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오늘의 탄생화는
"포도(Grape)" 입니다.
꽃말은 '신뢰'
갈매나무목 포도과 낙엽성 덩굴식물.
포도라는 명칭은 유럽종의 원산지인 중앙아시아지방의 원어<Budow>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도속은 난온대에서 온대에 걸쳐 약 60종이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열매는 식용한다.
덩굴성이어서 덩굴손으로 감아올라간다.
잎은 어긋나고 홑잎이며 3∼5개로 얕게 갈라진다.
덩굴손은 마디에서 잎과 마주나는데, 각 마디에 연속적으로 붙는 것과 두 마디 간격으로 붙는 것이 있다.
꽃은 5∼6월에 작은 송이모양으로 많이 달린다. 양성화 외에 수꽃과 암꽃의 구별이 있는 것도 있다.
꽃잎은 녹색으로 5개가 끝에서 서로 붙어 있으며 밑부분이 갈라져서 떨어진다.
양성화는 씨방상위의 암술과 5개의 수술이 있다.
열매는 장과(漿果)인데, 2∼3개의 종자가 있으며 9∼10월에 익는다. 열매는 크기와 모양, 색깔이 매우 다양하며 단맛과 신맛이 있고 식용한다
* 디오니소스는 포도와 포도주의 신
이집트인들이 오시리스를 와인의 신으로 섬겼듯이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Dionysos)를 와인의 신으로 섬겼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를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태어날 때에 불타는 빛의 세례를 받고 비에 의해서 길러졌다고 한다.
뜨거운 햇빛은 포도 열매를 익게 하고, 비는 포도 줄기와 잎에 생기를 북돋운다.
장성한 뒤에 그는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로 술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였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는 그를 저주하여 광증(狂症)에 걸리게 하고, 지상의 여러 지역을 정처 없이 해매는 방랑자로 만들어 쫓아 버렸으나, 레아 여신이 그의 병을 고쳐 주었다.
치유된 후 그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포도나무 재배와 와인 기술을 전수 하였다.
아티카에서는 이카로스 왕의 환대를 받고서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선사 하였고, 에톨리아에 갔을 때는 칼뤼돈 왕 오이네우스의 접대를 받았는데 왕비 알테아에게 반하였다.
왕이 이를 모른 척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주었다. 여기서 ‘오이네우스’라는 이름이 포도나무를 선사받았기에 붙여진 이름인지 아니면 그 왕의 이름을 따서 포도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오이네우스(Oineus)는 ‘와인’을 의미하는 오이노스(Oinos)와 관계가 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의 화신(化神) 이며, 와인을 마시고 느끼는 환희의 화신이다.
황홀경에서 벌어지는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은 거친 춤과 소란스런 음악, 마음껏 마시고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도송이가 달린 포도나무가 디오니소스 를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그리스인에게 그는 나무 전체의 신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그리스인들이 ‘나무의 디오니소스’에게 희생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의 신상(神像)은 종종 반듯한 몸뚱이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데, 팔도 없이 망토를 걸치고서 머리를 나타내는 턱수염 달린 가면을 쓰고 머리나 몸통에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뻗어 나온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디오니소스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는 농업과 곡식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 자신이 농사일을 하였다고도 전한다.
원래는 쟁기를 사람이 손으로 끌었는데 디오니소스가 처음으로 소에게 쟁기를 끌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농사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그는 농부들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가 오시리스 같은 식물신(植物神) 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으로 살해당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신성한 의식 속에서 재연하였다.
디오니소스의 죽음은 여러 문헌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죽음에 관한 크레타의 신화는 다음과 같다.
디오니소스는 크레타의 왕 유피테르 (Jupiter)의 서자(庶子)였다.
주피터가 타국으로 가면서 왕좌와 왕홀을 어린 디오니소스에게 양도했는데, 그 아내 유노(Juno)가 아이에 대한 질투심 을 품고 있는 것을 알고서 자기가 신임 하는 호위대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겼다.
그런데 유노가 호위대를 매수하고 딸랑이와 거울로 아이의 환심을 산 후 아이를 덤불숲으로 유인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시종들인 티탄들이 디오니소스를 습격하여 사지(四肢)를 토막 낸 뒤 여러 가지 향초를 넣고 몸뚱이를 삶아서 먹어 치웠다.
그녀의 자매인 미네르바(Minerva)는 그 행동에 가담하긴 했으나 디오니소스의 심장을 빼돌렸다가 유피테르가 돌아오자 그 범죄를 폭로했다.
분노한 유피테르는 티탄들을 살해하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 심장을 안에 넣은 조상(彫像)을 만들고 그를 기리는 신전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디오니소스에 관한 또 다른 신화에서는 죽은 디오니소스의 부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형태의 신화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데메테르가 절단된 아들의 사지를 연결하여 다시 청년으로 만들었다.
다른 형태의 신화에서는 그가 매장된 뒤 곧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누워 있는 것을 제우스가 소생시켰다고도 하고, 제우스가 디오니소스의 심장을 삼킨 다음 세멜레와 관계를 맺고서 새로이 그를 낳았다는 신화도 존재한다.
디오니소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크레타인들은 2년마다 제전을 거행하여 그의 수난을 상세히 재현했다.
디오니소스 숭배자들은 살아 있는 황소를 이빨로 갈래갈래 찢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숲을 돌아 다녔다.
그들 앞으로 디오니소스의 심장이 담겨 있는 상자가 운반되어 오면 피리와 심벌즈의 거친 음악에 맞추어 어린 디오니소스를 죽음으로 이끈 딸랑이 소리를 흉내 내었다.
디오니소스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도 그의 부활을 의식으로 재연했다.
그리고 부활의 교리 혹은 영생의 교리를 숭배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으로 보인다.
어린 딸을 잃고 그 죽음을 슬퍼하던 아내를 달래는 글에서 플루타르코스는 그 디오니소스 신비 의식을 가르치며 그 의식에 담겨 있는 영혼불멸 사상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에게 내려진 수난은 포도나무의 다음과 같은 수난, 즉 사람들이 가을에 포도를 수확해서 발로 밟고 또 봄이 되면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은 신의 피가 되며 그렇기에 디오니소스 축제 때에 사람들은 와인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새 와인은 겨울철에 그리스인들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술이다.
와인은 신의 피인 동시에 죽은 자들의 세계인 대지의 깊숙한 곳에서 뽑아 올린 수액(樹液)이기도 하다.
따라서 와인은 죽었다가 얼마 후 부활 하여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의 피를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 축제들은 겨울 동안 계속되었으며, 새 와인과 죽은 이들을 긴밀하게 연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