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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 아미르 Gur amir
누운 자여 지금은 누워서 평안을 얻으시라 살아서 닿을 수 없는 곳에 당신이 누웠으니 누운 자는 마음 놓고 누워서 고요하시라 당신께서 두고 가신 뽕나무도 잘 있고 들판의 감자도 훌륭하고 사마르칸트의 새벽도 거룩하고 질박한 접시 위에는 한 덩이 빵도 잘 놓여 있어 여염의 이마마다 모두 어여쁘니 정복의 칼은 조용히 내려놓고 제왕의 위엄도 접어두고 피안의 창가에 누워 그저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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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구르 아미르 Gur amir
정복자의 무덤이여
잠들 줄 모르는 야망을 지닌 제왕의 무덤이여
‘구르’는 ‘무덤’
‘아미르’는 ‘지배자’의 뜻
‘구르 아미르’는 ‘지배자의 무덤’이란 뜻
티무르는 살아서는 이승의 통치자였고
죽어서는 피안의 지배자던가
무덤은 크고 화려하다
옛 유적은 비록 바람에 풍화되었을지라도
바람 위로 솟아올라 장엄하다
나의 평온을 어지럽히는 자마다
고통의 징벌을 받게 되리라
시신을 안치한 관 앞에 새긴
예언자의 경구는 방금도 삼엄하다
누운 자의 잠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주가 내린다는
무덤에 새겨진 비문은
여행자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유적 발굴팀이 티무르의 생전의 모습을
재구성할 목적으로 그의 시신을 발굴했을 때
그의 평온을 방해한 징벌이 현실이 되어
얼마 후 나치 군대가 러시아를 침공했다니
정말로 고인의 저주일까
인간이 지닌 불안한 심리의 반영물일까
티무르 -
‘Timur’는 ‘절름발이’의 뜻
페르시아의 시스탄 전투에서
오른손과 오른다리에 중상을 입었기에
평생 불구의 몸이 된 정복자의 왕
1402년 오스만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서쪽 변방을 정복하고
일흔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명나라 원정길에 올라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급사하기까지
동방의 지배자가 되었으니
절름거리며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뼈와 살을 내어주며 정복자가 되었다
사람의 시신을 산처럼 쌓았어도 죄를 몰랐고
정복의 땅에서는 자비를 잊었었다
칭기즈칸의 후예이기를 꿈에도 열망했으나
칭기즈칸의 후예의 딸을 아내로 취한 뒤에야
영웅의 소망을 가까스로 달래었다
직계자손이 아니어서
끝내 ‘칸’을 지칭하지는 못했으되
‘아미르’가 되어 세상을 호령했다
이승의 삶에서 사람의 목숨을 헤아릴 수 없이 빼앗았으되
영웅의 반열에 오르자
잔인한 자취도
가혹의 흔적도
예측할 수 없는 잔혹한 기행奇行도 모두 묻혀서
중앙아시아 고원은 영웅의 족적과 전설로 가득하다
유목의 고장은 제왕의 칭송으로 넘친다
누가 나의 힘을 의심하거든
내가 지은 궁전을 보여주라
호기로운 한 마디가 방금도 세상을 풍미한다
구르 아미르 모슬레움mausoleum -
이 무덤의 실체가 세상에 밝혀진 것은
1941년 6월 21일
구 소비에트 연방의 고고학자들에 의한 것
이 영묘는 본래
페르시아 원정길에서 전사한
티무르의 손자이자 상속자인
무하마드 술탄을 위한 능묘로 건설된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티무르 자신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두 번째 손자인 울루그벡
티무르 자신의 스승인 바라카의 무덤으로
결국에는 가족 무덤이 된 것
해체된 관 속에서 발견된 것은
한 구의 시신은 다리가 불구
다른 한 구는 목이 잘린 시신
전자는 티무르의 시신
후자는 유능한 통치자였으되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던 한 영웅의
이념과 통치의 혼란스런 와중에서
반대파에 의해 목이 잘린 채 암살된
그의 손자 울루그벡의 시신임이 밝혀졌다
티무르와 그의 가족묘
외부에서 바라보는 영묘의 좌우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두 개의 돔
능묘 전역은 묘당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거대구조물로
건물 전체가 채색 타일
푸른색과 흰색의 채색 타일로 조화를 이룬
이슬람 풍의 화려한 장식
기하학적 배열의 무늬를 이룬 황금의 벽면들
티무르의 관을 둘러싼 녹색의 옥
이 옥은 이른바 티무르의 황금군단이
중국 황제의 궁전에서 약탈해 온 것들
능묘의 중앙에 안치된 관들은
관 아래 안치된 지하 납골당에
고인의 진짜 유해가 안치된 장소를 표시한 것
그러기에 눈에 보는 관은 모조품 관
도굴을 막기 위한 이중장치였을까
혹은 고인의 평온을 위한 고심어린 결과물일까
페르시아 전투에서는 사람의 머리로 성채를 쌓고
친위대의 힘으로 자신의 안녕을 도모하고
호라산 전투에서는 산 사람을 생매장하고
바그다드를 일시에 폐허로 만들었으며
생애에 치른 전투에서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전신戰神이었으되
다른 한편으로는
대상로隊商路를 정비하여 교역을 트고
실크로드 육로로 동서양을 하나로 묶고
정복지의 장인들을 불러들여 문명을 꽃 피우고
이슬람교를 수용하여 믿음에 유연하고
건축물에 심취하여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진주’
‘세계의 보석’으로 만들었으니
한 손엔 공功
다른 손엔 과過
양날의 칼이 한 몸에 공존했었다
정복자의 왕이 이제 쉰다
정복의 아침과 저녁을 모두 내려놓고
영원의 안식을 얻어 이제 막 잠이 들었다
구르 아미르가 비로소 평안을 얻었다
(이어짐)
첫댓글 아, 티무르칸이나 구르 아미르가 정복자의 의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