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金載根 (1894~1964)】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愛國團鐵原郡團) 창단과 활동"
김재근은 1894년 1월 9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경암(景岩)이고 초명은 김상덕(金相德)이다. 1908년 강원도 김화군에 신창학교(新昌學校)를 설립하여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하다가 1911년 2월 일제의 명령으로 폐교한 뒤 춘천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김재근은 1913년 4월 수원농림학교 재학 중 은밀히 동지를 규합하고 항일투쟁을 꾀하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18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19년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제2차 학생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1919년 8월 6일 출감하였다. 출감 후 김재근은 1919년 8월 7일 남대문 밖에서 권인채(權仁菜)를 만나 상해임시정부 특파원이 되었고, 상해임시정부 지원 단체로서 대한독립애국단에 참여하고 강원도단(江原道團)을 조직하라는 권유를 받고 적극 나섰다.
김재근은 1919년 8월 11일 고향인 철원으로 내려가서 이봉하(李鳳夏)·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이용우(李用雨)·박건병(朴健秉)·김완호(金完鎬)·오세덕(吳世德)관련항목 보기 등을 만나 상의하고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창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뒤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은 철원군단이 발전하여 승격하였으며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국의 도단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했고 규모도 컸다.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이 발각되어 김재근은 여러 간부들과 함께 주모자로 검거되었고, 그해 3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4년 3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재근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