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4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
시 60:1~12
〈 1 일흔 둘입니다 〉
새해가 밝았습니다.
sns에는 새 해 덕담을 나누느라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특히 금년은 말의 해니 어쩌니하면서, 말 그림으로 연하장을 만듭니다.
서로 복 많이 받으라 합니다. 서로 부자 되라는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무도 나이 먹은 이야기는 안 합니다.
해가 바뀌었다는 것은 나이 한 살 더 먹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가 한 살 더 먹은 것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다 똑같이 한 살씩 먹었으니 굳이 거론할 일이 없기도 할 겁니다.
저는 새해 첫날 목양실에 앉아서 저의 나이를 곰곰 생각했습니다.
세는나이 일흔두 살이 되었습니다.
나이 많다고, 이제는 늙은이라고, 반겨주지 않아도 저는 틀림없는 일흔두 살입니다.
앉아서 시를 한 편 적었습니다. 제가 요즘 시를 잘 끄적거립니다.
아무래도 시편 설교를 이어가는 중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새해 첫날 제가 쓴 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일흔 둘 / 황의찬//
일흔두 살이 되고 싶습니다. / 생각과 행동이 모두 / 덜함 없는 일흔두 살이요//
만으로는 아직 일흔이지만 / 그걸로 우기고 싶지 않아요 / 일흔보다 일흔둘이 더 크잖아요//
묵상과 기도와 찬송도 더 크게 하고잪아요 / 나이 일흔둘 되고보니 / 이것도 썩 좋습니다//
내가 마흔 무렵에는 / 일흔이 되면 폭삭일거라 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교만이었어요//
일흔 둘 / 썩 괜찮습니다.
〈 2 시인의 솔직함 〉
제가 이 시를 써서 sns에 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아, 내가 정말 일흔두 살 만큼의 인격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일흔 두 살 만큼의 인격,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는 것은 쫌생이고, 행동하는 것은 진상이고, 말하는 것은 고집불통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일흔 두 살’의 인격이 아닙니다.
2026년 한 해, 저는 정말 ‘덜함 없는 일흔두 살’의 성품으로 살고자합니다.
“주님 금년 한 해, 저에게 이 소박한 기도 제목을 들어주시옵소서!”
저의 기도 하나님이 응답해주실까요, 외면하실까요?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제가 늘 떼를 씁니다.
제가 일흔두 살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내남없이 자기 나이만큼의 인격으로 한 해를 살아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먹은 나이만큼 성숙한 인격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뭐니뭐니 해도 정직해야 합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평생 신앙생활하여 집사가 되고 권사, 장로가 되었다고 폼을 잡기보다는 정직해야 합니다.
집사가 집사처럼 생각하고 집사만큼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로가 장로처럼 생각하고 장로만큼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사가 목사처럼 생각하고 목사만큼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 오늘 설교 본문은 시편 60장입니다. 다윗이 썼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윗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다”(삼상 13:14, 행 13:22)
하나님이 다윗의 어떤 면을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을까요?
그 어떤 것보다 다윗의 정직함, 다윗의 솔직함입니다.
☞ 다윗은 시편 60장에서 어떤 고백을 합니까?
〈 3 다윗의 실패 〉
(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10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_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_하나님이 우리를 흩으셨습니다.
_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노하셨습니다.
_하나님이 전쟁터에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고백은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고, 흩으시고, 분노하시어, 전쟁에서 패배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고백입니다.
믿음의 사람, 믿음의 영웅 다윗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솔직하고 정직합니까?
다윗의 이 고백,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한국 교회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한국의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대놓고 말합니다.
종교가 정치와 야합했다 하여 국회가 특검을 하겠다고 합니다.
통일교와 신천지의 정치 개입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정통이라 하는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기서 자유롭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습니다” 하는데,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무조건 내편이다” 하면서, 특검의 소환에조차 불응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성령 하나님의 탄식소리가 들립니다.
〈 4 다윗의 신앙 〉
시편 60장에서 다윗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전쟁 중 잇따라 패배하고 있습니다.
‘아, 우리가 패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음이다.’
다윗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 앞에 엎디어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지금 우리가 해야 합니다. 《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
〈 5 고개가 빳빳한 크리스천 〉
많은 사람이 다윗은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전쟁에서 무조건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패배도 안겨주십니다. 고통도 주십니다. 고난도 주십니다.
패배 앞에서, 고통과 질고 앞에서, 다윗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때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의 태도를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얼마나 더 잘해야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 누가 있습니까?
누가 감히 “나는 다윗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따지고 묻는 일이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
우리는 늘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는 일이 없어!’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잘못하는 거야!
오늘날 크리스천들, 고개가 너무 빳빳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 고개를 너무 빳빳하게 세우고 거들먹거립니다.
〈 6 다윗의 믹담시 〉
오늘 설교본문인 시편 50장의 제목을 보시기바랍니다.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이라는 대목을 주목하십시오!
시편 60장은 시편에 딱 6편이 있는 ‘믹담 詩’중에서 마지막입니다.
시편 150편에서 제목에 ‘믹담 詩’로 표기된 시는 16장, 56, 57, 58, 59, 60장입니다.
믹담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황금을 뜻한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여섯편의 시는 다윗의 ‘황금시편’으로 분류됩니다.
다윗의 황금시편, 특징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수를 드러냅니다.
시편 60장에서 드러나는 다윗 신앙의 진수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성경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서 하나님 사랑하기로 둘째가려면 서러운 인물입니다.
그 정도라면, “하나님을 나만큼 사랑하는 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할만도 합니다.
다윗은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맞서서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하나님을 진정 하나님으로 예배하고 섬기고 사랑합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 사람 모두가 자기 나이만큼의 인품을 지닌다면 얼마나 행복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자기 나이만큼의 성품과 인격을 지닌다는 것, 작은 것 같지만 가장 큰 희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추어 때로는 올리고, 때로는 내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딱’ 하나님만큼 섬기고,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예배해야 합니다.
다윗의 믹담시, 다윗의 황금시편이 바로 이것을 드러냅니다.
아홉 살이면 아홉 살만큼으로, 열두 살이면 열두 살만큼으로,
쉰 살이면 쉰 살답게, 예순이면 예순답게, 일흔이면 일흔답게.
새로 맞이한 2026년, 우리가 이렇게 살아낸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뭐, 거창한 계획, 엄청난 꿈으로 부풀릴 것 없습니다.
딱 내 나이만큼의 성품으로 살아낼 수 있다면 최고입니다.
새 해에는 딱 내 나이만큼으로, 하나님을 딱 하나님만큼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도록 《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