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상- 나찰(羅刹)상 | ||||||
사찰 추녀 떠받치는 조각상 | ||||||
불법 외호하는 호법신장 법주사.日 법륭사.印 태양사원 등서 두루 발견 본래 신통력 있는 잡귀…불교 수호신으로 수용 전등사 조각상도 나녀상 아닌 ‘나찰상’이 타당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 밑의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상은 사람의 모습을 닮았는데, 옷을 거의 다 벗은 채로 작고 네모난 연꽃 대좌 위에 쪼그리고 앉아 손과 머리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몸 전체가 핑크색을 띤 살색으로 채색된 이 인물상 중에는 몸에 폭이 좁고 긴 천으로 사타구니 사이의 부끄러운 곳을 가린 모습을 묘사해 놓은 것도 있다. 눈은 크고 부리부리하게 생겼으며, 약간 벌린 입술 사이로 하얀 이빨이 드러나 있다. 대웅보전 사방 모퉁이 추녀마다 하나씩 모두 네 개의 조각상이 배치돼 있는데, 그 중에서 북서쪽에 있는 눈동자가 파란색인 인물상은 왼쪽 팔은 위로 들어 추녀를 받치고, 오른쪽 팔은 오른쪽 무릎위에 올려놓고 있어 양손을 다 들고 있는 다른 것과 차이가 난다. 파란 눈동자는 다른 신중 계통의 인물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나찰(羅刹)만이 가진 특징으로, 이것은 이 조각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조각상들을 나녀상(裸女像), 또는 나부상(裸婦像)으로 알고 있으며, 이 상이 대웅보전 추녀 밑에 있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이 조각상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내용을 맹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등사 측에서도 절을 찾아 온 일반 관광객들에게 이 조각상을 설명할 때도 전설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관광 안내 책자. 문화재 답사 단체의 안내인들도 모두 전설의 내용을 들먹이며 이 조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일까? 전설에 따르면 광해군 시절에 대웅보전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래 마을에 사는 술집 아낙네와 정분이 나서 자기가 갖고 있던 물건과 돈을 모두 그녀에게 맡겨두었는데, 공사가 끝나갈 무렵에 술집 아낙네가 그 돈과 물건들을 갖고 도망 가버렸다. 이에 도편수는 울분을 삭히지 못해 그 여자를 나체 형상으로 만들어 무거운 추녀를 들고 있게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전설의 여자주인공이 주모가 아니라 도편수가 사랑한 여인이고, 그 여인이 목수가 공사에 전념하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함께 도망가니 그에 대한 복수로 나체상을 만들어 법당 모퉁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인물상이 단순히 벌거벗은 여인상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주는 사례가 보은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에 있다. 팔상전은 부처님 생애의 여덟 가지 중요하고 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으로, 법주사 불전 건물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팔상전은 5층 목탑 구조로 되어 있는데, 2층 추녀 밑에 용의 상과 난쟁이 조각상이 공포(包) 위에 올려져 있다. 네 곳의 추녀 중 세 곳에 난쟁이 상을, 한 곳에 용의 형상을 조각해 놓았다. 난쟁이상은 공포를 구성하는 수서(垂舌 ; 공포에서 쇠서 끝이 아래로 삐쭉하게 휘어 내린 모양으로 된 것) 위 두 개의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입에 용의 꼬리를 물고 있다. 눈은 왕방울 눈이고, 나선형으로 표현된 눈썹과 수염은 짙은 색깔이다. 전등사의 조각상과 이 난쟁이상들의 유사점은 첫째, 반나체의 모습이라는 점, 둘째, 배치되어 있는 위치가 추녀 밑이라는 점, 셋째,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추녀를 떠받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일본의 사찰 건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각상을 찾아 볼 수 있다. 나라 현에 있는 호류지(法隆寺)의 오층 목탑에 장식된 난쟁이 조각상이 바로 그 예인데, 일본에서는 이 물상이 나찰상으로 알려져 있다. 호류지 목탑도 법주사 팔상전과 마찬가지로 오층 목탑 구조로 되어 있는데, 2층의 네 모서리 추녀 밑에 나찰상이 올려져 있다.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무릎을 짚고 양 어깨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것과, 두 팔을 들어 추녀를 받치고 있는 것 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어느 것이나 얼굴에 힘겨운 표정이 역력한데, 이것은 이들이 그냥 추녀 밑에 앉아 있지 않고 힘겹게 추녀를 떠받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묘법으로 보인다. 나찰상의 원형을 살펴 볼 수 있는 예가 동인도 오리샤 주(州) 코나락 지방의 태양사원에 현존하고 있다. 이 나찰상 역시 배가 통통한 난쟁이 모습을 하고 있는데, 두 팔과 머리로 위쪽 건축 부재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상과 꼭 닮은 난쟁이상이 팔공산 환성사 대웅전 불단 우측면에서 발견된다. 적갈색 몸에 볼록 튀어나온 배, 부리부리한 눈과 주먹코가 인상적인 이 난쟁이상은 쪼그리고 앉아 짧고 통통한 두 팔을 들어 위쪽의 단을 받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스님들은 이 상을 나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찰은 범어 락샤사(Raksasa)를 음역한 것이다. 남성신은 나찰사(羅刹娑) 또는 나차사(羅叉娑)로 불리며, 여성신은 나찰사(羅刹斯) 또는 나차사(羅叉私)라고도 불린다. 뜻으로 번역해 사용하는 말에는 식인귀(食人鬼), 가외(可畏), 속질귀(涑疾鬼), 호자(護者) 등이 있다. 나찰은 그 이름처럼 원래 잡귀(雜鬼)의 하나로, 신과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였다. 푸른 눈, 검은 몸, 붉은 머리털을 가진 모습을 하고서 신통력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며 언제나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도 한다. 이런 나찰이 불교의 성립과 더불어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 외호신이 된 것이다. 나찰은 야차(夜叉, yaksa)와 함께 다문천왕 권속에 들어가 있으며,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고 부정을 물리쳐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불경에도 나찰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묘법연화경〉 다라니품(陀羅尼品)에 보이는 나찰에 관한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국천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다라니 신주는 42억의 많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이니, 만일 이 법사를 침해하고 훼방하면, 곧 이 많은 부처님을 침해하고 훼방함이 되오리다.’ 그 때에 나찰녀(羅刹女)들이 있었으니, 첫째 이름은 남바, 둘째 이름은 비람바이며, 셋째 이름은 곡치(曲齒)이고, 넷째 이름은 화치(華齒)이며, 다섯째 이름은 흑치(黑齒)이고, 여섯째 이름은 다발(多髮)이며, 일곱째 이름은 무염족(無厭足)이고, 여덟째 이름은 지영락(持瓔珞)이며, 아홉째 이름은 고제(皐帝)이고, 열째 이름은 탈일체중생정기(奪一切衆生精氣)였다. 이 열 명의 나찰녀는 귀자모(鬼子母, 어린아이를 수호하는 신. 본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나찰 귀신이었으나, 부처님께서 그녀의 막내아들을 감추고 교화하신 결과 부처님께 귀의했다)와 아울러 그 아들의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다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또한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받아 지니는 이를 위해 옹호하고, 그의 쇠함과 환란을 없애 주오리다. 만일 어떤 이가 이 법사의 허물을 찾아내려 하여도 능히 얻지 못하리이다.’” 나찰들은 이어서 〈묘법연화경〉을 읽고 외우며 받아 지니는 이들을 악귀로부터 보호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겠다는 서원을 한다. 불경의 나찰 관련 내용, ‘나부상’ 전설 내용의 비현실성, 그리고 같은 유형의 다른 유적과의 형태적 유사성 등을 감안할 때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의 인물상은 세속에서 말하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아니라 법주사 팔상전, 환성사 대웅전 불단, 일본 나라 법륭사 오층 목탑, 인도 태양사원 추녀에 장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외호신중의 하나로, 곧 나찰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179호/ 11월16일자] ※ 팔공산 환성사 대웅전 불단의 나찰 동인도 오리샤 주(州) 코나락 지방의 태양사원의 처마 아래에 있는 나찰상과 꼭 닮았다. ※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 밑의 인물상 ‘벌거벗은 여인상’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조각상이다. 불법과 불자를 외호하는 신중인 나찰(羅刹)로 보는 것이 옳다. ※ 보은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의 인물상 머리에 연잎을 얹는 점 외에는 전등사 대웅보전 인물상과 조형적 의지와 발상이 같다. ※ 일본 나라 법륭사 오층 목탑 추녀의 나찰 쪼그리고 앉아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법주사 팔상전의 나찰상과 대동소이하다. | ||||||