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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영상으로 등장하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영상 속 그녀는 때론
여성의 불편한 삶에 대해, 때론 첨예한 정치 이슈를 20대 특유의 발랄한 언어로
속 시원히 풀어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꿈트리는 여성 사회 초년생의 돈 관리를 위한 뉴스 서비스 ‘어피티(Uppity)’
대표 박진영 씨(28)를 섭외하던 중 그가
바로 ‘미스핏츠’,
‘청춘씨:발아’
등 당시 뉴 미디어를 주도했던 ‘영상 속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통적인 미디어들이
디지털 혁신이라는 물결에 떠밀려 헤매는 동안 영상이라는 강력한 콘텐츠로 디지털 세계를 뒤흔들었던 한 청년이 걸어온 길을 통해 미디어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신선한 콘텐츠로 SNS 뒤흔든 ‘당당한 20대’
진영씨는
대학시절 손석희·김주하를 보며 기자 출신 앵커의 꿈을 키우던 기자 지망생이었습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1학년이던
2011년 진영 씨는 슬로우뉴스 편집위원인 강정수 박사(현 메디아티
대표) 수업을 들은 후 미디어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휴학을 거듭하며 열심히
활동했던 연세춘추 편집장을 그만둔 이후 그는 진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2014년 6~7월 편집장을 그만두고 잠시 취업 준비 생활을 했었는데
굉장히 위축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취업 준비 활동이라 해봐야 토익학원 다니는 정도였는데
거기서 나 자신의 경쟁력을 찾기 어려워 무척 답답했어요. 막상 취업을 한다 하더라도
'대체 언제까지가 내 삶일까’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겨우 3년차인데 '퇴사하고 싶다, 취업 대신 '취집' 하고 싶다' 그러더군요 .
강 박사의 제안으로 진영 씨는 연세춘추 활동을 함께 한 친구와
2014년 8월 ‘20대를 위한 종합미디어’를 표방한
‘미스핏츠(Misfits)’의 공동창업자가 됐습니다.
“오빠 나 사실
빨갱이야”, “협박편지 TO. 최씨
아저씨”. ‘미스핏츠’와 ‘박진영’을 검색하면 뜨는 발칙한
제목의 기사들입니다. 특유의 당당함과 발랄함으로 무장한 미스핏츠의 콘텐츠는 SNS로
확산(바이럴 viral)되면서 순식간에 여론을 집어삼켰습니다. ‘미스핏츠’는 ‘할
말은 하는 젊은 부적응자’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낙인찍히거나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풍토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10대 시절 진영 씨는
오기로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청원여고(서울 노원구
상계동) 재학 시절 그의 목표는 수리영역 80점대 달성과
‘전교 1등’ 두
가지였습니다.
아나운서의 꿈이 있어서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가고 싶었습니다.
2010학년도 수능 당시 수리 88점이 나왔고 종합 총점수가 역대 최고점을 찍어
결국 전교 1등 하던 친구를 이겼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은 실패했습니다.
전교 1등 목표를 이뤘지만 원하는
대학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재수를 선택했고 수시 논술전형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논술로 대표되는 수시 전형인 연세대 일반전형은 수능 성적도 좋아야 하지만 전국에서도 글 잘 쓰는
학생들이 대거 지원하는 전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영 씨의 글쓰기 재능은 부모님 덕입니다. 지금도 하루 한 권씩
책을 읽는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두 분 모두 집에 책이 쌓아놓고 살 정도로 책을 좋아하셨습니다. 그
틈에서 진영 씨와 두 살 위 언니는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중고교 시절엔 정치적
논조가 다른 두 개의 신문을 구독하며 비교해서 읽는 훈련을 꾸준히 했습니다. 이것 역시 균형감각을
가진 지성인으로 성장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진영 씨는 2015년
2월 미스핏츠 대표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미스핏츠를 통해 배운
것도 많습니다. 20대들이 먹고 노는 일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과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사회
이슈를 확산시켰을 때의 효능감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몇 달 앞둔 2015년 11월, 진영
씨는 4명의 동갑내기 친구들과 페이스북 페이지 ‘청춘씨:발아’를 시작했습니다. 언뜻 욕처럼 들리는
‘청춘씨:발아’
이름에는 ‘청춘의 씨앗이
발아한다’, 또는 ‘○○씨가 바라는 것을 물었다’ 등 여러 가지 뜻을
담았습니다. 콘텐츠는 ‘취준생의 하루’ 등
사회 이슈를 다루거나 개그 영상을 정치 이슈와 연결해 재미있게 해석하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2016년
4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만든
‘이런 사람 뽑지 마라, 진짜’
영상은 JTBC 뉴스에 소개되는 등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2016년 하반기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앞당겨진 대선(2017년 5월)까지
이어지면서 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청춘씨:발아’도 주목받았습니다.
처음엔 한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청춘씨:발아’
의 반향은 점점 커져 시즌2,
시즌3로 이어졌습니다. 그 즈음 진영 씨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Google
News Lab Fellowship) 2015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3개월 동안 언론 현장과 연계한 뉴스 제작 심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영상콘텐츠 ‘필리즘(Pillism)’,
동국대 창업팀 ‘트웬티’와 함께 만든
‘ALT’(2016년 9월~2017년 11월)까지
페이스북을 통한 미디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2017년 1월 ALT를
그만둔 진영 씨는 ‘더 이상 미디어 스타트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자신이 사업가로 적합한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결국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후 남은 한 학기 학교에 다니면서 영상 콘텐츠 외주작업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습니다. 뷰티,
세차 등 미디어 회사가 아닌 제품·서비스 기업의 홍보 영상을
기획 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외주작업은 예상보다 높은 매출을 올려 금세 아르바이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미디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고 돈을 벌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진영 씨
마음 깊은 곳에서는 또다시 창업의 DNA가
꿈틀거렸습니다. 혼자서도 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데 팀으로 모이면 수익이 괜찮겠다고 판단해
박용호, 강지인,
최유진 씨 등 3명의 멤버를
모았습니다.
저와는 각각 다른 인연으로 만났지만 멤버 4명의 공통점은 모두 외주 경력이 있다는 겁니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굳이 취직을 안 해도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죠. 또 하나, 4명 모두 미디어에 관심 있어서 영상을 찍어보는 등 뭔가를 직접 해본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미디어에 관심은 있지만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2018년 2월 완전체로 모인 네
사람은 ‘10년 뒤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생활미디어를 만들자’고
의기투합, 실패 없는 소비를 제안하는 영상 미디어 ‘포브(POV)’를 시작했습니다. 20대 또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로 ‘번만큼 누리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포브(POV)’ 모델을 발전시켜 가는 내내 떨쳐지지 않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이
서비스가 과연 20대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었습니다. 결국
3월
말
투자유치를 위한 *피칭(Pitching)을 앞두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입사 3년 미만과
3년 이상으로 사회 초년생을 구분해 타깃 고객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 관리를 돕는 서비스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직장인이 돈 관리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경제지 등 많은 전문매체들이 있지만 사회 초년생들에겐
너무 어렵거든요. 우리 네 사람도 도대체 우리가 어디까지 모르는 건지 몰라서 일단 공부를
시작했어요. ‘사회 초년생 재테크’를 검색해보니 ‘금리, 1·2·3금융권, 대출이자·저축이자’ 등
주르륵 나오는데 대부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고교 때 수학시간에 배운
단리 복리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전격적인 *피벗(pivot)이 진행됐습니다. 20대 또래들에게 실패
없는 소비를 제안하는 영상 미디어 ‘포브(POV)’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금융경제 정보를 또래 직장인 여성들을 대신해서 찾아 알려주는 미디어
‘어피티(Uppity)’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어피티(Uppity)’는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안 쓰이는 영어 단어로 오만, 도도한,
이기적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문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오만해도 좋으니 너희들이 최소한 번 돈에서만큼
당당해지라’라는 발칙함을 담았습니다.
이를 위해 비전문가인 4명의 멤버부터 본격 금융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수능 공부할 때 보다 훨씬 쉬웠다. 멤버들이
‘열공’한 자료를 ‘금알못 가이드’로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렸고 하루 만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표현 방식도 20대 취향을
반영했습니다. ‘채권,
금리 얼마나 아시나요’ 같은 무거운 표현보다
‘이것만 조금 아껴서 해외여행 가자’는 식으로 겨냥할
계획입니다. 3개월간의 노력 끝에 어피티는 7월 12일
첫 뉴스레터 서비스를 론칭했습니다.
‘어피티=사회초년생 여성을 위한 금융경제
미디어’로 굳이 타깃을 여성으로 구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남녀 누구에게나 해당되죠. 하지만 특히 여성이라면 10년 후 자신의 당당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경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번만큼 누리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경제지식이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돈 버는 여성들이라면
모두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손 안 벌려도 되니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경제력에서 발언권이 나오고 자연스레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여느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일을 하고 돈도 벌지만 왜 아직 여성들의 지위와 삶은 바뀌지
않았을까? 진영 씨는 10년, 20년 후 지속 가능한 경제력에 달려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번만큼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지금 10대 여성들이 살아갈
미래, 20년 후 여성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기저에는 경제력이 있음을 강조하는 진영 씨는 그 누구보다
여성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 여성입니다.
중학생인 10대 여성이 10년 후 25살이 됐을 때는 더 나은 35세를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20년 후에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넋 놓고 마주하기만 하면 안 되죠. 재미 삼아 사주를 봤는데
노년기에 전성기가 한번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이 제겐 좋은 자극이 됐어요.
‘왜 30대를 전성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60~70대에 전성기가 올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어요. 10대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20대는 직장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40~50대에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10대든 20대든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하면 진로 고민 역시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칭(Pitching): 보통 스포츠에서 쓰이는 단어로 투수(Pitcher)가 공을
던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유치 설명회 등을 일컫습니다.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업의 사업 방향과 목적, 투자금의 활용, 발전 가능성에 대해
투자자들 앞에서 설명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피벗(pivot): 스타트업이 원래 유지해오던 비즈니스 모델이나 경영 전략의 방향을 틀어서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창조해내는 것을 뜻합니다. 경제/경영 전문 매거진
Fast Company에 의하면 피벗은 “A change in strategy without a change in
vis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번역하면
‘비전을 바꾸지 않고 전략을 바꾸는 것’ 정도가
됩니다.
글_김 은 혜
에디터
출처_꿈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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