 막론 끝이 없어 몇몇 큼지막한 것만 나
열하기로 한다. 원산 씨족학이 이룩한 3대 성과를 과거 씨족사에 대한 교육부분,
현재 씨족이 소유하게 된 지적재산권인 자산부분, 향후 전개될 융합부분으로 나
누어 구분하기로 한다. 피로 이루어진 씨족은 지속성에 의해 흥망성쇠를 겪게 된다.
4.1 교육부분, 원산키즈 바람(風)
먼저, 교육부분에서 2010년부터 씨족의 文에 대한 연구 바람을 일컬어 원산
키즈현상이라 정의한다. 키즈란 특정인물, 즉 원산을 시발로 우후죽순 나타난 씨
족에 대한 뿌리교육현상 등을 말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저술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발표된 원산 씨족학이 2000년대 후반에서야 원산키즈를 중심으로 비로소
씨족에 알려지게 되었다. 원산키즈의 중심에는 씨족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대
부분이었고 디지털시대를 맞아 SNS를 활용하여 시공을 초월해 과거와의 대화를
주도했다.
원산키즈들의 초창기 씨족에 대한 지적수준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항렬이
나 씨족세계 등만 겨우 알았고, 족보를 통해 일부 씨족의 활동상을 알았지만 일
부분에 그쳤다. 그러나 원산 씨족학의 돌풍으로 다양한 SNS와 인쇄매체를 통해
종합적이자, 체계적으로 교육되었다. 교육된 지적정보는 씨족의 각종 행사를 통
해 여러 종원들에게 전달되고 새로이 연구되고 발전하는 선순환구조(Virtuous
Cycle Structure) 양상을 가져왔다. 씨족의 르네상스시대의 개막이었다.
여기서 원산키즈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산씨족학
을 씨족 내에서 SNS의 한 축인 밴드를 통해 홍보하여 자연 뿌리공부의 장이 되었
다. 더 나아가 밴드에 올라온 씨족사를 홈피와 복수의 카페에 저장하여 씨족원은
물론 외부인도 손쉽게 검색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주도했다.
거의 5년여에 걸친 이런 작업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현재 보유 중인
DB량은 족히 수 만여 건에 이르러 여러 씨족 중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1.1 원산씨족학 전산화작업
※ 장흥위씨 밴드(BAND) 개요 ※
◇ 개설일 : 2014.
◇ 회원수 : 642명(2020.08 기준)
◇ 주소 : https://band.us/band/12343467
◇ 관리자 : 초대(위윤기), 2대(위두량)
◇ 씨족정보량 : 2만2천여 건(2020.09.01 기준)
6년 x 365일 x 1일 10여 건
삼위일체
먼저, 원산씨족학, 밴드, 카페는 삼위일체였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란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말한
다. 원산씨족학과 SNS, 즉 밴드 및 인터넷카페의 관계는 한가지 목적을 지닌 공
동운명체요, 삼위일체였다. 원산씨족학이 배달할 상품이라면 밴드는 상품을 실
은 트럭에, 인터넷카페는 배달기사에 해당된다. 또 다른 비유로 원산씨족학이 핵
이라면 밴드는 핵을 운반하는 수단이요, 인터넷카페는 핵을 보관하는 창고인 셈
이다.
원산씨족학이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고 해도 땅에 묻어두어 이를 널리 홍보
하지 않거나 활용하지 않으면 그 가치는 현저히 저하되어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
질 뿐이다. 밴드와 인터넷카페는 원산씨족학을 교육하고 후세에 유산을 상속하
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속담과 같은 맥
락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모래는 입자가 곱고 작아 모이기가 어렵고
더구나 흩어지려는 성질이 강해 뭉치기는 더구나 힘들다.
모래는 물과 시멘트를 통해 콘크리트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된다. 원산씨족학
도 밴드와 인터넷 카페를 만나 21세기 어느 씨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괄목할만
한 성과와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씨족학, 밴드, 인터넷카페는 얼핏 보면 이질적
이다. 형태나 내용, 그리고 사용처 등 전혀 다른 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런 이
질성이 융합되어 새로운 옥동자를 낳았고 정반합에 이른 셈이다. 결국 원산씨족
학은 근원을 제공했고 과거를 미래와 연결하는 모티브로서 사명을 수행했다.
밴드
다음으로 밴드의 기능과 역할분야이다. 밴드(BAND)란 묶는다는 뜻으로 가입
된 그룹 멤버와 함께 하는 공간으로. 동호회, 소단체, 주제별로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밴드의 탄생으로 동일혈족이 구심점이 된 씨족밴드는 뿔뿔이 흩어진
종친을 하나로 묶어 뿌리공부를 통해 공동의 관심사를 도출하는데 성공했다. 또
한 핸드폰만 있으면 시공을 제한받지 않고 사용이 가능한 PCS요, SNS에 속한다.
원산씨족학이 구슬에서 보배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는 밴드의 역할이 지대했
다.
1994년 씨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원로들의 고심에 찬 결단에서 발족된 청장년
회가 회원들이 소통하려는 차원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베이이붐머 세대 이후 청
장년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된 밴드는 원산씨족학을 세세하게 소개해 수년간 수
천 회에 걸쳐 600여 명의 회원들을 교육시키는 학습의 공간으로 사명을 감당했
다. 특히 문자,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씨족의 역사를 신속, 실시간, 쌍
방향이라는 삼대기능을 적극 활용 씨족원들의 상호 소통의 장으로 발전했다.
원산씨족학의 출현은 원산의 준비된 지적역량과 열성이 결합에 기인한다. 궁
(窮)하면 통(通)한다는 씨족사의 지적 빈한함에서 출발했다. 특히 선행연구물도
없었고 종합적인 씨족사는 전무했다. 씨족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요람과 씨족
의 지성사를 체계화한 세고선집, 그리고 국역 존재집이 그 중심에 서있었다. 씨족
만으로 구성된 회원이 약 600여 명에 이르는 장흥위씨 청장년밴드가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원산 씨족학은 밴드가 개설된 2014년부터 시작해 약 6년간 1,000여 회나 소
개되어 후손교육을 주도했다. 2004년 홈페이지 개설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
이다. 저서를 중심으로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1차는 존재연보
로 98회를 2014.12~2015.03까지 원산이 직접 게재했다. 2차는 요람으로 183회
를 2017.02.01~2017.08.04 게재되었다. 3차는 천년세고로 119회를 2016.03.04~
2016.08.11 게재했다. 4차는 비망록으로 157회를 2017.10.11 ~ 2018.09.02 게재했다.
인터넷카페
BAND는 실시간 정보소통기능은 유리하나 시간이 흐르면 정보창고로서 기능
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려는 차원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정보뱅크 인터
넷카페를 제작하게 되었다. 원산씨족학이 밴드에만 머문다면 재활용기회도 상실
된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원산씨족학을 찾을 수 있도록 배
려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가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핸드
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저장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개설하여 위희량 대표가 운영해오던 「위씨네카페」와 위이환 리
더가 「원산위정철카페」를 개설해 만일에 대비해 정보분실을 우려 복수체제로 운
영하게 되었다. 수년간 수천 회나 밴드를 통해 소개된 원산씨족학은 두 인터넷카
페에 체계적으로 중복 정리되어 탑재했다. 누구든 검색을 통해 정보에 접근이 가
능하고 원하면 마우스로 드레그해서 정보를 가져가도록 허락했다. 이는 씨족의
중흥을 앞당겨 씨족의 르네상스시대를 맞으려는 운영진의 사려 깊은 결단이었다.
4.1.2 존재연보
※ 존재연보 밴드게재 개요
◇ 게재회수 : 98회
◇ 게재기간 : 3개월(2014.12.15~2015.03.13)
◇ 저자 : 원산 위정철
◇ 게재자 : 원산 위정철
◇ 저장공간 : 위씨네카페(燕南 위희량), 위정철카페(野雲 위이환)
◇ 게재목적 : 후손교육, 재발행을 위한 여론조성
게재에 대한 기대(위정철)
밴드 멤버 여러분!
제가 작년 12월 중순쯤부터 존재 선생의 연보를 밴드에 게재하기 시작했습니
다. 그 동안 약 90꼭지 안팎의 연보와 관련, 글을 게재한 것 같습니다. 딴엔 선생
에 대해 조그마한 앎을 전국의 멤버들과 공유하고 공감대를 넓히고 싶어서 했지
만 조잡한 글이라서 지겹게 여긴 분들도 분명 계셨으리라 봅니다. 그분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를 하면서 고통보다는 얻는 게 많았습니다. 제가 존재 선생
에 대해 천착한 것은 10년도 넘습니다. 그래도 별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알았다
는 부분도 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하면서 더욱 집중하니 더 알게 됐다
는 말입니다. 그게 소득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존재 선생의 학
문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전류나 인터넷에서 글을 남긴 조상을 찾으면 불과 몇 사람에 불과합니다.
검색하면 충렬공, 만회재, 학촌공, 존재공과 출가하신 원감국사 정도에 지나지 않
습니다. 이 분들 가운 많은 저술을 남기신 분은 오직 존재 선생입니다. 여기다 연
보가 있으신 분도 그 분 뿐이며, 작품이 대학수능시험에 출제되신 분도 유일하게
그 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술에 대해 후손은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후손 중 기여를 했다
면 유고를 책으로 펴낸 다암공(茶嵒公)에 불과합니다. 지금 정도라도 알려진 것
은 타 성씨의 학자들입니다. 그분들이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선생의 학문을 연
구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후손들은 다른 성씨의 연구결과로 선생의 학문
이 선양돼 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결과를 언제까지 계속해야겠습니까. 다산의 후손들은 남들이 경쟁
적으로 그의 학문을 연구해주는데 문중에서 <학술재단>를 설립, 학자들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퇴계학회나 율곡학회 등 허다한 성씨들도 후손들이 발 벗고 나서
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중의 어느 후손은 “선생의 학문은 남들이 연구하는
거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당장 어떤 조직을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이번
에 “우리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선조가 계신다.” 는 것만 인정해도 수확입니다.
여기다 “자신의 선조에 대한 연구는 ‘남이 해주기보다 후손이 먼저 해야 한다.’ 는
이해를 공유한 것이 급선무다.” 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남의 물에 게 잡은 격” 이
라는 자세는 안 됩니다.
특히 직계니 또는 타파조상이니 하는 의식은 참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장흥읍
내 충렬공원에 세워진 존재 선생의 동상은 그 직계만 빛나게 하진 않습니다. 대
한민국 후손 모두의 긍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는 직계, 나는 방계하며 먼 산
을 쳐다보면 되겠습니까? 부탁합니다.
2015년 3월 14일 원산 위정철」
4.1.3 보정판 요람
※ 보정 장흥위씨요람 밴드게재 개요
◇ 게재회수 : 183회
◇ 게재기간 : 6개월(2017.02.01~08.04)
◇ 쪽수 : 541페이지
◇ 저자 : 원산 위정철
◇ 게재자 : 호산(신복) 씨족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저장공간 : 위씨네카페(燕南 위희량), 위정철카페(野雲 위이환)
◇ 게재목적 : 후손교육, 재발행을 위한 여론조성
게재에 대한 소감(위윤기)
「속담에 ‘큰 나무 밑에는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해도 큰 사람 밑에는 큰 인물이
난다’라고 합니다. 우리 장흥위씨 문중에는 걸출한 선조 세분께서 정치분야(충렬
공), 종교분야(원감국사), 학계(존재공)를 주도하셨습니다. 이런 고귀한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해져 ‘장흥위씨요람(補正 長興魏氏要覽)’이라는 독창적인 불세출(不
世出)의 저서가 탄생되었습니다. ‘책 한권을 완성하기는 해산하는 고통보다 더
하다’라고 합니다. 무려 541쪽을 밤낮으로 저술하셨습니다.
몸까지 야위어가며 애쓰신 원산소장님께 지면으로나마 위안을 드립니다. 신
이 주신 어머니만의 산통을 감수하셔서 옥동자(玉童子)같은 귀한 ‘보정판 요람’
이 태어났습니다. 이 옥동자(玉童子)가 무럭무럭 자라 길이 후손에게 회자(膾炙)
되길 기대합니다. 사실 우리 ‘장흥위씨 Band’의 존재목적은 문중역사, 선조, 유물
유적을 통해 소통하여 문중 내 건전한 여론조성에 있습니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존재가치는 현격히 저하되어 퇴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장흥 위씨 밴드’는 문중의 역사와 종친소통에 진력을 다하고 있습니
다. 특히 이번 ‘보정판 요람’ 게재는 우리 문중 1,400여 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소개했습니다. 또한 누구나 쉽게 활용하도록 위씨네카페(燕南 위희량 대표), 원
산 위정철카페(野雲 위이환 대표)에도 매일매일 탑재했습니다. 이는 인터넷환경
으로도 문중 역사연구 기초자료로 열람하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183회, 6개
월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수고하신 湖山(신복) 대전지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카페에 따로 방(목차)을 할애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신 燕南(희량 )
대표와 野雲(이환)대표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松潭(자형) 대종회장께서는 이번
‘보정판 요람’에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재발행과 관
련하여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명품(名品) 요람’이 되
도록 松潭(자형) 대종회장님의 리더십과 혜안(慧眼)이 기대됩니다.」 2017.08.04
벽천 윤기
4.1.4 세고선집
※천년세고선집 밴드게재 개요
◇ 게재회수 : 119회
◇ 게재기간 : 5개월(2016.03.04~2016.08.01)
◇ 쪽수 : 400페이지
◇ 저자 : 원산 위정철
◇ 게재자 : 湖山(신복) 씨족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저장공간 : 위씨네카페(燕南 위희량), 위정철카페(野雲 위이환)
◇ 게재목적 : 후손교육, 재발행을 위한 여론조성
게재에 대한 소감(위윤기)
「圓山 소장님의 역작(力作) 천년세고선집(千年世稿選集)을 湖山(위신복 씨족
문화연구위원)께서 최근 BAND 에 게재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 민족, 국가 모두
에게 철학과 사상이 없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하
물며 1,400여 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문중(門中)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고 열정만 가지고 지성사(知性史)의 체계를 세울 수도 없고 확립하기에는 역부족
이다. 열정과 이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문중에서 열정과 실력을 지녀 지성사를 저술하신 분이 계
시다는 것은 우리 문중의 홍복(弘福)이다. 2008년 발행한 대종회 내 씨족문화연
구소 명의로 펴낸 400쪽의 분량인데 8년이나 흐른 지금에야 BAND를 통해 폭발
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기쁘기 한이 없다. BAND,
HOME PAGE, 여러 CAFE(위씨네 카페, 야운처사 일상기, 원산 위정철 카페 등)
에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2016.06.06 벽천(윤기)
4.1.5 씨족비망록
※비망록(備忘錄) 밴드게재 개요
◇ 게재회수 : 157회
◇ 게재기간 : 11개월(2017.10.11~2018.09.02)
◇ 쪽수 : 500페이지
◇ 저자 : 원산 위정철
◇ 게재자 : 湖山(신복) 씨족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저장공간 : 위씨네카페(燕南 위희량), 위정철카페(野雲 위이환)
◇ 게재목적 : 후손교육, 재발행을 위한 여론조성
4.2 인터넷 자산부분, 저작권 확보
원산씨족학은 밴드에 수년에 걸쳐 수 천회나 체계적이자 종합적으로 게재되
었다. 이를 통해 씨족만으로 이루어진 회원들이 댓글로 본문에 올린 씨족사를 서
로 소통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밴드탑재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체계
적으로 정리하여 씨족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자했다. 바로 SNS 저장이다. SNS
는 세 곳으로 씨족의 핵심정보는 홈페이지에, 제1, 2 베이스 캠프를 위씨네카페
및 원산 위정철카페로 다원화했다. 씨족의 정보은행이자 지식보관창고가 탄생한
셈이다.
4.2.1 씨족 정보은행 홈페이지
※ 장흥위씨 홈페이지 개요 ※
◇ 개설일 : 2004년
◇ 회원수 : 500명(2020.08 기준)
◇ 주소 : http://jhwi.or.kr
◇ 관리자 : 초대(위정철), 2대(위두량)
◇ 씨족정보량 : 총1,450여건(2020.09.01기준)
소개(30건), 조직단체(150여건), 소식(670여건), 열린 공간(350여건), 인물(50
여건), 자료실(200여건)
홈페이지는 씨족의 정보뱅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보의 내용
과 체계는 요람발행이전에 씨족사를 근간으로 해 구축되었다. 홈페이지 개설은
2004년 원산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 홈페이지 관리와 용량의 문제가 발생해
2015년 위두량 사무총장의 주도로 리모델링 절차를 밟아 새롭게 개편되었다. 씨
족의 연원과 인물 및 유적유물, 대종회와 도문회 및 상설기구, 장학회, 논문을 비
롯해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정보의 바다라 해도 손색이 없다.
지적재산권(知的財産權)에는 저작권(著作權)이 포함된다. 보호를 받아야 할
저작권은 저작권자의 지적노력의 산물이다. 저작권은 특수한 위치를 차지해 헌
법의 제22조 2항에 따라 제정된 것이다. 씨족사와 씨족의 지성사 또한 지적재산
권의 저작권이므로 원산 씨족학은 지적재산권으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체
계와 내용은 창작성이 있고 씨족의 독자적인 사상과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기 때
문이다. 즉 원산씨족학으로 씨족만의 배타적인 지적재산권을 확보한 셈이다.
홈페이지 오픈(2004년) 과정(위정철)
제가 기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닙니다. 6‧25로 목포에서
고향으로 U턴해 벌초할 때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입향조 산소정비와 1997
년 대동보 수단을 할 때 족보를 참조하면서 문중기록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무렵엔 초보이지만 인터넷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단 ‘장흥위씨’로 검색했습
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때 장흥위씨는 홈페이지가 없었습니다. 동복오씨도 홈페이지가 있는데 ‘위
씨’는 없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한 후손들이 많을 텐데 말입니다. 한
미한 씨족은 사이버세계에서도 마찬가지구나 싶었습니다. 서글펐습니다. 2003년
6월「씨족문화연구소」가 출범했습니다. 제가 위원회의 첫 사업으로 ‘장흥위씨 홈
페이지’ 의 개설을 제안했습니다.
씨족연구위원회는 홈피개설과 원고작성을 저에게 위임했습니다. 홈페이지를
포털사이트에 띄우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해야 했습니다. 홈페이지는 우리 성
씨에 대한 모든 자료를 담아야 합니다. 홈피를 방문하면 장흥위씨에 대한 궁금증
을 알 수 있는 사이버창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홈페이지용
원고를 거의 완벽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저의 능력에는 버거운 짐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제가 그
일을 담당해야했으니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발족 때 구성원을 보면 이해가 될 것
입니다. 즉, 소장 滋炯, 간사 禎佑, 위원은 載亨, 啓珍, 亨模, 滉良, 聖浩, 啓昉, 昌復
입니다. 대부분의 연세는 70대 후반이셨습니다. 이는 족보 등 문중의 역사를 아
는 젊은 후손이 없었음을 반증해줍니다.
저도 문외한입니다. 족보 찾는 방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홈페이지
같은 일을 하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고작 계파후손의 수단을 하는 것
도 대신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막상 수단을 작성하려니 너무도 막
연해 기존의 족보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기묘대동보가 발행된 후에야 1
권과 지장록을 3번 정도 읽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홈페이지가 초보자에게 길라잡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씨들
이 방문해서 위씨의 역사를 쉽게 알게 안내하는 창구가 돼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 성씨의 유래와 세계, 역사의 인물, 유적순례, 세거지, 모선주역 등으로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이런 얼개에 따라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이때 장흥을 60번 오가며
묻고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뛰었습니다.
원고는 작성한지 3개월 후인 9월 23일 소장에게 전송했습니다. 2004년 초에
재형, 성호, 계방 위원으로 하여금 교정해주도록 의뢰했습니다. 이 세분 위원은
위씨 보첩의 전문가이십니다. 그해 회주대제인 5월 2일까지 교정을 보고 저에게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세분이 보신 교정내용에 따라 정리를 마쳐서 홈페이지용
원고는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포털에 개설하도록 제안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광주 Xmecca라는 업체에 의뢰했습니다. 대행업체와는 350만원을 지불키
로 계약하고 2004년 5월 21일 영문 및 한글주소를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6월 23일부터 “장흥위씨 홈페이지”가 네이버, 다음, 야후코리아 등 포털사이트에
정식으로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고작성 등으로 무리한 나머지 치질이 악화됐습니다. 홈페이지가 오픈
된 것을 확인하고 바로 21세기병원에 입원해 수술해야했습니다. 완치에는 약 2주
일이 소요됐습니다. 홈페이지가 오픈되자 매일 많은 종인들이 방문했습니다. 그
런데 방문자는 거의 신세대였습니다. 사실 기성세대가 방문해 궁금한 사항을 알
아야 하는데 찾는 자가 드물었습니다.
4.2.2 제1베이스캠프 위씨네카페
※ 위씨네카페 개요 ※
◇ 개설일 : 2003.07.31
◇ 회원수 : 527명(2020.08 기준)
◇ 주소 : http://cafe.daum.net/weeheeryang
◇ 관리자 : 위희량
◇ 씨족정보량 : 총 14,030여건
소식(800여건), 공지(230여건), 재경(500여건), 청장년(500여건), 역사(5,000
여건, 원산씨족학 외), 기구(6,000여건), 기타(1,000여건, 박형상 변호사 칼럼 외)
원산 씨족학의 제1BASE CAMP는 「위씨네카페」이다. 이 카페의 관리자는 연
남 위희량(1957년)으로 여러 공간 중에 원산 씨족학을 탑재할 공간을 파격적으로
할애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위씨네카페는 다른 카페에 비해 몇몇 특징을 지니
고 있다. 먼저 개설된 지 20여 년이나 되어 씨족의 독점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
다. 다음으론 카페관리자는 매일 정보를 업데이터하고 쌍방향 소통을 원활이 하
는 작업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 모범적 SNS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원산키즈별로 데이터를 저장할 방(ROOM)을 제공했고, 상설기구별로
별도로 할애해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인터넷에서 씨족관련 단어
를 검색하면 제1BASE CAMP 위씨네카페로 연결되도록 했다. 20년 간 구축된 데
이터베이스량은 족히 수 만 건에 달하는 등 엄청나다. 원산 씨족학의 제1BASE
CAMP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원산 씨족학에 접근하기 용이하게 데
이터 일부만 접근을 제한하고 나머지는 접근을 허용해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4.2.3 제2베이스캠프 원산 위정철카페
※ 원산 위정철카페 개요 ※
◇ 개설일 : 2014.11.18
◇ 회원수 : 36명(2020.08 기준)
◇ 주소 : http://cafe.daum.net/y0ujin1387
◇ 관리자 : 위이환
◇ 씨족정보량 : 총 4,160여건(2020.09.01기준)
존재집(560여건), 게시(390여건), 행사(270여건), 비망록(160여건), 시화서예
(70여건), 시세계(60여건), 요람(180여건), 천년세고(120여건), 원산칼럼 외 800여
건), 인물(510여건), 정자문화(140여건), 유물유적(500여건), 기타(400여건)
원산씨족학의 제2BASE CAMP는 「원산 위정철카페」이다. 이 카페의 관리자
는 야운 위이환(1968년) 연구위원으로 원산씨족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탑재
하고 있다. 특히 국역 존재집을 원문 그대로 탑재해 존재선생의 사상연구를 위해
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국역 존재집은 원산키즈들이 각고
의 노력 끝에 완성한 원산 위정철카페 만의 자랑이다. 인쇄문화를 넘어 디지털시
대를 맞이하여 존재집 전산화로 존재사상연구의 방대한 핵심자료를 구축한 셈이다.
또한 2 BASE CAMP 원산 위정철카페의 개설자 겸 관리자가 장흥군청의 써포
터즈로 활약 중이라 씨족의 본관 정보를 꾸준히 축척해왔다. 매일 축척되는 데이
터베이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격이다. 위씨네카페가 인물중심, 조직위주로
운영된다면 원산 위정철카페는 원산 씨족학을 저서별로 룸을 따로 마련해 체계
화함으로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편리성과 빠른 검색을 보증함으로 많은 이용
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원산 씨족학의 보물창고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저작권을 확보한 셈이다. 「1단계 원산 씨족학
저술(저술단계)—-2단계 밴드게재(후진교육단계)--3단계 SNS상 데이터베이스
화(정보전략화단계)--4단계 배타적 저작권화(지적재산권확보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4단계가 완성되기까지 저자 원산, 대종회장, 사무총국 및 상설기구장
의 동의, 저장뱅크와 제 1, 2 BASE CAMP 두 관리자의 데이터베이스 공간제공,
십 수 년에 걸친 꾸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 실시 등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게재방식(위이환)
「카페명 <원산 위정철>은 원산 선생이 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소장을 재임할
당시 장흥위씨 씨족사 연구를 위한 용도로 개설했습니다.
본래 카페의 글 게재방식은 원산 위정철 선생이 장흥위씨 문중 소통 창구인
밴드에다 종인들을 위하여 친히 매일 올리셨던 글을 야운처사가 모아 카페에다
옮겼습니다. 그러다가 장래를 위하여 장흥위씨 문중 자료를 모으고자 확장 편성
했습니다.
이어 본 카페가 그동안 장흥위씨 씨족사를 위한 자료 저장고로서의 역할을 해
왔고 구성면에서 전문성을 높이려 장흥위씨 관련자료 외에도 장흥군 관련자료를
추가하여 함께 모으게 되었습니다.
장흥군 관련한 자료는 장흥위씨 본향이 장흥이고 장흥을 알아야 장흥위씨 문
화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야운처사가 고향인 장흥군을 위하여 재능기
부조 홍보역할 차원이기도 합니다.
카페 운용계획은 장기적으로 역사적인 자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문중 행사
와 문중 동향, 장흥위씨 인적 생활상 그리고 장흥군 보도자료, 장흥향우 동향, 장
흥군 지역 생활상 등을 게재할 것입니다.
끝으로 본 카페 쓰임새입니다. 본 카페가 본래 자료제공을 위한 저장고이자
일반인에게 보급 용도로써 창구이기도 했던 바, 이 취지를 살리겠습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카페의 자료를 제공할 것이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활용도 가능합니다.
현재 본 카페는 2020년 기준, 방대한 자료가 쌓였습니다. 향후에도 자료를 꾸
준하게 더 보강하고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 자료는 정
확치 않을 수 있습니다.
카페지기 야운 위이환 배상」
4.3 융합부분, 하이브리드 시장 개척
융합(融合)이란 융字와 합字의 합성어로 하나가 아닌 둘이상이 녹아 새로운
형태의 조화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합자보다 융(融)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에서 의미를 살펴보면 그 뜻이 잘 드러난다. integrated는 집적된, hybrid는
잡종, fusion은 융해, convergence은 한 점에의 집합, merger는 통합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적, 잡종, 융해, 집합, 통합은 조화라는 의미
를 선결조건으로 한다. 바로 正反合의 원리를 넘어선 개념이다. 향후 시대가 추구
해야 할 의미를 한 단어로 표기하면 바로 융합이다.
현재 우리들이 사는 시대는「아날로그--디지털--하이브리드」로 진화했다. 생
존이란 탁월성보다 적응성에 있다. 적응에 실패하면 쇠퇴와 몰락의 길에 접어들
게 된다. 씨족도 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이브리드시대를 맞이한 원산키즈의
사명은 총론을 성립한 원산씨족학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각론탐구에 매진하여
야 한다. 원산이 이룬 총론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고증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야한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속도보다는 방향에 더욱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면 원산키즈들이 연구 중인 각론에 대해 연구 내용별로 알아보자. 호산
위신복 위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1999년 대동보 전산화와 씨족문화연구위원
에 의해 연구되는 씨족사 미시론 연구, 선조들의 전기편찬, 씨족문화창달과 여론
주도현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동보 전산화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쾌거이
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했다. 또한 몇몇 연구위원들은
지역신문과 장흥문화지에 그간 연구물을 연작시리즈형태로 기고해 호평을 받고
있다.
4.3.1 1999년 대동보 전산화
씨족의 마지막 족보발행은 1999년이었다. 통상 30년 전후로 새로이 발행하는
관습에 따른다면 10년이 채 남지 못한 시점이다. 그러나 요즘 타 씨족에서는 인터
넷 족보발행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인터넷 족보는 기존 인쇄매체문화를 디
지털환경과 융합함으로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사진을 첨부하거나 소량다
종 인쇄도 가능하다. 이에 뒤질세라 호산 위신복 위원은 1999년에 발행된 대동보
를 전산화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5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이루어낸 쾌거이다.
호산위원은 원산키즈 1세대로 고용노동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특유의 꼼
꼼함으로 현미경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수만 쪽에 이르는 한문, 한글로 혼용된 족
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예사 일이 아니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은근과 끈기
로 가치로 따지자면 수 억 원에 호가하는 자산을 확보한 셈이다. 이 족보디지털
화 작업은 씨족의 지적재산권 확보전략의 일환이다. 씨족의 자산형성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평이 일반적인 견해다. 도문회와 대종회가 앞장서 활용방안에 귀
를 기울여야한다.
4.3.2 씨족사 각론(미시론)연구
모든 학설에는 원칙이 있고 통설, 다수설, 소수설, 판례, 예외 등이 늘 존재한
다. 씨족사에도 이런 룰이 작용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새로운 씨족사가 발굴되고
과거 한자로 기록된 저서들이 국역되어 새롭게 선을 보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원
산 씨족학으로 총론이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각론은 아직 전인미답의 경지로 남
겨져 있다. 이를 위한 원산키즈의 활동은 각별하다. 먼저 선조들의 관직 임명장에
해당하는 교지와 재각의 편액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선조들의 행장을 비롯해 다양한 씨족사에 대한 고증도 새로운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총론은 족보를 중심으로 저술되어 각론에서 고증하는데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총론과 각론, 즉 족보와 역사적 사실과의
충돌은 해결되어야 할 선결과제이다. 족보를 고치지 않으면 족보를 기준으로 저
술된 총론 원산씨족학의 수정도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모든 학설에는
예외가 존재하듯 지혜로운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하이브리드식 융합적인 사고가 필수적이다. 원산키즈들에게 유연
한 사고를 주문한다. 씨족사도 유기체라 늘 변화하고 있다. 팩트에 입각한 한 가
지만의 씨족사도 중요하지만 예외나 다수설과 소수설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
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오로지 고수해야 할 목표라는 근시안적 사고를 버려
야 한다. 또한 씨족의 원로들도 획일적이자, 고정적인 사고를 버리고 다양하고 유
동적인 사고를 지닐 필요가 있다. 씨족사는 살아있어 늘 변화, 성장하는 법이다.
4.3.3 블루오션, 전기편찬
전기편찬작업은 향후 원산키즈들이 집중해야 할 핵심과제이다. 원산은 범곡
과 송담전기에 이어 고 송당(휘 재형), 일파(태선)옹, 재균옹 등 관북의 삼현에 대
한 전기편찬을 제시한 바 있다. 초대 전기편찬회장인 원산과 협업하여 전기편찬
에 편집위원으로 원산키즈들이 대거 투입되어 활약하고 있다. 원산키즈들은 씨
족사 연구도 중요하지만 전기편찬과 같은 블루오션작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
다. BLUE OCEAN은 씨족의 유망한 문화창달 분야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기는 선조들의 행록, 묘지명, 행장을 확장한 개념의 저서를 말한다. 물론 대
상은 위문의 발전에 공헌한 모선주역이다. 여기에 근현대인물들인 고려, 조선조
타계한 선조를 포함한다면 금상첨화일 수 있다. 전기출판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블로오션 분야임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원산키즈들은 이미 원산씨족학으
로 충분히 교육되어졌고 개인적으로 자질이 우수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과
거와의 대화보다 현재와 미래를 향한 대화 역시 원산키즈들의 사명이다.
4.3.4 씨족문화창달과 여론주도
씨족만의 독특한 문화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문한(文翰)의 전통을 계승한 원
산키즈들이 주도하고 성과를 나타낸 아호사용문화, 서체판독문화, 인쇄매체 발
행문화, 호칭통일문화, 동호회문화 등은 창의적인 씨족문화로 이미 각광받고 있
다. 원산키즈들은 씨족문화를 창조하는데 더욱 앞장서야한다. 씨족문화는 늘 새
롭게 해석되고 발전적으로 창조되곤 한다, 자신들은 물론 잘 교육된 전국에 거주
하는 종친들을 적재적소에 맞는 눈 높이형 인재영입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씨족문화 진작에 또 다른 키워드는 벤치마킹이다. 독불장군이란 없는 법이다.
협업과 집단지성이 대세이다. 또한 씨족 내에서만 머물지 말고 다른 씨족들과 소
통하며 그들의 위선사업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융합이라는 이름으
로 새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함께라는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융합은 함께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 개념이다. 결
국 뭉치면 살고 죽는다는 속담을 현실화하되 전략적 뭉침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여론문제이다. 여론(與論)이란 씨족을 구성원들이 어떤 아젠다
(agenda)에 대해 가지는 대중적인 의견을 뜻한다. 씨족 내 여론은 씨족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요, 에너지와 같다. 여론에는 건전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세대나
종파 및 지역 등에 따라 본질을 왜곡되거나 변질시킬 수 있다. 원산키즈들은 건
전한 여론조성을 위해 전위대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앞서 선
택되어 원산 씨족학의 혜택을 받아 씨족사로 완전히 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벽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