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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태환 목사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최근에 각광을 받는 사회학적인 접근 방법(sociological approach)이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 당시의 사회학적인 이슈들을 반영(反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환경의 제약(制弱)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예언 활동을 하던 어느 시점이었을 것 것은 분명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1절)” 부터 예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B.C. 739년 경이었습니다. 이사야가 B.C. 680년 경 므낫세 왕 때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까 이사야서는 그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시대는 좋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국제 정세도 불안했고 국내 정세도 불안했습니다. 북쪽에는 비록 쇠퇴하기는 했지만 앗시리아(Assyria)라는 강대국이 여전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남쪽에는 국제 무대에서 앗시리아의 세력을 견제하는 애굽(Egypt)이 있었고, 동쪽에는 신흥 제국 바빌론(Babylonia)이 무섭게 국제 무대에서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유대나라는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국론은 분열되어 앗시리아에 충성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쇠퇴해가는 앗시리아 보다는 애굽에 줄을 대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신흥 제국 바빌론을 홀대한 것이 화근(禍根)이었습니다.
나라가 불안하니까 민심(民心)도 불안해서 자연히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성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우상들을 찾았습니다. 곳곳에 산당(山堂)들이 섰습니다. 그 와중에 히스기야(Hezkiah, 726-698 B.C.) 같은 사람은 나라를 개혁해 보려고 정성을 쏟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므낫세(Manasseh, 687-642 B.C.)는 아버지기 이루어 놓은 개혁을 거꾸로 돌이켜서 물거품이 되게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히스기야를 칭찬한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니라……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열왕기하 18:1-6).”
그러나 그러면 뭘합니까? 그는 자식을 올바로 기르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 자식은 아버지가 걸었던 정직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애써서 이루어 놓은 개혁을 거꾸로 돌려 놓았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했을 때가 유대나라가 가장 타락했고(역대하 33:9), 이사야도 므낫세 왕 때 순교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시대는 이러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때는 북쪽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조국 남왕국 유다의 역사 상 가장 불행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B.C.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조국이 또 다시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 그는 예언자로서 소명(召命, calling)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에 빠질 때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외치게 하십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시대는 가히 “선지자의 시대”라고 할만큼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왕국에서는 호세아(H0sea, 785-725 B.C.)와 아모스(Amos) 선지자가 있었고, 남왕국에서는 이사야와 미가(Micah, 725-700 B.C.)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동시대에 자기 조국이 가장 어려웠던 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가 동시대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동시대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 조국은 어떻고, 세계는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사야나 아모스나 호세아나 미가나, 또 그 뒤에 나오는 예레미야나 모두 하나님께서 쓰임을 받았던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기 조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국의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에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운명이 예언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 줄 씩 예언되어 있고, 주로는 자기 조국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세계 정보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세게 구석진 곳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일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세계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그 중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미전도 종족은 얼마나 되는지, 세계 각 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는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조금만 노력하면 모든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지도를 놓고 10/40 윈도우를 그려 놓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10/40 윈도우를 넘어서 키르키즈 창(window)이니, 러시아 소수 민족 창이니, 중앙 아시아 창이니, 몽골-시베리아 창이니, 소아시아 창이니, 페르시아 창이니, 중국 소수 민족 창이니, 인도 차이나 창이니 하는 보다 전문적이고 전략적인(strategic)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시대에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바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 교회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사야 6장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이 교회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까?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좀 소년 같은 생각아지요? 그런 생각은 진작했어야 할 것 같은데, 목사가 그런 생각을 한다니까 우습지요? 여러분이 웃어도 상관 없습니다. 저에게는 이 질문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잘 살아야지요. 그런데 이 잘 산다는 것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후회 없도록 살자!” 아무리 잘 먹고, 호의호식(好衣好食)했어도 죽을 때 자기 인생이 후회스럽다면 잘 못 산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후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이왕에 이렇게 죽을 것인데, 왜 성경 말씀대로 한번 멋지게 살지 못했을까?” “돈 버느라고 뼈빠지게 고생했는데, 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멋지게 한번 써 보지 못했을까?”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라는 말을 듣기만 들었지 왜 한번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까?” “선교, 선교 말만 듣고 남의 일로만 생각했지, 왜 한번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지 못했을까?” 이런 후회가 없겠습니까?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이사야가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입술을 성결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의 두려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죄의 삯은 죽음(The wages of sin is death., 로마서 6:23)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사야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장차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면 그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그런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너의 죄는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씻겨졌느니라.”
하나님은 친히 이사야의 입술을 깨끗하게 해 주심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
그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다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지금 죄악에 물든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걱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이렇게 죄악에 빠져 있는데 아무도 내 메시지를 가지고 가서 선포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기 백성이 걱정이 되면 직접하시면 될텐데, 하나님은 지금 자기를 대신해서 갈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계십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 경우는 성경에 별로 없습니다. 천지 창조하실 때나 직접 하셨을까 그 외에는 모두 사람들을 불러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부르시고, 야곱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선지자들을 부르시고, 그리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지금도 똑 같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자기를 대신해서 일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이사야는 그 자리에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Here am I. Send me! 8절)!”하고 대답합니다. 주저주저하다가 마지못해서 “정 갈 사람이 없으면 제가 가지요.”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선뜻 대답합니다. 찬송가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는 H.S. Mason이라는 사람이 가사를 썼습니다. 3절 가사에 보면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Mason이 이 가사를 썼을 때, 이사야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데,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손에 떠 밀려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사양하는 사람을 “모세 타입”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같은 사람도 모세 타입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 시키는 일을 모세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을 거절할 때에 “모세! 당신 그러면 안 되지. 당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다른 아기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아? 당신 다 죽다가 극적으로 살아났어!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다니, 당신 그러면 안 되지!”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그렇게 모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도 뻔질거리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회피하려고 하니까요. 꼭 우리 중에 누구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떠 밀렸던 모세지만 그는 자기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타입”이 있습니다. 이 타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주님, 가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나중에 순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이사야의 순교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 않지만 이사야가 순교했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이사야는 주님을 대신해서 가는 일이 순교의 길인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알고야 어찌 가겠습니까? 올해 단기 선교에 저를 포함해서 8명이 갑니다만, 모두 자기 앞에 어떤 고난이 있는지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그렇게 선뜻 대답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꼭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죄 때문데 죽는다고 배웠는데 그는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차피 죽었다가 산 목숨인데,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까짓 것, 내 생명의 은인이신 하나님께서 저렇게 나를 대신해서 갈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시는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내가 가자!” 이런 생각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 덤으로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어차피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올해는 우리 8사람이 가기로 결단했습니다. 이제 내년, 그리고 내 후년에는 여러분들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1885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왔던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1859-1916, Horace G. Underwood) 목사님을 아시지요? 그는 한창 미국 대학에 선교 열풍이 불었을 때, 인도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러다가 1883년 커네티컷에서 열린 신학교 연맹에서 주최한 캠퍼스 부흥집회에서 자신의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꿨습니다. 그는 그 모임에서 앨버트라는 목사를 통해서 조선의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지금 조선은, 1,300백만 민족이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채, 가난과 질병과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드디어 작년에 문호를 열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 민족을 위해 선교사로 갈 것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 그렇지만 그런 절박한 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조선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더우드의 마음 속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들 이럴까? 다들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하면서 왜 조선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그에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왜 너는 조선으로 가지 못하느냐?” 이 음성을 들은 언더우드는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결심한 후 2년만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 항구에 첫발을 내 딛습니다. 후에 언더우드가 쓴「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기도문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오늘 단기선교사로 헌신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이들을 보내고 후원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그 기도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
이 나라 조정(朝廷)의 내심(內心)도 보이질 않습니다. /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