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밤의 탱고
박원명화
아무래도 방 어딘가에 서식처가 있는 게 분명하다.여름도 오기 전에 컴백이라니? 철도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모기들이 도를 넘고 있다. 생존의 전략인지 모르지만 그 처사는 진드기 보다 더 끈덕지고 곰팡이보다 더 고약하다.
이것들을 퇴치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분사기를 들이대고 ,연막을 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발원본색 할 방도를 모르겠다. 종자가 바뀐 것인지 면역이 된 것인지 백약이 무효이다. 살충제 냄새에 견디지 못하는 건 모기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니, 영장의 체통이 말씀이 아니다.
모기는 저승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부부의 한 설화에서 탄생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부인이 죽자 망연자실한 남편이 날마다 세 번씩 죽은 부인의 시체를 안고 환생을 기원했다. 가상히 여긴 도인의 뜻에 따라 시신의 입안에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마침내 아내를 소생시킨다. 그러나 아내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남편을 배신한다. 세 방울의 피를 돌려주고 남편을 떨쳐내기 위해 그 손에서 다시 피를 뽑아낸다. 그러자 부인은 다시 깨어나지 못하게 되고, 도인은 이 여인을 모기로 만들어 살게 했다. 모기란 피를 채우기 위해 항상 사람의 피를 조금씩 몰래 빨아먹고 산다는 베트남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은혜도 고마움도 모르고 남편을 배신하고 모기로 살 수 밖에 없는 여인의 한이 지금까지도 피를 탐하는 것이라면 더욱 더 용서 못할 일이다. 모기가 들어올세라 문이란 문은 죄다 꼭꼭 여며놓지만 야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천방지축 탱고 춤을 추며 사람을 괴롭힌다. 불이 켜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불이 꺼지면 기다리던 흡혈귀처럼 나타나니 이 끈질긴 놈을 어찌해야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귀찮고 이리저리 팔을 휘둘러보지만 그것도 잠시, 줄기차게 귓전을 윙윙 맴돈다. 아무리 너그러운 사람도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팔목이 가려워 불을 켰다. 손등에서 팔목까지 벌써 대여섯 군데를 물렸다. 예민한 살갗이 벌겋게 성이 나 있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땐 남편을 주로 공격하던 놈들이 오늘 밤은 남편이 출장 중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내게 집중하는 것 같다. 모기에게 피를 빼앗길 것을 생각하니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불을 끄고 누워보니 어디선가 벌써 윙~하고 나타난다. 어떡하든 박살내고 말겠다는 오기가 저절로 발동한다.
모기와의 한판 전쟁을 선포하고 먼저 천장부터 살펴본다. 천장에서 벽까지 벽지무늬 하나하나를 세며 구석구석을 검문해보지만 놈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숨은 것일까? 삽시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진 걸 보면 사람보다 더 지능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경까지 찾아 걸고 섬멸작전에 나섰다. 찾다 찾다 지쳐 불을 켜 놓은 채 누워본다. 온 몸을 이불로 감싸고 얼굴만 낚시 밥으로 내 놓는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 분,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주위를 맴도는 놈의 정체가 포착되어 와다닥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확인사살, 눈길을 쫒아보아도 어림없다. 공중을 차고 나는 솜씨가 총알보다 빠르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벽을 치고 나서야 녀석을 한 마리 해치웠다.
승리의 미소를 짓고 다시 불을 끄고 누워 있으려니 어디선가 또 제트기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죽은 몸의 원혼일까! 동료의 보복 출격일까. 다시 불을 켠다.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열고 살펴본다. 얼마를 기다려도 적막이 온 방안을 채울 뿐, 감감 무소식이다. 치고 빠지는 묘수가 전술을 익힌 듯 날쌔다. 아무래도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다시 아까처럼 얼굴만 미끼로 내놓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기다리다 졸음에 겨워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피를 다 빨아먹든 말든, 살을 다 뜯어 먹든 말든, 불을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잠이 막 들려는 순간, 또 다시 앵앵 팔랑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적군을 향해 출전하는 병사처럼 나는 분연히 일어섰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쫒고 쫒기는 한바탕 혈전을 다짐하며 숲을 수색하듯 벽에 걸쳐있는 옷가지까지 샅샅이 흩어본다. 역시 없다. 내 눈 밖의 어딘가에 숨어서 ‘나 잡아봐라’ 비웃는 것 같아 슬쩍 약이 오른다. 그래 내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분명히 보여주기로 하자. 두어 시간 망을 보며 기다린 끝에 결국 놈을 발견했고 꽝하는 벼락소리와 함께 박살을 내고 말았다.
모기는 2억 년 전인 중생대 때부터 지금까지 종족을 유지해온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생물이다. 분포도 역시 세계적임을 자랑하고 있다. 열대, 온대지방은 물론 극지부근에서도 서식한다. 2700여종의 종류 중, 우리나라에는 약55종이 있지만 우리 주변을 맴도는 건 10여종 정도이다. 모기는 64km 밖에서도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특별히 모기를 잘 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잘 씻지 않거나 피가 단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신체의 화학적 차이 때문에 냄새는 다르지만 젖산과 이산화탄소 냄새를 좋아한다고. 한번 피를 빠는 데는 8-10초가 소요되며 그 양은 5㎕에 불과하다. 그러나 때론 무서운 전염병을 옮겨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니 작지만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약삭빠른 모기와의 전쟁, 그야말로 밤새 초가삼간 밝히느라 잠을 설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제 까짓게 아무리 드세다 한들 대 자연의 도도한 흐름을 언제까지 거역할 수 있으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으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제풀에 스러지고 말 것들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