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인형 / 손택수
나는 거리의 춤꾼 잔칫집이 있으면 어디서나 춤을 추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껑청한 키로 나른한 허공을 마구 붐비게 해주지
이벤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허리를 꺾었다 폈다, 어깨를 끝없이 출렁여대지
한번은 허수아비 대신 논가에서 춤으로 새들을 쫓기도 했어
뽑아서는 안 될 시장을 위해 선거 홍보를 하기도 했지
나는 거리의 춤꾼 몸속으로 쏴 바람이 들어오면
구겨진 몸을 펴 올리며 우쭐우쭐 일어서지
바람으로 단련된 이 팽팽한 근육을 좀 봐
내 몸속엔 아마 잔칫집들을 찾아다니며 타령을 하던 각설이의 피가 흐르나 봐
지하철에서, 여관에서, 노래방에서
24시간 환하게 불을 켠 비상구
표시등 위의 사람처럼 온 도시에 춤꾼들이 우글거리지
달리고 달려보지만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비상구를 품고
오늘도 간판을 새로 다는 거리
이 참을 수 없는 바람은 과연 어디에서 불어오는 걸까
춤을 멈출 수 없어 발목을 잘라버린 빨간구두 소녀처럼
저주를 풀기 위해 나는 나를 찢어버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피시식 찾아낸 구멍 어디로도 바람이 새어 나가지 않게
누군가 친절하게 반창고까지 붙여놓았군
그래 나는 어쩔 수 없는 거리의 춤꾼
다음 개업식장을 찾아 송풍기가 꺼지면
허공을 물속처럼 허우적거리며 무너져내려야 해
사정 뒤의 콘돔처럼 허물만 남은 몸으로 바닥을 짚고 고통스럽게 쿨럭거려야 하지
하지만 고통이라니, 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고통도
몸을 구깃구깃 접어 마는 치욕도 딴은 춤의 일종
그런데, 바람은 또 어디에서 불고 있는 걸까
-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