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침공 레인저의 혼동과 방황
미군이 베트남전 이후에 벌인 그라나다와 파나마 침공은 멋진
현대전의 전사들을 전하고 있지만, 결국 미국이 자신들의
엉덩이 밑에 있는 섬들이나 아메리카 하반신들에, '실제적인
본토의 위협'이란 명제 아래 가공할 힘의 선방으로 침묵시킨
경우라고 말할 수 있고, 이는 명백한 팬텀급과 무제한급의
싸움이다.
이것은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미국이
이기는 것인데, 단지 미국에서는 언론의 뭇매를 피하고 희생자를
줄여서 빨리 끝내는 것이 작전에 주 골머리였을 뿐이다.
앞서 말한 글이 길어질 것 같은 염려를 불식코자
간단히 줄여말하면, 레이건 정부 시절에, 가뜩이나 월남전에서
침체된 미군을 기 살려 놨는데, 자신들의 엉덩이 밑에 있는 이
작은 섬에 소련이 개입하는 징후를 보이면서 쿠바의 군사고문단과
기술자들이 모여들어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이 두려워한
것은 그 섬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면 미 본토에 대한 사정거리가
되고, 그곳에 비행장을 만들면 미 본토폭격의 사정거리가 된다는
가장 단순한 논리였다.
간단한 예로 따지면, 1979년에만 3만 4천 정의 소총과 3백만 발의
탄약이 그라나다로 들어갔다. 물론 소련제다. 미국 열받았고 바로
조치 들어가서 이 Operation EAGLE CLAW(나중에 명칭이 바뀐다)이
준비되고 시작된 것이다. 가뜩이나 기 죽었던 군대를 키워준
레이건은 그 힘을 과시하고 캐리비안에서 미국 건드리면
좆된다고 시범케이스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베트남의 악몽에서 벗어났어. 건들면 주거...'
그러한 미국의 강권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라나다에는 실제로 좌파들이
날뛰었고 우파나 민족주의자에 대한 살벌한 테러와 공격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상투적인) 그리고 1979년 3월에 들어선 공산주의
좌파정권은 소련과 쿠바의 도움을 빌어 3킬로미터 짜리 국제공항?을
건설했다. 미국이 연장에 LSD를 바르기 시작했다.
하여간 수도 없이 올라온, 네이비 씰의 비극적인 사건과 더불어 여러
작전들이 시작되었는데, 오늘 쓰는 글은 짧고 간결한 미 75레인저의
포트 살리나스 공항의 전투강하가 되겠다.
<그라나다의 레인저 아자씨들>
당시 이 75레인저가 곤란을 겪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군이 침공을 하게 되면 특수전부대가 먼저 들어가서 기타 정보제공과
유도를 시작하고, 침공의 본격적인 서순에서는 육군이면 75레인저가
해병이면 포스리컨이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순서는, 특수전(특수임무)부대-레인저-공수사단-보병이나 특화사단....이다.
그런데 이 네이비씰의 비극적인 수상강하 사고가 75레인저의 작전에
영향을 주게된 것은, 바로 이 네이비 씰의 임무중 하나가 포트 살리나스
공항에서 75레인저의 수송기를 유도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육군 레인저의 작전은 전체 침공에 큰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
레인저는 포트 살리나스 공항점거와 Grand Anse Medical School의
미국인 학생들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최초의 계획은 세대의 C-130 허큘리스를 타고 바로 공항의 활주로로
강제착륙하여 작전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이후 레인저가 공항을
점거하면 82공수사단 대원들이 수송기로 비행장에 착륙하는
시나리오였다. 이후 레인저는 섬의 남쪽으로 진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의대에 1개 중대를 파견하여 미국학생들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레인저의 Urgent Fury 준비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이들은 출동 명령을 받고 바로 조지아주에 있는 헌터 미 육군비행장으로이동하여 C-130와 MC-130을 타고 그라나다로 이동했다. 물론 바바도스(바베이도스)에서 한번 기항하여 연료를 충전하고 그라나다로 간다.
레인저는 부대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살리나스 공항 하나는 미국인이
있는 의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공항은 섬의 남동쪽 끝에 있었다.
네이비 씰팀이 살리나스 공항의 해변접근이 실패로 돌아가자, 공항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레인저를 실은 수송기들은
이미 그라나다를 향해 이륙해서 날고 있었다. H-hour를 맞추기 위하여
이들은 여명이 오기 전에 도착해야 했으나, 불행히도 그들이 타고
있던 MC-130 수송기의 항법장치에 문제가 발생했다.
(하여간 2차대전이나 현대전이나....)
거기다가 미 공군과의 연락도 안테나 문제로 명확하지가 못했다.
레인저부대는 수송기를 타고 가면서 위성과 정찰기가 찍은 목표
부근의 사진만을 보았다. 비행장의 활주로에 착륙하기로 되어 있던
계획에 따라서 가고 있었지만, 활주로에 장애물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거기다가 네이비 씰팀이 장치해주기로 했던 비콘의 발사음은 수송기의
장비로 전파가 잡히지 않았다(당시 시체수거 중.). 결국 공항상공은
가까워지고 수송기 내부의 레인저 지휘관은 고민에 빠진다.
"정보가 없고, 비콘도 안나옵니다. 본토와 무전기 교신도 잘 안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비행장 활주로에 장애물이라도 있으면 공패스를
돌아야 하고, 잘못하면 우리는 당합니다. 대대장님이 판단하십쇼."
문제는 이것이다. 비행기가 가장 취약한 때는 이륙과 착륙을 할때다.
점프용 저속 수송기는 소화기로도 맞출 수 있다. 그러므로 착륙을 시도
하다가 장애물을 발견하면, 비행장에 반드시 있는 전문 대공포좌에는
그냥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당시 비상시를 위해서 수송기 한켠에는 거의 대원수에 맞는 낙하산을
적재하여 쌓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국과 틀린 교리중에 하나는
장거리를 날아갈 경우 미군은 낙하산을 그냥 탑재했다가 가까운
상공에서 낙하산을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 이 경우가
그러했다. 이때 활주로 랜딩공격이 최초 작전개념이었던
레인저는 완전무장상태였고 낙하산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휘관은 결정했다.
"일단 낙하산을 착용해!!"
그러자 수송기 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좁은 수송기 안에서 가뜩이나
군장결속까지 했을때 복잡한 낙하산과 장비 착용은 매우 까다롭고 번잡한 것이었다. 대원들이 바쁘게 돌아가자 조종사가 한 소리 했다.
"마구 돌아다니지 마세요. 비행기 흔들려요."
(아는 사람만 이해하는 이야기)
지휘관 아마도 '우리나 지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이 전투강하 결속에서 가장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은 낙하산 착용 그 자체가 아니라 군장결속이다. H-라이자로 군장을 결속하고 내림줄을 묶는 것이 가장 오래 걸린다. 대원들은 최대한 침착하게 군장과 낙하산을 결속했다. 이때 수송기는 공군의 것이었으나 미 공군과 통신이 두절된 상태였고, 수송기 조종사는 갑자기 집단강하를 거부하는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점프를 하는 저속상태가 대공포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도 공군지휘관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
"당신도 우리와 같이 죽게 된다. 길은 하나, 점프다."
이 레인저 지휘관은 조정석 옆에 죽치고 앉아 계속 강력하게 요구해서
결국 조종사의 허락을 받아냈고 이는 옳은 판단인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된다. 당시 포트 살리나스 공항의 활주로에는 그라나다군이 트럭과
불도저를 마구 가져다 놓아 착륙을 방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럴 경우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되는데....만약 그런 경우, 다시 상공에서 공패스를 돌면서 낙하산과 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리며 수송기가 돌아갈 연료가 부족하여 점프한 병력이 빨리 활주로를 치워서 착륙을 보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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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면, 미국인 인질들을 구출할 헬기들이
바바도스 섬에서 날아오는데 당시 그라나다 인근의 미 함정에 착함을
할 수가 없었다. 이는 해군과 육군의 경쟁에서 나온 에피소드였다.
오랜만에 고급지휘관들이 얻을 수 있는 진급 훈장의 바다, 전쟁이었던
것이다. 노만 슈왈츠코프는 1992년의 책에서 '그라나다에 영웅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 해병대의 대령은 상부의 지시 없이 레인저부대의 구출헬기를 급하게 퇴출시켰고, 이후 대원들이 해변에 남게 되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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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레인저의 선봉공격대인 1대대의 병력들과 이후 2대대의 비행기는
거리가 좀 떨어져서 오고 있었다. 선도비행그룹인 1대대가 성공해야
2대대도 안전하게 점프를 할 수가 있었다. 1대대가 얼마나 빨리 점프하여 주변 DZ청소를 하느냐가 문제였다. 물론 원래는 둘 다 랜딩이었다.
문제는 네이비씰의 유도도 정찰결과도 없었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2대대는 1대대의 활주로 점거를 통해 예정대로 랜딩으로 착륙하고
싶어했다.
레인저 지휘관은 결국 500피트 높이에서 예비낙하산 없이 점프하기로 결심한다. (약 150미터 상공. 2차대전때 노르망디로 인하여 기네스에는 못 오름) 그런데 1파의 선도기인 1번기에서 무전이 뒷 수송기로 날아왔다.
"본기의 항법장치가 트랜스미션(고장)에 걸렸다."
(꼭 손타이 습격작전 같죠?^^)
가뜩이나 바쁜 와중의 캐리비안해 상공에서 수송기는 1번기가 뒤로
빠지면서 다시 2번기가 선도를 맞는 대열변경을 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비행기간의 거리와 대열은 멀어지고 혼돈이 가중되었다.
(점프 비행기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선도비행기의 점프마스터는
가장 유능한 사람이 맡는다. 전체 점프를 총괄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수송기 안에서 별 지랄발광을 하던 레인저 지휘관은 거의
살리나스 공항 근처에 다다르자 수송기 조종사에게 물어본다.
"비콘음은 포착되는가??"
"그럼 거 없음..."
1번기 짬프마스터는 문에 섰고, 여명이 밝아오려는 섬의 풍경을 보면서
멀리 활주로를 시야로 확보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2번 강하자로 있는
레인저 대대장에게 고함을 쳐서 물었다.
"여기 분명히 비행장은 하납니까?"
"분명히 하나야. 봤으면 바로 그거야!"
"그렇다면 저는 목표를 봤습니다. 대대장님!"
"우린 그냥 GO 해야 돼!"
대원들은 예비낙하산도 떼어낸채 불안한 마음으로 생명고리를 걸고
서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전투시의 심각하게 무거운 군장으로
인해서 몸이 휘청이고 있었다.
마스터는 점프지점이 다가옴에 따라서 조종사와 마찬가지로 대공포화가 올라오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징후는 없었고 점프가 시작되자 잠에서 깬 쿠바군포수들이 졸라 쏘기 시작한다.)
드디어 'GO~!' 싸인이 나오고 그린라이트와 함께 75레인저 1대대 병력
들이 비행기를 박차고 점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불안했다.
예비낙하산도 없고 너무나도 낮은 고도에서 점프를 하기 때문이었다.
'제발 기능고장만은........'
더구나 더 불안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 점프에는 레인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통제사와 공병 등등 일부 타부대 인원이 같이 점프를 해야
했는데(미군의 특징), 낙하산이 모자란 것이다. 그러므로 몇명의 레인저
대원들은 낙하산을 필요한 특수임무 대원들에게 주고 그들은 수송기 착륙시에 랜딩을 하게 된 것이다. 껄쩍지근....
다른 헤프닝으로는 당시 1번기의 항법장치 고장으로 비행기 순서가 바뀜에 따라서, 원래 아니었던 첫번째 수송기가 1번기가 되었는데, 이 1번기는 전투제대가 아니라 지휘부, 즉 75레인저 1대대 대대본부 병력이었다. 하여간 이 80년대 팝송으로도 유명한 그라나다의 유사 이래 인간들이 낙하산을 타고 여명이 어설프게 밝아오는 하늘을 수놓기 시작한다. (그라나다 부른 여성 듀오 이름이 뭐지?)
결국, 전투제대 병력은 어이없게 30분 후에 낙하산으로 DZ에 점프한다. 전투병력이 뛰어내렸을 때, 30분 전에 내린 지휘부 병력들은 쿠바군
공병대에게 사격을 받고 교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관총과 로켓
등의 중화기는 전투제대에 있었기 때문에, 지휘부는 자동화기 만으로
응사를 하면서 고전을 하고 있었다.
(이때 수송기들은 공수사단 수송기들처럼 일열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캐리비안해 상공에서의 순서바꾸기로 인하여 대열이 훨씬 떨어진 수송기도 있을만큼 약간 흩어지고 이격된 상태였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뒤의 비행기들은 비행장에 바로 착륙하려고 낙하산과 결속장비를 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서 미 공군의 로드마스터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오직, 30분 정도의 연료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상의 레인저는
지금 전투 중에 있다. 비행장이 아직 청소되지 않았다. 레인저는
지금부터 20분 안에 점프해야 한다!!!! 아니면 그냥 돌아가야 한다...!!"
(바바도스 섬까지 돌아갈 수 있는 연료 이외에 여유분을 말함)
그러자 장비를 풀던 병력은 다시 낙하산에 착용을 했으나 장비가 문제였다. 장비의 H-라이자와 내림줄을 풀었던 것이다. (정확히 결속하려면 적어도 10분 이상이 소요된다. 낙하산보다 이 군장결속이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시 낙하산 착용해! 빨리 빨리...."
그러자 병력들은 주낙하산을 착용하고 먼저 생명고리를 걸고는
군장을 정식결속이 아닌 보이는 대로 끈과 유격로프, 내림줄,
H-라이자로 마구 묶어서 강하를 준비했다. 수송기안의 병력들은
긴장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군장을 예비낙하산이 걸려야하는
자리에 묶거나 걸어 버렸다.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
항공모함 마지막날의 혼돈과 매우 유사하다.
"무조건 어떻게든 그냥 빨리 단단하게 묶어!"
이 상황에서 점프마스터가 모든 대원의 결속상태를 점검할 수가
없었고 개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대원 서로가 눈에 띄는
대로 마구 묶고 튼튼하게 묶였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날은 흐린 날이었고 일부 비줄기가 약하게 흩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항법장치가 고장난 수송기의 조종사의 다급한 무전음이 울렸다.
"landing zone이 어디인지 식별을 못하겠다! 도대체 아군 비행기는
어디에 있고 어디가 살리나스 공항인가!"라고 다급하게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눈으로 따라가던 선도기를 놓친 것이다.
점프를 위해서 문을 열자 광풍과 비바람이 마구 때리면서 기내로
들어왔다. 조종사는 마지막의 확인으로 그저 남쪽으로 지상을 보면서
날고 있었다. 타켓 상공에 이르자 조종사는 곧 연료로 인해서 오래
날지 못한다고 고함쳤다. "연료가 떨어져 간단 말야!!!"
당시 비행장에는 앞의 레인저팀과 같이 점프한 82공수사단의 전투공병대가 활주로에 장애물을 제거해 주기로 되어 있었으나 교신이 되지 않았고, 결국 레인저 지휘관은 상공에서 전투용무전기를 개방하여 30분 전에 내린 레인저 지휘부 병력을 호출하여 비행장 상공에 집단강하가 가능한지를 무전으로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활주로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로저."
"아직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사격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활주로에는 장애물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오버."
조종사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활주로가 치워졌다면 사격을 받더라도
연료 때문에 바로 착륙하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는 레인저 병력을 점프시키고 그들이 치우는 동안 공패스를 돌아서 착륙하려는 것이었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조종사와 레인저 지휘관은 점프를 해버리기로 결정한다. 대원과 장비가 수송기에서 빠져나가면 약간은 더 날수 있을 연료를 절약하기 때문이다.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2파 레인저 병력은 다시 새벽 5시 34분에
첫 강자하가 비행기를 뛰어나갔다. 처음 뛰어내린 것은 75레인저 1대대 B중대의 전술작전팀(TOC)이었고, 25분 후에는 A중대가 뛰어내렸다.
30분 후에는 A중대의 나머지 7명이 살리나스 공항을 조금 지나쳐 뛰어내렸다.
이때가 오전 6시 34분이었다. 나머지 병력은 오전 7시 5분에 모두 뛰어내렸다. 이들 75레인저의 1대대는 활주로의 동쪽 끝에서 규합했고, 그곳에는 75레인저 1대대 C중대 인원과 그린베레 정찰팀, 델타 포스 등 총 60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베레 정찰팀은 네이비 씰과는 틀리게 내륙의 목표를 정찰하고 있었고, 델타포스는 이미 리치몬드 감옥을 습격하여 작전을 완성하고 퇴출을 기다리고 있던 병력들이었다. 델타포스 오퍼레이터들이 나뉘어 DZ주변 2언덕을 질주하면서 착륙장 엄호를 도와주었다. 델타포스는 거의 떨어져가는 탄약으로 계속 엄호하고 있었다. 그때쯤 레인저 병력들도 제대 규합이 되어 전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시간 반 동안의 점프로 마지막 7명이 뛰어내렸을 때는 이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500피트에서 뛰어내린 병력들이 공중에 낙하산과
함께 떠 있던 시간은 불과 12-15초였다. 그리고 쿠바군의 대공화기가
공중으로 발포되었으나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drop zone은 매우 좁았다. 이유는 활주로가 끝나는 수 미터 부근부터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7시 7분 75레인저의 2대대가 점프를 시작했다. 모든 수송기의 연료가 불안했고 점프가 늦은 비행기는 간땡이를 졸이면서 공패스를 돌며 다른 비행기의 점프를 지켜봤다.
그러므로 그들은 훈련보다 앞 비행기를 바짝 붙어서 살벌하게 점프를
시켜야 했다. 점프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성공적이었다. 한 레인저
대원의 생명줄이 꼬인 상태로 비행기 후미에 매달렸다. 결국 이 병사는
기체의 인수모듈을 이용해서 기체 안으로 끌어들여졌다.
"바뻐죽겠는데 지금 왜 매달리고 지랄이야. 염병할!"
결국 2대대는 활주로 서쪽 끝에서 규합했다. 당시 델타포스 주임상사인 레익 핸니와 오퍼레이터들은 이후 그라나다 침공을 다룬 "Inside Delta Force"란 책을 썼고 그 302와 303페이지에는 이렇게 써 있다.
"우리가 비행장의 높은 곳에 있을 때 누군가 '저기 비행기가 보인다'
라고 소리쳤다. 난 주위를 둘러봤고 동쪽에서 날아오는 C-130을 보았다. 그 선도기가 비행장 상공에 도달했을 때 쿠바군의 대공화기가 발포되었고, 선도기는 그것을 피하느라 춤을 추고 있었다. (automatic cannon fire)
결국, 선도기가 대공포를 피해서 이탈했으나 다른 수송기들은 그대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레인저 병사들이 기체문에서 떨어져나와 점프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 너무 낮았다. 그들은 낙하산이 펴지고 나서 바로 몇초 후에 땅에 굴렀다. 갓뎀! 정말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대공판넬이 깔린 곳으로 달렸다. 우린 그들에게 우리가
아군이라는 것을 알리려했고, 또한 다음 능선에서 갈겨대고 있는
쿠바군 23밀리 대공포 쪽으로 조준사격을 가했다. 실탄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아군 비행기가 맞을까봐 크게 걱정되었다.
첫 비행기가 레인저 중대를 점프시키는 동안 다른 비행기들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고 다음 번으로 점프를 시키기 위해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레인저 대원들은 활주로에 1천 피트 정도로 흩어져서 떨어졌다. 그때 적의 장갑차가 활주로로 들어오면서 기관총과 중기관포를 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오, 세상에....안 돼!" 소리를 질렀다. 낭패감에 휩쌓여 난 소리쳤다.
"저런, 개자식들이 우리 아군을 조각 내고 있다!"
우린 거리도 멀었고 실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장갑차가 활주로의 중앙에 들어섰을 무렵 레인저 대원 몇이 응사를 하면서 두발의 90밀리 무반동총을 장갑차에 발포했다.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그 사격을 받고 장갑차가 공항 쪽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두 번째 점프가 시작되고 있었다. 상공에는 거대한 녹색의 낙하산 무리가 장식을 하고 있었다. 용감한 놈들이었다....
그런데 점프 도중에 다른 건쉽수송기가 지상의 대공화기로부터 사격을
다시 받았는데, 그 궤적은 지상에서 수송기로 정확히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수송기에 맞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피탄되었으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레인저 부대가 점프뒤에 지휘관이 규합을 아직 하지 못했는데 상공에서는 수송기가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난 레인저 병력의 용감한 모습을 목격했다. 하나의 레인저 병력의 무리가 규합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전투구호와 명령을 고함치고 있었다.
'Ranger! Lead a way~~!!'
그러더니 그 무리는 바로 대광화기의 궤적이 올라오는 포좌를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뒤에 대공포가 잠잠해졌다. 이후
세 번째 레인저의 점프가 상공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대공사격 없이 평온하게 점프했다.
그날 들은 이야기로는 그 대공포좌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것은
레인저의 한 상병이 명령 없이 자발적으로 이끌었던 것이라고 들었다.
그는 "이제 충분할만큼 엿 같았다!"라고 고함치고는 갑자기 땅에서
일어나 돌격했다고 한다. 그러자 주변의 대원들이 그를 따라서 공격했다. 너무나 멋진 병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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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내린 레인저 1대대 병사들은 왜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었나
알 수 있었다. 활주로에는 트럭과 불도져가 착륙을 방해하도록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낙하후 그라나다군의 사격이 있었으나
이후 점차 잠잠해졌고, 1대대원들은 연료가 떨어져가는 수송기를 위하여 사력을 다해 트럭과 불도져를 치웠다. 다행인 것은 이 차량들의 일부에 시동키가 그대로 꼽혀져 있었다는 것이다.(전쟁의 묘미. 영화 '승리의 전쟁'의 짜집기성)
결국 못 치우는 것은 키가 꼽혀 있던 차량이 시동을 걸어서 활주로
밖으로 밀어냈다. 오히려 쿠바산 불도져는 이후 활주로에 평평하지
못한 부분을 평탄작업을 하는데 쓰기까지 했다. 너머지 부대원들은
건물이 있는 곳으로 공격했고 그리 큰 반격없이 공항은 점거되었다.
<그 이후....>
오전 10시 비행장에서 이동한 최초의 레인저 1대대 2소대는 미국인
학생들이 있던 True Blue Campus에 도달했고 1소대와 3소대는 여전히 활주로에 남아서 경계에 임했다. 1대대 B중대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쿠바군 본부와 멀지 않은 고지대를 점거했다. 2대대는 활주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점거를 시작했고 Canoe Bay쪽을 감시했다. 비행장은 점거되었다. 수송기들은 바바도스로 재급유를 하기 위하여 날아갔다. 점프 비행기 이후에 따라온 수송기들도 M151 gun jeep와 모터사이클, 그리고 MD500 헬기를 내려놓고 다시 바바도스로 돌아갔다.
점프한지 8시간 후에 75레인저 2대대 B중대의 지휘관은 레인저 병사
두 명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했다. 중대장은 실종된 병사가 B중대와
쿠바군의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 쿠바인 건설노무자
한 명과 레인저 분대 11명이 휴전을 암시하는 깃발을 들고 쿠바군
쪽으로 접근했다.
레인저의 엄호 속에 쿠바인 노무자가 쿠바군 진영에 들어가서 미군
지휘관의 의도를 전했고, 쿠바군은 사로잡은 미군 두 명과 쿠바군
부상자들을 맞바꾸는데 동의했다. 결국 두 명이 풀려나고 부상당한
쿠바군이 교환되어 풀려났다. 이후 미군 레인저 지휘관은 80-100명
정도의 그 쿠바군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고
전투가 지속되었다. 이후 이들은 82공수사단과 전투 후에 결국
항복했다.
오후 3시 30분에 레인저 1대대 A중대 쪽으로 BTR-60장갑차로
무장한 반격이 시도되었다. 이들은 2소대 전방으로 진격했고
활주로 쪽으로 사격을 가했다. 레인저는 개인화기와 M60 MMG,
LAW, 90밀리 무반동총으로 응사했고 두 대 중에 하나의 장갑차가
무반동총에 맞아서 정지했다. 결국 두 대 모두 완파되었다.
나머지 한 대는 후미를 맞고 결국 후퇴하였다. 이 장갑차도 결국
스펙트러 건쉽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날 미국학생들을
구출하러간 True Blue Campus의 동쪽에서도 레인저 부대원들에게
활주로 동쪽 1킬로 지점의 고지에서 사격을 받았다.
그러나 스펙트러 건쉽의 여유가 없어서 결국 A-7D 항공기로 공격을
가했고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때 상공에서 쏜 탄환이 몇 발 레인저대원
쪽으로 떨어졌으나 다행이 불발탄이었다. 첫날의 작전에서 레인저는
목표인 비행장과 True Blue Campus를 점령했고 그 날 총 5명이
전사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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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의 첫날, 가장 곤란하고, 피곤하고, 황당했던 병력이 미 75레인져였음은 그들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이 사진이 그라나다 포트 살리나스 공항에서 점프하는
레인저 병력을 찍은 실제 사진이다. 아마도 지상에 있던
그린베레 등 선견 특수작전 병력이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은 그라나다 침공일 격추되는 미군 헬기가 극적으로 찍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