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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1961년 11월 12일 박의장, 미국 향발
【동경에서 본사 김인호, 김윤환】박정희 의장은 2일간에 걸친 일본방문을 마치고 13명의 요원들과 함께 12일밤 10시 서북항공기 편으로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미국으로 향발한다.
박의장은 준 국빈의 대우를 받으며 30시간에 걸친 체일 중 이케다 일본 수상과 2차에 걸쳐 회담을 하고 한일간 현안 타결을 위해 격의 없는 진솔한 토의를 하였으며 그 밖의 일 정부 및 여당지도자들과도 회담하였다. 박의장은 13일 상오 시카고에 도착할 것이다.
【워싱톤 12일발 AP=동화】케네디 대통령은 한국국가 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과의 14일에 있을 회담을 준비하기 위하여 미국무성 전문가들과 13일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다.
13일 백악관 회담에 참석할 인사는 극동문제 당당 국무차관보 월터 P.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 사뮤엘 버거 및 국무성 동북아국장 헨리 등이다. 박의장, 이박사 만날 계획 없다.
【호놀룰루12일발AP=동화】이곳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전 한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한 측근자는 11일 박정희 장군이 워싱턴회담을 마치고 호놀룰루를 방문할 때 이박사가 박의장을 만날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해서 만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워싱턴12일발 UPI=동양】비지네스 위크지는 12일 최근에 열렸던 미일 각료급 경제회담에서 일본측은 실망을 느꼈다고 보도하였다.
동지는 '일본측으로 볼 때 이 회담은 약간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고 '일본은 미국측 태도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상근회담서는 이러한 미측의 보장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정치/외교 1961년 11월 13일 미국의 귀빈 영접
박의장을 맞을 백악관 준비는 이렇다
O...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은 박, 케네디 회담을 갖기 위하여 11일 서울을 출발 25일까지 2주일에 걸친 방일 방미의 길에 올랐다. 박의장은 동경을 거쳐 시카고, 워싱톤, 뉴욕,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등 도시를 방문하게 될 스케줄이며 박, 케네디 회담은 지난 54년 7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아이크를 만난 이래 두 번째의 한미 거두회담이 된다. 냉전시대에 있어서의 외교는 거두, 또는 정상에 의한 접촉이 하나의 특성을 이루고 있으며 이런 정세에 따라 백악관은 여러 국가의 원수급들을 어떻게 맞아들이고 있을까? 그 실례와 과거의 예 또는 백악관에서 맺어진 거두 회담이 남긴 갖가지 에피소드를 묶어서 박의장이 백악관의 주인을 찾게 될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 최근 케네디 대통령과 회견하기 위하여 워싱톤을 찾는 외국의 빈객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지난 한 달 가량을 두고 백악관을 찾은 국가 수뇌만 헤아려 보아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말리의 케이타, 수단의 아부드, 핀랜드의 케코넨. 리베리아의 투브맨, 인도의 네루 등 흡사 가을철은 무슨 케네디 대통령 회견 시즌과 같은 이상이다.
* 방문의 목적을 대개 상호협력의 약속과 차관의 요청, 분쟁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지요청, 적극적인 경제원조 등 천차만별... 그 중에는 단순한 예방을 더 해보려는 목적으로 대통령을 만나게 해 달라고 의탁하는 사람도 있어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는 비어 본 날이 별로 없을 정도다. 박의장도 14일 하오 8시 블레어 하우스에서 러스크 국무장관이 베푸는 만찬회에 참석하게 된다.
* 백악관의 국빈은 3일간의 일정으로 우선 화요일 정오 워싱톤 공항에 도착하는 데서부터 행사가 시작된다. 공항에는 50피트의 빨간 카페트가 깔리며 양국국가가 연주되고 21발의 예포에 뒤이어 20분간의 의식이 있다. 화요일에서 3일간 이 국빈을 대우하는 모든 면에서 가장 편리하다는 것이 미국무성 의전과의 견해... 박의장도 화요일인 14일 워싱톤 공항에 도착한다.
연도는 양국 국기로 장식되고 환영인파로 뒤덮인다. 제 1일에는 백악관에서의 공식 만찬회가 있고 제 2일에는 국무성에서 부통령 또는 국무장관의 만찬회, 제 3일에는 답례로 호텔이나 자국 대사관에서 대통령을 만찬회에 초대한다. 국빈은 대통령 및 상원 외교위원장과 각각 한 차례씩 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 많으며 그 밖에 무명전사의 묘에 화환을 증정하고 의회가 개회중이면 거기서 연설하며 전국 기자 구락부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 이들 외국의 빈객들이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려면 훨씬 전부터 그 준비를 서둘러야 하며 때로는 1년 이상 걸리는 수도 있다. 어떤 외국정부의 고위층이 워싱톤을 방문하려면 우선 그 나라의 주미 대사에게 그 의향을 알려야 대사관은 국부성에 통고하고 국무성은 그 나라를 담당하고 있는 부나 과에 조회한다. 국무성은 동부, 과의 권고를 고려하여 대통령에게 진언하며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면 방문일자가 결정된다.
대통령이 어떤 나라의 수뇌급과 만나려면 수속이 그 반대 순서로 취해진다. 백악관에서는 국왕이나 대통령 같은 국가 원수인 경우에는 국빈 대우를 하고 총리 등 정부의 수반인 경우에는 준 국빈 대우를 한다. 이와 같은 외국의 빈객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 국무성 의전과의 일이다.
정치/외교 1961년 11월 13일 미국, 박의장환영에 만전
【워싱톤 12일발 로이타=동화】라프 해리스 기=케네디 대통령은 정치 경제 및 방위 회담차 13일 이곳에 도착하는 한국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대장을 따뜻하게 그리고 우호적으로 환영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박의장에게 미국의 대한 원조 계속을 확신하고 사태가 허락하는대로 곧 민정으로 복귀시키겠다고 공언한 박정희 의장의 목표를 고무시킬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군사혁명에 대한 의사와 염려의 심정은 이제 박의장이 부패를 일소하고 한국의 정치 및 경제생활을 안정시키려는 그의 시도로 말미암아 이곳에서는 만족의 뜻을 공공연히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관리들은 1963년 봄에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박의장의 공약을 환영해왔으며 박의장이 세제를 종식시키고 농공업을 진흥시키고 있는데에 감명을 받고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태는 1946년이래 대한 군경원조로써 50억불을 투입한 미국에게 지극히 만족한 것이다, 관리들은 박의장이 어떤 특별한 문제를 케네디 대통령과 협상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처해 있는 한미관계를 충분히 평가하게 된 전반적인 의견교전을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박의장이 케네디 대통령과 토의할 관건적 문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표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 케네디 회담의 주요 의제
(1) 한국의 5개년 경제계획에 대한 미국원조, 한국의 5개년 경제계획은 석탄과 전력생산의 대폭증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한국의 정치정세와 박의장의 민정복귀 예정표, 지난 10일 장면 전 국무총리의 연금을 해제하고 장면 정부의 고위관리들을 석방시킨 조처는 미국정부관리들을 기쁘게 했으며 감명을 주었다.
(3) 대한군사 원조와 중공에 중점을 두는 극동의 방위사태
(4) 한일관계,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극동에 있는 미국의 2대 우방인 한일 양국이 어로, 통상 및 제2차 대전 전의 일본의 한국 점령으로 생긴 재산문제를 포함하는 양국의 분쟁을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강조할것이라고 관리들은 예상하고 있다.
【씨애틀 12일발 UPI=동양지급전】한국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은 12일 밤 당제에 도착하고 그는 금주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할 때 가질 솔직한 견해 교환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장군과 유양주 소장을 포함한 5명의 한국정부 고위지도자 일행은 시카고로 향발하기에 앞서 당지에 잠시 기착했다.
박의장은 공항에서 기자들과 회견하고 통역관을 통해 그가 앞으로 케네디 대통령과 토의 하기를 희망하는 문제들 가운데는 미국의 대한경제 및 원조증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의장은 이어 미국은 국제공산주의의 만연을 저지함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공산주의에 항전하는 국가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지지와 원조를 제공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박의장은 또한 케네디 대통령과의 회담 외에도 자기는 '근년에 있어 한국을 도와 준 친구들을 가급적 많이 만나보고 싶다' 고 희망했다. 박의장 일행은 동경을 출발하여 알라스카의앵코리즈에 잠시 지착한 후 무사히 당지에 도착했다.
박의장은 당지에서 씨애틀 시내 고든 크리틀씨 및 알버트 토세리니 지사대리, 워싱톤 주방위군부관감 죠지 헤스케트 소장을 포함한 시관리 주관리들의 영접을 받았다.
정치/외교 1961년 11월 22일 미국 청년 약 300명이 시위- 비민주 국가에 원조 말라고
【샌프란시스코 20일발=동양】박정희 의장이 아세아재단과 북가주 세계문제 연구소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동안 20일 밤 센트 프래시스 호텔 앞에서 다수 젊은 남녀들이 피케트를 쳤다. 약 300명을 헤아리는 저명한 학자들과 실업계지도자들이 박의장이 아세아재단 이사장의 소개를 받았을 때 기립하여 박수로 환영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말쑥한 젊은 남녀들과 쿠바의 카스트로식 수염을 기른 청년들이 작은 마분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였다. 플래카드에는 '비민주주의 국가들에 원조를 즉시 중단하라' 운운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한 젊은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단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받지 않고 '그들은 미국 사회주의 연맹에 소속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들 젊은 남녀들에게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 전단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박의장이 연설 후 같은 장소에서 아세아재단 및 세계문제 연구소 간부들이 베푸는 만찬을 마치고 호텔 밖에 나오기 수시간 전에 젊은 남녀들은 이미 물러가고 없었다. 그 후는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정치/외교 1961년 11월 25일 박의장 방미에 대한 미국신문의 논평
박의장의 뉴욕방문은 한국혁명정부가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국민들 사이에 일으켜 놓은 인상을 더욱 강화하였다. 앞으로는 미국의 원조가 한푼도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정부의 초기의 강압적 수단도 이제와서는 고무적으로 덜해졌다.
혁명전 한국사회의 구악들과 공산침수의 위협 등 적체된 고난 앞에서 군부에 의한 남한의 신정권은 불가피한 과정인 것 같다.
복리 위한 성의 입증-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 워싱톤 포스트지 한국의 군사정부는 한국의 복리를 위한 진지한 성의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의 앞날에 난관이 가로놓여 있을지 모르나 올바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시준하는 많은 징조들이 보이고 있다.
성취한 공적 뚜렷-수원국으로의 자격 충분;쎈트루이스 포스트(15일자)
한국군사정부를 영도하는 박정희 장군은 금번 방미 중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충분한 경제원조와 60만 한국군의 현대화 계획을 다짐받았다. 군사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와 그 방법은 앞으로 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몇 가기 뚜렷한 공적을 이미 성취한 것만은 사실이다. 즉 한국의 군사정부는 수도 서울 시내의 모든 암시장을 깨끗이 일소하였고 공장 및 일반 가정의 전력남용행위를 못하게 했으며 농촌고리자금업자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기본적인 과제 -인구과잉 농토 및 자원부족, 실업자 대책 등- 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남한은 그 존립문제를 오직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완전자립을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현실적인 추미의 과제는 국민들에게 특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보람있게 살면서 이북 공산주의자들의 심리적인 압력을 물리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한국 국민의 복지 문제에도 관필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강직하고 자주성이 강하며 남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만약 박정희 장군과 그의 동료들이 국민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손상시키지 않고 소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주시한다면 원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과감한 모범인물- 부패일소에 노력 기대;뉴올리안스타임즈 피커윤(15일자)
혁명지도자들 중에서 남한의 지도자만큼 그 장래를 기약한다는 사전의 통고를 받고 미국에 온 이도 드물었다.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정부 고위관리들과 회담 차 방미중인 한국군사정부의 지도자 박정희 대장은 혁명 후 집권한지 6개원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국내에 있어서의 모든 구정권들의 부패를 일소하고 만성적인 경제적 불안을 정정하여 어느 정도 안정책을 모색하려는 강직하고도 결단성 있는 모델인물이라고 당지에서는 보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지난 5월의 무혈군사혁명 당초에는 어느 정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해 왔으나 그 후 박의장의 과감한 시책에 대하여 전폭적인 기대를 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년 44세의 박정희 장군은 어떤 자기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 정권 당시의 관리들 간에 고질이 되었던 부패 부정 및 무능에 대하여 몹시 싫증을 내고 있는 사람이며 모든 밀수행위자 탈세자 교직관리 공금횡령자들에게 벌을 가하고 실업자 실력부족, 수송통신시설의 불충분 및 식량생산 부족 등 경제적 난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한국의 연초산업을 구제하기 위해 미국제 담배를 완전 회수함으로써 연간 450만불에 해당하는 국고수입을 늘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대학생 중 7할5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문과계 학생들과 25%에 불과한 자연과학계 학생들을 앞으로는 정반대의 비율로 만들 계획이며 연간 개인 소득이 50만불에 미만한 긴급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고자 산아제한을 실시할 것을 강구하였다.
한국위해 큰 성과- 경제개혁 매우 진보;워터타운 데일리타임즈(15일자)
남한의 신 지도자 박정희 대장은 지난 24일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2차에 걸친 회담에서 무려 3시간을 보낸 다음 군사 및 경제원조에 대한 케네디씨의 충분한 다짐을 담고 나왔다. 박-케네디 회담에서는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외부침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상호방위 문제도 토의된 결과, 만약 남한에 공산재침이 있을 경우엔 미군 파견문제를 포함하는 모든 원조가 제공될 것임을 미대통령으로부터 약속 받았다.
금전 방미에서 박장군은 한국을 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이나 그후 화부 소식에 의하면 일부 한국 관리들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5개년 경제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일정한 원조액을 약속해 주지 않았다는데 대해 실망했다고 언명하였다 한다.
그러나 미국 측 견지에서 본다면 케네디 대통령은 박장군으로부터 한가지 중대한 언약을 받아낸 것이다. 즉 박장군은 그의 군사 정권을 가급적 속히 민간통제에 복귀할 것을 약속하였고 1963년 여름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다. 현재 그의 군정이 실시하고 있는경제 향상책과 부패부정, 탈세 일소 및 고리채 정리를 위한 개혁조치는 만족스럽게 진척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취 감춘 부정관리- 조속한 민정복귀 기대; 캔사스 시더 타임즈(15일자)
박정희 장군은 열 가지 현명한 시책을 세워 가감히 실천해 오던 끝에 각종 경제개혁이 이미 실효를 거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정이득 행위와 전통적인 고질인 관리의 매직사건은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 외국 옵서버들은 현재 한국인들의 국민정신은 6.25동란 후 그 어느때 보다도 더 희망적인 것으로 고조되고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 또는 민간정권으로 조속히 복귀할 전망은 없다.
미국은 사실상 집권세력의 성격 여하에 구속됨이 없이 한국과 친근한 사이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 직접 북한 공산군의 남침위협이 있는 한 다수의 미군은 남한에 계속 주둔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독립을 위해 30억불 이상이나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려하면 정직하고 능력있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애쓰고 있는 박정희 대장의 노력에 대하여 미국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현재 의도하고 있는 예정일자보다 더 빨리 그의 정권을 민정에 이양한다고 한다면 그의 리더쉽은 한층 더 신임을 자아냈을 것이다.
강직한 권위적 정부-대일관계 개선은 고무적; 크리스찬 싸이엔스 모니터(15일자)
박정권은 최소한 2년간은 그 국민 신임을 시험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는 강직한 권위적 정부이다.
미국 관리들에겐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박정희 장군의 군사정부를 지지하고 있는지 그 여부가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현 군정을 대한민국의 구세군이 될 것을 바라고 있으나 일부 인사들은 그것이 과연 민정으로 복귀될 것인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군사정부의 지도자들 역시 그들 자신도 권력에 의해 부패될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양시기를 1963년으로 정해 놓은 것이라고 미국 관리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 전쟁 중에 수만명의 미국 청년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근 40억불의 무상원조를 한국에 공여한 미국으로서는 남한에 민주주의가 아닌 북한공산정권에 못지않는 전체주의 정부를 보게된다는 것은 미국 외교정책의 치명적인 실패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군사 정부엔 특별한 이데오로기가 없다는 것이 미국 관리들의 견해이다. 박-케네디 회담 후 발표된 공동 콤뮤니케는 유엔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 방법으로 한국의 통일을 모색한다는 그들의 결의를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미국이 박정희 장군을 기꺼이 지원해 주는 이유는 과거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부는 다같이 지대했던 것만큼 한국을 쇼케이스로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상당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2차대전 전 그의 점령국이었던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한데 대해서 미국은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다.
종기를 시원히 절개-아주 장래에 큰 의의 입증;오크랜드 트리뷴(19일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미국방문은 쟈와할랄 네루 인도수상의 방미보다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아세아 세계의 장래에 대해 더 의의심대함을 입증할 것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공산무력침략에 직면해야만 할 위험성은 벨린에서 우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될 가능성에 못지 않게 큰 바 있다. 박장군은 1953년의 한국전쟁 이래 한국 사회에 곪아온 종기를 시워스럽게 절개하였다.
정치/외교 1963년 3월 21일 미국, 한국과 분규설
【동경20일발UPI=동양】미국은 심술궂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수 천명의 공산포로들을 해산함으로써 휴전협상을 거의 결렬시킨 이래 한국과 가장 신랄한 분규에 빠지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말하였다.
동 소식통들은 한미분규는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군정을 4년간 연장하려는 박의장의 급작스러운 계획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동 분규는 또한 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천 5백만불의 추가적인 직접 무상 원조를 얻으려는 한국정부의 요청과도 관계되어 있다.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은 박의장이 8월까지 민정이양을 하겠다던 케네디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관리들에 대한 약속을 위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소식통들에 의하면 박의장은 미국이 한국의 추가원조요청에 대해 완전히는 공평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한다.
미국이 군정으로부터의 민정이양을 바라는 것은 구정치인들을 집권시키려는 의도에서가 아니고 주로 65만 한국군에 대한 통솔권을 재확립하려는데 있다고 소식통들은 시준했다.
정치/외교 1963년 3월 21일 미국, 대한 정책에 진중태도
【워싱턴 20일발 동양】미국은 당분간 한국 문제를 외교적으로 다루기로 결정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원만한 민정이양의 터전이라고 여러 번 권장한 바 있는 2.27 선언으로 돌아가도록 박의장을 설득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다른 수단을 이용하면 한국에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초기적 방법으로서는 외교적 수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 소식통은 버거대사가 지난 15일 이후에 박의장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외교적 수법이 아직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고집했다. 한편 국무성 대변인이 링컨화이트씨는 나날이 변하는 한국정세에 비추어 국무성은 18일의 성명 이외에 할 말이 없다고 20일에 말하였다. 18일의 성명은 '한국의 변화한 정제가 미국의 대한정책 수행에 미칠 영향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의 것이었다.
【워싱턴20일발AP동화】미국은 연 5일째인 20일에도 박정희 의장 영도하의 한국군사정부와 박의장의 한국군사정부와 박의장의 군정 4년 연장안에 대한 공식 태도에 과하여 의연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국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사태를 검토하고 있다고만 말하였다. 그러나 미국관리들은 미국의 공식적인 침묵이 한국 군사정부계획의 묵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증거로 보아 박의장에게 건의를 하여 정치활동 금지를 해제하고 자유선거를 통해 민정을 복귀시키겠다는 그의 2.27 약속으로 되돌아가도록 종용하는 외교적 노력이 배후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만일 박의장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 미국의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아무런 명백한 징조가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코스타리카에서 돌아오면 21일 늦게 (한국시각=22일상오 8시)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이 때 박의장 정권에 대한 미국 태도를 천명될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한편 링컨화이트 국무성공보관은 기자들에게 한국에 관한 사태에 논평하라는 요청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날이 변화하는 사태에 비추어 보아 나는 한국사태 발전이 미국의 대한정책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를 검토하면서 사태를 엄밀히 주시하고 있다는 18일자 논평 이상으로 덧붙일 말이 없다.‘
막후 외교설 시인
【워싱턴30일발 로이타 동화】미국무성 대변인은 20일 미국정부가 박정희 장군하의 군정을 4년 연장하겠다는 그의 제안에 대하여 위할 미국태도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관리들은 비공식적으로 아무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는 국무성 태도가 박의장의 군정 연장안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박의장에게 건의하여 민정이양을 다짐하는 그의 약속으로 되돌아가고 정치활동 금지를 해제하라고 종용하는 막후 외교 노력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였다.
[이번엔 울지 않았다]-뉴스위크지 보도
3월 25일자 뉴스위크지는 '이번엔 울지 않았다' 제하에 다음과 같이 한국 정정을 보도하였다.
'한국의 스트롱 맨'박정희 장군이 눈물을 흘리면서 예정대로 오는 여름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민정을 회복시켜 놓은 다음에 자기는 정계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불과 한달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주 한국 사람들은 정치적 약속이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년 45세의 박정희 장군은 엄숙한 표정으로(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서울에서 TV카메라 앞에 나가서 한국이 민주주의 여정을 지향하고 잇다는 그나마의 작은 희망을 깨뜨려 버렸다.
박장군은 이 자리에서 최근에 적발된 정부전복음모사건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최고회의는 총선을 취소하고 앞으로 4년 동안 더 정권을 담당하기 바란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전국민은 내월 국민 투표로 가부를 결정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며 만약 이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만대투표를 던진다면 자기는 종전대로 현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박장군은 한국국민이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오도록 다짐하기 위해 즉시 모든 정치 활동은 금지시켰다. 옵섭들은 한국 사람들이 박장군이 이번에는 꼭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투표에서 감히 반대표를 던질 사람은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민정회복에 협조-임창영씨 케네디 대통령에 전문
【뉴발트(뉴욕주)20일발 AP동화】전 유엔 주한 한국대사 임창영 박사는 20일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국군사 정부에 대하여 민정을 회복하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에 직면한다'고 경고하라고 요구하였다.
임씨는 전문으로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국은 '내란의 마로 1보전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는 한국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어 ' 본인은 군사정부에 대하여 그 언약을 수행하고 충실하게 민정을 회복하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경고하라고 귀하에게 호소한다' 고 말하였다.
[미국에서 내정간섭]-향항지 들이 주장
【홍콩20일발 AP동화】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들은 20일 미국이 한국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신만보(新晩報)는 만일 군정을 연장시키려는 박정희 의장이 계획이 미국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철회된다면 이는 비극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치/외교 1963년 03월 22일 3.16성명에 대한 미국측 해명 전달한 듯 : 이공보실장 담화
박의장은 청와대에서 있은 버거 대사와의 회담 뒤 이후락 대변인을 따로불러 약 한시간 동안 요담했다.
이 대변인은 이 회담이 『내외정세에 관한 쌍방의 의견교환을 했다』고 말하고『이 이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한국의 정치정세를 토의하기 위해서 만났다』고 말했다.
김수반도 각의에서 버거 대사와 『한국정치정세 전반에 걸친 문제를 협의했다』고 보고했다.
김수반은 버거 대사와 만난 뒤에 곧 최고회의로 가서 박의장에게 회담내용을 보고했으며, 바로 그 뒤에 박의장은 버거대사와 만난 것이다. 박의장과 버거 대사와의 회담에는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이 참석했으며, 김수반과의 회담에는 버거 대사만이 나왔었다.
버거 대사는 김수반을 만나기에 앞서 상오에 대사관에서 멜로이 유엔군사령관, 킬렌 유섬 처장 등과 약 두 시간 동안 회담을 가졌다. 버거 대사는 최근 며칠동안 줄곧 멜로이 사령관, 킬렌 처장등과 회담을 갖고 당면한 한국 정세를 검토했었다.
긴장 상태 대비- 매일 연석회의
박정희 의장은 3.16 성명이 발표 이후의 국내 정세 검토와 초긴장 상태를 빚어 낸 최근의 정국타개책을 신속히 마련하기 위해 매일 하오 5시 최고위원과 김현철 내각수반 및 관계 각원들과의 비공식 연석회의를 갖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의, 데모 대책 논의
정부는 21일 하오 임시각의에서 데모 등 위법행위는 앞으로『법대로 다룰 것』을 다짐하고 시국규합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미국 소식통 언명
【워싱톤 21일발 AP급전 동화=본사특약】미국은 박정희 장군에게 한국군정 4년 연장안에 관한 미국측 견해를 전달하고 그에게 재고를 요청하였다고 미국 소식통들이 21일 말하였다.
조지 W. 미국무차관은 사뮤엘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21일 박장군과 가진 90분간의 회담시에 전달한 메시지에서 한국의 입장의 윤곽을 밝혔다고 동 소식통은 덧붙였다. 회의 후 미국 측 대변인은 버거씨는 미 정부의 훈령에 따라 한국 정세를 토의했다고만 말하였다.
한편 일단의 한국 한생들과 시민들은 한국의 군사통치에 항의하기 위하여 백악관과 한국대사관 앞에 피케트를 치고 정오에 데모를 할 것을 계획했다.
케네디 미 대통령이 한국의 정치위기에 관해 어떤 조치를 계획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즉각적인 시준은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GMT 23시(한국시간 22일 상오 8시)에 잇을 기자 회견에서 미국 측 견해를 밝히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 같다.
정치/외교 1963년 4월 7일 미국은 한국 사태에 서두르지 말라고
【동경5일발UPI=동양】일본의 동경신문은 5일 일본은 한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보
다 더욱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동 신문은 한국군사정권에 대한 미국정책에 논평을 하여 이케다 수상이 영국외상 흄 경에게 일본은 반드시 한국정부의 조속한 민정이양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였다는 보도에 공명한다고 말하였다. 동경신문의 시사 해설자는 『한국민족에 관한 일본의 연구는 미국의 구것보다 더 앞서 있으며 사실상 일본은 40년 이상이나 통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국은 그의 민주주의를 팔아보려는 이상주의적 청년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대도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으로 하여금 민정이양을 하도록 성급히 요구하지 말라고 미국을 설복시킬 것이라고 운운한 이케다 수상의 주장을 본인은 지지한다』
정치/외교 1963년 04월 25일 한국정정에 미국 입장 지지-미국 페이지 교수 평
【워싱톤 23일발=동양】플린스톤 대학의 글렌 페이지교수는 23일 뉴욕타임즈지에 기재된 서한 가운데서 한국국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자유롭게 선출할 권리를 굳게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을 환영했다.
그는 4월 17일자 동지 동판에 실린 하바드 대학교수와 그너는 '박정희 장군으로 하여금 2년 더 집권케 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와그너 교수는 말했던 것이다. 한국 국민은 박장군이 민주원칙을 도중하며 그를 제외하고는 나라를 이끌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와그너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페이지 교수는 만일 와그너 교수의 견해가 옳다면 박장군은 자유선거로 민간인들과 대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그네들이 힘으로써 통치하는 이유는 방우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외교 1963년 5월 4일 미국 박의장의 출마운동을 주시
【워싱톤 2일발 AFP=합동】박정희 한국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자기가 계속적인 집권을 추구할 것인지 또는 그를 단념할 것인지에 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거니와 이와 같은 박의장의 애매한 태도는 미국정부에게 크나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정부 내 극동문제 전문가들은 박의장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소지를 닦기 위해 비공식적인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권위 있는 미국정부당국자들은 박의장이 어떠한 조건으로 계속 집권을 꾀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그가 어떠한 조건으로라도 계속 집권하는 경우 미국 정부로서는 불가피하게 그의 대한정책에 고통스러운 재평가를 가하기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시준하고 있다.
미국정부내 소식통들은 미국이 한국의 민간정당지도자들이 단일 연합대통령 후보의 지명에 합의할 수 있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워싱톤의 관계전문가들은 민간정당의 단일 연합대통령 입후보가 투표의 과반수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많은 정당이 현재와 같은 난립상을 조정하지 못하고 대립을 계속한다면 박의장은 사실상 벌써부터 승리를 축복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관측되고 있다.
논평할 가치가 없다-이실장, AFP보도에 언급
【불국사에서 본사 이자혜전화】이후락 회고회의 공보실장은 3일 밤 미국은 박의장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대한정책을 재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워싱톤 발 AFP 보도에 관해 전혀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의장을 수행한 고위책임자는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나에게 들려준 말로는 미국은 정당제도를 통한 선거로써 민정이양을 하면 좋다고 말한 바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박의장의 거취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AFP보도는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다고 논평했다.
정치/외교 1963년 6월 7일 미국은 한국의 국정간여간섭아닌 충고일 터
김현철수반, 원조 적절히 사용
[서울5일발 AP동화]로버트 언슨= 미국은 한국의 정치문제에 간섭하고 있는가. 이 문제 대해 몇몇 군사정부지도자들은 간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김내각수반은 4일 미국의 활동은 간섭이라기 보다 충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민간인으로서는 군사정부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김수반은 본 기자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최고 문명국으로부터 가장 미개인 취급을 받고 있다거나 미국인은 인디안 정복식으로 모든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몇몇 군사지도자들의 생각을 자기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요구한 2천 5백만불의 추원이 1천만불이나 삭감된 데 대하여 정부측근자들은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내각수반실에서 김수반은 추원결정이 늦추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원조는 미국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유효히 사용될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미에 내년원조 1억불을 요청
김현철 내각수반은 5일 정부는 이미 미국에 내년도지원 원조로 금년도와 같은 규모의 1억불을 요구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요구액 중 미국정부가 어느정도 국회에 요구하고 국회가 얼마를 승인할 것인가가 내년도 경제의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추가원조 할당에서 1천만불 삭감이 원자재수급에 있어서 차질을 일으키겠지만 전년도이월분이 아직 남아있어 그 차질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내년도가 문제라고 염려했다.
김수반은 또 경제기획원이 5개년계획의 3차년도 경제성장률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외교 1963년 5월 4일 미국 박의장의 출마운동을 주시
【워싱톤 2일발 AFP=합동】박정희 한국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자기가 계속적인 집권을 추구할 것인지 또는 그를 단념할 것인지에 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거니와 이와 같은 박의장의 애매한 태도는 미국정부에게 크나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정부 내 극동문제 전문가들은 박의장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소지를 닦기 위해 비공식적인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권위 있는 미국정부당국자들은 박의장이 어떠한 조건으로 계속 집권을 꾀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그가 어떠한 조건으로라도 계속 집권하는 경우 미국 정부로서는 불가피하게 그의 대한정책에 고통스러운 재평가를 가하기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시준하고 있다.
미국정부내 소식통들은 미국이 한국의 민간정당지도자들이 단일 연합대통령 후보의 지명에 합의할 수 있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워싱톤의 관계전문가들은 민간정당의 단일 연합대통령 입후보가 투표의 과반수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많은 정당이 현재와 같은 난립상을 조정하지 못하고 대립을 계속한다면 박의장은 사실상 벌써부터 승리를 축복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관측되고 있다.
논평할 가치가 없다-이실장, AFP보도에 언급
【불국사에서 본사 이자혜전화】이후락 회고회의 공보실장은 3일 밤 미국은 박의장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대한정책을 재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워싱톤 발 AFP 보도에 관해 전혀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의장을 수행한 고위책임자는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나에게 들려준 말로는 미국은 정당제도를 통한 선거로써 민정이양을 하면 좋다고 말한 바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박의장의 거취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AFP보도는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다고 논평했다.
산업/경제 1963년 6월 9일 관리사절을 견미국
8일 한국경제인 협의회는 양곡사정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애 대한 대책으로 정부불에 의한 외곡수입보다 미국 잉여농산물 추가 획득에 중점을 둘 것과 부득이 정부불로 도입을 할 때엔 비싼 백미보다 값싼 소맥 등의 이곡을 들여와야 한다는 내용의 '양곡정책에 관한 건의서'를 최고회의 의장 등 5개 기관에 제출하였다.
동 협회는 이 건의서에서
①대만미 5만톤 일본경유 도입을 즉시 중지하고
②금년도의 계획상 양곡부족치를 정확히 수정하여 미국원조 당국에 실정을 납득시키고
③2차협정에 의한 미원맥 7만 5천톤 및 추가로 고려중인 다른 7만 5천톤의 도입 외에 소맥 조, 수수 등의 잡곡 40만톤을 더 들여오도록 하며
④이를 위해 관민합동 사절단을 견미하라고 건의했다.
정치/외교 1963년 8월 8일 미국, 한국정정을 주시
【워싱톤 6일반UPI=동양】리로이 핸슨기자=당지에서는 한국의 실권자인 박정희 장군이 또 다시 공약을 어기고 이번 가을에 총선거를 실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장군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부 안팎에 적지 않다, 1961년 5월에 집권한 박장군은 전국 선거를 실시하고 정권을 민간인에게 넘기겠다고 전에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이 약속을 취소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군정연장을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로서는 선거가 결국 실시되고 박장군은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출마할 것 같다. 그러나 일부 미국관리들은 그들이 박장군의 선의를 확신하고 있지 않다는 기색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한 번 불에 덴 사람은 갑절로 겁이 많아진다는 것이 일부 미국관리들의 심정이다.
미국관리들은 박장군의 위약으로 한 번 데었기 때문에 그가 장차 패할 때에도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미국관리들이 최근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된 데 대하여 관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장군이 군사적 통치력을 유지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최근 한국의 휴전선에서 한국군인 수명과 미군수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짙어졌다.
워싱톤의 일부 소식통들은 박장군과 그의 군사 위원회가 이 사건을 들어 계속 집권하는 구실로 삼으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전선의 군사적 정세는 악화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정부를 민간인들이게 돌릴 때가 아니다' 라고 박장군이 말할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정치/외교 1964년 8월 7일 미국의 보복을 지지
박정희 대통령은 6일 통킹만 사태에 관해 존슨 미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월맹공산군의 새로운 침략행위에 대항하여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동남아의 안전을 수호코자하는 미국의 결심을 명백히 표명한 성명서를 본인은 한국민과 더불어 환영하고 지지하는 바라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4년 9월 13일 한일 문제를 협의-박대통령 브라운 미국 대사와 회담
박정희 대통령은 14일 상오 11시 청와대에서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와 약 40분간 단독회담을 가졌다. 박상길 창와대 대변인은 브라운 대사 취임 후 최초의 개인적인 환담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으나 소식통은 한일회담에 관해 미측이 적극적인 조정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전
했다.
박대통령은 브라운 대사와 회담하기에 앞서 정총리, 이 외무부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약 30분 동안 당면한 외교 문제에 관해 보고받았는데 특히 평화선 내에서의 일본어선 나포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외교 1965년 5월 30일 미국의 한국관
사실 솔직히 말해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양키 고홈의 슬로건이 나돌고 있으나 한국에서만은 아직 그러한 말이 없지 않나요?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실정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 또는 정책의 바탕을 흐르고 있는 한 가지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한 정부고위관리는 워싱턴에서 여러 번 이러한 말을 했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박대통령을 환영하는 미국부성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대변하고 있는 지난 17일자의 사설에서 박대통령 정부는 오랜 적대관계에 있었던 일본과의 화해를 이룩했고, 월남에서의 미국정책 지원을 위해서 2천명의 한국군대를 월남에 파병함으로써 존슨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정부를 기쁘게 했다고 말한 것과 위에서 인용한 정부관리의 해석을 종합해 본다면 박대통령 일행을 빈틈없이 환영한 미국 정부의 자세와 박대통령 일행이 미국 정부에 대해 어떠한 지원을 요청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지에 와서 아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미국의 대한 정책의 기본방향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박대통령이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을 통해서 '비록 정치적인 보상을 요구할 망정- 미국의 정책에 동조내지는 그것을 지원할 것을 뚜렷하게 표명했다는 사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안락
둘째는 비록 군사혁명이라는 비상 수단으로 정권의 자리에 앉기는 했을 망정 그 뒤 일단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미국이 바라는 바 현상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데 대한 신임. 이 두 가지 기본 방향을 놓고서 미국의 대한정책을 살핀다면 이번 박대통령의 방미는 쉽게 결말이 내려질 수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미정부 안에서도 대한국정책수립과 관련이 없는 분야의 정책수립자들이나 또는 미국정책을 카버하는 언론인들의 인상은 전혀 다르다. 유엔 본부에 박대통령이 들렸을 때 유엔 본부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신문기자가 '지금 온 이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묻는 것이라든지 로스앤젤레스의 프레스 클럽에서 '한국의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가 '또는 '당신들이 기사를 쓴다면 대사관에 보내는가 또는 박대통령한테 보이는가' 하는 식의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극동관계 외의 정책 수립자들도 한국에 대해서는 의외로 어두운 것이 사실이며 심지어는 서울서 몇 해 동안 근무하고 돌아온 외교관에게 서울의 통행금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동정 삼아 묻는 동료직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인식을 그르치고 있는 아웃 사이더는 사실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직접 한국 문제를 다루는 정책수립자들의 경우가 문제일 것이다.
그런 실례는 몇 가지 들 수 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미국부성의 극동관계 책임자들 가운데는 친일정책을 추종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박대통령을 수행했던 고위소식통은 '한 두 사람의 키 멤버가 친일적이기 때문에 간혹 정책상의 차질이 있었으나 이번에 그러한 오해는 깨끗이 풀렸다' 고 말했다.
또 그들이 친일적이기 때문에 입는 손해의 하나로서는 이런 것도 있다.
브라운 주한대사는 아직 한국사정에 정통하지 못하고 서울 대사관의 기능이 아직 완전히 브라운 체제로 바뀌지 않아서 충분한 신정보고가 안돼고 있는 반면, 가장 친일적이라 할 라이샤워 주일대사는 일본사정에 정통할뿐더러 국무성의 공기가 친일적인만큼 한일회담에 관한 현지보고 같은 것은 거의 노골적으로 한국 측에 불리해진다는 것이다.
앞에 인용한 고위 소식통도 워싱턴에서 보니까 국무성의 실무선에서는 한일회담의 본조인을 박대통령 방미 전에 할 것을 강경하게 요구한데 존슨 대통령도 그러한 선에서 한일 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뒤에야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을 정도다. 또 다른 면에서 볼 때는 미국의 고락을 들 수도 있다.
얼마 전 서울을 다녀온 미국무성의 고위관리는 한국의 정치적인 계층구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그가 내린 진단은 이런 것이었는데, 이것은 서울에서 정치인들이 직접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은 인상을 기자는 받았다. '공화당은 그 주도층이 40대의 장년들이고, 그것을 후원할 만한 예비층 조차도 마련해 두고 있다. 또 그들은 정치에 미숙하기는 할 망정 새로운 시도를 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야당은 오랜만에 통합을 해서 강력한 야당 구실을 한다는데는 안도가 가지만 그 주도층의 구조에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영도자는 60대의 노년층인데 그들을 보좌하는 중견층은 40대 따라서 세대상으로 후계가 가능한 50대가 없을뿐더러 가장 중요한 예비층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치판단은 뒤로 미루고라도 공화당에서 어떤 젊은 인상을 받는 게 사실이라면 야당에게는 아직은 그것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옛날이나 다름없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미국무성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 그의 이런 견해는 미국의 대내정책 수립에 적지 않은 작용을 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가 가진 한국과의 극히 적은 하나의 측면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나는 서울서 돌아와서 그런 인식을 더욱 새로이 했다' 고 강조한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른 국무성 관리의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해석은 이렇다.
다른 후진국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정치적 압력단체 구실은 학생이 하고 있다. 또 그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경우는 전혀 불만을 분설할 분출구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데모와 같은 적극적인 현실참여에 대한 강압적인 제재가 반드시 현명한가에 대해서는 미국은 큰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연차계획으로 학생교환 계획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간접적인 방법보다는 한국정부 자체의 힘으로써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개인적인 견해' 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미국의 대한정책은 최근 한일회담과 월남파병으로써 새로운 전기에 서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새 전기는 한국정부의 자세여하에 따라서 그 계속여부가 가름될 것이다.
정치/외교 1966년 1월 30일 국군증파부대 조건 미국서 회답각서
박정희 대통령은 29일 하오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이동원 외무 및 김성은 국방부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장시간 요담했다. 요담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한미간에 교섭이 진행중인 국군의 월남증파문제에 대한 정부측 태도를 협의한 것 같다.
이에 앞서 이동원 외무부장관은 이날 오전 외무부로 브라운 미국대사와 도허티 부대사를 초청, 한국군 증파에 다른 사전 보장 문제를 협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브라운 대사는 미국 정부의 태도를 표명하는 각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 브라운 요담의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외무부 당국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미국정부는 한국군 증파에 앞서 한국정부가 요청한 (1)한국 휴전선 방위의 철저 (2)파월장병의 처우개선 (3)국군장비의 현대화와 3개 예비사단의 전투사단화 (4)군원이관의 중지 등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고려를 확약했으나, 바이 아메리칸 정책의 완화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보완 등에 대해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증파문제는 박대통령의 동남아 친선방문 전에 결정될 것이며 사전 보장에 대한 미국 측의 성의 여하에 따라 결정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6년 2월 3일 미국 워터스 대장 박대통령 예방
미태평양지구 육군사령관 존 K. 워터스 대장은 2일 오후 브라운 대사와 비치 유엔군 사령관의 안내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 약 40분간 요담했는데 미국의 월맹폭격 재개후의 동남아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외교 1969년 3월 25일 박대통령 막후압력 오끼나와 미국서 관할토록
[워싱턴=동양] 워싱턴포스트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오끼나와를 미국의 관할하에 두도록 미일 양국에 막후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30일 보도했다.
정치/외교 1969년 7월 4일 미국독립 기념일 축전
박정희 대통령은 4일 미국의 제193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독립 기념일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독립과 자유의 원칙이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여 평화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려는 결의를 갖춘 전세계 국민들을 합시켜 주고 있음을 마음 든든히 여긴다' 는 요지의 축전을 닉슨 미국대통령에게 보냈다.
정치/외교 1969년 8월 21일 박대통령 내외 미국으로 떠나던 날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닉슨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던 20일 오후 김포공항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물결쳤다.
오후 1시 12분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환송 사열을 끝낸 박대통령은 '이 더위에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 나와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돌아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는 단 두 마디의 출발 인사를 했다.
대통령의 나들이로서는 어느 때보다 간소했던 이날 공항 행사에서 박대통령은 이후락 비서실장의 안내로 환송군중 가운데 입법부 코너만을 찾아 공화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신민당 의원들은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동안 병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구영 의원은 김종필씨 내외의 부축을 받고 나와 눈길을 모았다.
한복에 옥색 고무신 행운의 매트슨 양
한편 대통령 일행과 함께 미국가지 동승하는 행운을 얻은 유학생 이진구군과 제인 매트슨양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영광' 이라면서 트랩에 올랐다. 매트슨 양은 박대통령의 호의에 보답하는 뜻으로 옥색 치마저고리에 옥색 고무신으로 몸단장을 했으며 '고향에 돌아가 한국을 크게 알리겠다' 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9년 8월 23일 미국 속의 동양의 관문서 만난 두 원수
O... 문테레이 시에서 하룻밤을 쉰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22일 새벽 헬리콥터 편으로 미군사령부의 프리시디오 연병장에 도착, 자동차편으로 미군 의장대가 연도에 도열한 가운데 멀리 북쪽으로 골든 케이트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환영식장으로 가 미리 나온 닉슨 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어 박대통령과 만나 금문교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연병장에 마련된 환영식 단상에 나란히 서서 21발의 예포가 은은히 울려퍼지고 두 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멀리 워싱턴에서 온 5개 소대 1백45명으로 구성된 육해공군과 해병대 그리고 해안경비대 의장대를 사열했으며, 이 때 단하 오른쪽에는 육영수 여사와 닉슨 대통령 부인 패트 여사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특히 이날 환영식에는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는 약 7백명의 교포, 유학생을 포함한 수천명의 환영객이 환호성을 울리고 있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환영이라는 우리말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박대통령은 이날 환영식이 끝난 다음 이 제6군 장교 구락부에서 미국측의 공식 수행원들을 접견하고 조셉 엘리오트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부터 행운의 열쇠를 증정 받았다.
행운의 열쇠받아
박대통령 내외와 닉슨 대통령 내외는 장교 구락부에서 코피를 나누며 약 15분 동안 환담했는데 닉슨 대통령의 루마니아 방문이 주 화제였다고.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루마니아의 방문은 크나큰 업적을 올린 것' 이라고 찬양하자 패트 여사는 '루마니아 국민으로부터 상사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고 자랑했고 이 말을 받아 육여사는 '그것은 공산주의 밑에서 맛보지 못한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나온 것' 이라고 말하여 좌중의 공명을 받았다.
한국 경제 발전 칭찬
O... 박대통령은 21일 하오 1시 반 보헤미언 클럽에서 열린, 로저스 미국무장관 주최의 리셉션 겸 오찬회에 참석했다.
로저스 장관은 이날 참석한 약 1백20명의 귀빈들을 둘러보면서 '제가 가본 서울과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기후가 꼭 같아 박대통령 각하를 이곳으로 모시기로 했다' 고 유머를 하면서 '공산침략에 대항해 온 한미 양국의 유대는 이번 박대통령의 방미로 더욱 굳어졌다' 고 강조. 이에 대해 박대통령은 약 8년 전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대를 회상하면서 '미국이 오늘날 세계의 최강국이 된 것은 땅이 넓거나 자원이 풍부해서보다는 여러분의 조상과 여러분 자신이 개척정신으로 노력한 때문' 이라고 찬양했다.
이어 이날 밤 박대통령을 위해 환영 아치와 두 나라 국기에 묻힌 세인트 프란시스 호텔에서 베풀어진 닉슨 대통령의 만찬회에는 2백50명의 귀빈들이 참석, 대성황을 이뤘는데 이 스테이트 디너 의 주 메뉴는 로스트 더크. 뒤이어 워싱턴에서 공수되어 온 해병실내악단이 연주하는 아리랑 등 우리 음악에 맞추어 댄스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부엌시설 들러보고- 육영수 여사
O... 육영수 여사는 로저스 미국무장관 부처가 베푼 만찬이 예정 시간보다 길어져 21일 상오 8시 에야 신체불구 아동 50명을 수용하고 있는 슈라이너 병원을 방문, 불구 어린이들을 위문하고 흑백 17인치 텔리비젼 1대를 선물로 주었다. 육여사는 이 병원에서 실시하고 잇는 특수 물리요법과 최신식 부엌 시설을 일일이 돌아보느라고 예정 시간이 늦어져 골든 게이트 파크에 있는 캘리포녀 과학관 시찰을 취소했으며 돌아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투인 피크에 올라 시 전경을 굽어봤다.
세인트 프란시스 호텔에 도착한 육영수 여사는 닉슨 대통령 부인이 베푼 다과회에 참석했는데 육여사가 이 자리에서 '샌프란시스코 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고 소감을 말하자 패트 여사는 '5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받은 성대한 환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 답례로 인사를 했으며 육여사는 제1차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도 패트 여사를 방문, 다과를 나누며 다정한 한때를 보였다.
국방 1975년 5월 8일 미국 공약 의심할 이유없다
박대통령강조 자신 갖고 국민의 용기 북돋아줘야
정부 - 여당회의 ...정보부 브리핑
박정희 대통령은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크메르와 월남이 공산화된 이래 동남아시아의 정세변화에 고무되어 북한 공산당측이 오판을 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또다시 남침을 도발할 우려가 증대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현재 우리국군과 미군의 대비책은 만전하며 북괴가 무모하게 공격을 가해올 경우 이를 충분히 섬멸할 자신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중앙정보부로부터 인지 사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주변정세 및 이것이 우리 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고를 받은 다음 이 같이 말하고 우리의 우방이 스스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지키겠다고 되풀이하여 다짐을 하고 있는 이상 우리로서는 그 공약을 의심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박대통령은 다만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 모든 국민이 현시국의 중대성을 사실 그대로 똑바로 인식하고 자주국방의 굳건한 결의 국민의 단결 그리고 국가적 기강을 확고히 유지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부 여당의 모든 요원과 조직은 자신을 갖고 우리의 난국극복의 의지와 역량과 용기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복돋워 줌으로써 이미 보유하고있는 충분한 역량을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집중시킬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만드는데 솔선수범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한다음 지금 우리전방의 군의 사기는 높으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사기 또한 항상 높아야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보부는 이날 보고에서 인지사태이후 태국 말연방, 싱가포르, 필리핀 등이 대내정치 외교정책면에서 눈에 뛸 정도로 선회를 기도하고 있어 주목된다고 지적하고 중공이 동남아에서 소련과 함께 정치적 측면의 패권경쟁을 점차 치열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는 또 군사적으로 태국 말연방, 인도네시아가 내부적으로 게릴라 진압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표명했다.
국방 1976년 5월 29일 한-미국방공동성명
▲양장관은 한국의 안전이 동북아와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긴요하다는 것을 유의하면서 서해도서를 비록하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군사적 위협의 성
격과 범위를 공동으로 분석 평가했다.
▲양장관은 북괴위협에 대처할 한미연합군의 방위능력과 준비태세에 관해 토의 했다. 이와 관련하여 럼스펠드 장관은 미국정부가 현수전의 주한미군을 감축할 계획
이 없음을 확인했다.
▲양장관은 북괴가 체신고성능장비도입과 자체군수산업의 발전을 통해 공격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음에 유의 했다. 서장관은 비무장지대의 지하갱도구축을 포함한 북괴의 휴전협정위반사항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양장관은 서해도서를 포함하는 한국의 안보에 대한 북괴의 위협이 계속 심하다는데 대해 합의 했다. 따라서 양측대표단은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방지하고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에 충분한 한국의 방위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양장관은 이와 관련한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기로 합의 했다.
▲림 스펠드 장관은 한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있을 경우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기원을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서장관에게 보장했다.
▲양장관은 한국정부와 비국정부간에 합의된 한국군현대화계획의 주요증전사항을 면밀히 검토했다. 림 스펠드 장관은 미국이 현대화계획의 잔여분을 77년에 완료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서장관에게 보장했다.
▲서장관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추진할 계속적인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무력증강 5개년계획을 림 스펠드장관에게 설명했다. 림 스펠드 장관은 미국이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을 계속 지원할 것임을 다짐했다.
▲서장관은 방위산업과 관련,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포함하는 가일충의 자주국방을 위한 한국의 계속적인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림 스펠드 장관은 합일의 자주국방을 달성코자하는 한국측 계획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국이 한미양국간의 공동방위협력을 중진하고 이 분야에서 적절한 자원과 원조를 계속 지원해 줄 것임을 확인했다.
▲양장관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기키기 위해 한국정부가 취한 중요한 정책적조치에 유의 했다. 양장관은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73년 6월 23일자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 74년 8월 15일의 연설에서 천명된 평화통일 3개항에 유의했다. 양 대표는 또한 휴전협정유지 방안을 논의하고 더욱 기본적인 협정 교섭을 위한 보다 큰 규모의 회의 개최 가능성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재반 조치를 검토하게 된 직접당사자회의의 개최를 미국과 한국이 75년 9워 22일에 제외한 조치에 유의했다.
정치/외교 1976년 7월 3일 미국장교 부인회원에 만찬
근혜양, 백여명 초청
대통령영애 박근혜양은 2일 오후 조선호텔 볼륨엣 스팅웹 주한유엔국 사령관부인 등 주한불군장교 부인회회원 1백 3명을 초청 만찬을 베풀었다. (사진)
근혜양은 이 자리에서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초청한 것은 미국독립 2백주년을 맞아 귀국의 독립전신인 자유와 평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자 한국에서 애쓰고 있는 모든 미국친구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려는데 있다』고 말하고 『여러분이 보여준 근면 용기 그리고 자유에의 굳은 신념은 공산침략에 대처하는 우리의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흰바탕에 분홍색 무늬가 수놓여진 한복차림의 근혜양은 스팅웹 장군부인의 안내를 받으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미군 장교부인들은 『근혜양의 영어실
력이 탄복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만찬이 끝난뒤에는 선명회합창단이 몽금포타령, 울산아가씨 등을 불렀다.
만찬장소가 청와대 뒤뜰에서 조선호텔로 옮겨진 것을 아쉬워하면서 조선호텔에 가기전에 버스를 타고 청와대 앞길을 한바퀴 돌기도 했다.
이날 만찬에는 한국측에서 이범준, 서영희, 윤여훈의원을 비롯, 장효기 국방장관부인, 합
참의장 및 3군총장부인등이 참석했다.
국방 1977년 4월 15일 한미안보 회의 연기 미국무성 7월말∼8월초에
오는 6월 초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 10회 한-미안보협의회가 미소간의 전략무기제한회담(SALT)결렬 때문에 7월말이나 8월초로 연기될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미 국방성 대변인은 13일 6월초 열릴 예정이던 한 미 안보협의회가 6월초에 개최되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7월말이나 8월초에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금년서울에서 열리는 한 미 안보협의회에는 해롤드 브라운 국방 장관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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