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별력, 악을 이기는 능력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즉 하느님을 만나러 가면 이웃을 만나 함께 사는 공동체 생활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수도원이다.
영의 식별력은 악을 이기는 힘이고, 이기는 그 방법은 악과 싸우지 말고 오히려 무시해야 하는 것이다. 악을 이기는 수련은 악하고 싸우지 말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순수하고 맑은 의식에서 들리고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 말씀의 관찰을 통해서 식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은 생각을 통해서 가능하다.
구약의 원수와 죄는 이스라엘 사람, 곧 이웃이 아닌 이방인들이고 신약의 죄와 원수는 사람이 아니라 나쁜 생각이다. 초기 천년 동방교회의 여덟 가지 악습은 탐식, 음욕, 탐욕, 낙담(우울증), 분노, 태만, 허영, 교만으로서 자기의 내적인 상태인 심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 번째 천년의 서방교회는 칠죄종을 말하는데,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나태 등 비교적 대상관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방교회의 영성은 플라톤의 사상이 복음과 만나 이뤄진 영성이고, 서방교회의 영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만난 영성이며, 미래의 그리스도교 영성은 아시아의 생각과 문화 곧 공자, 맹자, 순자, 장자등 유불도와 만나는 영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식별력 또한 이러한 동서양의 사상적 큰 흐름 속에서 살피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악과 악습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마음과 영혼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그 훈련은 자신을 방해하고 반대를 암시 하는 대상에 집중하지 않고, 악습들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잘 들여다보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과 제시하는 권고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위로(consolatio)와 실망(desoloatio)을 분별하며 그것을 성찰해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위로의 성찰과 실망의 성찰을 홀로 또는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 구체적인 삶을 생각과 마음을 토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찰과 식별은 개인의 작업이면서 동시에 공동의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선과 악의 시작에 생각이 있으며 영의 건강은 평범한 영혼의 상태와 마음의 평화와 함께 일어난다. 때문에 은총 생활의 영적 체험에 조급해 하지 말고, 인생은 스피드보다는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적 체험에 너무 빨리 도달하기 원하는 자는 거짓감각과 속임수를 맛볼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악한 생각들의 마지막 뿌리는 무질서와 이기주의이다. 자기애, 이기주의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하면서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자녀들이 자기 돌봄의 방어적 형태에서 드러나는 자기애와 이기주의 성격으로 굳어질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판단하지 말고 자기 인생을 해석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스스로를 거부하는 완고함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있는 딱딱한 청동으로 된 벽인데, 영의 식별은 주님께서 이것을 무너뜨리도 록 우리를 초대하는 선물인 것이다.
생각의 시작을 바라보기
선과 악의 시작에 생각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작하는 생각을 바라볼 때, 생각으로만은 죄가 아니지만 죄의 대상에 생각이 동의할 때 죄는 성립된다. 나쁜 생각은 악, 내 뜻대로 결정하기, 선에서 갈라 놓는 것이다. 선한 생각은 인간의 인격 안에 잉태된 생각, 생각의 시작, 과정, 끝에 선이 있으면 된다. 선과 악의 시작에는 늘 생각이 있으며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서도 생각이 있다. 그러므로 성찰과 식별을 위해 생각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고 기록한 것을 분석하는 것이 성찰인데 소그룹들이 함께 기록한 것을 나누는 공동성찰 나눔도 식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사제와 수도자가 성찰하고 식별하는 영성의 종합이 예수회의 영신수련이다. 영신수련의 중심인 성찰과 식별을 위해서 먼저 자기의지를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수련에 온전히 참여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 마음, 영혼을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 영신수련의 목적인 것이다.
식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보호하 기 위함이다. 식별을 잘하는 완벽한 모델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잘 만나면 식별을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의 식별에서 경계해야하는 판단을 잘하는 사람은 신약의 바리사이들이다. 자유의지는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기죽이지 말고 꺽지도 말아야 한다. 자신이 할 말은 하고 선택도 자신이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응원하면 자유의지는 더욱 활발해 진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남편은 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공감을 받고자 하는데, 그럴 때 남편과 부인에게 삶의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행복의 의지도 자라난다. 그러면 자유의지에서 균형 있는 영적인 힘이 나와서 식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생각들에서 열정을 분리해야한다.
첫 번째 좋은 생각이 유지되려면 열정을 떼어 놓아야 한다.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아있으면 악은 영향을 줄 수 없기에 악한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생각이 비이성적 의지와 만날 때 탁한 것으로 바뀌고 열정만 남는다.
의식성찰
1. 감사드리는 생활로 시작한다.
2. 내 죄와 잘못을 떨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3. 생각에 대한 성찰하기-이냐시오묵상
4. 하느님께 용서를 구한다.
5. 개선할 결심을 하고 주님의 기도로 마친다.
나는 하루 중 어느 순간을 가장 많이 감사하는가?
나는 하루 중 어느 순간을 가장 적게 감사하는가?
나는 오늘 언제 가장 많이 사랑을 주고받았는가?
나는 오늘 언제 가장 적게 사랑을 주고받았는가?
나는 오늘 언제 가장 생동감이 있다고 느꼈는가?
나는 오늘 언제 가장 생동감이 빠져나간다고 느꼈는가?
오늘 중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 하느님, 우주에 가장 큰 소속감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오늘 중 그런 소속감을 가장 적게 느낀 때는 언제 인가?
오늘 중 언제 가장 행복했는가?
오늘 중 언제 가장 슬펐는가?
오늘 중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오늘 중 최악의 순간은 언제인가? 4)
(( 4. 데니스 린, 쉴라 린, 마태오 린 SJ. 글, 성찰, 김인호, 장미희 옮김, 성 바오로 2016. 17-18. 22. "매일 밤 나는 먼저 그날 감사할 것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린다. 다음에 그다지 감사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내가 감사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에 대한 느낌에 머문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그것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치유는 나의 모든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모든 감정과 함께 내가 사랑받도록 스스로 허용하는 만큼 일어난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있는 그대로 고통을 인정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한 뒤에는 거의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 ))
식별의 목표
1. 생각에서 열정을 분리한다.
열정은 처음의 생각과 늘 만나야 한다.
2. 생각에 맑음과 순수함을 선사한다.
3.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성사를 잘 보면 원통해 하는 자가 바로 악마이다. 성실히 훈련된 성찰을 하는 순간 우리에게 어려움은 외적인 실천보다 내적 훈련에서 다가온다.
빵만 주지 말고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이 기술이 그분의 영적 지도의 방법이자 목표이다.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한 어 느 선장은 세계일주를 요트로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 바로 요트가 고장이 났을 때라고 고백했다.
하느님과 악마가 싸우는 장소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곧 내 정신과 영혼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내가 마음과 영혼이 고장날 때, 고쳐야 하듯이 좋교생활은 바로 마음을 맑게 하는 마음공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을 들여다보세요!
사람마다 받는 선물이 다양하다. 내가 잘하는 것 곧 능력, 탈렌트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숨어 있는 능력을 만나야 한다. 곧 논리, 이성, 지성, 온유, 따뜻함... 이런 영적 감각들은 꽃과 열매와 같아서 피고 맺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 마음의 주인 자유와 영혼의 주인인 사랑이 내 속의 자아 곧 나다. 나의 자유 안에서 감각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본디 다 좋은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음의 땅 상태가 돌, 가시덤불, 길바닥과 같은 실패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의 생각은 주님과 다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100배의 열매를 맺어주신다. 영적 감각은 좋은 땅이었던 마음에 열매를 맺는 데 있다. 예를 든다면 사제인 나는 법적으로 소유하는 나의 방은 없지만 본당의 모든 방을 사용할 수 있기에 그런 방은 100개도 넘는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맞다 틀렸다 판단하는 병이 걸린 듯하다. 상대방과 대화에서 주로 비교하며 표현하는 말은 대개 '틀렸다'라고 한다.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바꿔서 사용해보길 초대한다. '블리다'를 '다르다'로 '다르다'를 '새롭다'로 표현하면 분명 마음이 환해진다. 부활은 생명의 진실이 드러 남이다. 대화로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랑은 영혼을 비추고 자유는 마음을 비춘다. 90년대 초반에 상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사랑과 영혼'의 영화는 영매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인간을 토대로 표현하고 있다.
영혼이 없는 사랑은 없다. 마음이 없다면 자유와 선택이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K-POP 오디션에서 재능 많은 가수를 선발하려면 수준 높은 전문 심사위원들의 레슨이 절대 필요하다. 그들의 능력과 기술을 표현해줘야 한다. 이것이 영적 감각을 표현하는 능력이다. 곧 영적 감각을 발견하고 기르기 위해서는 하느님 사랑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의 대 데레사 역시 수도원 쇄신과 영성을 새롭게 세워나갈 때, 십자가의 성 요한과 같은 신학자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였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분의 영이 내 마음 안에 거처하신다. 회의 많이 한다고 영적인 가치가 성장하거나 성숙하지는 않는다. 예언직, 사제직, 왕직 등 삼중직무로 영적인 변화를 할 수 있다. 부활전례에서 빛의 예식과 세례 예식이 중심이다. 곧 빛을 받아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의 영성이다. 이는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나에 대한 이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정적 사랑만으로는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에 도달할 수 없다. 내 안의 몸(soma), 혼 (psyche), 영(pneuma)이 분리된 삶을 살 때, 혼자 있고 싶은 데 외롭고, 함께 하고 싶은 데 괴로운 자곧 외롭고 괴로운 외괴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가정이 닮아야 하는 가정으로 수십 년 전에는 세계 1 위였는데 지금은 닮지 말아야 할 가정의 모델이 되 어버렸다. 가정을 바로 세우려면 먼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의 식별은 서두르지 말고 생각을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과 행위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으로만 자유로운 결정을 하면 늘 좋은 선택이라는 보장을 받지 못한 다. 그 생각 안에 악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의 식별을 통해 우리의 인격 안에 선이 잉태될 때 좋은 선택과 결정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영재 양성교육에서 어린 학생들의 학습 모습을 관찰해 보니 영재들 역시 먼저 자신들의 생각을 꺼내 놓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쁜 생각은 갈라놓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악과 자기 자신 만의 자유로운 결정에서 시작 된다. 아무리 기도생활을 열심히 잘해도 악에 매혹될 수 있다. 유혹자 는 우리의 몸, 마음, 영이 약한 순간에 처할 때 계속 공격하도록 정탐하며 유혹한다. 그러므로 수도자와 신앙인도 주위를 환기하고 깨어있고 절제함을 길러 야한다.
영성 상담자는 내담자의 생각을 느낄 수 있는 분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담자는 영적동반에서 상담자에게 모든 생각을 드러내야 함으로 고해성사처럼 비밀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영적 동 반의 최고봉이 고해성사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고해성사가 미사 전 즉결심판식의 구조로 이루어지기에 영적 보물을 경험하기가 매우 어렵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