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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알루미늄사다리
어묵원자재 냉동차에서 내린 안면 있는 기사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무님, 도치사장님도 안녕하시죠?”
운전기사는 항상 도치씨를 강사장이라 부르지 않고 도치사장이라 부른다. 이 기사가 도치씨를 도치사장이라 부르는 이유가 웃긴다.
도치가 보기는 참 독해 보이는데 유순하고. 똑똑해 보이는데 우둔하고. 음흉해 보이는데 정직하고. 맛대가리 없어 보이는데 한번 맛보고 중독성 일으킨 도치 탕과 알 탕을 못 잊어. 그래서 도치씨만 보면 도치 탕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진다나 뭐래나 그러면서 도치씨 어묵공장에 왔다 가면 꼭 로또를 산다고 했다. 혹시 기분 좋은 공장에서 기분 좋은 사장 만나고 가면 알 수 있어요? 제 팔자가 뒤집어 질지? 이것이 운전기사의 변이다.
“어서 오세요. 먼 길 고생하셨죠?”
아내의 인사에 운전기사가 허리를 95도 굽히며 말했다.
“맨 날 하는 일인데요 뭐. 사장님은 안계세요? 또 이거 가셨구나?”
운전기사가 낚시챔질 하는 시늉을 해보이며 낚시 갔냐고 물었다.
아내가 대답했다.
“아니요, 안에 계세요.”
“그럼 인사라도 해야죠.”
“그러세요. 그런데 나오실지는 모르겠네요. 잠간기다리세요.”
아내가 조심스럽게 도치씨의 낚시 방을 노크한 후 문을 삐쭘 열었다.
도치씨는 뒤로 돌아 앉아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아내가 문을 연 사실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연수산 기사가 인사하겠다는데요?”
도치씨는 대답이 없었다.
아내가 다시한번 더 말했다.
“여기로 들어오시랄까요?”
갑자기 도치씨가 신경질조로 말했다.
“아, 씨! 왜 이래?”
아내가 흠칫 놀라 얼른 문을 닫았다.
아내가 기사에게 돌아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하역하고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한동안 낚시장비 손을 안보시더니 뭐가 잘 안되나 봐요. 저를 땐 그냥 가만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에요. 아마 오늘은 저녁도 거르실거에요. 한번 빠지면 물불을 안 가리시잖아요. 끝날 때까지.”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집념이 대단하신 분이세요. 안부나 전해 주세요.”
기사는 그렇게 말한 후 아내와 직원을 동원해서 냉동차의 원자재를 대형냉동창고로 옮겼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다.
도치씨가 낚시장비를 돌아앉아 수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회전의자니까 한 바퀴 휭 돌리면 되겠지만 돌아앉아 낚시장비를 정비수리한다? 어딘가 심상찮다. 살금살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라? 그런데 이게 뭐야? 아무도 없는 도치씨의 방에서 도치씨가 혼자 수리하며 혼자 신경질을 1분 혹은 1분30초마다 계속내고 있었다.
“아뿔싸! 이게 아닌데?”
1분30초 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손댔나?”
1분 후.
“아무래도 CCTV달아야겠네!”
또 1분30초 후.
“아! 신경질 나게 안 되네?”
그리고 1분 후.
“제발 혼자 좀 내버려 두라니까!”
이렇게 온갖 말들을 도어로봇처럼 규칙적으로 혼자서 쏟아내고 있었다. 이왕 도치씨의 낚시 방을 살펴볼 바엔 정밀하게 살펴야지. 아하! 도치씨가 말하는 이유를 알았네. 그건 도치씨가 아니고 도치씨 의자에서 나는 소리였다. 의자에서 무슨 소리가 나? 신형의자인가? 아니야. 그게 아니고. 회전의자 뒤에서 보면 꼭 도치씨처럼 보이게 도치씨 옷을 입힌 마네킹을 앉혀 놨고, 그리고 자동오토프로그램으로 틀어 놓은 카세트를 무릎에 올려놓은 거야. 기가 막하네. 그 아이디어가 기막힌 게 아니고 위장코디가 너무 정교해서 도치씨로 안 속는다면 인간 아니야. 귀신도 속고 말 코디였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도치씨 착한 아내는 도치씨의 일이 잘 풀리기를 정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원자재하역작업을 마치고 오후의 남은 일과를 부지런히 해내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쪼옥 소리가 나도록 남은 바닥커피를 신경질조로 빨아들인 후 커피 잔을 쨍강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에 던지듯 놓고 도치씨가 카페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시간은 자꾸 흘러 약속시간 지난 지 45분이 임박했는데, 나타나야 죽 끓듯 끌어 오르는 부아를 풀기나 하지. 1초도 더 안보태고 말해서, 정확히 44분37초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이것들을 믹서로 갈아죽이고 싶도록 부아가 치밀어 더는 참을 수가 없는 도치였다.
“이 개 같은 년 놈들! 다시는 안 만날 거야!”
미친놈처럼 뻑 소리 지르자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도치씨가 깜짝 놀랐다. 중량이 1g도 틀리지 않을 듯싶은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도치씨는 아내로 착각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여자가 씽긋 웃었다. 너! 바람 맞았구나! 에이고 어쩌냐? 그런 눈웃음이었다. 도치씨는 여자가 너무나 아내와 흡사해서 일어섰던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순간적으로 힘이 풀렸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도치씨는 무안함을 감추려고 그 아내중량의 여자를 보고 마주 웃었다.
순해빠진 아내가 번듯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내 아내는 절대 저런 여자하고 속성이 같을 수 없지. 절대 함부로 싸돌아다니지도 않고 아무 남자나 보고 실없이 웃는 그런 여자가 절대 아니야! 내 아내는 내가 낚시 방 화장실환기창을 통해 미리 마련해 둔 3단 알루미늄 사다리를 타고 도주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리도 없고, 여기에서 마주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땄으면 땄지 불가능한 일인데. 씨팔 데게 놀랐네!
도치씨가 앞자리 여자 때문에 너무 놀라, 콩알만큼 오그라든 간을 다시 서서히 원상태로 회복하는 그 순간.
반가운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도치오빠!”
간을 녹이는 우아영의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목소리였다.
도치씨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고개가 한 바퀴 휙 돌아갈 속도로 뒤돌아봤다.
그런데 우아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우아영의 목소리였는데 웬일? 흰 마스크에 유리가 달린 방역 복을 입은 세 사람이 우주인처럼 뚜벅뚜벅 도치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첫댓글 도차의 작전에 둘린 그 아네가 좀 안타 깝슴니다.
ㅎ
고운밤되세요
마내킹을 아예 하나 갖다놓아야
마눌님 더 완벽하게 둘러먹겠어요..
사닥다리 타고 넘어 갈때 다리나 뿌러질일지..
ㅋㅋㅋㅋ
악담하시네요?
도치가 아내를 속이다보니 이제 코디위장술까지 동원 하네요..
열리한 그아네도 속아 넘어갈까?
둘러먹드라도 자기양심은 속이지 말어야지
로미오가 주리엗이 던저준 줄타고 기어올라가 주리엗과 사랑을 속삭이더니
사닥다리 타고 담넘어 우아영을 만나는군요~~ㅎㅎㅎ
다 기술입니다...좋은밤되시구요
늦은밤 잠시 잘보았슴니다.
주인공 도치씨가 너무 여자에게 빠지는것 같네요..
그래서 흥미가 있나요?
글쎄요..그런게 사는거 아닐까요?
좋은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