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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별부(天藏別府)-2 칼 한 자루가 꿈결처럼 움직였다. 끝없이 펼쳐진 꽃밭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환상을 만들었다. 도명(刀鳴)을 토하며 요사스럽게 빛나는 칼의 표적은 한 중년 승려였다. 우우웅~. 부리부리한 눈에 덥수룩한 수염, 각진 턱의 흉악한 얼굴. 곰을 연상시키는 우람한 덩치. 폭력을 일삼는 건달도 피를 뿌리는 살인귀도 아닌 자비를 업으로 삼은 승려의 외모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얼굴을 봤다가는 심장마비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주. 홍몽진결이 빠진 몽환도는 진주가 없는 조개나 다름없네.” 합장한 손바닥 사이에 칼이 잡혔다. “개소리. 몽환도는 최고다.” 칼의 주인은 연적하였다. “몽환도가 최고의 도법이란 것을 부정하진 않네. 하지만 자네는 핵심이 결여돼 있어. 홍몽진결만 아니라 도의 마음을 모르고 있네.” “웃기지마!” 연적하는 칼에 내공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상대는 보통 승려가 아니었다. 승려는 삼대이인의 하나이자 소림사 최강의 고수인 괴승 일묘였다. 연적하의 내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커억!” 일묘의 반야선공은 연적하의 내공을 빨아 들였다가 두 배가 넘는 힘으로 되돌려 주었다. 순식간에 손목이 탈골됐고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입은 연적하는 이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빈승은 예전에 송 시주와 손을 나눈 적이 있었네. 그때 송시주가 펼친 몽환도는 아름답고 동시에 무서웠네. 그러나 자네는 그저 형식에 치우쳐 움직이기만 할뿐이네.” “웃기지 말라고!” 연적하는 괴승 일묘를 향해 돌진했다. 일묘는 왼손을 들더니 연적하를 향해 뻗었다. 삽시간에 주위가 진공상태로 변하더니 거대한 압력이 연적하를 짓눌렀다. 소림사의 비전 백보신권이었다. “헉!” 연적하는 거대한 망치에 맞은 듯 전신이 박살나더니 뒤로 날아갔다. 물려 10여장이나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진 뒤 3, 4장이나 굴른 연적하는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미타불.” 한 명의 악인을 교화하려고 백 명의 선인을 다치게 하는 우를 범하려니 그 악인을 처단하겠다는 것이 일묘의 지론이었다. “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혼을 싣는 것이네. 혼이 실린 칼은 자연스럽게 기세를 만든다네. 시주는 그걸 모르고 몽환도를 익혔으니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방법을 추구한 것이네.” 일묘는 연적하의 시신을 내려보며 말했다. “으아악!” 비명이 들려오자 일묘는 시선을 돌렸다. “아미타불.” 연적심이 구파 고수들의 합공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본 일묘는 불호를 외웠다. “고양이가 죽은 쥐의 명복을 비는군.” “언 시주.” 언봉운의 신체에 십여 자루가 넘는 병장기가 관통돼 있었다. 벌써 죽어도 예전에 죽었을 만큼 치명상을 당했음에도 일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상처에서 쏟아진 붉은 선혈로 발자국을 남기며 힘겹게 걸으며 말했다. “진주언가를 부활시키는 게 그리 죄인가?” “악업으로 세운 탑은 무너지는 법이오. 언 시주는 악업의 대가를 받은 것이오. 이 모든 게 업보인 것을...” “크크크,. 그래서 언가의 핏줄을 몰살시켰다는 것이냐.” “아미타불.” “부처를 찾아 너희들의 죄를 넘기려고 하지 마라.” 언봉운의 절규는 피가 맺혔다. 언가의 핏줄들, 동생들과 조카와 어린 아들이 피로 만든 연못에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는 언봉운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가는 그렇다 치고 공령문은 어떻게 할 것이냐?” “공령문은 언 시주에게 이용만 당했을 뿐 특별한 죄과가 없으니 근신처벌을 내릴 것이오.” “흐흐흐, 척신명. 이 쳐 죽일 놈이 공령문을 날로 먹었구나. 좋다. 너희들이 원하는 물건을 주마. 이 마물을.” 언봉운은 품속에서 을목도를 꺼내 들었다. “가져가라. 피를 부르는 마물을 가져라. 그러나 잊지 마라. 피로 얻었으니 그만큼 너희들도 피를 흘릴 것이다.” 언봉운은 을목도를 일묘에게 던졌다. “내가 어리석어 당했으니 할 말을 없다. 하지만 이 원한은 어쩌란 말... 이... 냐...” 언봉운은 선 채로 숨이 끊어졌다. 얼마나 원한이 맺혔는지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어리석구나. 그러나 우리도 똑같은 어리석음을 선택한 지도 모르겠구나. 아미타불. 아미타불.” 일묘는 오른 손에 들려 있는 피 묻은 을목도를 보며 연신 불호를 외웠다. “대사님. 모두 해결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수고를 하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들의 시신을 매장해 줍시다. 미물들의 밥이 되도록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묘의 의견에 각파의 인사들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구파와 복수혈의 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태을궁과 사해방에서 많은 혈육과 동료를 잃은 그들은 언봉운과 연적심을 수십 번 찢어 죽여도 풀리지 않을 만큼 원한이 깊었다. “저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만 용서하고 매장해 줍시다. 빈승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불만이 역력했다. 그러나 괴승 일묘가 허리를 숙이며 부탁하는데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땅을 파고 시체를 매장하기 시작했다. “원수의 무덤을 만들 줄은 몰랐군.” “나 역시 마찬가지라네. 그러나 어쩌겠나. 해야지.” “그런데 아무리 대 상인이라지만 일개 장사치인 척신명이 태을궁 참변의 원흉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모르겠네.” “장사꾼은 정보에 밝지 않는가. 그 자 덕분에 이렇게 복수를 했으니 좋은 거 아닌가. 물론 그 자도 이익이 있으니까 알렸겠지.” 의문을 드러냈던 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복수와 천장별부의 열쇠 중에 하나인 을목도를 얻은 사실이다. 설령 척신명의 손에 놀아났다고 해도 을목도를 얻은 거 하나로 넘어갈 만큼 그들은 천장별부의 보물에 미쳐 있었다. 악삼이 북경에 도착한 날은 정확하게 약속한 날짜였다. “악 가가, 어서 이의루로 가요.” “지매. 이의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소채 언니도 참, 내가 북경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갈운지가 입을 삐죽거리자 갈운정과 갈운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아 볼 테니 너는 입 좀 다물고 있으렴.” “어머! 오라버니. 저를 수다쟁이로 만드는군요.” “하아~, 너는 수다쟁이가 아니란 것을 내가 보장할 테니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으렴. 삼 아우의 표정을 봐라.” 갈운정이 악삼의 표정을 보라고 눈짓을 주자 갈운지는 입을 다물었다. 악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이의루 때문이야?” “아닙니다. 누님.” 악삼의 안색이 굳은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백일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은 숙부 악도형과 위험이 가득한 천장별부를 갈씨 자매, 특히 갈운지를 데리고 들어갈 생각에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그럴까요.” “응. 동생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겠어.” 악소채가 화사하게 웃자 악삼은 멋쩍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의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 “그래요.” 갈운정이 이의루의 위치를 알아가지고 왔다. 악삼 일행은 이의루를 향했다. 반 시진 만에 도착한 이의루는 3층의 거대 누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악 대협.” 점잖게 생긴 30대 장년 인이 악삼을 반겼다. “누구십니까?” “안내를 맡은 사람입니다. 후원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따라오십시오.” “누가 마련한 것입니까?” “운문상단의 척 대인이십니다. 척 대인은 이의루의 후원을 통째로 빌리셨습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후원은 별유천지(別有天地)였다. 기암괴석으로 산악을, 작은 연못은 호수를 연상시켰다. 특히 화려한 연꽃으로 뒤 덥힌 연못의 중앙에 만들어진 정자는 운치가 있었다. “정말 아름다워요. 이정도면 선교장에 못 지 않네요.” 갈운지는 탄성을 질렀다. 정원 문화가 발달한 소주나 양주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정원을 북경, 그것도 일개 객잔에서 볼 줄을 몰랐기에 나온 감탄사였다. “다를 이곳에 계십시다.” 안내인이 가리킨 건물은 웅장한 2층 건물이었다. 마치 궁성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위용과 화려함은 악삼 일행을 압도했다. “이런 곳이 객잔이라니... 어이없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중에 운남에 돌아가거든 꼭 이런 건물을 지어달라고 아버지를 졸라야지.” 갈운지는 철없는 듯 행동하면서도 나름대로 주위를 훑어 보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의루가 현재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내인이 문을 열자 반듯하게 연마한 석판이 깔린 연회장이 나타났다. 30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원형 식탁을 중심으로 수십 개에 달하는 작은 식탁들이 놓여져 있었다. 작은 식탁 위에는 산해진미와 술병들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고 원형 식탁은 비어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각자의 방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럼 우리를 이곳에 안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악 소협을 이쪽으로 모시라고 내가 지시했기 때문이네.” 척신명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척 대인.” “반갑네. 악 소협.” “그런데 어째서 저희만 이곳에 오게 했습니까?” “지금 이의루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흑백도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은원이 중첩돼 있어 잘못하다가는 대형사고로 발전할 수 있어 다른 장소에 모셨지. 악 소협이 도착하면 모두 이곳에 모이게 했네.” “알겠습니다.” 척신명이 악삼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척금방과 석진, 조 집사가 들어왔다. 갈운지는 척금방을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뛰어갔다. “금방 동생.” “운지 언니. 오랜만이에요.” “응. 정말 오랜만이네. 석진 선배님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런데 조 집사님은 이곳에 웬 일이에요? 혹시 보영 언니도 온 거예요?” “보영 아가씨는 선교장에 계십니다. 저는 석진 무사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조 집사는 조리 있게 대답했다. “오랜만이네. 악삼 아우.” “그동안 평안 하셨습니까.” 석진이 악삼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다들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일묘 대사와 용개 풍시종, 단석동을 필두로 한 정파의 무리들이 들어오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게다가 홍면금살군과 악중악, 등곡이 들어오자 연회장의 온도는 영하로 떨어진 듯 냉랭하게 변했다. 정파와 홍면금살군 사이에 삭막한 기운이 오가는 사이 온마와 구청림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연회장은 삼파전의 양상을 띠었다. 그런데 금면객이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열 명을 대동하고 들어오자 상황은 또 달라졌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은 봉합된 것처럼 사라졌고 보이지 않는 대치가 깊어졌다. “자~, 여러분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는 천장별부를 열기 위해서입니다. 목적한 일을 해결할 동안 은원을 잠시 접어두기로 합시다. 그리고 보물의 분배는 합의된 사항대로 할 겁니다. 다들 동의하십니까. 불만이 있는 분은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척신명이 대치상황을 단숨에 일소시켰다. “동의하오.” “우리도 동의하겠소.” 다들 불만이 있었지만 일단 천장별부를 연 뒤에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전원 찬성을 표시했다. “좋습니다. 그럼 단 장령께서 말씀하시지요.” 척신명은 단석동에게 시선을 돌렸다. 단석동은 중앙에 놓여진 원형식탁을 향해 걸어갔다. 원형식탁에 도착한 단석동은 자기를 노려보는 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행도와 푸른 늑대조각을 가지고 계신 분은 모여 주십시오.” 악삼과 악소채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두 사람이 움직이자 악중악과 홍면금살군, 척신명, 금면객이 원형 식탁을 향해 걸어갔다. 정파에선 일묘 대사와 용개 풍시종이 움직였다. “일단 푸른 늑대조각부터 내려놓으십시오.” 악삼이 먼저 푸른 늑대조각을 내려놓자 악중악과 풍개 용시종도 푸른 늑대조각을 꺼냈다. “저는 그동안 푸른 늑대조각의 비밀을 연구했습니다. 노력한 덕분인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아냈습니다. 그건 푸른 늑대조각의 복부에서 등까지 미세한 선과 기호들이 양각(陽刻)돼 있다는 점입니다.” 단석동은 탁본을 뜰 준비물을 식탁 위에 올려놓자 척신명이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단 장령께서 탁본을 뜨는 동안 강호의 동도들께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술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같은 세력들끼리 작은 식탁에 모두 앉았지만 누구도 음식과 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다들 탁본을 뜨고 있는 단석동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오직 석진과 조 집사만 음식과 술병에 손을 뻗었다. “운지 소저. 이 술은 귀주에서만 난다는 모태주요. 정말 귀한 술이요. 한 잔 들지 않겠소.” “세상에... 지금 상황이 술 마시고 놀 분위기에요. 정말 석진 선배님은 못 말리겠군요.” “아니다. 운지야. 금방 동생도 만났고 하니 편안하게 즐기자꾸나.” “과연 운영 소저는 여걸이오.” 석진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우며 칭찬했다. 갈씨 삼남매와 척금방은 석진과 조 집사가 앉은 식탁에 동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곳과 달리 즐겁게 떠들고 놀기 시작했다. “끝났다.” 단석동의 이 한 마디가 떨어지기 전까지. 순식간에 연회장은 적막에 빠지면서 숨막히는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수고했소. 단 장령.” “감사합니다. 방주님.” 단석동은 손에 한 장의 탁본이 들려 있었다. 세 개의 푸른 늑대조각의 문양을 한 장의 종이로 탁본을 떤 것이다.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은 탁본지에 집중됐다. 단석동은 탁본을 원형 식탁에 펼쳤다. 세 개의 푸른 늑대조각에 그려져 있던 선들과 부호가 합쳐져 하나의 지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은!” “역시!”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는 팔달령이었다. 원형 식탁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척신명을 바라보았다. 이의루라는 장소를 선택한 사람이 척신명이었기 때문이다. “북경은 원나라 시절 대도라 불리는 수도였소. 막대한 황금을 멀리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고, 천장별부의 목적 자체가 국난이 나면 사용하라 했으니 북경보다 북쪽이라고 추정한 것이오.” “척 대인의 현명함은 어느 석학보다 뛰어난 거 같소.” “과찬입니다. 그런데 팔달령이라면 지금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할 거리입니다. 지금 출발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출발합시다. 이런 일은 한 시의 지체도 없는 게 좋습니다. 쓸데없이 소문이 나면 큰 재앙을 부릅니다. 게다가 군부나 동창에서도 천장별부를 노리고 있다는데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풍시종이 지체하지 말고 천장별부로 가자고 제의했다. “그럽시다. 풍 방주의 의견이 옳은 거 같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합시다. 혹시 해서 식량과 물을 실은 마차를 준비한 게 천만다행인거 같습니다.” 척신명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용관을 통과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연회장에 앉아 있던 무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형식탁에 있던 사람들은 척신명의 농간에 움직인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어 표정이 밝지 못했다. 게다가 철저한 척신명의 준비성과 치밀한 두뇌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었기에 자기 세력에 합류해 천장별부에서 있을 만약에 대비한 준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강호인이 만남과 이별을 중히 여기는 것은 대륙이 넓기 때문이다. 한 번 헤어지면 죽을 때까지 못 만나는 일이 허다할 만큼 대륙은 넓었다. 그런데 세상사라는 게 묘한 법이듯 아무 약속도 없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우연하게 조우하는 경우가 있다. 서문종과 동문보, 고 파파는가 그런 경우를 맞이했다. 서문종과 동문보, 고 파파 세 노인이 식사를 하려고 들어간 객잔에 동해방주와 송씨 일족이 묻고 있었고, 하필이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헌!” “아니! 세 분께서 이곳에 웬 일이십니까?” 송자헌은 세 노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세 노인이 합석하자 송자헌은 동해방주를 소개했다. 식사를 끝낸 장천익이 아내인 송자영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자 세 노인은 동해방주와 송자헌에게 지금까지 발생한 일을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원이 멸망했고 신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송자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송채린을 차기신녀로 해서 새로운 이원을 만든다는 세 노인의 의견이 나오자 분위기는 단숨에 바뀌었다. 동해방주와 송자헌은 단호하게 반대한 것이다. 그때부터 지루한 대치는 시작됐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장소군도 경청을 하고 있다가 송채린을 달라는 세 노인의 뜻을 안 뒤부터 격분했다. 세 노인이 사랑스러운 동생을 뺏으러 온 셈이니 결코 곱게 보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조부님이 말씀하시는데 끼어 들 수 없는 처지라 속만 태우고 있었다. “장 총사님.” “화 각주.” 장소군의 등 뒤에 화월영이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요?” “이의루에 모여 있던 자들이 모두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오호! 그럼 천장별부의 장소를 알아냈다는 뜻이군.” 장소군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화월영은 발 빠르게 움직여 방대한 정보망을 구축했다. “그들이 천장별부에 들어가면 전위대가 입구를 포위할 겁니다.” “그럼 나도 움직여야겠군.” “마차를 준비해뒀습니다.” 장소군은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가 천장별부에 들어간 무인들이 보물을 들고 나오면 함정을 파고 낚아챌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분명히 보물을 놓고 피터지게 싸울 거야. 보물을 챙긴 자도 크게 지쳐있거나 다쳐서 나오겠지.” 무인들이 천장별부에서 보물을 놓고 싸울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어서 가시지요.” “그래야겠지.” 장소군은 세 노인과 대치 중인 두 조부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짓고는 밖으로 나왔다. “북경에 가느냐?” “외할아버지!” 뜻밖에 희 노인이 마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계셨어요?” “이래 봐도 살막의 주인이란다.” “그럼 저를 도와주시려고 오신 거예요?” “저 늙은이들을 막아야 하니 움직일 수가 없지. 나라도 중재해야지 안 그랬다간 난리가 나지 않겠니. 하지만 너를 위해 살막의 일급살수 100명을 준비했다.” “고마워요. 외할아버지.” 장소군은 희 노인을 껴안으며 기뻐했다. “잘 다녀 오거라.” “네.” 희 노인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장소군은 마차를 탔다. 마차가 북경을 향해 질주하자 은신하고 있던 살막의 자객 백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마차 하나만 보일뿐 자객의 흔적은 없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마차의 기세는 폭풍 같았다. 천장별부의 입구는 팔달령 장성을 넘어 5리를 더 가자 나타났다. “저기입니다.” 단석동이 가리킨 곳은 작은 협곡 사이였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았는지 수풀로 가득 해 움직이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다들 군 소리 없이 묵묵히 걸어갔다. “이곳입니다.” 거대한 바위로 막혀있는 암벽을 단석동이 가리키자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무인들은 합심해 수만근은 족히 나갈 바위를 치웠다. 바위를 치우자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 “들어갑시다.” 근 500여장 정도 걸어 들어가자 동굴은 막혀 있었다. 단단한 암벽에는 다섯 개의 손을 가진 기괴한 불상이 조각돼 있었고 상부에는 천장별부라는 쓰여 진 석판이 걸려 있었다. “오행도를 가지고 오십시오.” 단석동이 암벽에 조각된 불상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말하자 오행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섯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행도를 단석동에게 넘겼다. “불은 주작을 뜻하니 남방을 가리키는 손바닥에 박으면 되고, 물은 불의 상극이며 현무을 뜻하니 북방을 의미하는 상단, 서는 백호의 자리이니 금을, 동은 청룡이니 목, 중앙은 토의 자리군.” 단석동은 오행도로 불상의 다섯 손바닥에 차례대로 꽂았다. 우르릉. 둔탁한 소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불상이 조각된 암벽의 측면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렸다.” 동굴 안에는 7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일파를 대표하는 강자답게 여유가 있었다. 천장별부의 문이 열렸는데도 성급하게 뛰어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들어가시죠.” 단석동이 가장 먼저 들어가자 다른 무인들이 차례차례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별부 안으로 들어가는 무인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 서려 있었다. 악삼 일행은 맨 마지막에 들어갈 생각인지 끝에 서 있었고 금면객 일행만이 남았다. “자네 두 사람은 남아 있게.” 금면객이 갑자기 두 사람을 지목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악의를 가진 인물이 입구를 장악한다면 지금 하는 일은 헛고생이 될 뿐 아니라 목숨도 부지 못할 수 있네. 두 사람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면 큰 시름을 덜게 되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천장별부가 더 위험한 곳입니다. 저희 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부탁이네.” 두 사람은 탄식을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리고 이것을 받게.” “무엇입니까?” 금면객은 두 사람에게 두루마리를 하나 건네주었다. “내가 천장별부 안에 들어간 뒤에 펴보게.” “알겠습니다.” 금면객이 천장별부 안으로 들어가자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덟 사람은 말없이 뒤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만 남고 모두 들어가자 악삼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악삼과 악소채가 입구로 향한 발걸음을 갑자기 바꾸었다. “숙부님.” 악소채가 입구의 우측에 서있는 철가면의 남자를 숙부라고 부르자 갈씨 삼남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숙부님.” “하아~, 언제부터 알았느냐?” “잊으셨어요. 제가 한 번이라도 본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을요.” “17년이 넘었는데 기억한단 말이냐? 그동안 변한 나를 말이다.” “육가문이 멸문할 때 숙부님을 봤어요.”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은 우조 조장이었다. “너를 볼 면목이 없다. 내 얼굴을 가린 철면이 진정한 내 얼굴일지도 모르겠구나.” 악소채와 우조 조장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악삼은 다른 인물과 마주 서 있었다. “내게 볼 일이 있소?” 한 마디 말도 없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악삼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철가면을 쓴 인물이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열여덟 살이 됩니다.” “무슨 말이요?” “이름은 소미입니다. 그리고 숙모님의 기다림을 이제 대답할 시기가 오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난 줄 알았느냐?” 그는 좌조 조장이었다. 어린 악삼을 데리고 산동악가에 왔던 악도형이었다. “그저 느낌이었습니다.” “느낌이라... 허허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나온다면 숙부님을 모시고 돌아갈 생각입니다.” 악삼의 말투는 단호했다. 좌조 조장은 얼굴을 가린 철가면을 벗어던졌다. 나이가 들어 완연한 40대 중년인의 얼굴, 그러나 악삼이 기억하는 악도형의 얼굴이었다. 악삼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천장별부 안으로 걸어갔다. “무사해야 한다. 꼭 무사해야 한다.” 그러나 악삼은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안으로 걸어갔다. 악소채와 갈씨 삼남매는 악삼을 뒤쫓아 천장별부로 들어갔다. “세월이 무섭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도형.” “오랜만에 듣는군요. 제 이름을 말입니다. 형님.” “형님이란 호칭이란 오랜만에 듣네.” “그렇군요. 하하하~.” 악도형은 호탕하게 웃었다. 슬픔과 허탈함이 스며 있는 악도형의 웃음소리는 우조 조장의 가슴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주께서 주신 두루마리는 무엇인지 알겠는가?” “글쎄요. 촉감을 봐서는 소검을 감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그럼 어서 펴보게.” 두루마리를 펼치자 작은 검이 한 자루 나왔다. “이, 이검은 단검령!” 산동악가의 가주를 뜻하는 단검령이 두루마기 안에서 나오자 두 사람은 경악했다. “두루마리에 글이 있습니다.” “어서 잃어보게.” 우조 조장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단검령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네. 그러나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니 놀라지 말게. 나는 그동안 비영을 본 가의 가주로 삼아야할지 고민했네. 시간이 지날수록 비영의 능력으론 본 가를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했네. 특히 쉽게 이길 수 있는 육가문과 벌인 전투를 욕심을 부렸다가 40여명이 넘는 백영대의 대원들을 사망케 한 것은 한 가문의 수장이 될 자질을 의심케 했네. 그러나 핏줄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마지막 기회를 비영에게 주기로 했네. 그래서 비영을 일부로 천장별부에 데려온 것이지. 하지만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킨다면 본 가의 앞날을 위해 목숨을 직접 거둘 생각이네. 그리고 두 사람을 남겨둔 이유는 본 가의 앞날을 위해서이네. 나는 본 가의 차기가주로 악삼을 낙점했네. 악삼이라면 본 가를 반석위에 올려놀 인재라고 판단했네. 그리고 우조 조장 자네를 남으라 한 것은 본 가의 미래를 위해서였네. 자네의 조카인 소채는 초인적인 재질을 타고났지. 소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차기 가모로 결정했네. 자네가 소채와 악삼을 맺어주기 바라네. 마지막까지 구차한 부탁을 하는 나를 생각해 꼭 들어주기 바라네.- 두루마리는 악군청의 유서나 다름없었다. “가주님...” 두 사람의 시선이 두루마리에서 천장별부의 입구로 움직였다. 천장별부로 들어가던 악군청의 뒷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환영처럼 나타났다. 끝까지 산동악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악군청의 모습이 두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당신은 역대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가주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잔인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천장별부의 입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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