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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된 산삼(山蔘) 도둑
요즈음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를 일반 상업방송에서 앞 다투어 방송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산삼, 장뇌 등 생김새를 시청자 머릿 속애 각인 시켜 주고 있다. 나무를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는 박씨는 늘 걱정이 태산이다. 혼기를 한참 넘긴 큰딸이 올해는 시집을 꼭 가겠지 기대했는데 또 한해가 속절없이 흘러 딸년이 또 한 살 더 먹어 스물아홉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딸년 탓이 아니라 자신의 가난 탓이다.
일 년 열두 달 중 명절과 장마 비가 쏟아지는 날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 나무를 베서 장에 내다 팔아 보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요즈음도 아주 드물게 중매쟁이가 찾아와 딸의 혼담을 나누고 중매를 서겠다고 하지만 막상 혼수 비용 얘기만 나오면 한숨만 쉬고 혼담은 없던 일로 하고 헤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세상에 법이 없어도 살아갈 착한 박씨는 한 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나무장사뿐인데 그나마 최근에는 몸이 예전과 달리 나무 장사도 힘이 들면서 나뭇짐도 확실히 눈에 띄게 작아졌다.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 초겨울 어느 날 나무을 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그나마 화력이 좀 낫다는 이유로 굴참나무 장작 값을 조금 더 쳐준다.
오늘도 박씨는 굴참나무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다 박씨는 무엇을 봤는지 눈이 휘 둥굴 해지면서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눈 위로 새빨간 산삼 열매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 아닌가. 이렇게 발견된 산삼은 자그만치 100년이나 묵은 동자삼이란다.
박씨가 100년이 훨씬 넘은 산삼 몇 뿌리를 캤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저잣거리의 약재상에서는 난리가 났다. 약재상도 이참에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박씨에게 접근해서는 "여보게 박씨! 산삼을 들고 주막으로 가세. 지금 천석꾼 부자 황참봉이 물건을 보겠다고 약재상에서 기다리고 있네.“ 박씨는 이끼로 싼 산삼을 보자기에 싸들고 약재상을 따라 저잣거리 주막으로 갔다. 황참봉과 그집 머슴들이 술상을 차려놓고 박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막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놀음꾼들, 껄렁패들까지 산삼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마침내 박씨가 보자기를 풀었다. 100년 생 동자산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탄성을 지를 때 누군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산삼을 낚아 채더니 들고 튀는 것이다, 동자삼을 훔친 노름꾼놈은 가까운 곳에서 붙잡혔고 박서방, 황참봉이 보는 앞에서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것이 아닌가.
주막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참봉 집 머슴들이 산삼도둑놈 멱살을 잡아 황참봉 앞에 무릎을 꿇리고 보니 그동안 폐병으로 “콜록콜록” 놀음쟁이 ‘허골’이라는 건달이었다. 그는 제대로 놀음판에 끼지도 못하고 뒷전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고리나 뜯는 집도 절도 없는 젊은 건달 ‘허골’은 코피가 터지고 입술은 얻어 터져 당나발처럼 부어오른 채
"이놈을 포박해서 우리 집으로 끌고 가 이놈의 배를 갈라 산삼을 끄집어 낼 테다." 황참봉의 일갈에 ‘허골’은 사색이 되었다. 바로 그 때 마음씨 착한 박씨가 나섰다. "참봉어른, 아직까지 '허골’의 뱃속에 있는 산삼은 제 것입니다요. 이놈의 배를 째든지 통째로 삶든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박씨 말이 맞자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돌아 갔다. 박씨는 ‘허골’을 데리고 나와 언덕마루에서 그를 풀어줬다. 눈발 속으로 ‘허골’이 사라진 후 아무도 ‘허골’을 본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걸 팔아 딸애 시집보내는데 쓰려고 했는데.... 배를 짼들 산삼이 멀쩡할까, 내 팔자에 그런 복이 있을 턱이 있을까?"
3년 세월이 지난 어느 봄날, 평소와 다름없이 박씨는가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와 집 마당으로 들어오니, 갓을 쓰고 비단 두루 마기를 입은 채로 젊은이가 넙죽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소인이 3년 전 산삼을 훔쳐 먹은 '허골'이옵니다.." 피골이 상접했던 그때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얼굴엔 살이 오르고 어깨가 떡 벌어져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허골’은 산삼을 먹고 폐병이 완치돼 마포나루터 어물전에 진을 치고 닥치는 대로 장사판에 뛰어들어 거상이 되었다.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박씨가 허락 하면서 '허골’과 박씨 딸이 드디어 혼례식을 올렸다. 그 후 박씨는 더 이상 나무지게를 지지 않았고 사위가 사는 저잣거리 근처에 대궐 같은 기와집에 하인을 몇명을 두고 말년을 부자로 보냈다고 한다.
Wolerton Mountain/Johnny H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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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듣기만 해도 흐뭇한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