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논쟁에서 누군가 올린글이다.
아주 잘쓴 내용이다.
이 논객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무척 공감하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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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몰라 글만 올린다....
(펌)
들어가며.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오를 옹호하고, 그리워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 박정희를 비호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깍아내리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객관적 사실"에 의해 과를 과로, 공을 공으로 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시대에 부족하다 생각되는 그의 "덕목"과, 객관적 관찰에 의해 추출되어 결코 부정될 수 없는 "경제지도자", "효율성높고, 성실 청렴한 공직자", "자주국방의 의지"를 꽃피운 "지도자"로서의 그의 성실성과 헌신을 그리워할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내가 박정희대통령의 공과, 과를 분리하여 그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후손으로서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그로부터 취할 것은 진정 없는 것 인지를 찾으려함은, 지난 반세기의 역사가, 그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현재의 가치가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는 보편적 역사의식에 기인한 것 이다.
이것이 위험한 수구,보수적 사고이며, 독재의 전조라고 누가 감히 말하는가?
도대체 박정희의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오히려 대통령 박정희의 헌신과, 성실을 그리워하는 다수 국민을, 독재에 대한 향수, 독립군 때려잡은 일본군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에 대한 옹호라 몰아붙히며, "민족반역자"로 몰아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는 시도는 어떠한가?
그럼으로서 오늘날 그 "민주독재자"가 보였던 "성실과 헌신"의 손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소위 "민주지도자"들의 약점을 부지불식중 옹호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이들이야 말로 엄연히 존재하는 민의의 왜곡하고, 단 몇줄의 댓글로도 허무하게 무너질 지적 우월감으로 새로운 "정신적 독재"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들이 도대체 무얼 두려워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무덤에 누운 박정희가 살아 돌아올 것 이 두려운가?
그의 동조자들이 새로운 무장봉기를 기도할 것 이 두려운가?
아니면, 일본인들이 박정희의 전력을 핑계로 이땅에 돌아와 다시 주인 행세를 할 것 이 두려운가?
그 어느 가정도 현재로선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다수국민들의 박정희 추도열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못지 않는 성실성과 헌신을, 오늘날의 정치지도층에 요구함으로서, 역으로 독재자에 대한 향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대중 영합주의로 흐르는 이 한국 초기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고 보는데 왜 이를 거부하는가?
그의 공헌에 대한 단 한줄의 언급이 있을 때면 자동으로 튀어나와 건전한 논의로 흐르는 것을 방해하고, 마침내는 감정의 골까지 만드는 그놈의 "민족 반역자론", 용서못할 "독재자론" 이 것이야말로 비 이성적인 것 이며 반민주적인 것 이란 점을 "박정희의 무덤에 똥을 싸겠다며 항문을 들이민 사람들"은 똑바로 인식하기 바란다.
십여년전 무우국에 밥을 말아먹고 다 떨어진 군복을 입은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그래서 위대한 사회민주주의 주체사상공화국으로 남한을 무력통일하겠다던 김일성의 백만대군앞을 당당히 막아섰던 대한민국 징집군 병장으로서, 성실한 납세자로서, 그간의 경험과 체험으로 확인한 소위 최고지도층의 태만과 나태에 의해 상상하지 못할 낭비를 실제 지켜 보았던이로서, 그리고 이농의 마지막 세대로 누구 못지 않게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이로서, 박정희 고찰이란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 썩어 문드러진 현 세대의 소위 민주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권리가 있음을 당당히 주장한다.
또한 본 게시판에서 나의 주장에 동의하는 많지 않은 분들이, 박정희의 성실과 헌신을 높이 사는 그분들은 그런 근거에 바탕하고 있음을 믿는다.
이제는 무엇이 비판받아 다음세대에 교훈으로 전해 져야할 그의 과오이며, 무엇이 오늘날 살려 내야할 그의 덕목인지 객관적으로 토론하여야 한다.
아울러, 그이의 덕목을 앞세우는 이들이 그의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하려는 자들을 용납치 않을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두뇌와,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소위 "민족 반역자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독점된 것 이 아니다.
박정희의 공과를 가리는 논리적 토론이란 무엇인가?
작금의 박정희 논쟁을 보건데, 언제 부터 논리란 말이 대중속에 퍼진 몇개의 풍문을 수평적으로 나열하고 거기에 결론을 첨언하는 것으로 변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토론은, 특히 논리적 토론이라 함은 엄격한 기준으로도 객관적인 일차 자료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추론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 이 맞을진데, 어찌 논리가 말꼬리 잡기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단편 사항을 나열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그런적 없다"며 부인하거나, 못본척 고개를 돌리는 괴상한 것 으로 변했는가?
엄격한 사실적 근거에 바탕하여 , 객관적 추론을 제시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논리 아니던가?
특정한 주장에 의도적인 댓글과, 의도된 추천등으로 특정세를 형성해 마치 어떤주장을 대세화 하기위하여 여론몰이를 시도하려 하는 듯한 작금의 사태는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사람의 인간이며, 엄연히 한시대의 지도자였던 박정희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논객들의 주장을 보면, 일찌기 그의 공이라 여겼던 "경제발전, 효율성과 성실, 자주국방" 이른바 3대공적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이에 대한 근거와 설득력 있는 반박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일모리배", "친일분자", "독립군 때려잡은 만군중위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만을 무덤에서 끄집어내 난도질을 가하고 있으니, 이는 자기 자신마저도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에 빠져 자학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여기에 무슨 논리와 근거가 있는가?
원제에 대한 토론은 의도적으로 중단된채 오로지 만군중위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와, 다까끼마사오의 형체없는 과만이 나열되고, 일본을 정신적고향으로 정의해 현해탄을 건너가라는등 상식이외의 글들이 난무한다.
그런가 하면 그가 "우리"의 지도자였느냐며, 자기는 지지한바 없다는 괴상한 논리로 현실을 부정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머리가 혼란스럽다.
개관적사실과, 이를 뒷받힘할 탄탄한 논리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그의 일생과 행적에서 취할 것을 찾아내는 것은 진정 불가능하단 말인가?
박정희가 지은 곡식과, 박정희가 기른 고기로 배불리먹고 쌀을 찌웠으면서, 그의 무덤에 똥을 싸겠다며 뽀얗게 살찐 엉덩이를 내린채 항문을 들이밀고있는 저 용감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근거와, 논리는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있단 말인가?
6~70년대 경제발전은 도둑질 한 것 이다?
이른바 박정희의 3대공적, 그중 "경제개발"을 반박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5.16이후 장면정권이 세운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도둑질한 군사정부와 박정희가, 그것을 베껴 이행한 것에 다름아니란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런가 하면, 박정희의 외화차입 경영정책이 김영삼정부의 IMF환란을 초래하는 파국을 부른 요인이라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가 웃겠다.
위과같은 박정희경제에 대한 비판은 간단한 몇가지 관점으로도 아주 쉽게 반박되는 것이다.
굳이 거창하게 모딜리아니의 "차입 경영론"을 끌어다 댈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다.
현재 시점인 2002년의 상황에서, 과거 30여년 전의 경제가 이랬어야만 했다 라고 하는 분석이 과연 정당하고 합당한 비판이며, 그것이 박정희 경제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단 몇일 후의 주가 예측에도 실패하는 경제이론의 불확실함이 완전히 배제되고, 모든 경제이론이 예측 가능하게 실물경제가 움직여 준다면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최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30여년전에는 이랬어야 한다"? 헐......
박정희 경제를 비난하는 자들이 최소한 자신의 체험이나, 연구, 또는 실물경제참여를 통한 그것도 아니면서 앰무새처럼 떠들고, 들이미는 ㅇㅇㅇ이란 반박정희파 경제학자의 주장과, 그에 동조하는자들의 저서들을 보면, 그중 하나가 콤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경제상황 예측이 가능한 것 처럼 안용해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카오스틱이론"이나, "뉴로 퍼지" 등등의 모든 최신 비선형 방법도 이미 경제현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데는 실패하고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현재의 관점에서, 이미 그 결과가 들어난 시점에서 과거에 수립되어 시행된 "이상적 경제정책부재"를 비판한다?
그런가하면 그들의 주장중에는 박정희경제에서 중화학공업육성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가정"을 대입하고 결과를 비난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새로운 패러다임 소위 "벤처경제"로의 이행이란 큰 줄기의 효용성은 정책이 시행되고난 뒤 그 2년도 안되는 시점에 일어난 "벤처거품" 붕괴로 이미 하나의 실물경제현상에 의해 완전히 반박 된 것 이다.
자신들의 경제분석은 불과 2년 후를 예측하지 못 하면서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30년후에도 실효성을 가질 것 을 요구한다고? 에라이~~
6~70년대 자본과 기술등이 전무한 "완전제로"의 상황에서 무차입 경영의 필요성과 중화학공업을 대체하는, 이른바 현재의 관점에서 지식, 소재산업 개발의 미비를 지적하고, 요구하는 개별사항은 한마디로 "개무시" 할 수 있는 허접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박정희경제를 반박하는류의 글 몇줄을 읽고 인용하고자 한다면, 그 주장의 성격이 박정희 경제에 대한 합당한 분석인지, 또는 비판인지 정도는 알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말이다.
자기가 연구, 실증했거나, 그도 아니면 새로운 관점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주관적인 주장을 덧붙이지 못할거라면 한마디로 말해서 녹음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최소한 자기가 어떤자의 글을 읽었고, 어느부분을 어떻게 동조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어떠한 주장을 하고있는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할 것 아닌가.
IMF의 원인이 박정희에게 있다고?
90년대중반, 이른바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두 멍청이의 경제실정, 즉 "IMF 환란초래"와, "밴쳐육성"이라는 신경제정책실패를 과연 박정희의 죄로 돌릴 수 있는지 보자.
대부분의 반박정희, 또는 민족반역자론을 주장하는자들이 들이대는 것이 "김영삼은 IMF 피해자", 또는 "불끄러 들어간 소방수"라는 것 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김대중은 김영삼의 경제실정을 밴쳐정책으로 극복한 위대하지만, 억울한 지도자"라 주장한다.(그러면서 햇볕을 살짝 끼워 물타기를 시도한다)
과연 그러한가?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박정희 원죄론의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서의 근거가 과연 타당한지를 보자.
올림픽이 있던 1988년이후의 "3저 호황"을 타고 기존의 한국 외채 규모는 급격히 줄기 시작한다.
아무리 3저 호황이라지만 그것을 누릴 기반산업이 없으면 호황의 이득을 볼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른바, 그 산업기반, 즉, 조선과 자동차, 기계와 전자산업구조 자체가 박정희의 외채도입 경제운용에서 시작된 것 이다.
박정희식 반란으로 집권한 총잡이 전두한의 경제정책이 종료되고, 노태우에게 정권이 이양된 시점의 순외채가 100억 달러 이하로 내려가고, 국제은행들은 우리에게 돈좀 가져다 쓰라고 애원했을때 이미 박정희경제체제는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이후의 잉여는 "개발독재"라는 급격한 성장에서 파생된 문제를 치유하는 데 쓰여야 했다.
다시말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져, 노태우로 끝나는 군사정권 이후 "민주정부"가 시행, 운용할 "경제개혁정책"의 자유도와 유동성을 늘려준 것이다.
반박정희파, 또는 민족반역자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요구하는 20년, 30년 앞에도 실효성있는 경제체제를 건설할 수 있다면, 근래의 하루가 다르게 발표되는 "경제운용정책"이 왜 필요한가?
바로 여기까지의 단계가 이른바, "개발독재"라는 박정희경제정책의 최종 진화이며, 그 이후는 민주화의 화신이고, 준비된 지도자라는 후임자들의 확고한 경제운용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또 경제개혁을 시도할 여유는 이미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멸치어장집 아들 김영삼의 경제개혁은 어떠했던가?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5공내내 누렸던 호황과 물가안정만을 생각한 이른바, "원화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 이었다.
이 정책은 "물가안정"과 국민소득의 "고평가", 국민의 "해외여행지출, 외화송금"을 늘려서 정치적으로는 인기 만점이 되었지만, 바로 그 시점부터 "가격경쟁력"을 잃은 한국의 전자, 기계제품들은 해외시장에서 고전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엄청난 국제수지 "적자"로 되돌아와 박정희와 전두한, 노태우가 쌓아놓은 "외환보유고"를 바닥낼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4년 남짓했다.
이부분은 김대중정부 발표 통계에도 나오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당막질로 아침시간을 소비한 김영삼은 한국경제를 초상내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 인기도를 바꾸어버린 것 이고, 이 증거는 고정환율 "800원" 대의 원화가 당시 싱가포르 외환시장에서 "1,000원"이 훨씬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IMF후 불과 몇달 사이 "2,000원"을 넘는 시장가격을 기록한 사실에서 드러난다.
바로 이러한 민주지도자의 골빈짓거리가 몇천불 단위 외환지출까지 직접 결제하며 쌓아 놓은 "박정희"의 "민족경제기반"을 순식간에 깍아 먹은 것이다.
모르겠는가?
자국 통화를 고평가 하면 "제조업"은 절단이 난다.
단 특정분야의 제조업에 확고한 기술기반을 가진, 예를들자면 미국의 항공기산업이나, 영국의 화학산업, 일본의 자동차산업분야등이 살아남는데, 1990년대당시 우리가 가격 경쟁력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산업분야가 D-RAM 반도체밖에 더 있었는가?
실제로 "고파운드정책"을 유지하는 영국을 보면 이미 화학, 일부기계를 제외하고 제조업은 손을 뗀 것과 마찬가지다.
기술개발자금 운용과, 고파운드에 유리한 금융, 관광분야에서 수입 초과를 보존하고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것을 "금융기반"도 "기술기반"도 아직은 부족했던 1990년대의 대한민국에 시행한다는 자체가 나라 말아먹는 짓 에 다름아닌 것이다.
박정희의 위대함은 "경제"에 있다?
경제발전, 자주국방이 최고의 목표였고, 또한 그것을 이루려 혼신의 힘을 다했던 박정희가 "경제개발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포기하는 이른바 "경제적자살"이라는 것을 보자.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거세지고, 침묵하던 시민들의 지지가 표면으로 들어나던 그 "경제적측면"의 배후에는 "부마사태", "79년 총선패배"의 큰 원인중 하나인 "부가가치세도입"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대다수 국민의 지지라는 정권과 바꿔가며 일궈놓은 "건전재정"을 통해, 이른바 급성장의 부실을 개선할 수 있는 여유를 늘리고자했던 부분을 보란말이다.
79년 박정희가 죽고, 전두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부의 건전재정기조와, 저물가, 그로인한 재정잉여분은 김영삼을 통한 민주정부에 의해 당연히 박정희경제의 "금융부실"을 개혁하기 위해 쓰여져야 했다.
그 피같은 50조원이란 돈이 공중으로 흣어진 것이 바로 "못먹는 놈이 바보이다" 라는 말까지 나왔던 "50조원 농어촌 구조조정"자금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쌀개방만은 막겠다"고 호언장담한 김영삼의 한마디 말때문에, 그자의 되지도않는 순간실언을 메꾸기위해 뿌려진 것이다.
시골이 집이며, 쌀을 주경작하는 나의 고향을 예로볼때, 그 돈 50조원의 구조조정 효과는 전무하다.
국민의정부 들어 투입된 공적자금은 일백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일년예산을 뛰어넘었고, 그가운데 절반이상이 회수할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것이 정부기관의 감사결과이다.
쉽게 말해서 이지스함 열척과, 키티호크급 항모 한척에 80대의 함재기, 214급 잠수함 열척에, 샌 안토니오급 상륙모함 세척이상을 장비하고도 남는 돈을 날렸다는 말이다.
그나마 이정도 재정지출의 자유도를 가지는 이유가 뭔지나 아는가?
위에 말한대로 IMF가 도래하기 전에 이미 금융부실의 조짐은 있었고, 학계와 외국의 경고가 주어졌다.
건전한 판단으로 정치적 비용투입, 실언해소용 투입이 아닌 구조조정에 재정 잉여를 썼으면 그런 사태는 나지도 않았고 그 소요분 조차 많지도
않았다.
한국이란 나라가 건재하고, 경제행위가 지속되는 한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IMF때를 기억해 보라.
그 이전 수도없이 지적된 왜곡된 "금융구조", 이에 대한 인식에 관계없이 지속되는 "인기성" 외환, 경제정책, 나라의 경제가 넘어가는 것 조차도 알지 못하는 머리빌린 대통령은 오찬회동, 만찬회동에 각계 각층의 모랄 헤저드에 어느 것 하나 긍정적으로 보아줄 것 없던 대한민국이 IMF로 부터 구제 금융지원의 가치가 있다고 보인 이유는 두가지다.
그 첫째가 탄탄한 생산시설이요, 그 둘째가 그렇게 쓸데없이 낭비와, 비효율적 지출을 지속하고도 국제평균이하였던 국가채무구조의 건전성 이었다.
이것이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드러누워 뗑깡을 부리던 김영삼이?
아니면, 부가가치세도입이 국민을 죽이는 것 이라며 연일 목따는 소리로 고함치며 정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소일한 김대중이?
최소한의 객관적인 자료와 추론도 없이 박정희의 이름만 나와도 개나소나 민족반역자를 들먹이고, 그의 탁월한 경제정책을 회상만 해도 "후세의 피해자론"을 들고 나와 "만군중위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 민족정기운운 하며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논리를 밥말아 먹는가?
논리적인 토론을 하고 싶거든, 그리고 그 논리로 박대통령의 공과를 논하고 싶거든 개별사안에 대해 자신의 "자료를 제시"하고 추론을 거쳐 그것이 자기의 주장대로 결론이 나는 것 을 보여 달란 말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있게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경제적 업적중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바로 이러한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보이지 못 하는가?
박정희의 무덤에 똥을 싸는 것 으로 그에 대한 은혜를 갚겠다며 두손으로 항문을 벌리고 대드는 사람들의 논리와 반론은 어디에 있는가?
아예 반론의 방법까지도 가르쳐주어야 하겠는가?
(이쯤에서 한가지 문제)
환란이후 유치했다는 외국자본에 박정희가 쌓아놓은 탄탄한 생산기반이 헐값으로 팔려가고, 단기투기성자금들은 주식시장을 흔들어 때마침 불어닥쳤던 벤쳐열풍에 맨몸으로 던져진 국민들은 순식간에 깡통을 차고말았다. 같은기간 외국자본은 코스닥과 거래소에서 40조원이 넘는 순익을 취했다. 박정희가 쌓은 기반을 김영삼이 허트리고, 김대중이 말아먹었다는 이 비난을 어떤 논리로 극복하겠는가?
박정희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해 모가지를 매달아야만 민족정기가 바로 서는가?
박정희에게 병적인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주장중,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부분이 바로 "전매특허"인 "친일파청산", 또는 "부일모리배", 운운하는 "민족반역자"론 이다.
대체로 그 토론이라는 것이 여기쯤 오게되면 만군중위 "오까모도", 혹은 "다까끼마사오"가 긴 칼을차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부분을 그의 과로 본다.
이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인간박정희의 부정적인 부분이며 "경제적, 정치적 치적"과 외국에서 추앙받는 이른바 "민족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그리했다 라는 논리로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다.
단, 여기에서 객관성을 잃으면 않될 부분은, 분명 그에게 아무리 과실이 있더라도 없는 사실이 덧붙여져 그것이 과실을 과장하고, 증폭시켜 민족반역자론으로 확대되어 박정희 "공과조명논의" 자체를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이다.
강도가 밉다고 살인죄까지 지어내서 기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주장의 대표적인 것이 독립군 때려잡은 "만군중위 오까모도" 라는 것이다.
먼저, 만군중위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 의 군관학교시절과 만주군 장교로 복부하던 역사적 시기를 모면,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이다.
그 시기는 우리민족의 무장항쟁 기반인 만주지역에서 이른바 "독립군"으로서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있던 부대들은 이미 와해되었고, 살아남은 애국지사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장개석의 국민당군, 또는 모택동의 팔로군으로 가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극 소수의 애국지사들이 소수의 인원으로 점조직을 구성해 활동하는 이른바, 개별적 "전범사형집행"이 지속된다.
내가 여기서 애국지사들의 개별적인 일제에 대한 저항을 "사형집행"이라 하는 것은 그분들의 활동이 요즘 말하는 "테러"라는 것으로 비하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표현하는 일종의 자존심이다.
만일, 반 박정희주의자들이 원하는 민적정기운운 하는 것이 그토록 위대하고 진정한 것 이라면, 상해임정 검찰부의 왜왕을 비롯한 주요 괴수들에 대한 정식 기소와, 형판결및 대외공포가 미흡했음을 지적해야한다고 본다.
당시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가 근무했던 부대는 만군 철도경비담당부대였고, 그 기간은 2년 남짓 되는데, 박정희에게 보임된 보직은 부대장의 참모장교, 또는 부관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부대장의 참모가, 최고지휘관 부관의 몸으로 2년남짖한 기간에 "800 여회의 대소 전투에 참전하여 독립군을 때려 잡았다" 라는 것이 그것인데, 그말을 누가 긍정할 수 있겠는가?
이미 조직적인 군사저항이 사라져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시기의 만주에서, 단지 만주군이었다는 이유로, 전혀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 부각되고, 그것을 단죄의 대상으로 삼아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냔 말이다.
만주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있었고, 그가 만주군이었다는 이유로 박정희 부대와 독립군부대간의 전투가 있었을 것 이라는 개연성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적도 없거니와, 연대참모, 부관의 신분으로 2년남짖한 기간동안 800여회의 독립군 때려잡는 전투참여가 가능하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부대와 박정희는 아마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인적 전투"를 한 부대라는 것을 알 것이다.
군신(軍神)이 환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기막힌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나는 일찌기 박정희가 효율적인 경재개발의 치적을 이루었다는 증거는 보았어도, 그가 탁월한 군사적재능을 지녔다는,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승리전과나, 기록을 본적이 없다.
이렇게, 그의 과를 입증하는데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입증된 사실 그대로 박정희가 당시에 만주로 건너간 수 많은 식민지청년들중 만군을 선택한 한명이었다는 것과, 만군장교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로 개명했다는 것, 그리고 일제에 충성서약을 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한인중 한명이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며, 또 그것이 그의 공과를 엄격히 증명하는 하나의 판단기준으로 후세에 전달되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적용되어야 하는 것 이다.
이런 공평무사한 원칙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그의 행적에서 보이는 바를 지적하여 과를 증명하는 것이 친일파 청산의 바른 길이며, 유치하고 저급하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악의적 독설이 아닌 진정한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완전하게 증명된 사실이라도 되는양 들먹이며 "독립군 때려잡은 민족반역자"가 업적은 무슨 업적이란 말이냐며 무식하게 떠드는 것 이야말로 오히려 박정희가 민족의 유일한 지도자였으며, 위대한 "영웅"이라 추앙하는 무조건적 옹호론자들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래, 후손들의 민족정기를 고양하기위해, 박정희를 무덤에서 끄집어내 부관참시하고, 그 삼족을 멸해야 이땅과, 이민족이 바로선다며 국민교육 걱정에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쉴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들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들이 어떻든 18년간이나 이나라의 대통령을 했던 사람에게 "독립군 때려잡던"이란 증명되지 않은 수식어를 지어내고, 800회의 전투를 날조해서, 가뜩이나 보잘 것 없는 지도자들로 2,000년간이나 고생만을 죽도록 지속해온 배곯았던 후손들에게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옳은 짖 이란 말인가?
박정희, 그가 인간적으로서, 또는 대통령으로서의 흠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박정희대통령의 역활이 이 나라, 이민족의 역사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믿고 있지만, 그런 흠을 덮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그의 흠과, 과가 빼도 더하지도 않는 그대로 보여져 다른 이들의 개인적 판단에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헌데 있지도, 증명되지도 않은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해 의도적인 역사왜곡을 시도하려함은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일이고, 엄연한 사실로, 증명되는 업적을 기리는 것은 삼족을 멸할자를 옹호하는 것이라서 정신적 고향인 일본으로 가야한다?
그대들이 추구하는 "민족정기"란 것이 한쪽의 주장만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중풍걸린 반신불수 민족정기"를 힘겹게 떠메고 절뚝거리며 나아가는 것 이라면 나는 그 사상적, 정신적 장애자들의 대열에 참여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어찌그리 못나고, 어찌그리 편협한가??
1990년대 중후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활발한 진보, 보수의 토론이 시작되고, 그것은 어느덧 양측의 자칭원조대표라는 사람들이 나서서 해괴한 소리로 떠들며 목소리를 높이고, 전 국민을 원치않는 한편에 강제복속시키더니, 급기야는 고질적인 편가르기 현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결국, 한국적 보수와, 진보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어지고, 난데없이 코큰사람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세를 불리려는 시도가 되풀이 되었다.
한국의 소위 진보측에서 합리적 보수란 이런것이다 라며 지목하는 바람에 눈도감지 못하고 바다건너 한국에 까지 끌려와 이게시판, 저게시판을 불려다니며 난도질을 당하는, 그야말로 졸지에 횡액을 당한 "샤를르 드골"을 보자.
그는 5월 혁명으로 정권을 넘기기 직전 독일주둔 프랑스군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자신에 대한 군부의 지지를 확약받고 돌아온다.
이것은 국민의 염원과는 대치되는 이른바 "친위쿠테타"를 시도한 명백한 증거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의 프랑스인들이 실행되지도 않는 그 친위쿠테타를 과장하고, 가정하여 그의 행적에서 과만을 남기는 줄 아는가?
그런가하면, 앤여왕 이후 "책임내각제"를 확립한 영국의 수상들은 우리나라의 김영삼, 김대중의 "가신정치, 세몰이정치"처럼 수뢰를 바탕으로 무리를 규합하는 것이 통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였으며, 개인의 "영지관리"를 국사의 앞에 두었다고 영국역사는 기록하고있다.
그렇다고 영국사람들이 영국역사상 가지는 그들의 위치를 평가 절하만 하던가?
미국독립의 아빠이며, 또다른 "조지왕"이라 부리던 조지 워싱턴의 독재는 어떠한가?
그보다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며, 미국의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이라 추앙을 받는 "링컨"이 영장도 없이 체포권을 휘두르고, 반대파를 잡아다가 고문등을 저질렀다는 것은 아는가?
J.F.케네디가 마릴린몬로와 오입질을 했다해서, 우리의 박정희처럼 그의 프론티어 정신이 위선이라 공격만을 받다가 부관참시 되고, 삼족을 멸하던가?
어찌그리 못나고, 어찌그리 편협한가?
그대들의 논리가 그토록 천박하고, 편협하니, 잘못이 아니라며 과거를 인정치 않고, 조센진이라 비웃는 일본이 존재하는 것 이며, 급기야는 소처럼 큰 젖무덤과, 돼지같이 뽀얀 엉덩이가 전부인 프랑스 광대년까지 나서서 우리민족을 미개하다 놀리는 것 임을 왜 모른단 말이냐?
그래도 모르겠거든, 다까끼마사오(高木正雄)가 낳은 딸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 내다가 종로에서 발가벗겨 모가지를 매달아라.
그리해서 자빠졌던 "민족정기"가 발딱 일어난다면 무슨짖은 못하리.
나오며.
그대들이 참으로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고 싶거든 논리적 토론과, 반박을 해보라.
박정희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토론은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부분만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과장시켜, 그럼으로 그것이 모든 것을 덮고, 부정할 수 는 없는 것 이다.
그의 과를 "반성없이 정당화" 하려는 옹호론자가 비난 받는 만큼, 없는 사실로 그의 죄를 "과대포장"하고, "감정적 접근"으로 논의를 막아, 흐리려하는 반대자들도 비난 받아야 한다.
이렇게 분명한 원리, 원칙이 서지 않는다면 시덥잖은 양비론이나, 소방수론, 후임피해자론을 들먹여 책임에서 회피했거나, 회피를 시도중인 민주대통령들처럼, 그 다음 대통령도 그런 전임자 원죄론을 통해 자신의 실패와 비리에 스스로 면죄부를 줄 것 이다.
그런시도가 되풀이 되고, 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무리가 많아진다면, "민족정기고양"이 아무리 잘된다 해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정치적 기준을 과거 독재시대에 우익이 독점했다는 견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박정희의 출현이 없었다고 해도, 1960-70년대의 한국사회가 우파와, 좌파 분리가 가능해서, 서로의 지분을 누릴 수 있었을 것 이라고 보는가?
6.25를 거치며 소위 보수, 기득권층의 반공교육이 아니더라도, 이미 전쟁을 체험한 한국국민 압도적 다수의 정치 성향은 반공산주의 성격의 "우익"으로 고정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이 것은 매우 특수한 사회구조이지만, 미안하게도 절대적 소수, 다른 정치성향의 사람들은 1960-70년의 사회에서 그들의 지분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60-70년대의 한국 사회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의 수용을 요구함은, 그 당시 서구수준의 복지를 한국에 도입하자는 이론과 다를바 없는 무리이다.
이는 도덕적, 사상적기준의 독점이라기 보다는, 시대상에 따른 사회추세인데,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적 스팩트럼이 넓어진 2002년의 한국 사회에서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이들이 "너희들도 옛날에 사상독점 했으니, 우리도 몰아세울때는 과거 너희들이 했던 방식으로 한다" 라는 논리가 그 얼마나 치졸하며 천박한 것 인지를 단 일분만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내 일찌기 모 사이트에서 우익임을 자처하며 좌충우돌하던 중 벌레라 지칭당한바 있으나, 한번도 나를 벌레라 욕하던 자들의 논리적인 반론을 들은적이 없다.
박정희의 무덤에 똥를 싸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다며 항문을 벌리고 나선자들이여!
그대들이 가진 객관적자료와 논리를 동원해, 경험과 체험으로 형성되어 굳어진 나의 머리를 청소해주기 바란다.
그리만 해준다면 마땅히 내가 옷을 벗어 그대들의 밑을 닦아주리라!
첫댓글객관성을 포장한 과대한 부풀리기의 면이 보이는군요.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부류들에게 거침없는 입담으로 심한 모욕을 가함도 보이며..스스로 객관적이고자 하면서 "공" 부분에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미화 내지는 과대포장한 흔적이 보이나 "과" 부분에 대해선 단 몇줄..그것도 "과"에 대한 변명에 치중하고있다.
글의 태도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물론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기도 했지만)토론의 여지를 스스로 봉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이글이 어떻게 냉정한 글로써 반박에게도 수긍할만한 글이라 생각하는지..수긍은 커녕..객관성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느낌...그리피스님이 이글을 읽고 무척 공감했다고
뜯어봐도 박정희의 경제적 "공"은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제가 경제에 문외한이긴 하나 경제적 업적에 있어서는 사료만으로 평가할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여러가지를 봐야 하지요..관치경제..개발독재..님이 올리실 글들을 지켜보겠습니다.하지만 스스로 객관성을 유지하시고자 한다면
어렵군요.. 이정도는 안될까요 ? 관치경제의 태생은 국가보증으로 인한 불가피성었으나 후반기 정경유착등 폐단이 나왔다는식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서술형식... 그 이상은 글을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죠.균형을 잡을려면 사실을 근거로 해야하는데 '사료'를 부정하신다면 논의는 불가한것이지요. 역시 불가능한가요 ?
'사료'를 무서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료'를 부정하는 일을 결코 없습니다.다만 그 '사료'라는게 주관적인 입장에 따라 변할수 있는 '사료'아닌 '사료'이기 때문입니다.위의 글또한 '사료'라는 형식으로 객관성을 표방했지만 똑같은 '사료'를 가지고도 또다른 '주장'이 나올수 있기 때문에 '사료'라는 형식을 빌려
그글이 온전히 '객관적'이다라고 하게 된다면 그 글은 완전히 수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 또한 객관적이지 못함은 인정합니다...박정희에 관한 논쟁은 가히 객관적일수 없다는게 딜레마라면 딜레마겠네요...제가 그렇기에 님또한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서술은 어려울듯하여 노파심에 말씀드렸던것입니다.
지역감정,정경유착,..등.. 경제적 부와 같은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시 하는 가치관의 부류들에겐 박정희는 구국의 아버지요 근대화의 아버지이겠지만 정신적 가치를 최우선시 하는 부류들에겐 박정희는 독재자이며 인권탄압을 자행한 청산되어야 할 역사이다. 극단적인 이분법이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평가가 나올수밖에 없는게 박정희 논쟁이다.'사료'라는 형식을 빌려서 쓴 수많은 저서들이 각각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다.친박이건 반박이건간에..그래도 여전히 논쟁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건 박정희를 평가함에 있어서의 가치관의 차이가 현격히 다른것이다.
가치관 뿐만 아니라 지역적, 연령별 특성에 따라 또 극명히 나뉘는게 이 박정희논쟁이다.지역적 특성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 박정희 인걸 보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자들이 갖는 박정희 향수는 이해할 수 있다.가난이 찢어지게 미웠을테니깐..그런 가난에게 구제해준(나는 인정하지 않지만)
박정희의 경제적'공'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일한 만큼 일한자들에게 돌아갔는가..경제적 성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발전해감에 따라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국민들이 함께 발전하게되었는가..경제적'공'을 '공'으로만 볼수없는게 위와같은 이유다. 빈부격차의 심화,관치경제가 결국엔 정경유착으로
실버레인21의 글 충분히 공감합니다. 어쩌다 이런저런 논쟁이 되어 버렸지만 같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편을 갈라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우습기도 하고요. 그는 저에겐 애증(愛憎)의 인물인 것이지요. 역사에 관심있는 나로서는 무관심히기도 그렇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재벌의 비대화와 재벌옹호로..급기야는 서민경제를 파탄내는 원흉으로 작용했다면 그의 경제적 '공'은 공이 아닌 '과'가 될수도 있기에 '사료'라는게 어찌보면 무의미할수도 있다는것이다.왜냐면..결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양지가 있다면 응지가 있기 마련이기에...가치판단이 개입할수 밖에 없는 '사료'이기에
자본주의 본질적 딜레마와 박정희의 과와는 구별을 해야한다 생각합니다. 정경유착은 잘못된 것이지만 관치경제는 그당시 구멍가게 수준의 한국 기업을 믿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국가보증에서 시작되었고 기업의 브렌드화를 통해 차관경제 상황에서 수출경제를 꾀하려 했던 것이지요.
제 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그리피스님의 글에 대한 답변은 나중에 하도록 하구요..경제적 '공'을 주장하는 부류들의 논리를 인정할 여지도 있다.가치관의 차이는 타도의 대상이 아닌 용인의 대상이기때문에..하지만 문제는 '과'부분에 대한 지나친 옹호와 변명이다.우리가 늘 문제 삼는건 박정희의 '과' 에 관한 내용이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이라.. 박정희가 시행했던 경제정책의 기틀은 이승만 정권때부터 마련돼있었습니다. 단지 박정희 대통령은 더 효과적이도록..(강압적 방법으로..) 한것 뿐이지요. 그리고 그때의 경제 부흥 뒤에 숨겨진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며 인간이하 대접을 받으면 일해야했던 분들없이는???
윗글에 상당히 공감이 가네요! 물론 지도자가 공도 있고 과도 있겠지만, 지금 이것을 논하는 우리는 그 공의 혜택을 받고서 논하는 입장입니다. 차분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과가 있다곤 하지만 세계최악의 빈국을 한강의 기적으로 이끈공은 하기좋은말로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니지요. 세계가 부러러워 하는것을 ......
박정희의 경제정책?... 우습네요... 박정희... 땡깡 무식 군발이 입니다... 그런 경제개발 정책들은 이미 다 세워져있던 이론들인데.. 그걸 밀고 나갈 막강한 정부가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군사권을 쥐고 있는 쿠데타 정권이니.. 그럴 힘이 있어서 이룰수 있었던 거죠...
첫댓글 객관성을 포장한 과대한 부풀리기의 면이 보이는군요.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부류들에게 거침없는 입담으로 심한 모욕을 가함도 보이며..스스로 객관적이고자 하면서 "공" 부분에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미화 내지는 과대포장한 흔적이 보이나 "과" 부분에 대해선 단 몇줄..그것도 "과"에 대한 변명에 치중하고있다.
글의 태도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물론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기도 했지만)토론의 여지를 스스로 봉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이글이 어떻게 냉정한 글로써 반박에게도 수긍할만한 글이라 생각하는지..수긍은 커녕..객관성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느낌...그리피스님이 이글을 읽고 무척 공감했다고
하신다면 그리피스 님을 감히 "맹목적 친 박정희"라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분이 그런면이 있다는것은 저두 인정합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각각의 예를 든것입니다. 친박과 반박의 생각에 대한...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깊이 파고든 글이라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정하신다니 다행입니다...내용면에서도 공감할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실버레인 21님은 진정 어제 얘기했던 논의를 하고 싶은겁니까 ? 각각의 예를 든것이고 차분히 좀더 지켜 보시죠. 저의 접근 방식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고... 차이를 알아야 이야기를 할수 있는것이지요. 그런측면에서 각각의 글들을 먼저 올린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효율적인 시간 활용(역시나 직장에 매인 몸이라...)을 하여 접근해 나갈까 합니다. 오늘은 '관치경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오후에 올리려 합니다.
뜯어봐도 박정희의 경제적 "공"은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제가 경제에 문외한이긴 하나 경제적 업적에 있어서는 사료만으로 평가할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여러가지를 봐야 하지요..관치경제..개발독재..님이 올리실 글들을 지켜보겠습니다.하지만 스스로 객관성을 유지하시고자 한다면
친박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균형을 유지한 글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관치경제,개발독재의 옹호글 또는 필요악의 입장에서 서술된 글은 사양합니다.
어렵군요.. 이정도는 안될까요 ? 관치경제의 태생은 국가보증으로 인한 불가피성었으나 후반기 정경유착등 폐단이 나왔다는식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서술형식... 그 이상은 글을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죠.균형을 잡을려면 사실을 근거로 해야하는데 '사료'를 부정하신다면 논의는 불가한것이지요. 역시 불가능한가요 ?
돌려서 저에게 균형잡힌 객관성을 요구하시는 실버레안 21님께서도 객관성을 지키셔야되는것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무서워 '사료'를 부정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제가 친박을 비판하고 반박의 논리를 올려야 균형이 잡혔다고 생각하시는 의도는 아니시겠죠 ?
글 다 썻다가 보류중입니다.
'사료'를 무서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료'를 부정하는 일을 결코 없습니다.다만 그 '사료'라는게 주관적인 입장에 따라 변할수 있는 '사료'아닌 '사료'이기 때문입니다.위의 글또한 '사료'라는 형식으로 객관성을 표방했지만 똑같은 '사료'를 가지고도 또다른 '주장'이 나올수 있기 때문에 '사료'라는 형식을 빌려
그글이 온전히 '객관적'이다라고 하게 된다면 그 글은 완전히 수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 또한 객관적이지 못함은 인정합니다...박정희에 관한 논쟁은 가히 객관적일수 없다는게 딜레마라면 딜레마겠네요...제가 그렇기에 님또한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서술은 어려울듯하여 노파심에 말씀드렸던것입니다.
글 올려주세요..읽어보고 판단하겠습니다..제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관계로 토론 다운 토론이 어려울수도 있습니다..저의 무지의 탓이라 생각하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니..너무 한심한 짓을 제가 하고 있는 것 같군요..어차피 평행선의 논쟁일터...간략하게 정리하고 이만 마치겠습니다. 박정희의 "공"을 말하는 자들의 논리는 대부분이 "경제적 공"이다. 박정희의 "과"는 공포독재정치,유신체제,군사문화 양산,고문,친일,인권탄압..
지역감정,정경유착,..등.. 경제적 부와 같은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시 하는 가치관의 부류들에겐 박정희는 구국의 아버지요 근대화의 아버지이겠지만 정신적 가치를 최우선시 하는 부류들에겐 박정희는 독재자이며 인권탄압을 자행한 청산되어야 할 역사이다. 극단적인 이분법이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평가가 나올수밖에 없는게 박정희 논쟁이다.'사료'라는 형식을 빌려서 쓴 수많은 저서들이 각각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다.친박이건 반박이건간에..그래도 여전히 논쟁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건 박정희를 평가함에 있어서의 가치관의 차이가 현격히 다른것이다.
가치관 뿐만 아니라 지역적, 연령별 특성에 따라 또 극명히 나뉘는게 이 박정희논쟁이다.지역적 특성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 박정희 인걸 보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자들이 갖는 박정희 향수는 이해할 수 있다.가난이 찢어지게 미웠을테니깐..그런 가난에게 구제해준(나는 인정하지 않지만)
박정희는 오늘날까지도 칭송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그들이 갖는 박정희 향수를 그시대의 '상황론'에 대입해서 인정을 할수도 있다.하지만 '향수'는 '향수'일뿐.박정희 '향수'가 박정희의 '공'이 될수는 없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적'공'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일한 만큼 일한자들에게 돌아갔는가..경제적 성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발전해감에 따라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국민들이 함께 발전하게되었는가..경제적'공'을 '공'으로만 볼수없는게 위와같은 이유다. 빈부격차의 심화,관치경제가 결국엔 정경유착으로
실버레인21의 글 충분히 공감합니다. 어쩌다 이런저런 논쟁이 되어 버렸지만 같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편을 갈라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우습기도 하고요. 그는 저에겐 애증(愛憎)의 인물인 것이지요. 역사에 관심있는 나로서는 무관심히기도 그렇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그럼 이런 측면으로 보죠 ? 21세기 지금은 일한만큼 일한자들에게 돌아 갑니까 ? 조세 제도의 개념이 없던 시절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부가가치세'를 도입한이가 누구입니까 ? 서민들을 위한 '의료보험'을 만든이가 누구입니까? 미국은 일본은 빈부격차가 없습니까?
재벌의 비대화와 재벌옹호로..급기야는 서민경제를 파탄내는 원흉으로 작용했다면 그의 경제적 '공'은 공이 아닌 '과'가 될수도 있기에 '사료'라는게 어찌보면 무의미할수도 있다는것이다.왜냐면..결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양지가 있다면 응지가 있기 마련이기에...가치판단이 개입할수 밖에 없는 '사료'이기에
자본주의 본질적 딜레마와 박정희의 과와는 구별을 해야한다 생각합니다. 정경유착은 잘못된 것이지만 관치경제는 그당시 구멍가게 수준의 한국 기업을 믿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국가보증에서 시작되었고 기업의 브렌드화를 통해 차관경제 상황에서 수출경제를 꾀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재벌의 비대화와 재벌옹호는 박정희 말기의 어두운면으로 분명 청산되어야할 과거입니다.
박정희 경제 정책의 60년대 시작은 경제를 위한 순수한 시작이었고 70년대 후반에 그 순수함을 잃은 것이지요.
제 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그리피스님의 글에 대한 답변은 나중에 하도록 하구요..경제적 '공'을 주장하는 부류들의 논리를 인정할 여지도 있다.가치관의 차이는 타도의 대상이 아닌 용인의 대상이기때문에..하지만 문제는 '과'부분에 대한 지나친 옹호와 변명이다.우리가 늘 문제 삼는건 박정희의 '과' 에 관한 내용이다.
회사라 제대로 글을 쓸수가 없네요..3시 30분 이후에 다시..
그럼 지나친 옹호와 변명이 아니라면 용인(?)의 대상으로 일부 받아들일수 있다는 얘기군요. '지나친'의 인식론적 문제와 변명의 논리가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이정도라면 논의는 계속될 여지가 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이라.. 박정희가 시행했던 경제정책의 기틀은 이승만 정권때부터 마련돼있었습니다. 단지 박정희 대통령은 더 효과적이도록..(강압적 방법으로..) 한것 뿐이지요. 그리고 그때의 경제 부흥 뒤에 숨겨진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며 인간이하 대접을 받으면 일해야했던 분들없이는???
윗글에 상당히 공감이 가네요! 물론 지도자가 공도 있고 과도 있겠지만, 지금 이것을 논하는 우리는 그 공의 혜택을 받고서 논하는 입장입니다. 차분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과가 있다곤 하지만 세계최악의 빈국을 한강의 기적으로 이끈공은 하기좋은말로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니지요. 세계가 부러러워 하는것을 ......
그런식이라면 미국한테 원조받고 커온 한국은 미국이 우리한테 어떤 개짓거리를 해도 말도 하면 안되겠군요. 공은 공이고 과는 과입니다. 무언가 혜택을 받았다하여 상대방의 과오에 대해 입을 다물라하면 그게 은혜이고 공입니까?? 나중에 입 못열게 만들 책략일 뿐입니다.
덧글이 늘면서 토론의 논지가 그리피스님의 처음 의도와 멀어지는 같습니다. 윗글은 분명히 친박의 입장이라고 초두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피스님의 다음 글이 기대되네요
박정희의 경제정책?... 우습네요... 박정희... 땡깡 무식 군발이 입니다... 그런 경제개발 정책들은 이미 다 세워져있던 이론들인데.. 그걸 밀고 나갈 막강한 정부가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군사권을 쥐고 있는 쿠데타 정권이니.. 그럴 힘이 있어서 이룰수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