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나?
나는 창세기를 좋아한다. 창세기는 “모든 시작”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6:8을 보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히브리어를 直譯하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더라(וְנֹחַ מָצָא חֵן בְּעֵינֵי יְהוָה׃)”가 된다.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다”는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 나온다. 예를 들면, 창39:4, 출33:16 등이다.
흔히 눈은 마음의 窓이라고 한다. 마음에 품은 것이 눈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기뻐하는 눈과 슬퍼하는 눈, 사랑하는 눈과 미워하는 눈, 차분한 눈과 당황하는 눈, 초롱초롱한 눈과 흐릿한 눈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이 눈으로 표현된다. 집에서 키운 개도 주인의 눈빛만 보고도 알아차린다고 하지 않는가.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다.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 답이 9절에 나온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곁길로 나갈 때가 언제일까? 하나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때다.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왜 항상 악했을까? 하나님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