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난 것도 목단꽃이 제 몸을 흔들어 향을 보내는 것도
내가 그들의 존재를 느낄때에 비로소 보이게 된다.
책도 그렇다.
'읽어야지!' 라고 생각해서 구입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니 나는 그 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이덕일역사서로 수원 화성과 정조와 관련하여 꼭 읽어야 할 책이어서 구입했다.
그런데 강진을 몇 번 다녀오는 동안에조차도 끝내지 못한 미안해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더는 미루지 말고 시작!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정약용이 현실을 보는 눈이다.
책은 2권으로 나뉘어 1권은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2권은 어둠의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가 건릉에 모셔진 1800. 11. 3. 이후 노론벽파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선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이 탄핵되었다.
윤지충, 권상연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에 충격으로 정약용은 천주교를 버렸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빌미가 중요했다. 정조의 지원아래 자라난 남인인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그래서 천주교도라는 죄명으로 약전, 약종, 약용형제가 모두 잡혔다. 약종은 세계 천주교 선교사상 최초로 자청해서 영세를 받은 이승훈과 함께 사형당했고 약전과 약용은 유배길에 올랐다. 약전은 전라도 신지도, 약용은 경상도 장기.
책 서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돈다. 정조 사후 헝클어지는 개혁을 보았기 때문이다.
26쪽의 정약용 형제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작은 형 약종은 지상을 버리고 천상에 자신의 성을 쌓았지만 정약용은 끝내 이 지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정약전도 마찬가지였다. 정약용이 이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상사회에 대한 희구로 승화시켰다면, 약전은 거친 어부들과 물고기, 그리고 해초와 소나무에서 피안의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이복형 약현은 정약용이 <선백씨진사공묘지명>에 쓴 대로 '물의가운데 들어가지 않고 가문을 보호하고 집안의 제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정약용과 그 형제들은 시대에 맞서기도 하고 초월하기도 하고 침잠하기도 하면서 파란의 세월을 견뎌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후세인들의 길이 되었다. 오늘까지도 계속되는. --
일찍이 사도세자와 관련되어질까봐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아버지 정재원, 그리고 정조의 후원과 사랑을 듬뿍 받은 정약용은 정조의 사후 친가와 외가 모두 풍비박산이 났다.
정리해보면 맏형 정약현의 처남은 이벽이었고, 약현의 딸 명련은 백서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과 결혼하였다. 이복 여동생은 채제공의 아들 채홍근에게 시집가서 귀양가거나 노비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형 약전은 유배지에서 죽고, 셋째형 약종은 천주교를 지키며 사형당했다. 그리고 그 전에 부모의 신주를 불태웠다가 사형당한 진산사건의 주인공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종 육촌이었으며 베이징에 가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서적을 들고 돌아온 이승훈은 매형이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제 세상 만난 노론의 칼날 아래 놓인 남인들 가운데서도 정약용의 집안이 가장 피해가 컸다. 그것은 정조의 개혁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아비를 죽인 신하들과 얼굴을 맞대고 정국을 이끌어야했던 정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가며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그래서 내게는 조선의 27명 왕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걸핏하면 명령을 받들지 않는 노론 신하들에게
"오늘날 조정에 임금이 있는가, 신하가 있는가? 윤리가 있는가, 강상이 있는가? 국법이 있는가, 기강이 있는가?"
임금으로서의 정조의 탄식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차근차근 개혁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 그 중 하나가 정약용이 3년간의 여막살이를 하는 동안 화성을 쌓는 규제를 작성해 바치도록 한 것이다. 정약용은 중국의 윤경의 지은'보약(堡約)'과 유성룡의 '성설'을 참고해서 새로운 성설을 집필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수원 화성이 탄생한 것이다.
남인 세력을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천주교는 정조 생전에 학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정조는 성리학자였지만 천주교를 굳이 억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리학이 밝아지면 사학이 종식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며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한 것이다. 성균관의 택학생들이 사학을 엄하게 배척할 것을 요구하는 통문을 돌렸을 때에도 정조는 상소에 답할 뿐 탄압은 하지 않았었다.
작가 이덕일은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한 세가지 요인으로 *조선 성리학의 교조화 *천주교를 신봉한 양반 대다수가 남인 * 당시 교황청의 경직된 교리 해석과 기계적 강요로 보았다. 제사와 장례문제는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 거부감을 주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오늘 창의반 아이들과 해미읍성을 돌아보며 천주교 이야기를 잠깐 해주었다. 그리고 호야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린 잎들이 나는 여느 나무와 같은 나무였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곳이어서 여느 나무와 다른 것이 되었다.
작가가 묻는다.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역사속에서 누가 그 시대를 단정지을 수 있는가? 우리는 후세 사람들이 단정지을 시대를 살아가지는 않는가? 시대를 살면서도 언론에 막혀, 무지에 막혀 시대를 알지 못하는 이 현실은 또 다른 닫힌 세계일 것이다.
첫댓글 겨울에 읽으면서 많이 아파하고 그분을 존경하게 된 책이었슴다^^ 선생님 글이 참 반갑습니다.
다산님을 주인공으로 한 아이들 책 가운데
보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해남에서 유배생활 하는것을 그시절
아이 눈으로 바라보며 쓴...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 이구요.남인 서인. 노론 소론 ㅡ
당파 싸움에 조선의 기강이 흔들린 정치판이야기
지겹고 무섭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