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메주마을(강원 정선)] 깊은 산속에 항아리-첼로 그리고 스님…
산좋고 물맑은 강원도 정선의 산골 두타초암. 스님과 첼리스트가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아 오순도순 살고 있다. ‘메주와 첼리스트의 정선전통식품’이란 회사 이름을 내걸고 우리네 장을 담그고 있다. 수행
25년의 승려와 카톨릭신자이던 음악가의 결합이 빚어 낸 된장 간장 고추장은 과연 어떤 맛을 낼까.
영동고속도로 하진부에서 빠져
나와 여량 나전으로 이어진 405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굽이굽이 물결치듯 길이 휘어진다. 두타산 밑 해발 700m에 자리잡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마을. 2천여개의 항아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온통 항아리 천지다. 너른 마당 한가운데 여나믄 열로 줄지어 서있는 항아리는
군기가 잘든 일등병의 눈빛처럼 반짝거린다. 건물 옥상에 병풍처럼 빙 둘러 서있는 항아리는 낮은 담을 연상시킨다. 마당 입구 한켠에 간장 달이는
무쇠가마솥 아궁이 위로 항아리 굴뚝도 있다.
메주를 빚고 토종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판다는 특이한 첼리스트 도완녀(48)씨는
아직도 그곳에서 인심 좋은 미소와 거침없는 말씨로 손님을 맞는다.
첼리스트와 스님의 향기 나는 산골살이를 쓴 `메주와
첼리스트'(다움 刊)로 유명세를 날린(?) 그들은 꽤나 많은 도시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음에도 불구, 책속에 그려졌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뤼벡 음대를 7년간 유학한 뒤 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하며 첼로를
가르치고 연주하던 도씨. 수백만원의 짭짤한 수입과 제자를 가르친다는 보람을 접어두고 마흔살의 나이에 돈연스님(55)과 결혼, 이곳 가목리에
둥지를 튼 지도 이제 5년이 넘었다.
돈연스님은 나주 출신. 송광사 교무부장으로 있다가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절을 나와 인도
녹야원에서 기원정사까지 2천㎞ 도보순례를 했다. 지금은 된장공장 사장이면서 불교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하고 있고, 스키강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18년 전 두사람은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함께 수강했다. 그러다 우연한 전화 한통으로 재회한지 열달만의 프로포즈, "농부와
첼리스트. 어울리지 않소?" 25년 동안 수행한 학승과 한창 잘 나가던 첼리스트는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산골 메주공장 주인이 됐다.
지금이야 주변 눈총이 가셨지만 그때는 누구나 "결사 반대"였다. 그게 5년. 그 동안 딸 둘과 아들
하나가 태어났다. 스님은 스님, 도완녀씨는 '가목리 메주공장 도교수'로 불린다.
지난 95년은 시련의 해. 메주공장에 불이 나
온갖 살림살이는 물론 첼로와 스님이 출간을 앞두고 적었던 7천장 육필원고까지 다 태웠다. 이후 맨주먹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이다.
말끔히 새로 지은 건물은 단층 살림집과 2층짜리 공장으로 이루어졌다. 공장 건물의 1층에선 일꾼들이 일을 하고, 2층에 가면
손님도 맞고 차도 마시는 응접실 겸 거실이 있다. 공장 옆에 단층으로 지은 살림집은 부엌과 마루, 안방, 작은 사무실만이 있는 단조로운
구조이다.
살림집도 그렇고 응접실도 그렇고 안주인이 통유리를 좋아해서인지 벽면이 온통 시원하게 유리로 되어 있다. 특별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도 창밖으로 보이는 앞산과 뒷산 시냇물 등 바깥 풍경이 한눈에 다가왔다. 실내에 있어도 밖에 나와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항아리가 도열을 하고 있는 마당 한 옆에는 가설 무대도 있다.
매년 7월 6일마다(도씨의 생일인 동시에 남편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날) 강릉 등지에서 독주회를 열어왔는데 이제는 아예 앞마당에 무대를 세우고 방문객들을 위해 연주도 한다. 바쁜 일과중에도 그는 짬짬이 첼로의
현을 켜고, 음을 고르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입소문 하나에 의지해 이 절 아닌 절을 찾는다.
스님의 진솔한 법문과 도교수의 첼로 연주를 들으며 자연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다. 밤이면 공장은 대웅전이요 콘서트홀이다. 도량(도장)과 속세를
오가며 체득한 스님의 지혜에서 사람들은 작설차를 들다 말고 고개를 끄덕인다. 곧 형광등이 꺼지고 촛불이 켜지며 첼로가 울린다. '청산에
살리라', '그리운 금강산', '헝가리 광시곡'에서 '눈물젖은 두만강'까지. 산골 부부가 엮는 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돈연스님과 도교수 사이에 난 자식들은 모두 세명. 여래(8)와 문수(7), 보현(5)이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차를 마시겠다고 가부좌를 틀더니 금방 일어나 온 방을 뛰고 굴러다닌다. 그러나 도씨는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버려둬 키운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여기서는 장만 만드는 게 아니에요. 음악회도 열고, 자기 얼굴에
책임지는 법, 부자되는 법, ‘차아암 좋다’는 식의 마음 바꾸는 법 등의 강의도 합니다.
며칠씩 묵는 분도 있는데, 자연의 품에
안겨보니 세상 욕심의 키가 많이 줄어든다고 말하죠. 충전이 필요한 분은 이곳으로 오세요”
넓은 통유리창이 나있는 2층방은 손님이
묵을 수 있다. 한번은 밤에 도착한 한 손님이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이 둘러쳐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창밖 풍경이
운치 있다.
틈틈이 글도 써 부부가 수필집도 두권씩 냈다. 아내책 ‘메주와 첼리스트(도서출판 다움)’, 남편책 ‘무엇하러들
오셨는가(미학사)', ‘남편인줄 알았더니 남편이 아니었더라’ ‘시인과 농부 그리고 스님’. 메주공장 사장과 공장장이 겪은 산골 사람 얘기가
소박하고 정겹게 그려져 있다.
이집 장맛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기회는 점심식사때다. 호박과 양파를 숭숭 썰어 넣은 된장찌개의 맛은
끝내 준다. 된장에 버무린 우거지는 직접 재배해 순하고, 달래무침의 맛이 상큼하다. 식사 때 오는 길손이면 누구나 이집 산채와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다.
된장 공장. 한쪽 공간에는 허연 곰팡이가 쓴 메주가 켜켜이 쌓여 잘 말라있고, 다른 공간에서는 메주를 씻어
망치로 부수고 있다.
도씨는 메주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좋은맛이 우러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장을 담근다. 좋은 기운을 받는
장이 맛있게 익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장맛이 제법 입소문을 타 방문객과 전화주문이 이어진다.
좋은 재료만 엄선하고 손으로
만들다 보니 값이 비싼 편. 된장 1.8㎏ 25,000원, 간장 0.9ℓ 20,000원, 고추장 2kg 40,000원. 전화주문시 택배비용
4천원이 추가된다. 문의 첼리스트 메주마을 도완녀. ☎(033)562-2710.
◆여행 메모
: 영동고속도로 하진부 나들목으로 진입,
여량-나전(405번 지방도)-임계를 거쳐 정선 입구 42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아우라지 동해 방향으로 좌회전. 45㎞쯤 가면 좌측에
농산물판매소, 우측에 백봉령쉼터가 있고 우측에 눈썰매장 입구를 알리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도전리. 도전리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나
2㎞ 정도 가면 하얀 메주공장 건물이 보인다.
또 다른 길은 영동고속도로 대관령을 지나 구산 삼거리에서 국도35호선으로 빠져나와
남쪽으로 가다보면 송계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동해쪽 국도 42호선으로 달리면 농산물 판매소와 장수식당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에서 우측으로
난 샛길로 빠지면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5분쯤 달리면 2천여개의 항아리가 보인다.
출처 : 국토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