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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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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동아시아 히틀러의 관심을 받았던 동아시아인
자유로운자 추천 0 조회 764 23.08.17 00:41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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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8.17 01:15

    첫댓글 중화민국 패배의 결과물이 중화인민공화국인 것을 생각해보면 글쎄요.. 뭐 한국의 경제성장에 관해서야 좀 더 매력적인 경쟁투자처로 보일 중화민국보다는 공산권이라 그런 거 없었던 중공이 낫기는 했겠습니다만, 나라가 분단된 채 중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꼭 좋은 면만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더불어 독일과는 나치 집권 이전부터 교류한 터라 그게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때까지 이어진 거라서요. 독재적인 면은 이미 쑨원 때 혁명전략에서도 군정-훈정-헌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그 씨앗이 들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다른 혁명가들한테 "충성"을 요구하기도 했고.

  • 작성자 23.08.17 01:15

    그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감사힙니다..

  • 23.08.17 02:32

    국민당이 국공내전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면 한국전쟁도 아예 일어나지 않거나 “김성주의 난” 정도가 되었을 거고, 아마도 한국은 중화민국의 스피어에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독중관계 문제 이전에 임정의 정통성을 둘러싼 미중의 알력이라거나, 종전 이후 진행되던 국민당 정권과 소련의 관계회복 및 그에 큰 영향을 받게 될 한반도의 정치상황이라거나… 아주 껄끄러운 일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뭐 그래도 3년동안 나라 절딴내가며 전쟁 벌이는 것보다는 100배 낫다고 봅니다만…

  • 작성자 23.08.17 08:52

    그렇긴 하죠 ㅎㅎㅎ

  • 23.08.17 09:36

    장남인 장징궈는 소련 유학 가서 사회주의쪽이었는데 참 ㅋㅋ;;

  • 작성자 23.08.17 10:02

    그랬군요...

  • 23.08.17 10:18

    나치 이전 바이마르 시기부터 관계의 연장선상입니다;;
    장개석의 우파적 성향과는 별개로요.

    1차 대전 이후의 독일은 국제왕따라 같은 왕따였던 소련과도 외교하고 일제에 눌려지내던 중화민국과도 외교했던거라 보시면 됩니다.

  • 작성자 23.08.17 12:03

    그렇군요.. 감사 합니다

  • 23.08.17 13:31

    중국 (국민당)과 독일의 협력 관계는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열강 국가들이 본격 줄서기를 시전하는 가운데(?) 독일이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악화되고 1938년 이후 지원도 끊어졌기에 국공내전이 국민당의 승리로 끝났어도 독일과의 관계 문제가 특별히 대두되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 작성자 23.08.17 13:48

    그렇군요.. 추축국이 된 독일이었으니.... 그럴만 합니다

  • 23.08.17 18:36

    지금의 중공과 가상의 중화민국중 어느쪽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지였냐인데...

    개인적으론 중공만큼 맛갔을것 같지는 않았을것 같아서...

  • 작성자 23.08.17 18:41

    그렇긴 하죠 사실

  • 23.08.18 14:42

    장위국은 사실 대계도 아들이라는 설이 유력하죠.

  • 작성자 23.08.18 14:54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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