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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래 남조선에서 왔쑤 다래...베트남, 캄보디아 여행기
-세상은 맑은 날이 더 많지 않을까?-
베트남 가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우리가 사는 땅위의 세계! 흐린 날 보다는 맑은 날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내의 인생도 힘들다, 힘드니 하면서도 그래도, 보람찬 맑은 날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흐린 날에 힘들어 하는 우리! 고생에 힘들어 하는 우리!
맑은 보람찬 날이 올 때를 고대하며 고뇌를 감내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나는 그러기 위하여 일도 열심히 하고 산에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한다. 그래서 오늘 여행을 간다.
여러 생각에 마음을 두다 모니터를 보니 제주도 상공을 지나고 있다. 한라산도 보이고 자세히 보니 마라도 위를 지난다.
8월초에 “은하수” 에서 제주도를 왔을 때를 생각한다. 얼마나 더웠던지! 내가 오늘 가는 월남과 캄보디아는 얼마나 더울지? 처음이기에 설레임 반 기대 반이다.
어느새 호치민(옛 이름 사이공)시에 도착한다. 밖의 온도가 41도라는 멘트에 또 한 번 기가 죽는다.
반가운 친구가 마중을 나와 숙소로 향하던 중
오토바이떼에 또 한 번 어리 둥절...
그래도 미끈한 다리를 드러낸 여인의 오토바이 타는 모습은 좋아보였지. 그 모습을 놓친다면 “걸사랑맨”이 아니지...
오토바이가 많다.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베트남의 첫날밤이 저물어간다.
-운전의 마술사들인가?-
다음날 어느 농부의 초청을 받아 “다랏”이라는 지방을 가게 되었다.
구경을 하려고 조수석에 앉아 앞을 바라보며 두 눈을 감은 게 한두 번이 아이었다.
버스는 현대자동차라 익숙한데 운전을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카레이서들의 공연장 같기도 하다.
앞지르기를 하면 앞에서 오던 차가 알아서 옆으로 비켜준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날 일이다. 무질서 속에 고요한 질서가 유지되는듯하다. 오토바이든 차든 흐름에 따라 유유히 간다. 은하수에 김 실장은 게임도 안 될걸 !
운전이 아니라 마술이더군. 역주행에, 앞지르기에 오토바이에 뒤섞여 정신이 없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별로 없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 건너는데 차라리 눈을 감고 유유히 건너가면 알아서 피해간다. 피하려 멈칫하면 더 위험하다한다.
크락션 사용은 예사이다. 크락션을 눌러도 기분 나쁘게 생각지 않고 서로 주위 하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3시간 쯤 지났을까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어느 여인이 계란을 사라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저러했을 거라는 생각에 계란을 사서 요기를 했다. 그 여인의 모습이 뭔가 애처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가 둘이있단다.
8시간을 차로 이동하는 도중,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 1,000미터를 오르는데 8시간이 걸릴 정도로 평원이 펼쳐진다. 이곳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왜 그리 힘들게 사는지! 자원은 없지만 일의 의욕이 있는 우리가 더 복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 든다.
8시간 만에 흥(농부의 딸)이라는 여인의 집에 도착한다.
순간 기절할 지경이었어!
딸 다섯이 얼마나 이쁜지! 12살부터 28살까지. 셋 째달 흥은 더더욱, 건너 마을에 최 진사 댁 딸 정도는... 지금도 가슴이 떨려온다.
이날 주인장이 흥의 방을 내주어 그 여인의 향기를 맡으며 행복의 꿈나라로...
모기의 밥은 되었지만 아름다운 밤이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맛 던 풋풋한 향기가 코끝에 스민다. 그 향기는 소중한 추억이기에 어느 향기 보다 그리운 향기다.
풀 벌래 소리가 들린다. 고요함에 더 크게 내 가슴에 들린다.
그 소리 또한 어느 악단의 연주보다 아름다운 소리다.
방바닥에 누워 등에 전해지는 알싸함을 느껴본다. 어릴 적 툇마루에 누웠을 때 전해지는 추억이다.
아침공기가 상큼하다. 내 고향 양평에서 느끼던 상큼함이다.
-아름다운 여인 “흥”-
이 지방은 정말로 좋은 기후를 갖춘듯하다. 일 년 내 우리의 초가을 날씨 정도라 한다. 낮에는 따갑고 새벽에는 섭씨16도정도로 떨어지는 가을날. 해발 천여미터 정도 되는 대 평원이다. 배추, 무, 가지 감자, 고구마 등등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벼도 삼모작을 한단다.
좋은 기후 때문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이 깨끗하고 순박하고 이목구비가 좋아보였다.
그중에서 출중한 미모를 간직한 “흥”은 어떻겠어. 내가 여인 예기를 너무 많이 쓰나.
내 친구도 “흥”이 좋다한다. 말이 통해야 마음을 전할 터인데, 벙어리 냉가슴 앓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꼬리를 내렸지.ㅎ
몆칠 간 휴양을 온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열대지방에 소나무가 보인다. 고원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폭포앞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폭포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에서는 보지 못한, 규모가 얼마나 큰지...
옆에 자리한 사찰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찰 연못에 연꽃이 가득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휴게소 여인들이 “오빠” 라는 단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물건을 사라고 권한다.
사장은 우리나라의 60년대 시골 5일장을 연상케 하고 학생들이 등교 길에 자전거 오토바이의 물결이다.
“산사랑맨” 넉살이 좋아 즐비하게 늘어선 점포에 다니며 콩가이와 말도 걸어본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ㅎㅎ
시장풍경
“흥” 여인 의 향기에 취함도 잠시... 아쉬움을 안고 호치민시로 돌아간다.
티 없이 맑고 청순한 “흥”의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에 담고
-베트남 여섯 개 성(城)의 유래... 믿거나 말거나-
옛날 지구상에는 베트남 이라는 나라 하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남자 한사람 만 살고 있었다. 여자는 달나라에 여섯 자매만 살고 있었고...
달나라에서 내려다보니 지구에 이상한 것이 하나 걸어 다니기에 여섯 자매가 그것을 확인하러 지구로 왔다. 목욕을 하는데 이상한 것이 달려 있음에 호기심이 발동! 큰언니가 확인을 하러 간다. “달린게 뭐냐” 하니 “나도 모른다.” “그럼 가슴에 달린 게 뭐냐?” 하니 “나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 만지며 확인해 보기로 하였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나! 그래서 맞출 것을 맞춤에 상당히 기분이 좋았으리라... 서로 비밀로 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동생들이 언니 그게 뭐냐고 하니 잘 모르겠다고 하여 다음 동생이 가서도 언니와 같이 되었으리라...
여섯 자매가 아이를 낳았는데 각 지방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이것이 베트남 여섯 성(城)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 남자가 나였으면 좋으련만
하루하루를 보내며 이내들의 생활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할 일이 변변치 못하니까 행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는 일이 없어서일까? 달려오고 달려가고 때론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토바이의 물결이다. 분명 목적이 있는 사람일 터인데..
-티우 대통령 궁-
우리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월남 티우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월남은 티우가, 월맹 (베트콩이라 불렀슴 )은 호치민이 통치를 하며 전쟁을 했는데 미국 쪽 월남이 패하여 티우가 전범이 된 입장이었다.
그가 사용하던 궁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통령을 잡아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보며 역사는 승자의 몫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관저에 있을 때는 절대 권력을 누렸겠지만 패자의 몫은 죽음으로 답을 하는 가보다.
박물관
우리나라 군인들의 잔혹한 장면도 많이 전시되었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회수를 하여 전후세대는 한국의 그런 장면을 잘 모른다 한다.
티우는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으나 그곳에서 암살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친구가 나보다 보름정도 베트남에 먼저 도착했다고 자기가 원주민 이란다.
그렇게 큰 소리 치다가 택시 운전수에게 바가지를 크게 쓰고 말았다. 둘은 자위를 하며 “한국 같으면 너는 죽었다”하고 웃어넘길 밖에 ㅎㅎ
후진국을 다니다 보면 바가지요금도 추억일 것이다. 바가지를 쓰게 해준 원주민 내 친구에게 감사한다. ㅎㅎ
-걸사랑맨 베트남 여인에게 차이다-
하루는 김 우중씨가 만들었다는 백화점과 체신청, 성당을 구경 한 후 벤탕시장(남대문시장과 같은)을 들어갔는데 여기 저기서 이 오빠를 부르느라 난리다. 한국 사람이 많이 다니긴 다니는 모양이다. 손을 잡고 늘어지는데 정신이 없다. 그날 이 오빠 인기 끝내줬지 뭐. 그렇지만 물건은 안 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억수장마가 오기 시작한다. 지나던 오토바이들이 우위를 꺼내 입는 모습이 장관이다. 달리면서도 우비를 입는다. 비가 자주오니 일상생활인 듯싶다.
버스에서 내리니 우산도 없고 하여 영어 학원으로 뛰어 들었다.
여직원 둘이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작업을 시작했지. 영어도 하고 한국말도 조금하니 금상첨화지.
전화번호를 따내는데 성공을 했으니 역쉬 걸사랑맨 아니겠어?
유유히 숙소로 와서 영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지. 답장이 착착 오길래... 만나자고 했지 않겠어.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는 법, “미안하다, 내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연락이 왔다.
바보 나이를 밝히지 말았어야 하는 건디... 21세 여인인데...
걸사랑맨 체면 완죤히 구긴거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화요일 같으면 지금쯤 화요 뒷패는 어느 구간을 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밖엔 세찬비가 내린다. 여기 온지도 보름이 지났다. 나의 사랑이 그립다. 그 여인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조용히 그간의 삶을 회상해본다. 힘든 날 행복한 시간 슬픈 날 기쁜 시간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려 한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가는 길-
베트남 이웃나라인 캄보디아를 여행하기로 한다.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하여 갈 수 있으며 나는 버스를 이용 했다.
캄보디아 대평원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수도인 푸놈펜 까지는 약6시간 걸리며 2차선 도로이지만 생각 보다는 괜찮은듯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대평원에 마음을 빼앗겼다. 늪지와 논이 어울려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으며 물도 충분하고 논농사에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 넓은 농토에서 손모를 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우린 농토가 협소하기 라도 했지!
내가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전부 농토만 보인다. 저런 곳에서 농사를 멋있게 짓고 싶어진다.
베트남 캄보디아 국경
6시간을 가는 동안 산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정말로 부러운 땅 이다. 도로엔 소떼도 다니고 여느 시골의 풍경이다.
베트남에서 4시간 쯤 왔을까, 한강보다 조금 큰 강이 있는데, 다리가 없어 바지선으로 건너 준다.
바지선을타고
-킬링필드-
캄보디아의 하루가 간다. 열대의 더위에 잠이 오지 않는다. 몸도 무겁고 집 생각도 많이 난다. 딸이 많이 보고 싶다.
이곳 푸놈펜도 잘 살아보려 약동하는 그런 땅으로 보였다.
다음날 아침 오토바이택시(투톡)를 대절하여 시내를 관광 한다. 우리가 매일 타는 택시 보다는 고생은 되지만 여행의 의미가 느껴지는 정겨움이 있다. 마차를 타는 기분으로 탔다. 하루에 15불이니 가격도 저렴하다.
투톡은 오토바이에 경운기 뒷부분 같은 것을 매달아 운행하는 캄보디아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투톡이란 것
먼저 간곳은 영화에서 보았던 “킬링필드”라는 곳이다. 크메르 정부시절 100만 명 이상을 처형하여 집단 매장한 곳 이다. 이곳을 개발하려고 터를 만들다 시체가 나와, 개발을 중지하고 추모관 으로 만들었다 한다. 구덩이가 많은데 전부 시체가 나온 곳이며, 혐오감을 줄 수 있지만 역사라 생각하고 사진을 올려본다. 다 같은 우리 인류의 역사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킬링필드에 전시된...
어디에나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킬링필드에서 만난 세 어린이가 가슴속에 남는다. 울타리 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찍으려 하면 원, 투, 쓰리 스마일!하며 사진을 찍도록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그 목소리가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소리로 들렸다. 애처로움일까? 그 아이들이 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아이들이 구걸을 하기 위하여 울타리 밖을 맨발로 오가며 낸 길이 자꾸 생각난다.
-내래 남조선에서 왔수 다래...-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던 왕궁을 관람한다. 예전 이곳에 상당히 큰 왕권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왕궁의 크기와 정교함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궁궐보다는 화려 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규모도 큰 것으로 생각되었다. 관람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보였다.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 들리고...
캄보디아 왕궁 앞에서
이곳을 나와 북한대사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대사관 경비실에 가니, 북한군 복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북한군이라 생각하고 “내래 남조선에서 왔수 다래”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군. 뭐가 잘못되어 가는 구나 생각하는 순간 “Can you speak english?"란다. 이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지.
이곳 경찰이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했으면 북조선으로 잡혀 들어갈 뻔했다. ㅎㅎ
북한 대사관..
북한은 크메르정부시절 전쟁지원을 하였기 때문에 캄보디아 내에서는 남한보다도 대접을 받는듯하였다. 하긴 이 나라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공산주위 국가다. 우리 어릴 적 붉은기만 보아도 놀라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기가 베트남 캄보디아에는 많이 있다. 하지만 공산주위 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든다.
코끼리 쇼
강변과 절등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 지자체가 자매 결연을 맺어 홍보관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너무도 아파 힘들었다-
다음날은 앙코로왔트를 가려 했으나 너무도 아파서 베트남으로 철수하여 병원을 가기로 한다. 덕분에 외국 원정치료를 했다.ㅎㅎ
피로가 겹쳐서 인지, 갑자기 치통이 와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외국에 와서 아픈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꼈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일도 여행의 추억의 한 페이지리라.
바지선에서... 아파서 힘이든 모양...
강물이 진흙탕 이지만 그곳에서 수영을 한다. 하긴 오염원이 없으니 우리의 강 보다는 깨끗하리라.
베트남 캄보디아 국경은 비교적 쉽게 통과시켜준다. 버스 손님은 차에서 비자 발급을 대행 해주어 편하다.
중추절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이곳 베트남도 추석을 준비하고 있다. 상점에서는 중추절에 먹는 과자 같은 것을 팔고 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은 기쁨, 실망, 보람, 힘듦, 행복... 아마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행 아닐까?
여행은 여행지에 그간의 삶을 그려 보는 건 아닐까? 그것을 그리며 다음 여행의 행복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여행은 마음속에 추억을 그려 넣는 일 이라는 생각한다. 그래야 여행을 다녀야할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닐 런지?
다음의 여행지는 나의 사랑이 있는 곳이다. 그 사랑은 내 여행의 평생 동반자이다.
20100826 산사랑맨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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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도 기가막히고 재미있고 물흐르는 듯이 글을 쓰니까 아무도 감히 댓글을 달지 못하는 구나. 역시 대단한 사부!
근데 사랑이란 말은 단수로 써야하나 복수로 써야하나 나만 아는 비밀일까?
ㅎㅎ
잘 다녀오셨는지요*^^8
잘 다녀왔나이다. 제주도에서 뵙고... 아저씨도 안녕하시지요?
산사랑맨 대단하심. 담에 나도 한번 찐가주이소. 고생했소. 얼굴보니까 저보다 약 20년은 들어보이는데 그래도 쐬주 한잔 할정도는 되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좋은글 많이 올려 주세여...
ㅎㅎ 자기가 20년은 더 들어 보이고 마피아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아참 빠진게있어여 아께 북한 대사관 갔을때 소설인과 같은 사 랑맨같은 분들은 북 으로가야 되는데.... 쪼까 아쉽네그려...............
산사랑맨 .....앙코르왔트를 못간게 정말 아쉬움이 크오...두번갈곳은 못되지만 살아있는 동안 한번은 가볼만한곳인데...인류 역사의비밀을 간직하고있으며 뭔가신비 함이흐르는 곳 다음에 꼭한번 가보세요..거대한 돌산을 깍아 만들었는지 실제 바위를 쌓아 만든건지 알순없지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음에 가서는 꼭겟습니다. 하지만 미완성은 완성을 위한 한 과정이기에... 그곳에서의 후의에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