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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목돈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날이 토요일이라 학교 마치자 말자 까불거리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엄명이 밥숫가락 놓기가 무섭게 떨어진다.
“왜, 오늘 머 하나?”
“등겨파고, 연탄 오백 장 들여놔야 한다.”
“그거 엄마하고 내하고 둘이서 다 하나?”
“그러믄 누구 또 있나?”
나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대답대신 옆에서 깬작 거리며 밥을 입구녕으로 처넣고 있는 세살 많은 누이를 처다 보았다. 이제 중학교 삼학년에 다니는 후남(後男)이는 나를 아들로 맹글어 줄라꼬 한 많은 이름을 달고 쪽팔린 멍에를 평생 짊어지게 된 사연(?) 있는 누이였다.
“담 주에 시험이다.”
내가 째려보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입만 나불거린다. 그 말은 공부해야 하니 도와 줄 시간이 없으니 그만 잊으라는 싹수 있는(?) 대구였다.
*영양 석보/ 어느 가을 날
즐거워야 할 토요일 아침이 어두운 공간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 그 자체였다. 책가방 뒤에 싣고 학교로 달리는 가을의 아침바람이 내 마음처럼 어두워 온다. 한천다리를 건널 때 찬바람이 넓은 콧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춥다. 그래도 패달을 밟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수업을 받는 중에도 내내 오후의 노동에 힘들어 할 꺼리가 생각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어머니의 엄명은 거역할 수 없는 절박한 사연이 있음을 알기에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집으로 갔다. 어떻게 마련 된 목돈인지 몰라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을 때 한 겨울을 나기위한 준비를 후다닥 끝내 놓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마냥 미적거리며 들고 있다간 어디에 쓴 지도 모르게 그 돈은 흔적 없이 흩어지고 마는 구멍 뚫린 생활고였음을 어린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 오후 내내 연탄 오백 장, 등겨 스무 가마니를 창고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연탄은 오십 장 씩, 리어카에 실어 어머니가 끌고 뒤에선 내가 밀어 집 입구까지 실어다 놓고 손으로 날랐다. 스무 번을 그렇게 했다. 아마도 연탄 한 장 얼마에 집까지 가져다주는 배달비가 붙곤 했다. 배달 비 아끼려는 어머니의 그 심정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고, 지친 몸에 등겨는 내일 파자고 말을 해 보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일이 있다고만 했지,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진 않았다. 내 입술은 점점 앞으로 세월없이 튀어 나왔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무시했고, 그리고 단호했다.
잠시 틈을 주고 다시 도정공장으로 가 먼지 날리는 그곳에서 쌀겨를 차곡차곡 가마니에 담아 리어카에 실어서 다시 열 번 하고도 다섯 번을 더 했다.
내 머리와 얼굴엔 온통 연탄 묻은 검은 색과 뿌연 쌀겨의 먼지가 섞여 앉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흑인이 하얀 분말가루를 뒤집어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팽’하고 코를 푸니 코에선 검은 덩어리가 튀어나온다. 목에도 검은 침이 뱉어지고 어머니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음이 참 푸근해 왔다. 이미 각방의 문살에 꽃잎 따서 한지 바르는 것은 이미 저번 토요일 날 끝을 내었으니, 일단은 오늘의 일로써 한겨울 따스하게 날 채비는 끝이 난 후였다.
*팔공산 가는 길에.......
대신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마른장작으로 물을 끓인다. 목간통 갈 돈을 아껴 집에서 목욕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설설 끓어가는 물을 몇 바가지 부어다 부엌에 커다란 고무로 된 간이 목간통에 물을 붓고 찬물을 섞어 따뜻하게 맹글어 놓은 곳에 내가 먼저 홀라당 벗어 던지고 그 속으로 몸을 담궛다.
온 몸의 세포가 자글자글 해 지는 느낌에 하루의 피곤이 풀리는 아늑함을 맛보았다. 밖에서 내가 끝나길 기다리는 어머니는 잠시의 틈에도 쉬지를 않았다. 대충 먼지를 탁탁 털고는 마루와 함께 연결된 쪽마루까지 물걸레질이 한참이다.
내가 빨리 끝을 내야 어머니는 잠시라도 편한 몸을 하실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바쁘게 움직여 대충 때를 벗겨 내고 어머니를 불러 새 물로 몸을 행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까실까실 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한숨자고 일어나니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있고, 어느새 어머니는 저녁준비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누워 늘어지게 자고 있는 아들놈 옆에 앉아 거친 손바닥으로 막내아들놈 볼을 쓰다듬으며 기분 좋게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다 참으로 거친 손바닥의 감촉이 부드러웠고 한 없이 따뜻했다. 내가 잠에서 깨는 기척이 들리자 조용히 나를 깨운다.
“우리 일어나서 저녁먹자, 아버지도 사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그때, 책가방 꼬~옥 잡고 기막힌 타이밍으로 들어오는 작은 누이의 모습을 보자 따스했던 내 마음은 얄미운 심성으로 변하고 만다.
큰 움직임도 없이 가늘가늘 행동하는 누이는 고개를 15도 숙이고 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어깨와 함께 살짝 보일 듯 말 듯 움직일 뿐이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씨암탉의 행동을 닮아있다. 한 번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 걸 본 적이 없는 누이였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걷다가 벼락이 앞에 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옆으로 살짝 돌아서 갈 위인이라는 것이 그보다 더한 표현은 없을 법 했다.
그렇게 누이를 미워하게 된 것은 물론 따로 있었다. 작년인가? 우리 형제들 몫으로 시장에서 병아리 한 마리 씩 사가지고 왔었다. 그 병아리들이 점점 커가자 그 중에 제일로 예쁜 놈은 자기 것이라고 누이는 집에 공표를 해 버렸고, 그러다 보니 엉망으로 변한 놈이 내 차지가 되고 말았는데 그래도 내 것이라는 욕심에 벌래도 잡아 먹이고 해서 살이 포동포동 올라있었다.
그렇게 점점 힘 좋은 장닭으로 변해가던 어느 날, 동무들과 열심히 뛰어놀다 들어오니 저녁밥상에 닭고기가 올려있었다. 횡재한 기분에 열심히 먹다가 모두들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애지중지 열심히 키워오던 내 몫의 닭이 그날의 재물이었다. 나는 결국 먹은 것 다 토해 버렸지만 큰 누나보고 닭 한 마리 잡아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생전 처음 후남이 누이가 자진해서 앞장서서 내 닭을 골라잡은 얄미운 사건 이후부터 나와 누이는 앙금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누이의 모든 행동들이 내 눈에 삐딱 선을 그리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자 얄미운 누이는 단발머리 착 가라 앉히더니 친구 집에 공부하러 나갔고, 설거지를 끝낸 큰 누이는 어머니 눈을 피해 뒷마당을 통하여 동네 친구들 모여 노는 곳으로 벌써 달아 난 후였고, 사랑에선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 등겨 파 놓은 기념으로 자진하여 내가 방방마다 풍로 돌려가며 아궁이 깊숙한 곳까지 등겨 한 주먹씩 던져가며 군불을 지펴 놓아 윗목까지 설설 끓고 있었다. 그곳에 아랫배 깔고 이미 초저녁에 한 숨을 자 두었던 터라 책장만 펼쳐놓고 하릴없이 심심해하고 있었다.
그때 열심히 바느질에 열중하던 어머니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세월에 삭아 내린 안개 빛 한숨이었고, 얼굴에 깊게 패인 골만큼의 사연 깊은 큰 숨이었고, 갈라진 손바닥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아픔의 형상 같은 것이었다.
“무슨, 밥 잘 먹고 방바닥 따신데 앉아서 한숨은 그리 크게 쉬는데?”
다소 퉁명스런 아들놈의 말에 숙여진 얼굴에 이는 약간의 표정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집을 뛰쳐나간 큰형에 대한 애환과 부모로써 맏이에게 거는 기대치가 무너지는 기운에 느낄 수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것보다 점점 쌀쌀해 지는 날씨에 타향에서 방황하고 있을 하늘이 맺어준 천륜인 자식 놈의 걱정에 당신만 따뜻한 잠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애닮은 것이었다.
그리곤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한숨 섞인 지나온 과거를 토막처럼 뱉어내기 시작했다.
‘열 일 곱에 시집와서 열둘의 자식을 낳고 다섯을 먼저 보내고, 잘난 서방 만나 해 보지 않은 것이 없이 살았으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꼬 카지만 너그 큰형 저리 밖으로 내 돌아 댕기니 한시라도.......’
잠시 뜸을 주고 다시이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걸 책으로 만들믄 열권은 족히 될 끼래....... 그래도 인재는 괘안켔지, 일꺼리도 마이 들어오고, 올해 도내 학교 졸업장하고, 상장 인쇄물 우리 집에서 다 찍으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어머니를 팔을 겹쳐 옆으로 얼굴을 돌려서 올려다보던 내 어린 가슴은 아려왔다. 언제고 어머니의 지나온 역경을 책으로 엮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꿈은 이룰 수없을 것 같다.
나는 입이 바싹 말라온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시원하게 변해있을 감주가 먹고 싶어 졌다. 곧장 밖으로 나왔다. 바깥의 공기는 제법 차게 느껴졌다. 올려다 본 하늘엔 별무리가 총총히 박혀있고, 한참을 한곳에 집중을 하니 별이 내 얼굴로 쏟아지며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버뜩, 정신을 차리고 장간으로가 한 독 시원하게 변해있는 달 싸한 감주를 커다란 양재기에 퍼 담아 벌컥벌컥 마시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여전히 고개 숙이고 바느질에 열중인 어머니께 불쑥 내 밀었다. 돋보기안경 코끝에 걸친 어머니는 입맛을 다시며 하이고, 잘 되얏다. 하듯 받아 달게 마신다. 지금까지 목에 걸려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던 찌꺼기들을 아래로 밀어내는 순간처럼 보였다.
“국자 가지고 건더기도 좀 건져 오지?”
횡 한, 빈터처럼 토해놓은 한숨에 배가 출출하셨던 게다.
늦은 가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날, 시장 난전으로 가 배추 솎은 겉잎들 한 리어카 봉긋이 실어와 새끼줄에 굴비처럼 엮어 뒤안 굴뚝 옆, 흙벽에 줄줄이 걸어 놓았다.
시래기 된장국, 시래기 무침, 시래기 고등어조림, 시래기 멸치볶음 등등, 한 겨울을 날 준비는 대충 끝이 났는가 보다.
서산으로 지는 가을의 햇살은 비슷하게 비춰와 걸어놓은 시래기는 그렇게 곱게 햇살을 받으며 걸려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야야, 오늘은 내일 김장할 배추랑 무 다듬어 절여놓아야 한데이.......”
나는 다시 옆에서 깬작이며 밥을 먹고 있는 누이를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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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초시님 .. 어린시절을 보는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창호지바르고 물을 품으시던기억도 나구요. 은행잎도 넣고.
본문은 담에 읽고 꼬리 먼저 답니다....잘 계시죠? 초시어른.
ㅎㅎ 후남이 누이가 지금도 미운건 아니시겠죠?! ㅋㅋ...가족! 참으로 소중한, 참 좋은 인연입죠^^
연락두 안하시구...혼자 돌다 왔습니다.
이번 글은 무지 얌전하네
기억력도 대단하시고....글을 읽고 있으면 모든게 살아 움직입니다..
전 이런 풍금소리가 나는 어린시절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도회지출신 은사시의 유년의 이런 풍경은 자투리자투리 뜨문뜨문 몇컷씩만 있는데.... ㅎ ㅎ ㅎ 후남이 누이의 어린시절이 초시님 때문에 만만찮았겠는걸요 ㅋ ㅋ ㅋ
정말 푸근한 정취 담뿍 받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